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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공구상 인생2막







미국서 18년 사업하다공구상 차린 사연

강원 원주 문막계양공구 김주진 대표





미국서 자동차 튜닝하다 귀국
 
강원도 원주시 문막읍에는 시작한지 불과 2년이 지났지만 급속히 성장하고 있는 공구상이 있다. 문막계양공구. 미국에서 사업을 하던 김주진 대표는 고향 강원도에 돌아와 공구인으로 인생 2막을 연 곳이다. 미국의 사업가로 살다 한국의 공구인으로 성공한 그의 사연을 들어보자.  
“한 1년만 미국에서 살아 보려고 갔는데 18년을 살게 되었어요. 여러 가지 사정도 있고 한국도 그리워서 2013년도에 되돌아 왔어요. 주로 자동차 튜닝 사업을 했는데, 처음에는 작은 가게식으로 하다가 기술자들을 고용해서 조금씩 키워나갔어요. 미국은 자동차를 튜닝해서 쓰는 문화가 발달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곳의 베테랑 기술자들은 정말 남달라요. 공구는 물론 공구보관함부터 달라요. 그런 엔지니어들이 사용하는 공구를 이젠 제가 취급하고 있네요.”
김주진 대표는 미국 생활을 청산하고 한국에 돌아와 경기도 여주의 한 시멘트 공장에서 일을 했다. 그러다 미국에서 번 돈을 투자할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찾았는데 마침 공구상 사업이 눈에 띄었다. 

 
월급 없어도 OK! 기술만 배울 수 있다면
 
“아는 형님 공장이었는데 거기서 자재 담당이었어요. 그 공장이 
‘여주계양공구’라는 곳에서 공장에 필요한 공구를 구입하니까 그걸 보고 공구업에 눈을 뜬 거죠. 한국이 불황이라고들 했지만 공구장사가 의외로 잘되더라고요. 물론 여주 계양공구는 30년 넘게 장사를 했으니 더 잘 되는 곳이기도 했고, 이거 괜찮겠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특히 공구는 사치품이 아니잖아요. 대부분 손님들이 필요로 해서 구매하는 필수품이니 더 매력적이죠. 그래서 여주계양공구 사모님께 찾아갔죠. 일 좀 하게 해달라고 했어요. 월급을 안 받아도 좋다고 하고 그래서 한 14개월을 일했죠. 처음에는 차비 정도 받다가 나중에는 100만원도 받고 그렇게 일을 했어요.”
김 대표는 14개월간 적은 월급을 받으면서 일했지만 배우는 것이 참 많았다고 한다. “그때 공구를 수리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면 지금처럼 매출을 올리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한다. 지금도 공구를 수리하다 잘 모르는 것이 있으면 여주계양공구에 전화해서 물어본다. 그 덕분에 사람들이 버리는 중고 예초기도 잘 수리하여 임대하거나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판매하여 매출을 올리고 있다. 남들이 보기에는 고물인 전동공구도 그의 손을 거치면 보물로 재탄생한다.
“원주 시내랑 문막은 거리가 좀 있고 그래서 임대 수리랑 판매가 잘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가격이 같더라도 손님입장에서는 왔다 갔다 시간을 아끼고 제가 조금이라도 친절하고 서비스 잘 해드리면 근처의 손님들은 우리 가게에 올 것이라고 확신을 했어요. 공구상도 이제는 서비스 정신을 갖추어야 하죠. 수리는 지금도 계속해서 배우고 연구하고 있어요. 쉽지 않은 기술입니다. 하지만 재미있어요.”


 
오래된 공구상 옆에 내 가게 낸 이유
 
원주 문막읍은 원주시내 번화가와는 떨어져 있는 곳이다. 공구를 수리하는 곳이나 공구를 빌려주는 곳이 없었다. 김 대표가 이곳에 공구상을 세운 이유 중 하나다.
“가게 자리가 여기에 위치한 것에도 이유가 있어요. 바로 옆에 다른 공구가게가 2곳이 있는데요. 그 2곳이 원주 문막에서 공구장사를 가장 오래한 가게들 입니다. 오래 된 가게 사이 가운데에 우리 가게가 터를 잡았죠. 양쪽 가게는 오래된 만큼 사람들에게 유명하구요. 그래서 원주나 문막 사람들에 자연스럽게 홍보가 되는 것 같아요. 이 가게를 이만큼 시작하는데 미국에서 벌어서 온 돈으로도 부족해서 은행으로부터 대출도 받았어요. 대출 받는 것이 두렵지 않느냐고 하는데 저는 그런 두려움은 없어요. 어차피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인생 아닙니까.” 
문막계양공구는 규모도 상당하지만 정리 정돈이 참 잘 되어 있다. 어느 지방 공구상과는 다르다. 지방 공구상은 보통 만물상이 되는 경우가 많다. 손님들이 찾는 것은 다 구매를 하니 가게가 어수선해지고 정리정돈이 안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일손이 부족하고 시간이 부족해서다. 그러나 문막계양공구는 깔끔한 디스플레이를 자랑한다. 이런 정리정돈을 위해서는 성실함과 꾸준함이 필수다.


 
아침 6시에 문 열어 성실함으로 무장

문막에서 가게 문을 제일 일찍 여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아침 6시에 문을 열어 저녁 7시 20분에 닫는다. 또 손님이 불러만 준다면 언제든 달려간다. 절대 손님을 기다리게 하지 않는다. 공구를 수리하는 손도 빠르다. 사소하지만 이런 모습을 통해 공구수리 분야에서는 프로라는 인상과 더불어 가게에 찾아온 손님에게 믿음을 주고 있다. 
“지금도 직장생활하면 월 300만원은 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세상은 그만큼 열심히 하면 인정받아요. 처음에는 100만원을 받아도 300만원 주게끔 일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 거죠. 공구장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적정한 물건가격과 더불어서 친절함과 신속함을 보여야 해요. 저는 사람을 볼 때 기술보다는 성실함과 부지런함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려고 하는 자세가 중요한 거죠. 대학교를 나와 똑똑하고 많이 아는 사람이라 해도 교만하고 자만한다면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안 되는 것 같아요. 열심히 일해서 손님에게 잘하고 성실한 모습을 오래 보이게 되면 신용이 쌓이게 됩니다. 좋은 믿음과 신용이 하루아침에 쌓아지겠습니까.” 

문막계양공구
강원도 원주시 문막읍 문막리 원문로 1844  / T.033)744-0979
 
글·사진_한상훈


 

‘이걸 못 하랴?’ 공구상 시작 그래도 처음엔 힘들었죠
 
경기 평택 태양공구종합상사 김강효 대표



 

엔지니어 15년 차… 개업 6개월간 매출 제로의 악몽
 
대형 에어 기계 대리점에서의 엔지니어 및 기술영업 생활을 한 지 15년 차. 이제는 웬만큼 경력이 쌓여 아래에 사람을 두고 부리기만 하면 되는 시점에서 김강효 대표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공구상이라는 새로운 시작을 하기로 결심했다. 2015년의 일이다. 그보다 몇 년 전. 처남이 먼저 경기도 오산 쪽에 공구상을 차렸다. 처남 역시도 공구와는 거리가 먼, 건설회사에서 근무하다 그만두고 나와 공구상을 시작했던 거였다. 김 대표는 주말마다 처남의 가게로 가 일을 도우며 자신도 회사를 그만두고 나와 자신만의 공구상을 차릴 것인지 말 것인지 고민했다.
“원래 여기 이 태양공구종합상사 자리가 처남이 창고로 쓸려고 했던 자리였어요. 그런데 장인어른께서 ‘너도 이제 개인 사업을 한 번 해 봐라’하셔서 딱 한 달 고민하고 공구상을 차린 거예요. 아내의 도움도 컸죠. 아내가 해보자고 했으니까 시작한 거지 만약 아내가 말렸으면 못 했을 거예요.”
처음엔 ‘이걸 못 하랴’하는 마음으로 공구상에 도전했다는 그. 하지만 세상일이란 녹록치 않은 법이다. 오픈하고 처음 6개월 동안은 매출이 전혀 안 나왔다. 당시 매장 근처는 그야말로 허허벌판. 주택가도 눈에 띄지 않고 그렇다고 공단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가끔 손님이 오더라도 공구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대표에게 짜증만 부리다 나가버리기 일쑤.
“다니던 회사에서 기계의 기술영업도 하고 수리도 했기 때문에 수공구나 전동공구는 그래도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시작해 보니 공구는 그 종류가 정말이지 어마어마하더라고요. 제가 알고 있던 건 그야말로 새발의 피였어요. 그래서 3~4개월 동안은 집에도 안 가고 가게에서 혼자 먹고 자고 하면서 공구에 대해 공부했습니다.”


 
‘뭔들 못 하랴’… 아침부터 밤까지 공구 공부
 
대표는 아침 일찍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공구 공부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공구에 관한 모든 것이 적혀 있는, 대형 유통사의 온라인 주문 시스템을 하루 종일 켜 두고 있었고 또 두꺼운 공구 카탈로그도 언제나 책상 위에 펼쳐 뒀다.
그의 그런 노력에 하늘이 감복했던 것일까. 가게 문을 연지 얼마 되지 않아 바로 근처에 LG칠러 공장의 입주공사가 시작되었다. 공사가 시작될 거라는 소문은 전부터 돌고 있던 것이었지만 그렇게 곧장 시작될 줄은 아무도 몰랐던 공사였다.
“2년 전 공장 공사가 시작될 때 진짜 물건이 한 세 배는 늘어났어요. 종류도 그렇고 수도 그렇고. 설비업체부터 전기업체, 바닥업체, 철골업체, 벽지업체… 그런 업체들에 전부 다 납품을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참 고맙게 생각하는 게, 진짜 거기서 일하시는 분들에게 공구에 대해서 많이 배웠어요. 저랑 인간적으로 친해지다 보니까, 제가 가서 인사하고 다니고 웃고 다니고 그러다 보니까 업체에서 저희 가게 물건을 하나라도 더 써주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더 써주려는 물건에 대해서 제가 몰라. 그러면 가르쳐줘요 자기들이. 사진을 보내 준다거나 공구 스펙을 적어 준다거나. 진짜 많이 배웠어요.”
현장의 근로자들과 대형 공구 유통사의 영업사원들에게 많이 물어보고, 또 많이 배워 나가면서 공구상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 갔다. 


 
공구 지식 적은 것은 영업력으로 커버
 
김강효 대표는 공구상에서 일하다 독립해 공구상을 차린 사람과 자신의 차이는 단 한 가지, 공구에 대한 기초 지식량 뿐이라 말한다. 하지만 그 차이는 경험과 공부를 통해서 충분히 좁혀 갈 수 있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유리함도 있다 한다. 그건 바로 회사를 다니며 쌓아 온 영업력, 다시 말해 사람과의 친화력이다.
“저 같은 경우는 회사에 다니면서 전국으로 영업을 뛰어 본 경험이 있지 않습니까. 사람을 상대해 봤잖아요. 지금 저희 가게는 90%가 납품이고 소매는 거의 없는데, 그럴 수 있었던 건 제가 물건을 팔러 공사 현장에 들어갔던 게 아니라 들어가서 사람을 만났기 때문이라 생각해요. 만난 사람을 내 사람으로 만들면 그는 나에게 물건을 주문합니다. 무조건 싸게 파는 게 아니라 어떻게든 고객이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사양으로 납품했어요. 그 덕분에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단지 공부를 많이 한다고 많이 파는 게 아닙니다. 현장에 가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판매량이 달라지는 거예요.”
장부를 끼고 현장에 가면 이곳 저곳에서 “태양!”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과거에 근무하던 직장과는 달리 공구상이라는 한 공간에만 묶여 있어야 한다는 게 답답하긴 하지만 그래도 ‘내 가게’니까 ‘내 물건’이니까 일할 맛이 난다 하는 대표. 그는 지금 가족 앞에 당당한 가장이라고 말한다.
“요 앞 공터에 내년 8월부터 또 공사가 들어가요. 웬만큼 물건은 갖춰졌다고 생각하니까 이제는 돈을 모아야죠. 돈을 모아서 제대로 된 건물을 사고 싶어요. 진짜 내 건물에서 직원도 네다섯 명쯤 두고 큰 공구가게를 운영하는 것이 꿈입니다. 이제 진짜 시작이에요.”

태양공구종합상사
경기도 평택시 진위면 청호리 44-16 / T.031)662-0966

글·사진_이대훈



제조사 영업맨에서 절삭공구백화점으로

“인생은 도전 그 자체죠! ”
 
충남 천안 하나툴링 이성건 대표




 
하려면 빨리하자, 30대 인생2막 도전
 
서른 두 살에 인생2막을 시작한 이성건 대표. 남들보다 조금 빨리 인생2막에 도전한 그는 한국OSG 영업맨 출신이다. 
“좋은 직장이었지만 근무하고 몇 년 되니까 미래에 대해 불안해지더라고요. 앞으로 어떻게 인생을 살아가야 할지 늘 고민이었죠. 주변에 계신 분들이나 동종업계 사장님들 만나 상담도 하고 문의도 드렸어요.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된다고… 전혀 다른 업종보다는 제가 종사하고 있고, 또 잘 아는 분야에서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론 기존에 접하지 못한 공구나 아이템이 많았기에 걱정도 되었다고. 
“물론 두려운 마음도 있었죠. 그러나 지금 아니면 도전할 기회가 없을 것 같았어요. 그동안 쌓아온 전문성과 지식, 그리고 인맥까지, 나만의 자산이 있었기에 누구보다 잘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시작하게 됐어요.”
이 대표의 말처럼 툴에 대한 전문성과 경험들은 남들과 다른 그만의 영업전략이 됐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공구가 적절한지 바로 상담해 줄 수 있어 유리한 것. 그뿐만이 아니다. 고객과의 관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신뢰라고 생각하기에, 고객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즉각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이 대표가 원래 사업을 시작한 곳은 구로다. 구로기계공구상가에서 2년간 사업의 토대를 닦았지만, 고객들에게 보다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 천안으로 내려왔다. 주거래처가 대부분 충청권이기 때문. 
“서울에 있을 때는 주로 화물발송했죠. 신속한 대응이 안 되니까 고객불만도 생기고, 매출신장에도 한계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3년 전 이곳으로 옮기게 됐어요.”
하나툴링이 위치한 곳은 바로 백석산업단지다. 효율적인 고객관리는 물론 매출도 꾸준히 오르고 있어 더없이 만족하고 있다고. 

 
창업도 타이밍, 놓치면 안돼
 
“후배들이 종종 찾아와서 상담하곤 합니다. 현재 다니는 회사에서 보람을 느낀다면 직원으로서 열심히 하면 되고, 사업을 할 생각이 있다면 되도록 빨리 준비해서 시작하라고 말해줍니다. 무엇을 하든, 어떤 길로 가든 빨리 결정해서 열심히 달려가는 게 좋다고 생각하니까요.”
생각보다 인생2막을 꿈꾸는 이들이 많다. 인생2막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가장 해주고 싶은 조언 중 하나는 바로 타이밍을 놓치지 말라는 것. 
“인생2막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철저한 준비가 필요합니다. 공구상을 하든 다른 무엇을 하든 자기가 하고자 하는 아이템에 대한 전문성이 기반이 돼야 하죠. 아이템 선정을 하고 나면 시장성을 조사하되 디테일하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실패할 확률이 줄어듭니다.” 
공구상의 경우 지역별로 특별한 아이템군이 있다고 말하는 이 대표. 예를 들어 천안은 반도체 관련 부품들을 많이 생산하고 있는 곳이다. 이에 대한 검토까지 충분히 이뤄져야 제대로 준비했다고 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인생은 매순간 도전, ‘가족과 행복’ 잊지 말아야
 
“전 원래 친구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합니다. 레포츠도 즐겨했는데, 사업을 시작하면서 전혀 못 했죠.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바로 자금문제예요. 투자가 많이 되다보니 여유가 없었지요. 또 사업과 동시에 결혼을 했기 때문에 가장으로서 어깨가 무거웠고요. 아무래도 제 사업을 하다보니 더 전투적이 되었다고 할까요? 생계가 달려있다 보니 그런가 봅니다.”
자신의 즐거움은 포기했지만 단 하나, 포기할 수 없었던 게 하나 있다. 바로 가족과의 시간.
“일을 하다보면 가족에게 소홀해지기 쉬워요. 저희는 9시에 오픈해서 6시에 퇴근하는데, 직원들은 무조건 ‘칼퇴근’이에요. 저 역시 쉽지는 않지만 최대한 시간을 쪼개서 가족과 보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지난 6월에 셋째를 얻은 이 대표는 1남 2녀를 둔 다복한 가정의 가장이다. 성공과 행복 중에 무엇을 택하겠냐는 질문에 서슴없이
‘행복’이라고 말하는 이 대표. 지금은 육아 때문에 사무실에 나오진 못하지만 늘 곁에서 격려해주는 아내가 그에겐 큰 힘이 된다.  
“제가 성공하려고 발버둥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가족입니다. 가족이 행복해야만 저도 행복하고, 또 제가 일을 하는 의미가 있으니까요. 그렇게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열심히 뛰고 있어요.”

 
절삭공구의 처음이 되길 꿈꾸다
 
남다른 도전으로 늘 인생을 새롭게 만들어가는 그에게 인생2막은 어떤 의미일까? 
“이상을 품고 살아가는 게 인생 아닐까요? 그 때문에 늘 도전할 수 있는 거겠죠. 인생을 1막, 2막으로 단편지어 말하기보다는 새로운 도전으로 새로운 인생을 사는 것이라 말하고 싶어요. 물론 3막, 4막도 있겠지요. 저는 인생이 매순간 도전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모험을 좋아했다는 그는 원래 저지르고 보는 성격이란다. 물론 힘든 일도 있을 수 있겠지만 계속 도전하며 발돋움해 나갈 거라고 말하는 이 대표. 철저하게 준비만 되면 어떤 일이든 곧바로 뛰어들 각오가 돼 있다. 
“고객들이 생각하실 때 아직도 미숙한 부분이 많을 거예요. 그러나 직원들과 일을 공유하며 함께 미래를 향해 달려가고 있어요. 저를 믿고 따라와 주는 회사 식구들을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직 규모가 크지 않아서 체계적인 교육을 하고 있진 못하지만 늘 소통하며 제품에 대한 지식도 나누고 있죠. 앞으로 품목도 늘리고 매장을 확장하고픈 꿈이 있어요. 어느 정도 안정화시켜놓은 다음에는 또다른 도전도 계획 중입니다.”
그는 어느 누가 오더라도, 필요한 절삭공구가 무엇이든 바로 내줄 수 있는 공구상사를 꿈꾼다. 
“‘하나툴링’의 하나, 숫자 ‘1’은 가장 기본을 뜻합니다. 그 이름처럼 절삭공구의 기본이 되는, 절삭관련 공구와 관련해서는 한 번에 다 해결되는 절삭공구 전문백화점을 만들고 싶습니다.”

하나툴링 
충남 천안시 서북구 공단로 95(성성동) / T.041)523-1203
 
글·사진_김연수



방송통신업하다 화력발전소 건설

인생2막은 자부심에 투자

경남 고성 남동종합상사 김영석 대표





케이블TV 사업을 하다가 공구상을? 

김영석 대표는 현재 경남지역 케이블방송인 하나방송 이사로 재직 중이다. 방송통신과 케이블TV 분야에서 이미 큰 성과를 일궈온 그가 철물점으로 인생2막을 시작한 이유는 뭘까. 
“아내가 저더러 일밖에 모른다고 하는데, 그 말도 맞아요. 49세에 창업했으니까요. 그러나 제겐 이 일을 시작한 이유가 있어요. 땅을 다지는 것부터 굴뚝에서 연기가 나올 때까지, 발전소 건립에 처음부터 끝까지 참여했다는 자부심으로 이 일을 하고 있죠. 지난 2년간 부지를 정리했고 이제 플랜트사업에 착공했어요. 이런 성취감이 없다면 이 일을 하기가 결코 쉽진 않아요.” 
김영석 대표가 운영하는 남동종합상사는 현재 고성화이화력발전소를 짓는 일에 전 직원이 투입돼 있다. 주 고객은 바로 고성그린파워와 공사를 담당하고 있는 각 협력업체들이다. 고성그린파워는 한국남동발전과 SK건설, SK가스, KDB인프라 등 4개사가 투자하여 만든 민자발전회사로 현재 총 사업비 5조 1960억원 규모의 고성화이화력 1, 2호기 건설사업 프로젝트를 이끌어가고 있다. 
2년 전 창업할 돈이면 편안한 노후를 준비할 수도 있었지만 공구업계에 입문한 이유가 바로 성취감이라는 김 대표. 그가 상호를 남동종합상사로 지은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발전소를 짓게 되면 이와 관련해 철물점이 성장가능성이 높은 사업 아이템이라 판단했죠. 보통 대형 프로젝트가 들어오면 외부 투자자가 가져가는 경우가 많은데, 지역민이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남동종합상사란 이름도 남동발전과 궤를 같이 하며 대한민국의 에너지산업을 이끌어가는 데 기여하고 싶은 제 소망이 담겨 있어요.”
남동종합상사가 위치한 고성군 하이면은 작은 시골이지만 매출은 급성장 중이다. 유동인구는 물론 건설현장에 투입된 인력이 많은 덕분에 주변 밥집도 성황을 이룬다고. 

 
창업 이래 하루도 쉬어본 적 없는 男子

기존에 했던 케이블TV사업은 고객서비스 사업이고, 20년 간 영업을 다녀서 그런지 고객대응이나 서비스 만족에 대한 훈련이 되어 있어서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한다. 
“철물점이란 사업은 추천해주고 싶은 사업은 아닙니다. 실제 입문을 해보니까 어려운 점이 한둘이 아니거든요.”  
공구상사는 절대 단시간에 올라서는 사업이 아니라고 강조하는 김 대표. 고객에게 최선을 다했다면 고객의 행동이나 말에 상처받지 말고, 마음을 비우고 편안하게 나아가라고 조언한다. 
“저희는 새벽 6시 30분이면 문을 열어요. 저녁에는 마감서류, 거래처 관리 자료를 준비해야 되기 때문에 9시는 돼야 퇴근합니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성장했기 때문에 이 일이 가능한 거죠. 어린 자녀를 둔 사람들이라면 아마 어려울 겁니다. 이 일을 시작하면서 가정에 많이 소홀해진 게 사실이거든요. 공사현장은 365일 돌아가니까 저희 역시 쉴 수가 없는 거죠. 시내에 있는 일반 철물점이라면 주말에 쉬어도 될 텐데, 저는 창업 이래 단 하루도 쉰 적이 없어요.”
인생2막을 시작하면서 새겼던 그만의 신념은 바로 고객과의 약속이다. 고객과의 약속을 지켜나갈 때 업체 간의 신뢰도 쌓이는 법. 김 대표가 승승장구하는 것은 우량 고객 덕분이기도 하지만 이러한 영업철학이 큰 몫을 차지한다. 
“저는 회사와 정상적인 거래가 될 때까지 현장에서 살다시피 합니다. 제가 불안해서 현장에 직접 가 있는 것도 있지만, 직원만 보내면 고객들도 만족을 못해요. 현장에 있다 보면 별의별 요구가 다 나오기 때문에 신속한 대응이 필요합니다. 대표가 먼저 현장에서 부딪히며 신뢰를 쌓아야 직원을 보내도 믿어 주시니까요.”
수많은 작업반장과 부장들의 전화가 쉴 새 없이 울리고, 주문량이 밀려들어오면 꼭 메모를 한다. 시간을 다투는 일이라 정확하고 신속하게 일을 처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간혹 못 챙길 때도 있어요. 그러면 현장마다 빨리 갖고 오라고 난리가 납니다. 정말 현장에 가보면 전쟁통이 따로 없어요. 작업계획서에 나온 대로 제가 주문을 받아서 자재를 배달해줘야 되는데, 만약 약속을 어기게 되면 그날의 공사가 중단되는 거예요. 업체에게 엄청난 타격이죠. 앞으로 플랜트 공정이 본격 진행되면 품목은 더 다양해질 겁니다. 정신 바짝 차려야 해요.”


 
공구상 창업은 자금력과의 싸움
 
그는 전기통신쪽 분야에서 일을 했기에 기술에 대해서는 자신이 있었다. 공구품목에 대한 지식은 크레텍 온라인주문시스템인 CTX를 통해 빨리 습득해갔다. 부부가 함께 늦게까지 일하면서 사업 역시 크게 성장하고 있다. 
“전산과 모바일 CTX를 120% 활용하면서 많은 도움을 받고 있어요. 어려운 점은 시간과 자금이죠. 사실 초기 자본으로는 부족해요. 시작하고 보니 장사 욕심도 생기고, 품목 다양화도 필요했거든요. 예를 들어 매장에 5개만 구비해 놓았는데, 거래처에서 갑자기 100개, 또는 200개를 요구할 수도 있어요. 물량확보가 중요해요. 자본이 한계치에 이르면 고객이 요구해도 대응하지 못할 테니까요. 최소한 3~4년 간은 재고가 확보돼야 되기 때문에 지속적인 재투자가 필요합니다. 저 또한 기존에 하던 일을 통해 외부 수입이 뒷받침이 되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버텨올 수 있었어요. 아니면 힘들었을 겁니다.”
삼천포화력발전소를 지을 때도 공구상 하면 돈 된다고 했지만 모두들 생각뿐이었지, 쉽게 도전하기 어려웠다고. 지금도 자금회수에 대한 걱정은 없었지만 대부분의 거래처가 세팅될 때 한 번에 몇 천만원씩 구매가 이루어지기에 자금력은 필수다. 
지금은 시골의 작은 철물점이지만 나중에는 기업에 준하는 공구상사로 성장시키고 싶다는 김 대표. 무엇보다 발전소를 짓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한몸처럼 일하고 있는 만큼 그에게 인생2막은 
‘자부심’의 또다른 이름이다.

남동종합상사
경남 고성군 하이면 덕호로 3길3 / T.055)833-0985 
 
글·사진_김연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