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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여름 이기는 공구인들 공부열정


 

 

백여 가지 공구로 만들어내는 바람

 

부채 장인 김동식 선자장(扇子匠)

  

 

부채의 고장 전주


한옥마을로 유명한 전라북도 전주는 예로부터 부채의 고장이었다. 좋은 종이를 만드는 사람들도 많았고 질 좋은 대나무도 풍족한 남도의 이곳에 조선시대 마지막 선자청(扇子廳, 부채를 만들고 관리하는 관청)이 있었고, 1960년대까지 전주시 곳곳에 부채마을이 형성되어 전국에 부채를 공급하며 호황을 누렸다. 특히 부채 장인 30여 호가 모여 살던 가재미골(현 전주시 덕진구 인후동)은 당대의 부채 명인들이 터를 잡은 명품 부채의 산실이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전주 부채는 2015년 7월에서야 비로소 중요무형문화재 제 128호로 신규 지정되었고 전주 부채를 만드는 선자장(扇子匠, 전통 부채 만드는 기능을 보유한 장인)도 무형문화재로 인정되었다.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10호 김동식 선자장은 부채 제작 기술 보유자로 인정된 첫 번째 장인이다.
선생이 만드는 합죽선은 부챗살에 종이 또는 깁을 붙여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도록 만든 부채를 말한다. 펼쳐져 있던 부채를 손으로 ‘착’하고 쳐서 접는 바로 그 부채다.
외조부 라학천은 고종황제에게 합죽선을 진상할 만큼 뛰어난 합죽선 명인이었다. 그런 가업이 이어져 내려오던 외가에서 “기술이 있으면 굶어죽진 않을 것”이라는 부친의 권유료 김 선자장은 14세 무렵부터 합죽선 제작 기술을 배웠다. 허드렛일로 시작해 실력을 인정받은 뒤, 1965년에는 독립해 독자적인 공방을 꾸렸다. 선조들의 가르침에 스스로 터득한 기술을 더해 전통과 개성이 조화를 이루는 부채를 만들어내고 있다.

  

 

2부 6방의 합죽선 제작 과정


합죽선 제작 과정은 크게 2부 6방으로 나뉜다. 2부는 골선부와 수장부이고 골선부에는 합죽방, 정련방이, 수장부에는 낙죽방, 광방, 도배방, 사북방이 있다. 합죽방에서는 겉대를 깎고 다듬어 부챗살을 만든다. 정련방에서는 변죽을 만들고 속살과 변죽을 결합하여 다듬는다. 낙죽방에서는 변죽과 속살에 인두로 무늬를 넣는다. 광방에서는 부채에 종이를 붙이기 전 준비를 마무리하고 부채의 형태를 잡아주며 외형 다듬기를 거의 마무리짓는다. 도배방에서는 부챗살에 종이를 붙이는 모든 과정을 처리한다. 사북방에서는 부채 머리를 고정하고 장식을 다는 등 최종 작업을 진행한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서 수많은 공구들이 사용된다.
김동식 선자장의 작업실에는 수십 개의 칼이 걸려 있다. 모양은 비슷해 보여도 각기 사용되는 용도는 다르다. 제작 과정은 크게 나누어 2부 6방이라 했지만 작게 나누자면 백여 가지 이상의 과정이 필요하다. 그 각각의 과정마다 사용되는 공구의 종류와 모양이 각기 다른 것이다. 그것이 외조부로부터 물려받은 합죽선 제작의 제대로 된 방법이다. 
앞내리기, 부챗살 깎기, 변죽 단절 깎기에 사용되는 낫칼(칼날이 둥글게 휘어 있고 양 쪽에 손잡이가 달린 칼)부터 대를 쪼개거나 뜰 때 사용하는 큰칼, 대나무에 종이를 붙이는 도배와 광을 낼 때 사용하는 줄칼 등이 필요하다. 낫칼 큰칼 줄칼 뿐 아니라 사용하는 톱도 다양하다 탱자톱(톱날의 손잡이 윗부분에 줄을 달아 당겨서 톱날을 탱탱하게 만든 톱)이며 실톱, 일반적인 톱처럼 톱날이 들쑥날쑥하지 않고 고른 목살톱. 거기에 각종 자귀며 야스리(줄) 거기에 뜨거운 화로 속 인두까지. 여기가 작업실인지 아니면 공구상인지 헷갈릴 정도다.
그 많은 공구들을 김동식 장인은 혼자서 전부 다 다루고, 혼자서 대나무를 깎고 붙여 합죽선을 만든다.

 

사라져가는 전통 기술


지금 김동식 장인은 혼자서 합죽선을 만들고 있다. 하지만 과거에는 하나의 부채를 만드는 데 최소 여섯 명의 사람이 힘을 합쳤다. 먼저 대나무밭에 가 합죽선 제작에 필요한, 질 좋은 대나무를 골라 베어와 살을 깎는 사람 한 명. 그리고 그렇게 깎인 대나무로 변죽을 만들고 속살과 변죽을 결합하여 다듬는 정련 공정을 하는 사람이 또 한 명. 다음으로 손잡이에 인두로 문양을 넣는 낙죽(烙竹)을 하는 사람 한 명에, 거친 대나무의 표면을 야스리로 곱게 다듬는 사람 한 명. 거기에 종이를 차근차근 접어, 아교와 어교를 조합한 풀로 나뭇살에 붙이는 사람 한 명. 마지막으로 고리를 만들어 손잡이에 붙이는 사람까지. 그렇게 여섯 사람의 기술자가 달라붙어 부채 한 자루를 만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부채를 만드는 것으로는 생활을 유지한다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다들 기술을 버리고 떠나 버렸다.
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집집마다 합죽선은 아니더라도 단선(납작하게 펴진 부채살에 종이나 깁을 붙여 만든 둥근 모양의 부채) 한 개씩은 있었다. 그러던 것이 선풍기의 확산과 에어컨의 등장으로 지금은 부채질하는 사람 찾기가 차라리 한복 입고 다니는 사람 보는 것보다 힘들다. 아무도 부채를 사용하지 않는 현실이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부채는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것이다. 국가에서도 시나브로 사라져 버릴지 모를 부채가 걱정됐던 모양이다.

 

 

아들의 가업 계승… 국가의 관심 필요해


현재 부채를 만드는 기술은, 중요무형문화재 122개 종목 가운데 3분의 1에 해당하는 ‘전승취약종목’에 속해 있다. 열악한 작업 환경과 재료비는 만만치 않은데 대우는 다른 공예품에 비해 뒤떨어지는 탓에 기술을 배우겠다는 전수자가 없는 것이다. 무형문화재 신규종목 지정과 초대 선자장으로 인정받은 것도 서류작업에 익숙지 않은 김 선자장이 꼬박 3년을 매달려 작업하는 고된 절차를 거쳐 이루어낸 것이다.
그런 어려움이 있는데도 김동식 선자장은 부채 만드는 일을 버리지 않을 생각이다. 현재 김 선자장은 아들 김대성 씨에게 합죽선 만드는 기술을 전수하고 있다. 세상을 뜨기 전까지 아들에게 모든 기술을 전수하는 것이 김동식 선자장의 바람이다. 또한 그는 합죽선의 활로와 판로 개척을 위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고 있다. 에어컨이 일상화된 현실에서 부채를 생활용품 차원의 개념을 넘어 전통문화상품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그의 목표다.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왔을 때 한 개씩은 구입해 갈 수 있도록 말이다. 올해가 다 가기 전에 그의 작은 소망인 합죽선 박람회가 개최됐다는 소식이 전해지길 기대해 본다.

글 · 사진 _ 이대훈
 


 

 

낮에는 주물노동자 밤에는 소설가


<회색인간> 김동식 작가

 

그가 공구인에게 전하는, 업무 이후 시간 유용하게 보내는 방법

 

김동식 작가는 요즘 화제인 인물이다. 주물 공장에서 10년 동안 일하던 그는 <회색인간>, <세상에서 가장 약한 요괴>, <13일의 김남우> 등 다섯 권의 소설집을 연달아 출판했다. 글을 쓴 시간은 공장일을 마친 후의 저녁 시간.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는지를 그가 공구인들에게 전한다.

  

 

취미를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무엇보다도 먼저 저처럼 즐거운 취미를 찾으시길 바랍니다. 일하는 도중에도 그 취미 생각만으로 지루할 틈이 없게 만드는 그런 취미를요. 저는 사실 중학교 1학년 때 학교를 중퇴했습니다. 나중에 검정고시를 치긴 했지만 배운 건 중학교 1학년 수준이 전부예요. 지금까지 평생 읽은 책이 열 권도 안 되고 글 쓰는 법도 어디 가서 배운 적이 없어요. 그런 제가 어떻게 책을 내고 작가라고 불리게 됐을까요? 전 사실 작가가 되겠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 없습니다. 처음엔 그저 심심풀이로 글을 썼던 거죠. 2년 전, 2016년 5월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소설이라는 걸 써 봤는데 글 쓰는 법도 모르니까 네이버에서 글을 어떻게 쓰는 건지 검색해 봤어요. 그랬더니 ‘기승전결이 있어야 합니다’ ‘쉼표 많이 찍지 마세요’ ‘그래서, 그러나, 하지만… 이런 접속사 많이 쓰면 안 돼요’ 등등의 팁이 나오길래 거기에 맞춰서 한 인터넷 커뮤니티의 공포 게시판에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500℃ 쇳물 붓는 단순 반복작업… 소설은 달라


이후 1년 반 동안 저는 300편이 넘는 글을 썼습니다. 공장에서의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서요. 공장에서 저는 10년 동안 일을 해 왔어요. 주물 공장이었어요. 돌아가는 원형 판에 500원짜리 동전보다 조금 더 큰 구멍이 있어요. 그 판이 제자리에서 아주 빨리 돌아가는 거예요. 그 구멍에 500℃의 쇳물, 아연 녹인 물을 붓는 것이 제 일이었어요. 하루 종일 똑같은 반복노동이었죠. 그렇게 지퍼, 단추, 벨트 버클 등을 만들었어요. 그렇게 만든 지퍼가 어디로 가서 어떻게 쓰이는지, 단추는 어떤 옷에 달리는지 아무 것도 모르는 채 그냥 월급만 받으려고 만들었던 거예요. 그런데 인터넷에서의 글쓰기는 내가 쓴 글이 어디로 가는지 다 알 수 있거든요. 내가 쓴 글이 어디로 가서 누가 어떻게 즐기는지. 왜 재밌어 하는지 그 반응이 다 확인 가능해요. 그런 반응이 피드백처럼 오고 그런 성취감과 쾌감이 너무 좋아서 제가 중독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기가 주도적으로 좋아하는 일을 할 때의 그 즐거움을 제가 살아온 32년이라는 시간 동안에서 처음 느꼈고 그래서 그렇게 많이 쓸 수밖에 없었던 거죠.

 

뭔가를 하겠다는 부담을 버려라


저는 글쓰기에 대한 부담이 없어요. 재밌어요. 재미있으니까 취미로 글을 썼고요. 어디 가면 글쓰고 싶어 하는 분들에게 한 말씀 해달라고 하시거든요. 저는 그러면 꾸준히 쓰시라고 대답해요. 꾸준히 쓰면 된다는 걸 제가 느꼈으니까요. 또 경험도 했고 지금은 이렇게 다섯 권의 책도 출판했고요. 그런데 그냥 꾸준히 쓰라는 말은 사실 너무 무책임한 말이에요. 어떻게 꾸준히 쓰느냐? 저는 글 쓰는 게 재밌으면 꾸준히 쓰실 수 있다. 이렇게 말씀드리거든요. 자신이 좋아하는 모든 취미가 그렇듯이요. 그래서 여러분들도 즐거운 취미를 하나씩 갖길 바란다는 거예요. 자신을 발전시킬 수 있는 취미라면 더 좋겠죠. 저에게는 글쓰기가 즐거운 취미입니다.

 

 

한 번에 한 단계씩 편안한 마음으로


또 제가 왜 글 쓰는 게 재밌었냐면 인터넷에 글을 올릴 때 아무런 의무도 없고 책임도 없거든요. 인터넷에 글을 올리는데 내가 돈 받고 올리는 것도 아닌데 뭐 어때. 내 마음대로 막 쓸 수 있었거든요. 막 쓸 수 있으니까 재밌는 거예요. 나를 검열할 필요도 없고. ‘손가락을 튀겨서 탕수육 만든다’ 이런 황당한 내용을 써도 어차피 내 맘대로 쓸 수 있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정말 신나고 재밌게 썼어요. 그런데 막상 글을 쓰려는 마음을 갖고 있는 분들을 보면 자기 검열을 너무 하세요. 완벽하게 쓰기 전에는 남들에게 보여주려고도 안 하시고. ‘완벽하게 쓰지 못할 거 아예 시작도 안 할 거야’ 이런 분들도 계시고요. 그런 분들에게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그냥 마음대로 쓰시고 편하게 보여주시면 좋을 것 같다는 거예요. 좀 못 쓰더라도 내가 재밌게 쓴 글들이 훨씬 내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아무리 잘 쓰더라도 내가 너무 재미없게 고통 받으면서 쓴 글은 다음으로 나아갈 수 없어요. 단점이 그거예요. 계속 조금씩 조금씩 단계를 밟아 나가야지 ‘난 한 번에 완벽한 걸 완성할 거야’ 이런 생각으로 하시면 안 될 것 같아요. 다른 취미나 공부도 마찬가지일 것 같아요. 그 중에서 혹시 작가가 되고 싶은 분이 계시면 재밌게 쓰세요. 전 재밌게 썼어요.

 

나를 만든 툴은 바로 ‘소통’


제가 그렇게 꾸준히 써서 책을 내긴 했지만 꾸준히 쓴 것만으로 아무나 책을 낼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사실 제가 책을 낼 수 있게 만들고 저를 작가라 불릴 수 있게 만들어준 TOOL은 ‘소통’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그렇게 커뮤니티 공포 게시판에 글을 올리면 제 글을 읽은 사람들이 저에게 다 알려줬거든요. 여러 사람들이 저에게 많은 도움을 줬어요. ‘역활이 아닙니다 역할입니다’ 하고 댓글로 달아 주시는 분도 계셨고 ‘두더쥐 아니에요 두더지예요’ 하시는 분도 계셨고요. 아니면 또 ‘이 캐릭터가 앞에서는 이렇게 했는데 왜 이렇게 바뀌나요?’ ‘결말은 이게 더 낫지 않을까요?’ 하고요. 그럼 저는 그것들을 하나부터 열까지 다 받아들였어요. 맞춤법을 지적하시면 ‘저번에 알려드렸는데 왜 또 틀리세요?’ 할까 봐 몇 번을 기억하려 했어요. 그렇게 제가 받아들이는 태도를 취하니까 이 분들도 더 많은 조언을 해 주셨던 것 같아요.나중에 생각했는데 정말 운이 좋았어요. 저는 지금도 누군가가 저에게 가장 고마운 분이 누구냐고 묻는 질문에, 제 글에 댓글 달아주신 모든 분들이라고 대답합니다. 제 스승님들이시죠.

 

즐거운 일을 한다는 것이 최선의 방법


저는 살면서 목표가 없긴 했지만 노동에 대해서 잠깐 이야기를 해 보자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일은 일하는 시간도 즐거운 노동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런 일은 찾기가 힘들겠죠. 그러면 다음으로 좋은 일은 어떤 일일까 생각해 봤어요. 그래서 나온 답이, 일하는 시간이 즐거울 수 없다면 일을 마친 후의 시간이라도 즐거울 수 있는 일인 것 같아요. 퇴근 시간은 당연히 보장되어야 하고 집에 가서 뭔가를 할 수 있는 일. 왜냐면 제가 공장에서 일할 때를 생각해 보면 일 얘기는 거의 안하거든요. 하는 얘기는 오늘 드라마 얘기, 프로야구 얘기 등등 일할 때 일 얘기 안 하고 일 끝나고 나서 할 일들 얘기를 하거든요. 집에 가서 나는 게임해야지, 친구와 만나야지, 술자리 가져야지 이 생각으로 버티는 거예요. 그 지겨운 일하는 시간을. 버틸 만 한 일들을 찾아야 해요. 바로 그게 취미죠. 전 글쓰기를 찾았지만 텔레비전 보는 것도 괜찮고 게임 하는 것도 좋아요. 그런 것들을 하는 데 너무 죄책감 가질 필요 없어요. 나중에 그게 다 재산이 될 거예요. 견딜 수 있는 힘이 되고요. 그런 것들을 마음 편하게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게 아니고 그것이 바로 시간을 가장 유용하게 보내는 방법인 것 같습니다.
 

글 · 사진 _ 이대훈

 


 

 

공기청정기 개발한 영어 선생님

 
청풍씽씽 이장원 대표

 

 

 

 

건강에 위협이 되는 미세먼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살 수 밖에 없는 공기 청정기. 이제 공기 청정기는 가정의 필수품이다. 그런데 현재 공기청정기 시장은 대기업이 꽉 잡고 있고 가격도 선뜻 지불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싸다. 이런 공기청정기 시장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 필터식 공기청정기 ‘청풍씽씽’이다.

 

 

학원  운영하다 제조업 뛰어들어


뛰어난 아이디어를 보유한 제품은 갑자기 시장에 나타나곤 한다. 훌륭한 아이디어 제품일수록 알려지는데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많다.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청풍씽씽은 선풍기 필터식 공기청정기다. 영어학원 선생님을 하던 이장원 대표는 공기청정기 관련된 멋진 아이디어를 우연히 발견한다. 그는 아이디어 하나만 믿고 엔지니어도 도전하기 어려운 제품개발에 뛰어들었다.    
“사실 공기청정기가 비쌀 필요가 없는 물건이거든요. 원리는 무척 간단해요. 팬에다가 필터를 단 것이 공기청정기입니다. 어떤 브랜드의 공기청정기나 뜯어보아도 다 똑같아요. 큰 차이라면 미세먼지를 측정하는 센서가 있냐 없냐의 차이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일기예보에 미세먼지 상황에 대해서는 다 나오잖아요. 그럼 공기청정기를 작동시키게 되구요. 결국 센서는 있으나 마나입니다. 제가 학원을 운영하면서 학원생들 건강 때문에 공기청정기를 구매해야 했는데 가격이 많이 비싸더라고요. 교실마다 하나씩 공기청정기를 구매하려니 가격이 어마어마한 것입니다. 거기다 한 번 구매하면 필터를 자꾸 교체를 해야 하는데 대기업 공기청정기의 교체용 필터는 가격도 비싸요. 이건 안되겠다. 그냥 팬에다가 필터를 가까이 댄 것이 전부인 제품인데 이렇게 비싸면 대기업에 돈 다 가져다 주는 거겠다. 가성비 좋은 제품을 내가 직접 개발해야봐야겠다 결심한 것이죠.”
학원 원장 선생님으로 20년을 살아가던 이장원 대표는 세 아이들을 둔 가장이다. 잘 나가던 학원을 운영하던 그는 아이디어 하나만 믿고 2016년 제조업 사장으로 변신한다. 아이디어는 누구나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사람은 손에 꼽힐 정도로 드물다. 이장원 대표의 청풍씽씽은 그런 아이디어를 실현시킨 제품이다.

 

 

선풍기와 결합해 사용하는 공기청정기
 

청풍씽씽이 보여주는 공기청정기 원리는 간단하다. 집집마다 한 대씩 있는 선풍기 뒤편에 부착하기만 하면 된다. 손재주 좋은 어떤 사람들은 일반 차량용 에어필터를 구매해 집에 있는 중고 선풍기에 앞면에 달아서 DIY공기청정기로 사용한다. 청풍씽씽은 그것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일반 가정에서 사용하는 선풍기 뒷면에 거치하여 사용하는데 기존 가정용 선풍기에 손쉽게 원터치로 탈부착이 가능하다. 필터를 교환도 쉽다. 거기다 필터를 빼낸 몸체는 물청소도 가능하다.
“제가 이 제품을 전시회에 선보이면 많은 사람들이 자기도 한번 생각했던 물건이라고 많이들 말씀들 하세요. 그러면서 바로 사겠다고 말들 하죠. 그냥 선풍기 뒤에 필터를 매단 것인데 제대로 된 집진성능이 나는지 의심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직접 담배연기로 실험을 해보니 실제로 성능이 좋아요. 이 제품을 선풍이 뒤에 달면 아무래도 선풍기 바람은 약해지겠죠. 하지만 약해진 바람만큼 집진성능이 올라갔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단순하지만 그래서 효과가 좋습니다. 여름에 공기청정기 돌리고 선풍기도 돌릴 필요도 없습니다. 전기료도 적게 먹구요. 그저 집집마다 있는 선풍기를 가지고 그냥 활용하시면 됩니다. 가장 큰 장점은 필터의 오염도를 직접 눈으로 보고 확인할 수 있어 좋습니다.”
공기청정기 필터는 자주 갈아주면 좋은 제품이다. 한 번 필터에 걸러진 미세먼지는 필터에 계속 붙어있고 결국 오래된 필터는 나중에 작동하면 오히려 오염물질을 내뿜을 뿐이다. 생각해볼 것이 자동차 에어컨에도 필터가 부착되어 있다. 에어컨필터를 교체한지 오래된 자동차는 에어컨에서 고약한 냄새가 난다. 집안의 공기청정기는 조금 낫겠지만 그래도 자주 교체하는 것이 좋은 이유다. 청풍씽씽의 교체 필터는 대기업 제품에 비해 무척 저렴하다. 그래서 부담스럽지 않게 필터교체가 가능하다.  

 

 
제품개발, 생각보다 쉽지 않더라

 
금형 제작에 드는 비용은 대략 수 천 만원이 넘는다. 대기업이라면 넉넉한 자금력으로 쉽게 금형을 파고 제품을 만들어 볼 수 있었겠지만 1인 벤처기업가에게는 너무나 큰 금액이다. 마음대로 쉽게 금형을 제작할 수는 없다. 3D프린터로 시제품을 만드는 것도 한 번 만드는데 몇 십만원의 금액이 발생한다. 제품의 크기부터 색깔, 재질도 심사숙고해서 결정해야 한다.
“플라스틱 사출성형으로 제품의 본체를 만들어야 하는데 플라스틱 재질 결정이 제일 어려웠습니다. 청풍씽씽은 선풍기 뒤에 매달아야하는 제품입니다. 헤드 목 부분을 휘어서 통과시켜야 하거든요. 그러니 플라스틱 재질을 너무 딱딱한 재질로 하면 깨지게 되고 그렇다고 너무 물렁한 재질로 만들면 내구성이 떨어지고요. 선풍기와 제품을 안정적으로 고정시키기위해 ‘걸림 조절 돌기’도 따로 생각해서 고안해 내었습니다. 제품 하나를 개발하고 생산하는데 생각보다 비용이 많이 들었어요. 시간도 많이 들었구요.” 

 

마케팅, 제품개발만큼 중요해

 
아무리 좋은 제품이라도 이런 제품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팔리는 법이다. 청풍씽씽도 제품이 나온 이후 사람들에게 이런 제품이 있다는 것을 알리는데 주력한다.
“사실 공기청정기는 여름에는 잘 안팔리는 제품입니다. 장마가 오면서 미세먼지가 없는 날이 많으니까요. 미세 먼지가 많아지는 가을 겨울 봄에 공기청정기가 잘 팔리는 제품이죠. 그런데 청풍씽씽은 그냥 선풍기에 달아서 그대로 사용가능합니다. 그런데 이런 제품이 알려져야 판매가 됩니다. 제품이 나오고 나서 매달 제품 판매량은 늘어나고 있어요. 제가 마케팅 기술이나 능력이 뛰어났다면 제품 팔리는 속도가 더 빨라졌겠죠. 그나마 작년에 SBS CNBC 방송국에서 저희 제품을 알고 방송출연 제의를 하더라고요. 덕분에 인지도와 더불어 판매량이 확 늘었죠. 지금은 주로 인터넷으로 판매가 되는데 공구상 사장님들께서도 앞으로 많이 찾아주셨으면 좋겠네요. 저희 제품은 저렴한 가격이 장점이라 여름철 많이 사용하는 선풍기만 있으면 저렴한 가격으로 깨끗한 공기를 마실 수 있어요. 다들 돈 버는 이유가 건강하고 오래 살려고 돈 버는 것인데 저희 제품으로 깨끗한 공기를 싸고 쉽게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스마트폰이 나오기전에도 휴대폰으로 인터넷을 하는 것은 가능했다. 하지만 구형 휴대폰으로 인터넷을 하는 것은 느리고 값비싼 데이터 가격을 지불해야 했다. 에어프라이기도 마찬가지다. 처음 대기업이 제품을 선보였을 때는 가격이 비싼편이었다. 하지만 다양한 중소기업 제품이 선보이면서 그 가격은 저렴해졌다. 청풍씽씽은 저렴한 가격으로 어느 공기청정기 못지 않는 성능을 발휘한다. 값비싼 공기청정기 대신에 기존 선풍기를 활용한 청풍씽씽이 대안이 될 수 있다. 

 

글 · 사진 _ 한상훈

 


 

 

건강 공부로 시작해 발명특허 제품까지

 

대구 북성로 화신전동기기 강성길 대표

 

 

특허 제품 개발은 건강 공부로부터

 
강성길 대표의 명함은 두 개다. 하나는 공구상 화신전동기기 대표의 명함. 그리고 허리운동의자 ‘허스라’를 제작·판매하는 ㈜허스라산업 대표의 명함. 대구 북성로에서 공구상을 운영하던 강성길 대표가 의자 개발을 시작한 것은 척추건강에 이상 신호를 느끼면서부터다.
“한때 불의의 사고로 척추뼈가 어긋난 적이 있어요. 그 때는 벽을 짚지 않으면 걷지도 못할 정도로 통증이 심했죠. 그때부터 척추에 대해 관심을 갖고 건강한 몸에 관해서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공부의 처음은 대구보건대학교 교수님들로부터의 배움이었다. 학교의 이학박사 교수님이며 물리치료학 박사들로부터 허리 관리와 척추 주변 근육에 대한 가르침을 받았다. 그리고 부족하다 싶은 생각에 대구한의대학교에서 1년간 자연치유학 교육도 받았다. 낮에는 공구상을 운영하다가 가게 문을 닫은 밤이면 학교로 가서 1년 동안 그렇게 공부를 한 것이다. 교육의 결과로 자연치유학 지도사 1급 자격증도 땄지만 그런 과정들로부터 더 크게 얻은 건 허리운동의자 허스라의 개발이었다. 

 

 

발명특허 금상을 수상한 허스라 의자

 
허리가 아픈 자신의 몸을 고치려는 목적에서 시작한 공부. 그리고 그 결과로 탄생한 허스라 의자. 하지만 특허 의자 개발의 길은 쉽지만은 않은 여정이었다. 개발을 준비하면서도 그랬고 또 개발에 성공한 지금도 강성길 대표는 공부를 멈추지 않고 있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10년 가까이 공구상 운영을 마친 저녁이면 척추와 건강 관련 국내 논문은 물론 여러 외국의 논문들까지 읽고 정리하고 있다. 
그렇게 개발하고 개량해 온 허스라 의자. 2008년에는 대한민국 발명특허전에서 금상을 수상했고 산업자원부 장관상, 산업자원부 주최 미래 유산상, 지식경제부장관상까지 휩쓸었다. 척추건강 관련 공부의 결과가 이런 뛰어난 제품으로 탄생된 것이다.
현재 허스라 의자는 대구시청은 물론 전국 곳곳의 법원들에도 납품되어 있으며 일본 홍콩을 포함한 해외에도 수출되고 있다. 

 

국민 모두 건강해질  때까지 계속될 공부

 
강성길 대표의 목표는 국민이 모두 건강해지는 날까지 허리운동의자 계몽 운동을 계속해 나가는 것이라 한다. 그 목표를 위해 지금도 그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최근에는 헬스장에 납품할 제품도 개발 중이다. 이미 큰 돈을 들여 디자인 작업도 마친 상태. 허스라 의자가 전국에 보편화되어 모든 국민의 허리가 튼튼해지고 그것을 통해 남녀노소 모두가 건강한 대한민국을 이룩하는 것이 강 대표의 꿈이다.
 

글 · 사진 _ 이대훈

 


 

 

<월간 TOOL 2018년 7월호> - 이공치열에 성공한 공부하는 공구인들

 


 

 

실력 업, 비전 업 


크레텍 자격증 열풍

 

스펙 쌓기는 비단 대학생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산업공구 전문기업 크레텍 직원들의 도전은 현재진행형이다.  

 

크레텍의 저력, 유통관리사에 있어요 


나만의 미래를 가꿔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 그중에서도 자격증으로 새롭게 비전을 만들어가는 이들이 있다. 특히 크레텍의 마케팅, 영업 부문에서 유통관리사 자격증은 필수항목이다. 
인사&기획팀 담당 오지언 씨는 “마케팅과 영업담당 직원 위주로 유통관리사 자격증을 취득하도록 권장하고 있다”며, “서울본사의 경우 75.6%의 취득비율을 보이고 있으며, 전체적으로는 72.5%의 직원들이 유통관리사 자격증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자격증 취득 독려를 위해 사내 스터디그룹도 운영한다. 시험 전 2주간 점심시간을 이용해 유통상식과 판매 및 매장관리 등 각 과목에 대해 문제풀이 및 채점 시간을 갖고 서로의 학업을 독려한다. 
스터디 그룹에 100% 참석 후 이번 시험에 합격한 조현식 대리는 “합격해서 뿌듯하고 기쁘다”며, 합격비결을 바로 스터디그룹으로 꼽았다. 

 

 

‘1인 1자격증’ 시대 연 크레텍

 

2018년 6월 현재 크레텍은 총 350명의 직원이 유통관리사 자격증을 취득했으며, 올해 상반기에만 47명의 직원이 이 대열에 합류했다. 기타자격증의 경우도 76명이나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는데, 올해에만 13명이 다양한 자격증을 취득했다. 특히 텔레마케팅관리사, 구매자재관리사, 무역관리사, CS관련 자격증 및 회계, 심리 분야 자격증도 많이 취득하고 있는 추세다. 상품운영팀의 경우 지게차 자격증은 필수. 용접자격증을 보유한 직원도 2명이나 된다. 크레텍의 자격증 바람은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인 1자격증’ 권장 캠페인이 전개된 것. 이를 주도한 이가 있었으니, 바로 서울마케팅팀 최경수 이사다. 다음은 최경수 이사와 1문 1답. 

유통관리사 바람의 주인공이라고 들었는데, 당시 이야기 좀 들려주세요. 
2006년 서울안양센터를 개소한지 4년 뒤인 2010년에 서울본사 및 군포센터를 확장 오픈하면서 그에 따른 인원을 급격히 늘려갔죠. 물류 관리업무에 적합한 ‘변화주도형 차별화된 인재’를 어떻게 키우나 고심하던 2011년 가을 어느날, 권종국 주임이 유통관리사 자격증 공부를 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아~ 이거다’ 싶었어요. 2012년 사업계획에 반영하고 ‘1인 1자격증’ 도전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솔직히 불씨가 된 사람은 권종국 주임이었고, 저는 불을 지핀 사람이었죠.

초기에는 회사 지원도 없었을 텐데 어려움은 없었나요?
처음 12명이 신청했는데, ‘회사에서 자격증수당을 주는가, 진급에 도움되는가’ 등 여러 가지 질문에 제가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었습니다. 단지 ‘능력개발과 업무수행 능력을 갖추기 위해 스스로에게 투자하자’며, ‘노력한 대가는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약속 정도였죠. 이후 3개월 간 매주 1회 업무 종료 후 스터디활동을 진행하며 면학 분위기를 만들려고 부단히 노력했어요. 절반은 마지못해 참석하는 눈치였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 진행하였죠.

 


           
유통관리사 자격증 취득의 효과는?
‘합격’이란 단어를 통해 자부심은 물론 전문지식과 업무프로세스 이해에 도움이 됩니다. 우리 회사가 공구유통 회사이기 때문에 외부협력사와의 상호 소통과 회사 발전에도 기여한다고 봅니다. 저 역시 혹여나 떨어지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지만 2015년 7월 도전하여 합격했습니다. 막상 붙고 나니 나이 드신 직원 및 팀장들이 도전하는 계기가 되었죠.

‘도전’에 대한 생각을 말씀해주세요.  
직장에 다니든, 사업을 하든 생각의 크기가 커져야 큰일을 해낸다고 믿습니다. 업계의 경력도 중요하지만 관련 자격증이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입니다. 하나의 열매를 얻기까지 보이지 않는 뿌리의 영양이 필요하듯, 보이지 않는 내면의 지식을 쌓는데 주저마시고 도전하시기 바랍니다. 

많은 직원들의 ‘도전’을 보며 느끼신 점이 있다면?
2015년 35명이 동시에 유통관리사 자격에 합격해 회사에 현수막이 걸리던 날 기분 최고였습니다. 이제 3급은 2급, 2급은 1급에 도전, 성공하는 직원들이 늘어나면서 우리 회사가 공구유통에 선두주자인 만큼 직원들도 업계 선두의 실력을 갖추어가는 모습이 자랑스럽습니다. 저는 서울본사에 자격증 취득의 불을 지폈지만, 최영수 회장님께서 전사적으로 불을 지펴 주셨습니다. 합격 축하금과 승진 심사시 우대혜택도 감사드립니다. 직원들에게 한 약속을 지키게 해 주셨어요. 마지막으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시간을 내어 공부를 하고 자격증 도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주신 임직원 여러분께 감사드리고, 합격하신 모든 분들과 지금도 도전을 계속하는 분들께 박수를 보냅니다. 파이팅! 

글 _ 김연수 · 사진 _ 김연수, 한상훈

 

<월간 TOOL 2018년 7월호> - 크레텍 최다 14종 자격증 보유마케팅본부 박미성 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