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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철물점과 카페의 우아한 공존 홍북커피


철물점과 카페의 우아한 공존

홍북커피 도학범 김초롱 부부





마음에 쏙 드는 공간에서 일도 하고 개인 취미생활을 즐기는 홍북커피 부부. 그들에게 인생이란 일과 삶의 밸런스를 맞춰 가는 과정이다.

과거 철물점 자리에 문을 연 카페
 
충남 홍성군 구도심에서 2차선의 좁은 도로를 따라 느릿느릿 차를 몰고 내포신도시 방향으로 올라가다 보면 삼거리 바로 직전, 내포의 맛집 홍북식당이 나타난다. 30년 넘는 전통을 가진 식당에서 얼큰한 칼국수를 한 그릇 해치우고 마당으로 나와 봄뜻을 즐기고 있으려니 눈앞에 떡하니 나타난 커다란 다섯 글자 ‘에덴철물점’. 그리고 그 아래 수줍은 듯 살그머니 고개를 내밀고 있는 나무 현판 하나. 현판에 적힌 홍북커피라는 이름이 오늘 방문할 장소다.
올해 나이 서른일곱의 도학범 씨와 서른넷의 김초롱 씨 부부가 운영하는 홍북커피는 과거 철물점, 바로 그 에덴철물점이 있던 자리에 문을 연 카페다. 둘 다 미대 회화과를 졸업한 부부가 ‘커피 향을 맡으며 작업할 수 있는 공간’을 찾다가 이 곳에 자리를 잡았다.
“처음에는 그저 작업할 수 있는 공간을 찾던 거였어요. 그래서 이 곳을 빌린 건데 작업실로만 하기에는 공간이 너무 넓더라고요. 그래서 카페로도 운영하고 있는 거예요. 저희도 커피를 즐기고, 또 아내가 바리스타 자격증도 갖고 있다 보니 카페를 차리게 된 거죠”
부부의 말처럼, 카페 한편에 각종 화구(畵具)와 이젤 그리고 회화 작품들이 보인다. 그냥 장식용 소품이 아니라 이용하는 화구들이며 작업 중인 작품이다. 가게에 손님이 없을 때, 또는 휴일인 일요일에 부부는 이 곳에서 작업을 진행한다.

 
돈벌이만을 위해서 아닌 일과 삶 균형을 위해
 
뭐든 장사를 하는 사람 입장에서 보자면 사실 홍북커피 자리는 그리 썩 좋은 위치가 아니다. 특히 카페를 차리기에는 더더욱. 주변에 이렇다 할 주택단지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젊은이들이 자주 다니는 길목도 아니다. 시골마을 띄엄띄엄 있는 주택에 사는 사람들은 나이 든 어르신들 뿐. 어르신들이 ‘카페’라는 이름의 신식 공간을 찾기나 할까?
“많이들 방문하세요. 하하하. 밖에서 보면 가게가 좀 시골틱 하잖아요. 어르신들은 여기를 ‘다방’이라고 생각들 하시나 봐요. 그래서 별 부담 없이 찾아오세요. 지난번에는 한 노인분께서 지팡이를 짚고 오신 적 있는데 한 칸 계단을 못 오르셔서 할 수 없이 문 앞에 나무판을 깔기도 한 걸요.”
부부는 자신들이 만약 카페를 본격적으로 할 생각이었다면 사람 많은 신도시 쪽으로 내려갔을 거라 한다. 하지만 욕심 없는 그들은 돈벌이를 목적에 둔 것이 아니라 삶, 그리고 그 삶을 살기 위해서 필요한 일의 균형을 위해 지금의 자리에 카페 문을 열었다. 가게에 많은 손님을 끌어 모을 이유도 찾아내지 못했던 그들은 건물 외벽에 붙어 있는 에덴철물점 글자도 굳이 떼어내지 않았다.
“지금 그래요. 커피를 팔면서도 일은 일이니까 스트레스를 받거든요. 그걸 중간 중간 그림을 그리거나 작업을 하면서 해소해요. 또 작업이 잘 풀리지 않아 받는 스트레스는 이 곳에서 커피 한 잔 하면서 풀고요. 이런 공간이 있다는 것도 참 복인 것 같아요.”

 
손님이 와도 좋고 오지 않아도 좋아
 
옛 민담 가운데 소금장수와 우산장수 아들을 둔 할머니 이야기가 있다. 비가 오는 날에는 소금장수 아들이 걱정이고 화창한 날에는 우산장수 아들을 걱정하던 할머니. 하지만 어떤 이로부터 비가 오면 우산장수 아들이 좋고 화창하면 소금장수 아들이 좋을 거라는 이야기를 듣곤 항상 기쁜 마음으로 살았다고 한다. 부부는 항상 행복한 할머니와 같다. 손님이 많이 찾으면 돈을 벌 수 있으니 좋고, 손님이 오지 않으면 작업할 내 시간이 생겨 좋단다. 그런 마음을 갖게 된 것도 어찌 보면 홍북커피라는 공간을 갖게 된 덕분이다.
“저도 예전에 일할 때에는 일 마치고 집에 와서 그냥 쉬기 바빴거든요. 일이 늦게 끝나는 편이라서요. 그렇게 살다 보니 어느 날 일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지금은 이 공간, 이 작업실 덕분에 일과 삶의 밸런스를 좀 찾게 된 것 같아요.”
부부는 홍북커피를 부를 때 ‘카페 가자’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작업실 가자’고 말한다. 자신들이 일하는 공간을 일의 공간이 아닌 삶의 공간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이곳은 손님을 대접하는 공간만이 아니라 그들 역시도 즐기는 공간이다.


 
여기는 내포의 커다란 철물점
 
부부가 이용하는 SNS 인스타그램의 한 페이지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 ‘여기는 내포의 커다란 철물점입니다.’ 둘은 과거 10년도 넘게 그 자리에 있었던 철물점을 카페 안으로 품으려 한다. 카페를 찾아 주시는 마을의 어르신들과 오랜 시간 한 울타리 안에서 존재했던 에덴철물점을 그분들의 기억에서 솎아내지 않으려 한다. 그런 부부의 마음도 어르신들이 부담 없이 홍북카페를 찾게 하는 한 요인일 것이다.
“카페에서 가만 있다 보면 어르신들이 통화하는 게 들리거든요. 어디야? 하면, 여기 철물점으로 와! 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하하. 그만큼 편하게 생각해 주시는 것 같아요.”
남편 도학범 씨는 지금 이 철물점을 개조한 공간이 너무 마음에 든단다. 철재 파이프나 각종 소품을 개조해 카페 내부 인테리어를 직접 꾸민 그에게 철물과 공구는 너무나 익숙한 것들이다. 아내 김초롱 씨도 다르지 않다.
“제가 얼마 전에, ‘나는 나중에 나이 들면 철물점 공구상 하고 싶다’고 그랬거든요. 그랬더니 애기아빠가 ‘공구상 하려면 돈이 얼마나 드는 주 알아?’ 그러는 거 있죠? 하하. 정말 철물점은 구경할 것도 많고 너무 재미있는 공간인 것 같아요.”
지금 공구상을 운영하는 분들에게도 일을 마친 후, 그림을 그리거나 뭔가를 만들어 내는 작업을 해 보는 걸 추천하겠다는 부부. 각종 공구들과 가까이 있고 익숙하니 그보다 더 좋은 취미 생활은 없을 것 같다 말하는 홍북커피의 두 부부다.
 
글 _ 이대훈 · 사진 _ 이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