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 기술, 공구로 제작한 스케이트날
매시브테크 양경선 대표
하계올림픽의 꽃이 마라톤이라면 동계올림픽의 꽃은 아이스하키다. 우리나라의 많은 사람들이 피겨스케이팅을 동계올림픽을 대표하는 스포츠라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은 아이스하키가 더욱 주목된다. 이런 아이스하키의 생명은 스케이트 날이다. 우리나라는 아이스하키 약소국이지만 전 세계 아이스하키 선수들이 주목하는 스케이트날 생산기업을 가지고 있다. 아이스하키 스케이트날로
유명한 ‘매시브테크’를 방문해 보았다.
최고 수준의 스케이트날 전문 제작기업
북유럽과 북미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스포츠가 바로 아이스하키다. 미끄러운 빙상에서 단단한 나무 막대로 단단한 고무공을 쳐서 작은 골대에 넣는 이 겨울 스포츠는 그 특성상 장비의 품질을 무척 중요하게 여긴다. 특히 선수들이 사용하는 스케이트날은 기본적이면서 무척 중요한 소모품이다. 아이스하키 스케이트날을 전문적으로 제작하는 기업은 전 세계에서 4곳이 있다. 그중 한 곳이 바로 서울에 위치한 ‘매시브테크’다.
“스케이트 날을 전문적으로 제작한 것은 제가 어릴 때부터 아이스하키에 푹 빠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원래 저는 외주 용역 사업을 했었어요. 일을 하면서도 틈틈이 아이스하키를 했었죠. 그런데 어느날 제가 사용하는 스케이트 날이 부러진 겁니다. 그냥 새로 사기보다 재료나 가공 설비, 각종 공구 모두 제가 다 가지고 있으니 직접 만들어 사용해 보면 어떨까 싶었죠. 함께 운동하는 친구의 스케이트날도 만들어주고 그러니 반응이 좋더라고요. 스케이트날을 전문적으로 제작하는 브랜드를 만들어 본 것이 ‘매시브 블레이드’의 시작 입니다.”
양경선 대표는 품질 좋은 철로 맞춤형 스케이트날을 제작해 전세계 빙상스포츠 선수들의 호응을 받고 있다. 그가 만든 브랜드 ‘매시브블레이드’는 캐나다, 체코, 스웨덴, 핀란드, 영국, 일본 등 전세계 선수들이 애용한다.
평창 올림픽에 사용되는 스케이트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아이스하키의 정상급 프로 선수들은 경기를 치룬 이후에 스케이트 날을 완전 새롭게 연마하여 사용합니다. 최고의 경기력을 유지하기 위해서죠. 스케이트날을 부러질 때까지 사용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공통적으로 스케이트날은 경기 치른 이후 꼭 연마하고 정비합니다. 전담 장비 매니저가 있을 정도니까요. 예상되는 경기 흐름에 따라 스케이트날을 바꾸는 선수도 있어요. 그만큼 스케이트날은 경기에 있어 중요한 요소입니다. 저희는 선수들의 발 모양과 선수가 치르는 경기 성향에 따라서 날 길이와 모양을 조금씩 다르게 제작합니다. 그래서 국적을 가리지 않고 많은 선수들이 저희 제품을 사용하는 것 같아요. 이번 평창 올림픽에도 수 십 개 국가의 많은 국가대표 선수들이 저희 제품으로 빙상위에서 경기를 치를 예정 입니다”
양대표는 서울과학기술대에서 기계설계공학을 전공한 엔지니어이면서 아이스하키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사람이다. 창업 전 다니던 회사와 연구소에서 기계 설계와 금속 코팅, 열처리 기술을 익혔고 클럽팀 입단을 권유 받을 정도로 아이스하키 실력이 뛰어났다. 신세대 용어로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빠져 그와 관련해 직업을 가지게 된 것을 ‘덕업일치’라고 한다. 양경선 대표는 전형적인 ‘덕업일치’의 모습을 보여준다. 아이스하키에 푹 빠진 엔지니어가 스케이트날을 만들자 그 품질이 뛰어난 것은 당연하다. 매시브블레이드 제품을 사용하면 즉각 경기력이 상승 된다는 입소문이 빙상 스포츠 선수들 사이에서 돌았다. 그 결과 현재 대한민국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 선수들 절반은 그가 만든 스케이트날을 사용한다.
“아무리 가격이 저렴해도 스케이트날 품질이 떨어지면 선수들이 찾지 않겠죠. 그리고 선수들은 저마다 원하는 스케이트날이 달라요. 좋은 재료로 세심하게 가공하고 또 그것을 자신이 원하는 모양에 맞추어 제작해 준 업체가 별로 없어요. 그렇기에 지구 반대편 캐나다나 체코의 선수들도 저희 제품을 찾고 주문제작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국가대표 아이스하키 썰매도 제작
아이스하키가 동계올림픽의 꽃이라면 장애인 동계올림픽인 패럴림픽의 꽃은 ‘아이스 슬레지 하키’다. ‘아이스 슬레지 하키’는 하반신을 마음대로 쓸 수 없는 선수들이 스케이트 대신 썰매를 타고 펼치는 경기다. 대한민국은 아이스하키에 있어 약소국이지만 ‘아이스 슬레지 하키’는 세계적인 강팀에 속한다. 요즘 양대표는 국가대표팀의 요청으로 포스코와 협업하여 그들을 위한 최고의 썰매와 썰매날을 제작하는데 노력하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아이스하키 스케이트날보다 경량 썰매날 제작이 더 어렵더라고요. 아이스 슬레지 하키는 썰매와 썰매가 충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만큼 충격도 많이 가고 또 썰매의 속도도 일반 아이스하키 속도와 큰 차이가 없어요. 현재 포스코의 지원으로 좋은 재료를 확보 할 수 있었습니다. 그 덕에 튼튼하면서도 가벼운 경량 썰매와 썰매날 개발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는 아이스하키를 통해 스케이트날 제작을 시작했고 썰매까지 제작하고 있지만 쇼트트랙과 스피드스케이팅 날도 개발하고 있다. 물론 쇼트트랙이나 스피드스케이팅은 0.01초 승부싸움이라 아직까지는 많은 선수들이 매시브테크의 제품을 올림픽 경기나 세계선수대회에서 쉽게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제작한 제품의 품질은 뛰어나기에 다음 올림픽이나 세계선수대회에서 많은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들이 매시브테크의 제품을 사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위기는 있지만 포기는 없어
스케이트날을 제작하면서 겪는 위기는 어떤 것이 있었는지 물어보자. 그는 매일이 위기라고 말하며 호탕하게 웃는다.
“지금도 매일이 위기인 것 같은데요? 하하하. 아무래도 저희 업체가 작고 영세하니까요. 아무래도 ‘스케이트날’이라는 품목이 큰 돈을 벌 수 있는 품목은 아니잖아요. 좋아서, 내가 할 수 있어서, 그리고 잘 알아서 하는 일 인 것 같아요. 또 그렇게 1년 2년을 버틴다고 할까요? 정말 고통스럽고 힘들었던 순간도 있었죠. 아무래도 스케이트날 제작만으로는 생활이 힘드니 각종 기계나 부품 주문 제작도 병행해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는 않죠. 말이 좋아 사장님이지 정말 열심히 해야 합니다. 운도 따라야하구요. 거래처도 좋은 분 만나야 하니까요. 처음에는 참 힘들더라고요. 부품을 다 만들어 납기까지 했는데 입금을 못 받는 경우도 있고. 사소한 문제로 제작한 제품을 거부당하기도 하고. 스케이트날 관련해서는 아무래도 제품을 알리는데 제일 고생했죠. 아이스하키 세계선수권대회 때는 잡상인 취급 받기도 하고요.”
장비에 예민한 선수들이라 새로운 날을 사용하게 하는 것은 쉽지 않다. 다행이 품질이 좋고 또 원하는 맞춤제작이 가능하다는 소문으로 수입품을 사용하던 국내선수들의 마음은 사로잡았다. 하지만 해외 선수들이 매시브블레이드 제품을 사용하게 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제품을 알리기 위해 아이스하키 세계대회가 열리는 체코까지가서 각국의 국가대표 장비매니저들에게 스케이트 날을 선보여야 했다. 그 와중에 잡상인 취급을 당하기도 하고 또 상대적으로 아이스하키 약소국의 서러움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에서 선수 생활 하던 외국인 선수들가 매시브블레이드를 접하고 고국으로 돌아가 입소문이 돌고 또 그가 포기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홍보활동을 하자 점차 많은 외국인 선수들이 그의 제품을 사용하게 된다.
좋은 제품은 공구 사용해야
매시브테크는 양대표를 포함해 전 직원 3명의 작은 중소기업이지만 보유한 공구와 기계설비는 무척 다양하다. 각종 드릴 공구부터 레이저마킹기 까지 각종 기계 및 공구욕심이 많다. 그에게 있어서 공구는 어떤 존재인지 물어 보았다.
“제 생각에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은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뛰어난 요리사라고 해도 제대로 된 요리기구가 없다면 제대로 된 요리를 하지 못하겠죠.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공구가 없으면 좋은 스케이트날을 제작하는데 무척 힘들었을 겁니다. 제품제작도 음식처럼 재료가 중요해요. 그런데 아무리 좋은 재료를 사용해도 제대로 된 설비나 공구가 없으면 불량이 늘어나고 그만큼 생산성이 떨어집니다. 좋은 고기를 주더라도 요리기기가 없으면 맛있는 요리를 만들기 어렵잖아요. 저는 좋은 공구를 보면 가지고 싶기도 하고 그 좋은 공구를 제가 직접 만들어 보고 싶기도 합니다. 저에게 있어 공구는 그런 존재 같아요. 가지고 싶고 또 만들고도 싶은 그런 존재.”
매시브테크는 스케이트날 제작업체 중 후발주자에 속한다. 그러나 그 존재감은 작지 않다. 사무실 곳곳에 있는 세계적인 선수 및 국가대표팀 사인이 들어간 아이스하키 유니폼에서 희망을 느낄 수 있다. 대한민국은 동계올림픽 스포츠 불모지의 나라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희망을 가지고 새로운 도전을 계속하고 있는 매시브테크를 응원한다.
글·사진 _ 한상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