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툴스토리-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사용한 공구들
영국 역사상 최장 기간 재위한 국왕이자 여왕으로서는 전 세계 역사상 두 번째로 오래 재위하였던 퀸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사망 1주기를 추모하며 그녀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군에 입대해 운전병·정비병으로 복무하며 사용했을 공구에 관한 이야기.
2022년 9월 8일. 영국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재위(1952~2022)했으며 또한 최장수 군주였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9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영국인은 물론 전 세계인의 사랑과 존경을 받아온 여왕은 즉위한 지 70년 만에 비로소 군주로서의 임무를 내려놓게 된 것이다.
32개국 영연방 왕국의 여왕, 영국인의 정신적 지주, 그리고 대중 속으로 들어온 여왕이라 일컬어지는 엘리자베스 2세. 25살 젊은 나이에 왕위에 오른 뒤 재위하였던 오랜 시간 동안 15명의 총리가 그녀를 거쳐 갔으며 재위 기간 중 영국은 전후의 궁핍한 세월을 견뎌야 했고 냉전과 공산권의 붕괴, 그리고 유럽연합(EU)의 출범과 영국의 탈퇴(브렉시트)등 격동의 시간을 거쳐야 했다.
서거 1주기. 여왕은 정치에 직접 관여하지는 않았으나 영연방 국가 통합의 상징으로서, 특히 나라가 어려웠던 시기에 국민의 단결을 끌어내는 데 기여한, 국민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은 여왕으로 기억되고 있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국민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았던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다. 그녀는 스스로 정의를 위해 나아가는 모습을 보이며 군주로서의 자질을 드러냈다. 아버지 조지 6세가 영국 국왕으로 재위하던 시기 발발했던 제2차 세계대전. 전쟁 시기 엘리자베스 여왕(당시는 공주)은 아버지의 허락을 받아 18세의 나이로 군대에 자원입대했고 영국 육군의 한 지부인 WATS(Women's Auxiliary Territorial Service 여성 국민 방위군)에서 230873번의 군번을 달고 운전병 겸 정비병으로 복무하며 국가에 기여했다. 입대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종전이 찾아왔기 때문에 비록 군에서 활동한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지만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군 복무는 그녀의 사망 전까지 세계대전에 참전한 유일한 살아있는 국가 원수였으며 또한 세계대전에 참전한 경력이 있는 마지막 국가 원수라는 기록을 남기게 되었다.
영국 왕실은 군 복무의 역사가 강하게 내려온 왕실이지만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복무는 다른 왕실 가족들의 복무와 사뭇 달랐다. 나이 어린 공주가, 그것도 장래 여왕의 자리에 오르게 될 왕위 후계자의 몸으로 전쟁에 직접 참가했던 것은 영국 역사상 그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일이었다.
그녀는 WATS에서 복무하며 대공포 사수와 함께 일하고 무선 통신수, 차량 정비병 등으로 일하는 등 지원 역할을 수행했다. 그것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입대했던 영국 여군들의 활동과 차이가 없는 활동이었다. 대전 시기 영국의 여성들은 남성들이 전장에서 싸우는 동안 비워져 있던 남성들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냈다. 어떤 식으로든 조국에 봉사를 하기 위해 애썼던 것이다. 미래 여왕이 될 엘리자베스 2세 역시 조국을 위한 봉사를 피하지 않았던 것이다.
입대한 그녀는 또래의 소녀들과 똑같은 훈련을 이겨내야 했다. 군용 트럭 운전사로 훈련을 받았고 기본적인 차량 정비 작업을 수행하는 방법을 익혔다. 엘리자베스 2세는 엔진을 분해하고 재건하고 바퀴를 교체하는 방법을 배웠다. 이런 업무들을 여왕은 잘 수행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그녀는 자신의 친구들에게 이러한 작업의 경험을 알리기 위해 자신의 손톱에 흙과 기름얼룩이 낀 것을 자랑스럽게 보여주었다고 한다.
군에서 여왕이 담당했던 정비 분야는 군용 트럭 정비였다. 아마도 그녀는 다양한 공구를 사용하여 차량을 정비하고 수리했을 것이다. 당시 그녀가 사용했던 구체적인 공구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그 시기의 군사 기록은 대부분 제한되어 있으며 특히나 왕실의 인물이 사용한 공구에 대한 상세한 기록은 더욱 희박하다. 하지만 WATS에서 활동했던 정비사로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그 시대의 자동차 정비병들이 흔히 사용했던 수공구들을 사용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여왕이 사용했을 공구 중에는 다음과 같은 공구들이 포함되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① 스피드 핸들
② 렌치/스패너
③ 드라이버
④ 해머
⑤ 잭 및 타이어 공구
⑥ 그리스 건
영국의 공주 신분이 아닌 하급 군관인 중위 신분으로 입대해 여군들과 동일한 훈련을 받으며 생활하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입대한지 5개월 만에 WATS의 명예 대위 계급으로 진급하게 되었다. 이로부터 그녀의 충실하고 뛰어난 군대에서의 생활을 짐작해 볼 수 있겠다.
제2차 세계대전이 종전을 맞이한 지 7년 후인 1952년 2월 6일, 영연방 순방 중이던 엘리자베스 2세는 아버지 조지6세가 암투병 도중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에 따라 추정상속인이었던 엘리자베스 2세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이후 그녀는 서거 전까지 7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영국 군주로서의 자리를 지켰다.
작년 9월, 영국 왕실의 별장인 스코틀랜드 밸모럴 성에서 서거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추모하는 분위기는 영국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여왕의 관이 처음 안치됐던 에든버러에서 무르익었던 추모 열기는 관이 런던에 도착해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안치된 후 끝없는 조문 행렬로 이어졌다. 조문객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다양한 사람들이었다. 어째서 영국은 물론 전세계 영연방 국가의 국민들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그토록이나 사랑했던 것일까? 그 이유 가운데 하나로 입헌군주제의 문제점들과 함께 대대로 내려오던 여러 왕실 특권을 포기하며 현실의 변화에 대응한 엘리자베스 2세의 행적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세계대전이 끝난 후 여왕은 당시를 회고하며 “복무 중 혹독한 훈련을 받으며 전쟁을 치렀던 경험은 정말로 유익했다. 덕분에 영국 왕실의 구태의연한 틀을 깨고 아이들을 일반 학생들과 같이 학교에 보낼 수 있었던 것 같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단지 복무 경험 때문만은 아니었을 테지만 어찌 됐든 10대 어린 나이에 참전하여 동료인 민간인 여군들, 특히 평민들과 만나 함께 공구를 손에 쥐고 기름을 묻히며 생활했던 경험이 여왕의 탈 권위화에 한몫을 했던 것은 자명한 일이었을 것이다.
글 _ 이대훈 / 참고자료 _ 바이하이진 핀저 著 ‘여왕의 시대’, wikipedia.org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