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기능올림픽 메달 따고 20대에 창업 김종희
기능올림픽 메달 따고 20대에 창업
제이디오코퍼레이션 김종희 대표
전국기능경기대회에서도 1등을 하고 전세계 사람들과 기술 실력을 겨루는 국제기능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땄다. 이후 몇 년의 직장생활 이후 창업을 한 젊은 사업가가 여기 있다.
기술은 가능한 일찍 배우는 것이 좋다. 기술을 배우고 익히는 것이 빠를수록 그 성취도 깊어지고 안정적인 삶을 살아가게 된다. 제이디오코퍼레이션의 김종희 대표도 고교시절부터 익힌 기술로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는 청년 사업가다. 젊은 나이에 제품 설계, 제작으로 소년 시절부터 기술을 익히며 흘리던 땀방울은 보다 나은 삶을 살아가게 해주는 발판이었다.
꿈이 없던 소년, 엔지니어를 꿈꾸다
김종희 대표가 중학교를 졸업 할 쯤, 친척 어른의 손에 이끌려 경북기계공업고등학교에 입학 하게 된다. 기술을 익혀야 먹고 산다는 것이 이유였다. 미래에 대한 기대나 꿈이 없던 평범한 소년은 그곳에서 ‘설계도’를 처음 보게 되고 엔지니어로서의 미래를 꿈꾸게 된다.
“어떻게 보면 참 운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제가 무엇을 알겠어요? 멋있어 보였고 또 선생님이 가르치는 데로 설계를 해보니 칭찬을 받게 되고 그러다 보니 재미도 있고 자꾸 하게 되더라고요. 학교에서 적성검사 인성검사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아마도 전공을 정하기전에 성향을 파악하기 위해 치른 아이큐 검사 같은 것이겠죠. 그 검사결과 엔지니어, 설계가 내게는 잘 맞는 길이다 했어요. 사람마다 적성이라는 것이 있고 또 그 적성은 사람마다 다른 것 같습니다. 다행히 저는 저에게 어울리고 내게 맞는 길을 빨리 찾았던 것 같습니다.”
공업고등학교는 일반 학생과 달리 대회 입상을 목표로 하며 기술을 익히는 것에 주력하는 학생들이 있다. 소위 기능생들이다. 선생님의 권유로 기능생이 된 그는 훈련을 거듭하면서 설계 실력이 크게 늘어난다. 그가 다닌 경북기계공고는 기능대회 수상 실적으로 유명한 학교다. 그런 학교에서 그는 손꼽히는 실력자가 된다. 그가 지방기능경기대회에 나가 1등을 하자 전국기능경기대회에 나가게 되었다. 전국기능경기대회에서도 또 1등을 하자 사람들은 그에게 이제는 전세계 사람들이 기술 실력을 겨루는 국제기능올림픽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술의 목마름 커지게 한 국제기능올림픽
국제기능올림픽대회는 청소년 근로자들의 작업기능을 겨루는 국제대회다. 만17세에서 22세까지의 청소년만이 참가 가능한 대회로 한국은 1967년 16회 대회 때부터 참가하기 시작해 매년 메달 순위로는 1, 2위를 다투곤 한다. 전세계 청소년들이 자신들의 기술을 선보이는 자리인 이 대회는 권위가 높다. 올리픽 금메달을 준비하는 태릉선추촌의 체육선수들처럼 한국의 수많은 학생들이 고교시절 내내 아침부터 밤10시까지, 방학도 없이, 쉬는 날도 없이 하루 종일 이 대회를 위해 기술을 연마한다.
“결국 그 대회에서 은메달을 땄는데 금메달을 못 딴 것이 정말 아쉬웠어요. 잠깐 실의에 빠지기도 했죠. 그러나 나중에 금메달, 은메달은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기술을 연마하는 것은 정말 끝이 없거든요. 아무리 금메달을 땄다고 해도 그것은 한 시점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금메달을 따고도 기술 연마를 게을리 하면 나이를 먹어도 동년배에 비해 기술이 떨어지기도 하고 정체되고 그렇죠. 사회에 나와서도 계속해서 자신의 주력 기술을 닦아야 합니다. 관해 설계에 관해 보다 성숙해져야 하고 연구해야 해요. 올림픽을 마치고 사회에 나와서 기술에 대한 목마름은 더더욱 커진 것 같습니다 .”
설계한 기계, 직접 제작하고 수리해
“지금 제가 회사를 경영하며 느끼는 것이지만 경영과 기술은 정말 다른 분야입니다. 단순히 노력한다고 될 일은 아닌 것 같아요. 잘 다니던 회사가 갑자기 어려워졌어요. 몇 달 월급을 받지 못하고 일했죠. 그래도 그동안 적지 않은 연봉을 받으면서 일했기에 몇 달은 참고 일 할 수 있었습니다. 함께 일 했던 대표님을 믿고 함께 즐겁게 일했고 서로를 믿었기에 계속해서 함께 일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뜻대로 되지 않더라고요. 상황이 여의치 않아 대표님께 인사드리고 회사를 나와 프리랜서로 일했죠. 그러다 지금 아니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결국 내 회사를 차리게 되었습니다.”
그가 자신 있어 하는 부분은 자동화 장비 설계다. 또한 설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장비를 직접 제작하기도 한다. 설계 도면을 제작하는 것은 주로 컴퓨터를 활용하지만 그 설계를 바탕으로 자동화 기계를 제작하는 것은 많은 공구가 필요로 하는 일이다. 설계만큼 기계제작도 많은 기술을 요구한다.
가장 많이 사용하는 공구, 육각 렌치
그가 제일 사용하는 공구는 육각렌치. 가격도 저렴하고 품질도 좋은 스마토 육각렌치를 주로 사용한다.
“자동화 기계는 삼익THK제품이 많이 사용됩니다. 자동화 기계를 조립하고 해체하는데 육각렌치가 많이 사용이 되죠. 그 이외에도 다양하고 많은 공구를 사용 됩니다. 각종 수공구부터 전동공구까지 공구 없으면 일 자체가 안 되죠. 설계만 계속 했다면 지금처럼 다양한 공구를 만져보고 다루어 보지는 못했을 겁니다. 그런데 자동화 설비를 제작하고 수리하면서 다양한 공구를 다루게 되었죠. 공구를 사기 위해 공구상가에도 자주 발걸음이 가구요. 공구상가에 가서 느끼는 것이지만 공구에 대한 지식이 대단하신 분들이 많습니다. 꼭 대학 나와야 대단한 것이 아니죠. 저도 야간 대학을 잠깐 다니기도 했는데 일을 하는데 굳이 필요하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공구인들처럼 저도 그저 하루 하루 최선을 다하며 살아갈 뿐입니다. 지금 힘든 일이 있어도 일단은 받아들이고 천천히 내 상황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럼 길이 보여요. 현실에 우선을 두고 국제기능올림픽과 같은 구체적인 목표를 잊지 않고 살아가다보니 뭔가 길이 열리더라고요.”
기술을 익히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10대 시절부터 계속해서 설계 기술이라는 한 우물을 파는 것은 더더욱 힘든 일이다. 대학을 나온 청년 실업자가 수 십 만에 육박하는데 불과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그는 기술로 인정받고 회사를 세워 여러 직원을 고용하고 있다. 근래에는 사업과 더불어 후배 기술자들의 멘토이자 교육자로도 활동한다. 주위의 시선에 아랑곳 않고 꾸준히 한길만 걸으며 노력하는 그의 청춘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글 · 사
진 _한상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