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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 CULTURE

골프채병원 연병모 원장


공구로 골프채를 치료하다

골프채병원 연병모 원장
 




골프채를 피팅한다는 것
 
핏을 맞추다, 핏하다 라는 표현이 있다. 영어의 ‘fit’에서 온 말로 옷이나 신발 등을 몸에 맞춘다거나 옷이 몸에 잘 맞는다는 의미다. 일명 ‘클럽’이라고 부르는 골프채도 피팅이 필요하다는 말을 얼핏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과연 옷이 아닌 골프채를 피팅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나에게 작거나 큰 옷을 내 몸에 맞추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어요. 옷이 조금 작거나 커도 입을 수는 있겠지만 자유롭게 행동하기에는 불편하겠죠. 그걸 행동하기 편하게, 아주 편하게 내 몸에 맞추는 거예요. 쉽게 말하자면 내가 갖고 있는 근력이나 공을 치는 스타일, 그런 것들에 맞게끔 클럽을 조정한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어요.”
연병모 원장의 설명이다. 서울시 강남구 강남구청 근처 주택가에 자리 잡고 있는 연병모 골프채병원을 찾은 날엔 맹렬하게 주룩주룩 소나기가 쏟아지고 있었다. 빗소리를 뒤로하고 계단을 걸어 내려가 방문한 연병모 골프채병원은 초입부터 남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가장 먼저 간판. 무슨무슨 골프 피팅점이나 무슨무슨 피팅샵이 아닌 ‘골프채 병원’이라 적힌 간판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문을 열고 마주한 연병모 원장이 입고 있는, 마치 의사들의 수술복을 떠올리게 하는 푸른색 상의도 마찬가지다. 이런 곳이라면 내 몸을 의사에게 믿고 맡기듯, 소중하게 다루던 나의 골프채도(가지고 있다면) 충분히 믿고 맡길 만하겠단 생각이 들었다.

 
따질 것이 너무나 많은 골프채 피팅
 
골프채를 피팅한다는 건 ‘쉽게 말하자면’ 옷을 내 몸에 맞추는 것과 같다고 했다. 너무 쉽게 설명한 문장이다. 옷과 달리 골프채는 맞춰야 할 부분이 너무나 많다. 신장에 따른 클럽의 길이에서부터 사용자 근력에 따른 무게, 스피드에 따른 강도, 공을 치는 유형이며 타격의 높낮이와 각도, 손의 크기는 물론 손에서 나는 땀의 양까지… 그와 같은 모든 사항들을 측정해 골프를 치는 사람 각자에 맞는 클럽을 만들어내는 것. 그것이 진정한 클럽 피팅의 의미다.
“우리나라에 피팅샵이 300군데 이상 있어요. 제가 알기로는 그 많은 피팅샵들 중에 저희 가게처럼 일본 스타일의 공방 개념 샵들은 한 군데도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피팅샵들은 그냥 골프채 소매점 같은 느낌이랄까요? 비싼 헤드(클럽의 머리 부분)들이나 샤프트(클럽의 몸체)들을 쫙 진열해 놓고 손님들에게 견물생심이라고, 제대로 된 피팅보다 그런 상품들을 판매하면서 매출 올리는 집들이 대다수예요.”
피팅샵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80%이상이 골프용품점에서 판매를 하다 피팅 쪽으로 돌아선 사람들이라 한다. 혹은 대형 골프채 제조사의 조립공장에서 일하던 이들이거나. 그런 제조사의 조립공장에는 일정하게 정해진 매뉴얼이 따로 있다. 그들은 그걸 보고 매뉴얼에 적힌 딱 그 수치에 맞도록 만들어내기만 하는 것이다. 딱 그 정도까지만.
“제대로 된 피팅을 하는 기술에서 어셈블(조립)하는 기술은, 제 생각에 피팅의 전체적인 개념에서 볼 때 10% 남짓에 불과하다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기술도 못 갖춘 친구들이 거의 대다수예요.”


 
프로 골퍼 출신이 피팅해주는 클럽
 
피팅의 기술에서 10%밖에는 안 된다는 조립 기술. 연병모 원장이 말하길 피팅 기술의 나머지 90%는 ‘감각’이라 한다. 골프채에 대한 그리고 골프에 대한 감각. 그 감각이란 단지 피팅을 하는 것만으로 익힐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실제로 골프채를 잡고 골프를 쳐 본 사람만이 체득할 수 있는 것일 테다. 연 원장은 골퍼 라이센스가 있는 프로 골퍼 출신이다. 1994년 대학교 1학년 때부터 골프를 치기 시작해 대학을 졸업하면서 프로 라이센스를 취득, 여주에 있는 컨트리클럽에서 프로 생활을 했다. 그러던 가운데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해 골퍼의 삶을 갈무리한 채  피터의 삶을 시작한 것이다. 사고를 당하기 전 10여 년 간 골퍼 생활을 하면서 경험하고 쌓은 골프에 대한 감각이, 지금 그가 보유하고 있는 피팅 기술을 이룩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는 것은 말해 무엇 할까.
“저희 샵에는 아마추어 분들도 오시지만 클럽 챔피언들, 골프를 굉장히 잘 치시는 분들도 오시고 선수들도 와요. 주니어 선수들부터 대학연맹 투어 프로들이나 투어를 준비하고 있는 세미 프로들. 그 친구들은 숫자를 가지고 얘기하는 게 아니거든요. 감적인 걸 가지고 얘기를 해요. 경험해보지 않았으면 모르는 것들 있잖아요. ‘연습할 때는 괜찮은데요 시합 때 긴장을 하면 클럽에서 이런 현상이 나타나요’ 하거나 ‘이럴 땐 이런데 저럴 땐 저래요’하거나. 그런 느낌들은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은 절대 알 수 없는 거거든요.”
 
4년은 배우셔야 합니다… 뭘 그렇게 오래 걸려요?
 
원장은 골퍼 생활을 마무리짓고 피팅의 길로 접어들며 한 명의 피팅 전문가에게 기술을 배웠다. 처음 그를 찾아갔을 때 그가 말한 ‘연프로님은 프로 생활을 10년 넘게 하셨으니까 한 4년 정도만 배우시면 될 것 같아요’라는 문장에서 그에게 배워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다른 샵들에서는 1~2주면 수강료 받고 내보낸다는 골프채 피팅이다. 그의 샵에 들어가 4년 동안 기술을 배웠다. 그것도 무보수로. 새벽에는 근처 골프 레슨장에서 골프를 가르치며 생활비를 벌고 오후 두 시에 샵에 나가 일을 하면서 기술을 익혔다. 그런 생활을 계속하다 ‘이제 독립하셔도 될 것 같다’는 말을 듣고는 나와 자신만의 샵을 차렸다.
“제가 지금 이 자리에 피팅샵을 낸 지가 올해로 딱 10년째거든요. 2008년도에 처음 시작했는데 2009년 초부터 막 소문이 나기 시작했어요. 요즘 인터넷이 발달해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는데 운이 좋았던 거죠. 입소문을 타면서 2009년 후반부터 2010년 사이에 체인점을 내 달라고 오시는 분들이 정말 많았어요. 그냥 일반 피팅샵에 가보면요 초급반 1주일, 고급반 1주일 딱 2주만에 가르치고는 수강료 받고 체인점을 내줘요. 그런데 저는 사람들이 찾아왔을 때 제일 먼저 ‘한 4년 이상은 배우셔야 할 것 같은데 괜찮으세요?’하고 물어봅니다. 그러면 다들 뭐 그렇게 오래 걸리느냐고 그래요. 지금까지 그렇게 해서라도 배우겠다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어요.”
하나의 뛰어난 기술을 가진 장인(匠人)이 자신의 후계자를 가르치듯, 오랜 시간과 많은 경험이 필요할 피팅 기술의 가르침. 그 가르침을 온전히 받아들일 사람이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는 연병모 원장이었다.
 
장인(匠人)과도 같아야 할 피터들의 세계
 
원장은 자신의 피팅샵을 ‘일본 스타일의 공방 개념’이라 말했다. 거기서도 짐작할 수 있듯, 골프채병원의 작업실은 방문객에게 오픈돼 있다. 작업실 안에 상담을 위한 테이블까지 놓여 있을 정도다. 원장은 가게를 찾은 손님에게 작업실 안으로 들어오라고 권한다. 그리고 자신의 클럽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직접 눈으로 보게 한다. 클럽에 대한 믿음을 만들어주기 위해서다.
“우리나라 다른 샵들에 가보시면 알겠지만 저희처럼 작업실을 오픈해 놓은 곳은 아마 한 군데도 없을 거예요. 저는 일부러 오픈해 놓았어요.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의 클럽에 대한 믿음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내 클럽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눈으로 확인해야 ‘내 클럽은 제대로 만들어졌어’하는 신뢰감이 생기는 거겠죠. 내 장비를 믿고 쓴다는 건 선수들에게 무척이나 중요한 거예요. 저는 선수생활을 해 봤기 때문에 시합 때 멘탈이 주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를 잘 알고 있거든요.”
멘탈이란 골프를 치는 사람뿐만이 아닌 연병모 원장에게도, 그리고 장사를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중요한 것이다. 원장이 4년간 출근하며 기술을 배웠던 전문가의 피팅숍에는 그때까지만 해도 골프채 피팅을 하기 위해 방문하는 손님들이 셀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 그곳은 장사가 안 돼 문을 닫고 한 골프 클럽의 연습장에서 피팅 일을 하고 있다 한다. 물건 판매에 장난을 치는 것이 소문났기 때문이다.
“요즘 소비자들이 굉장히 영리합니다. 장난을 치기 시작하면 그게 소문이 금방 나 버려요. 속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언젠가는 밝혀집니다.  그저 시장의 장사치라면 양심을 팔아도 되겠죠. 하지만 장사꾼은 그러면 안 돼요. 제가 오늘 아침에 보고 나온 책의 내용 중에 이런 문장이 있더라고요 ‘시간이 지나도 가릴 수 없는 세 가지가 있다. 해, 달 그리고 진실이다’ 저는 장사를 해도 언제까지나 진실하게 하는 대상인이 되고 싶어요.”

 
가장 중요한 공구는 없어… 모든 공구가 소중해
 
연병모 골프채병원에 방문하는 고객들은 총 1,800여 명에 달한다.원장은 그들에 대한 자료들을 한 명도 빠짐없이 종이 파일에 끼워 보관하고 있다. LPGA투어에서 4승을 하기도 했고 우리나라 KLPGA 최연소 프로이기도 한 이선화 프로도 연 원장의 고객 중 한 명이다. 하지만 원장에게는 프로 선수든 아마추어 선수든 모든 고객이 하나같이 중요하고 소중한 고객들이다. 그가 피팅을 위해 사용하는 공구도 마찬가지다. 원장은 ‘가장 중요한 공구’는 없다 말한다. 작업장에 있는 공구 중 단 하나라도 없으면 피팅에 필요한 각각의 단계를 진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모든 공구는 연병모 원장에게 소중한 것이다.
“제가 생각하기에 모든 일은 연장이 하는 거예요. 연장이 없으면 아무리 뛰어난 기술이 있는 사람이라도 손바닥만으로 일을 할 수는 없거든요. 그래서 저는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연장, 공구가 하는 거라 생각합니다.”
 
인터뷰 시간 내내 연 원장의 목소리는 건넨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는 것이 아닌, 마치 연단에 서서 강연이라도 하고 있는 듯 힘 있고 열정적이었다. 그만큼 자신의 일에 대한 자신감과 열의가 넘쳐흐르고 있었다. 그런 자신감과 그가 가지고 있는 피팅에 대한 기술, 그리고 지식이라면 그를 장인이라 칭해도 문제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병모 골프채병원
서울시 강남구 선릉로 112길21 / T.02)3445-5714

글·사진_이대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