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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 CULTURE

수제화 명장 1호 유홍식


대통령 구두 만든 ‘공구’ 끈기와 노력이죠

수제화 명장 1호 유홍식





대한민국 최고의 구두제작 기술을 가진 사람은 누구일까. 한국의 구두 명장을 만나고 싶다면 서울 성수동 구두타운에 갈 것을 추천한다. 발 편하고 예쁜 구두를 만나고 싶다면 서울 지하철 2호선 성수역에 위치한 드림핸드메이드에 가보자. 드림핸드메이드는 지난 2013년 서울시로부터 수제화 명장 1호 인증을 받은 유홍식 장인의 가게다. 그는 대통령이 신는 구두를 만들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국내 유명인들이 찾는 구두
 
유홍식 장인은 최소 40만원에서부터 수 백 만원을 넘는 최고급 수제화를 전문적으로 제작하고 판매한다. 그의 구두를 찾는 사람은 대통령뿐만이 아니다. 박원순 서울시장을 비롯해 국내에 유명한 정재계인사들과 연예인들이 그의 신발을 찾는다. 대통령의 구두를 제작할 만 하다. 명품 구두를 제작하는데 있어 가장 필요한 공구는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사람들이 돈 주고 신을만한 수제 구두를 만들려면 아무래도 기술이 있어야겠죠? 그런 기술을 익히려면 아무래도 끈기도 있어야 하고 성실하고 노력도 해야 합니다. 제가 특별한 공구가 있어서 수제화를 잘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내가 가진 실제 공구는 평범해요. 누구나 가지고 있는 공구입니다. 그리고 누구나 그렇듯이 나도 힘들었던 순간이 있었어요. 수중에 돈 몇 만원 밖에 없었을 정도로 힘겨운 순간도 있었죠. 그래도 나한테는 기술이 있어서 다시 일어설 수 있었고 가게를 얻고 자식 교육시키고 부인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도록 벌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기술을 얻으려면 아무래도 끈기와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재능도 중요하지만 무엇을 하던지 끈기 노력이 있어야죠. 나는 그것으로 인생을 개척해 왔어요. 내가 가진 공구라고 하면 끈기와 노력 밖에 없습니다.”



 
공부가 싫어서 구두제작자 됐죠
 
“민망한 이야기인데 나는 어릴 때부터 공부가 그렇게 싫었어요. 그런데 무언가 만들고 하는 것은 좋아 했어요. 집안 내력인가봐요. 다른 친척 어른들을 보아도 다들 무언가 만드는 일을 했으니까요. 처음 구두를 만든 것은 13살 때 부터였어요. 그때는 뭐 휴대폰도 없고 하니까 숨어 버리면 어떻게 절 찾겠어요. 그냥 나 혼자 서울에 올라와 일을 시작했죠. 아는 선배가 구두를 만드는 일을 해서 그 선배를 믿고 올라온 것이었어요. 저도 자연스럽게 선배 따라 구두 만드는 일을 배웠습니다.”
혈혈단신 혼자 고향을 떠나 13살 때부터 배우기 시작한 구두제작 기술은 19살이 되자 업계에서 인정을 하기 시작했다. 지금도 그는 제자들을 가르칠 때 최소한 3년은 오직 기술을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그때까지는 고난과 인내의 연속이라고. 처음부터 잘 하는 사람은 없듯이 처음부터 실력을 인정받을 수는 없다. 그렇게 어렵게 배워야 남들로부터 겨우 인정을 받을까 말까 하는 것이 구두 제작 기술이다. 그는 20대 초반에 이미 인정받는 구두제작자가 되어 고향으로 내려가 구두를 만들어 판매했다. 그리고 지역사람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IMF 지나자 남은 건 손 때 가득한 공구뿐
 
고향에서 구두를 만들어 팔면서 결혼을 하고 집도 땅도 얻었다. 남부럽지 않게 재산도 불렸다. 마냥 잘 살 줄 알았다. 그런데 IMF가 오면서 호기롭게 벌였던 사업이 발목을 잡았다. 구두가 아닌 다른 것에 관심을 돌린 결과였다. 빚잔치를 하고 보니 수중에 남은 것은 돈 몇 만원과 구두를 만들 때 쓰는 낡은 수공구 몇 개가 전부였다. 
“너무 크게 건물을 짓고 했던 것이 실패 원인이 아닐까 해요. 아무튼 13살 때 돈 몇 푼 들고 서울 올라왔던 그때와 비슷하게 다시 서울에서 시작을 해야 했죠. 그때부터 성수동에 위치한 구두공장에 들어가 구두제작자로 일을 한 겁니다. 그래도 나는 자신 있었어요. 내가 만든 구두는 아무래도 다른 사람들에 비해 남달랐거든요. 비싸도 잘 팔릴 것을 확신했습니다.”
그는 이미 구두 제작 기술로 성공했던 인물이다. 기성화에 밀려 수제구두의 인기가 예전만 못하지만 예쁜 디자인을 가졌으면서 발이 편안한 수제화를 찾는 사람은 많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자신이 가진 구두제작 기술에 자부심이 크다.
“우리나라 수제화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거든요. 13세기부터 구두 생산지로 명성을 떨쳐온 이탈리아 볼로냐 지방의 구두 장인들과 비교해도 우리나라 기술은 뒤떨어지지 않습니다. 세계기능대회에서 한국 선수들이 수제화 부분을 계속해서 우승하자 다른 나라들이 참여하지 않게 되었어요. 결과적으로 한국 기술이 너무 뛰어나 적수가 없어지자 기능대회에서 수제화 부분이 없어졌어요. 그만큼 우리나라 구두 제작 기술은 뛰어납니다.”  


 
직접 디자인하고 직접 제작해
 
그는 지금도 멋진 구두를 보면 가슴이 두근거린다고 말 한다. 그가 제작한 구두의 디자인은 모두 그의 머릿속에 나온 디자인이다. 그가 직접 디자인하고 제작한 수제품이기에 최소 40만원은 받는다. 많은 기법과 기술이 들어간 구두는 수 백 만원을 호가한다. 
“평범한 구두는 하루에 두 켤레 혹은 세 켤레 만들 수 있어요. 그런데 화려하고 품이 많이 들어간 구두는 하루나 이틀 만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많이 만들 수 있는 구두를 많이 파는 것이 더 낫죠. 그런데 그렇게 하기 싫더라고요. 멋진 구두가 떠오르고 그런 구두를 만들 수 있는데 돈이 된다고 똑 같은 구두를 만드는 것은 재미없어요. 그러다 보니 수 십 년 경력의 기술자가 한 달 넘게 작업해 구두를 만들게 되고 그런 구두라면 재료나 공임비를 생각해 수 백 만원도 저렴한 가격 아니겠어요?”
수백만 원이 넘더라도 그의 구두를 인정하고 찾는 사람들이 있다. 오래 전 부터 외국 명품 구두만 찾던 사람들도 그의 구두를 보고 기술을 인정하며 제자를 키워 기술 전수를 꼭 하라고 말 할 정도다. 
“간혹 한 번에 백만 원이 넘는 구두를 수 십 켤레 사가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 분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제가 느끼는 것이 많아요. 어느 회장님은 제 구두 수 십 켤레를 한 번에 사가시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그분은 명품 구두를 모으는 것을 취미로 삼는 자산가셨는데 그분이 하는 말씀이 제가 만든 구두는 이탈리아 명품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 좋은 기술을 당신으로 끝낼 것이냐고 묻더군요. 후대에 기술 전수 안하고 사라지면 그것도 나라에 죄를 짓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셨어요. 제 구두 값싼 구두 아닙니다. 그만큼 자부심도 있습니다. 가격도 저렴한 구두가 아닙니다. 제가 공들여 제작한 만큼 가격을 받아요.  그런 제 구두를 인정해주시고 수 십 켤레 사주시는 분이 제게 그런 말씀을 하시니 등골이 서늘해지더라고요. 그 이후로 나의 기술을 전수할 후배 양성에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




 
처음으로 출장을 간 곳, 청와대 
 
명장은 구두 판매를 위해 출장은 가지 않는다. 자신은 구두 제작자이지 구두를 많이 팔기위한 영업사원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그가 가게를 비우면 방문하는 손님을 맞이하기 어렵고 그만큼 손님의 의견과 원하는 구두를 제작하지 못한다. 그가 만드는 구두는 쉽게 만나 쉽게 만들고 쉽게 신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그런 그가 출장을 간 적이 단 한번 있었다. 
“청와대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출장을 갔었죠. 내가 비록 구두를 만드는 한 명의 기술자에 불과하지만 내 가슴속에는 나라를 대표하는 구두 기술자라는 자부심과 더불어 애국심이 있습니다. 대한민국을 위해 일하시는 대통령님이 제가 만드는 구두를 신고 일하신다면 그것도 제게는 큰 영광이죠. 그렇다고 대통령 구두 제가 만들겠다고 자청하지는 않았습니다. 어느 날 가게에 정장을 입은 여성분이 와서 출장을 와달라고 하더라고요. 당연히 출장 안간다고 했죠. 저 멀리 경남 통영의 시장님도 우리가게에 와서 구두를 맞추고 가는 걸요. 당사자가 우리 가게에 오지 않으면 안된다고 거절하고 자리 앉아 다시 구두를 만드는데 그 사람이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청와대에서 왔다는 거예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대통령이 미국 방문 길에 신을 구두를 만들어 달라고 하니 내가 출장을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청와대에 갔죠. 청와대에 들어가는데 보안절차가 하도 복잡해서 기억도 잘 안나요. 기억나는 것은 방에 들어서니 대통령님이 서류를 보며 책상에 앉아 있으셨는데 웃으며 인사를 해주시더라고요. 사이즈를 재고 원하는 구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죠. 발 모양은 평범했어요. 낡은 구두를 신고 계셨고요. 소탈한 성품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죠.”
문재인 대통령의 미국방문을 앞두고 유홍식 장인은 보름동안 구두 6켤레를 만들었다. 대통령의 구두를 만들 때 자기도 모르게 최선의 노력을 다해 만들었다고. 다행스럽게도 문재인 대통령의 방미기간 그가 제작한 구두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구두로 화제가 되었다. 
대통령의 구두를 만들었다는 것은 과거 왕의 신발을 만든 것과 같다.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고의 명장으로 바라는 목표는 다 이룬 셈이다. 대통령 구두를 제작한 것이 화제가 되어 많은 사람들이 찾아주고 있다. 이제 그의 남은 소망은 기술을 전수할 제자 양성이다. 성실과 노력이라는 공구를 가지고 구두를 만들 또 다른 명장을 육성하기까지 유홍식 장인은 앞으로도 묵묵히 구두를 제작 할 것이다. 몇 년 뒤 다음 대통령의 구두도 그가 최선을 다해 제작하는 모습을 기대해본다. 
글 _ 한상훈   사진 _ 이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