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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장이, 내가 선택한 직업이자 삶
대장장이는 전통적인 공구 제조사이자 수리점이며 공구 판매상이다. 과거엔 필수적인 존재였지만 지금은 산업 발달에 따른 기계화와 자동화로 그 역할이 축소되었다. 그럼에도 박준하 대장장이는 자신이 원하는 삶을 위해 대장장이라는 직업을 선택했다.
올해 나이 서른, 청년 대장장이 박준하. 그가 대장장이라는 직업을 선택한 이유는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다.
경상북도 영주에서 태어나 초·중·고 학창 시절은 대구에서 보냈다. 하지만 그에게는 고등학교 졸업장이 없다. 학교에서 딱히 배울 게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목들, 가르치는 방식, 가르치는 내용들로부터 한계를 느꼈다. 굳이 학교에서 배움을 구할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를 그만두고 집에 있자니 부모님의 눈치가 보였다. 자취하는 친구 집으로 가 생활했지만 먹고 살려면 일자리를 구해야 했다. 하지만 남 아래에서 돈을 버는 것도 싫었다.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일을 해야 하고 급여는 시간당 얼마고 그런 것들에 대한 설명을 듣는 것부터 거부감이 들었다. 학교로부터 느꼈던 거부감과 비슷한 감정이었다.
돈을 구하는 순탄치 않은 과정들을 거치며 아는 분을 통해 경북 영덕군에 있는 농사를 짓는 가정에 들어가 농사를 배우게 됐다. 그가 느낀 농사란 내 삶에 필요한 것들을 내가 직접 생산하는 과정이었다. 그것이 마음에 들었다. 내가 먹고 살 것을 내가 직접 만드는 생태적인 삶. 하지만 농사 역시 나 혼자의 힘만으로는 할 수 없는 것. 외부로부터의 도구, 연장, 공구가 필요했다. 농업을 위한 도구 제작의 원점에 있는 것이 대장간이겠구나 싶었다. 자신이 원하는 생태적 삶을 위해 그는 대장장이라는 직업을 선택하기로 결심했다.
농사지으려 밭을 매려면 호미가 필요하고 호미는 대장간에서 만들어지고 호미 제작을 위해 필요한 망치나 집게 역시도 대장간에서 직접 만들어진다. 대장간은 작업에 필요한 모든 수단이 전부 한 곳에서 만들어지는 그야말로 원점(原點). 대장장이의 일을 배우기 위해 전국에 있는 대장간을 찾아갔다. 오랜 경륜을 가진 대장장이로부터 도제식으로 일을 배우고 싶었는데 가는 곳마다 퇴짜를 맞았다. 대장간들도 제 입 건사하기 바쁘지 누군가를 가르쳐 줄 만한 형편이 아니었다. 대장일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입대했고 제대 후 2017년부터 충남 부여에 있는 전통문화교육원에서 2년 동안 철물기초과정과 심화과정을 밟았다. 그리고 현재 위치인 충남 예산군 신양면 시왕리 끝자락, 명우산 깊숙한 곳에 자리를 잡고 대장일을 시작했다.
그렇게 본격적으로 시작한 대장장이라는 직업. 그러나 보편적인 삶과는 다른 삶들이 대개 그렇듯 모든 일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지금 호미나 낫 같은 연장들은 공장에서 자동화된 시스템으로 생산된다. 오랜 시간을 들여 담금질과 메질을 해 연장을 만들어내는 대장장이들의 작업은 품질은 더 좋을지 몰라도 그 제작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다. 또한 중국산 농기구들이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되고 있는 이상 아무리 단가를 낮추어도 고객들이 원하는 가격을 맞출 수 없다. 대장장이의 작업은 이제 과거의 문화유산으로밖에는 그 역할이 남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래도 그는 오직 자신의 손과 몸만으로 일체의 도구들을 만들어내려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대장간이 시장에서 살아남는 것과 무관한 생각이었다고 박준하 대장장이는 말한다.
대장간 일을 시작한 지 올해로 5년 차. 박준하 대장장이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삶에 대한 고민을 했고 자신이 살아갈 삶의 새로운 방향을 설정했다. 생태적인 자급자족을 위한 행위로서의 대장간은 유지하되, 대장장이라는 일로 경제적인 부분도 분명히 해결할 수 있는 방향으로. 그것을 위해 작년 7월, ‘마더스틸’이라는 이름으로 사업자등록증을 냈다. 마치 철의 엄마처럼 철로 된 기물들을 탄생시키는 대장간이라는 의미. 마더스틸의 이름으로 해 나가는 새로운 활동들은 다음과 같다.
먼저 직접 뭔가를 만들어내는 행위의 가치를 아는 이들을 대상으로 한 대장간 교육.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창조성이 깃들어 있고 뭔가를 만들기 시작하면 몰입감을 느낀다. 그런 경험을 일깨워 줄 교육을 진행 중이다.
또한 단지 연장과 공구뿐만 아니라 그 이상의 물품들을 만들어낼 수 있는 대장간의 넓은 바운더리를 알리는 작업.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단조 작업의 가능성을 발굴해 ‘작품’을 만들고 있다. 최근에는 동료 작가와 함께 전시회도 펼쳤다.
그리고 대장장이란 직업을 비즈니스적이 아닌 문화적으로 풀어내 보려는 시도. 물건을 제작해 판매하는 것 외에, 유튜브 등 매체를 통해 문화적 콘텐츠로서 대장간을 알리는 작업 역시 준비 중이다.
처음 명우산 자락 깊은 산 속으로 와 대장간을 차렸을 때만 해도 별 계획과 뚜렷한 생각이 없었다는 박준하 대장장이. 그러나 지금 그에게는 미래를 위한 계획이 세워져 있다. 인터넷 쇼핑몰을 통한 단조 제작 소품 판매부터 앞에서 말한 다양한 활동들까지. 연장을 만들어낸다는 대장일 외에도 현대 사회에서 의미 있게 생존 가능한 대장장이로서의 계획들을 품고 있는 것이다.
학교에서의 가르침에 한계를 느낀 10대에서 대장장이로서의 길을 시작한 20대를 거쳐 이제 삶의 무게가 느껴질 30대에 접어든 청년 대장장이 박준하. 그는 대장장이라는 직업을 선택한 것에 후회는 없다고 한다. 다만 현재, 묵직하게 다가오는 삶의 무게를 버텨낼 돌파구를 찾기 위해 힘쓰고 있는 중이다. 그를 응원한다.
글·사진 _ 이대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