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 CULTURE
장애인 위한 공방 만든 코미디언 출신 목사님
장애인 위한 공방 만든 코미디언 출신 목사님
예온교회 김정식 목사
장애를 가진 이들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부와 도움뿐일까. 의식주와 관련된 고충은 그것으로 해결할 수 있겠지만 한 명의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이냐’에 대한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예온교회 김정식 목사는 장애인에게 자신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주는 것이 문제 해결의 근본이라 말한다.
장애인을 위한 목회지 예온교회
경기도 파주시 출판단지를 지나 얼마간 더 올라가다 보면 한적한 도로 옆으로 작은 교회가 보인다. 벽면에 적힌 교회의 이름은 예온교회. ‘예수가 온 땅 사랑교회’라는 의미라고 한다. 그런데 이 교회 건물에는 특별한 점이 한 가지 있다. 교회 현관문부터 안쪽 예배당으로 들어가는 문, 그리고 화장실로 통하는 문까지 그 어떤 문에도 하단에 문턱을 찾아볼 수 없다. 예온교회를 일궈낸 김정식 목사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을 위해서라고 말한다.
“예온교회는 모든 기준이 장애인을 위해서 세워진 교회거든요. 문턱이 없는 것뿐 아니라 보시면 현관문과 예배당 문도 한쪽은 크게 만들어 두었습니다. 휠체어를 탄 분들은 길에서부터 들어와 큰 문을 통해 예배당까지 다이렉트로 접근할 수 있도록 해둔 거예요.”
예배당 안에는 휠체어 전용 자리도 마련되어 있고 강대상도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낮게 만들어져 있어 이곳이 장애인을 위한 교회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해 준다.
자존감 높이는 것이 근본적 해결책
과연 장애인들의 삶에 필요한 건 무엇일까. 김정식 목사는 목회 활동을 시작하기 전부터 오랜 시간 장애인들을 위한 활동을 해 오며 그것을 고민해 왔다. 외부로부터의 기부와 친절한 도움을 통해 만족과 행복을 얻더라도 그것이 끊어지면 좌절할 수밖에 없는 삶. 지금은 정부의 지원금으로 어렵지만 그래도 먹고 사는 것에 대한 문제는 웬만큼 사라졌지만, 한 명의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이냐’ 하는 문제의식을 갖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장애인들의 문제 해결을 위한 근본적인 방법이라고 김 목사는 말한다.
“장애인들의 집에 찾아가서 돕는 건 일차원적인 거예요. 밖으로 나오게끔 해야 해요. 밖으로 나와서 활동을 하며 친구도 사귀고. 그래서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서로 도울 수도 있고. 또 뭔가를 함으로써 자신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줘야 하는 거죠.”
장애인들의 자립심과 자존감을 위해 김정식 목사는 2013년, 장애인들을 위한 공방 ‘예온공방’을 문 열었다. 지금까지 수십 명의 장애인들이 공방에서 작업을 배웠다. 시작은 청각 장애를 가진 이들의 우드 버닝 작업. 우드 버닝이란 인두기를 이용해 나무에 그림을 그리는 작업을 말한다. 예온교회 한켠의 작은 도서관 겸 휴게실에는 장애인들이 만든 우드 버닝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십자가, 촛대, 명함꽂이… 예온공방의 제작품
예온공방에서는 지금까지 십자가, 촛대, 명함꽂이, 책꽂이, 나무스피커, 우드 버닝 제품 등 다양한 소품이 만들어졌다. 여성들에겐 목사의 사모가 방향제며 향초며 비누 등의 제조를 가르치고, 재봉 전문가가 재봉기술을 가르치기도 했다. 목공 작업 교육은 목공 전문가인 박승기 집사가 전담하고 있다. 박 집사는 예온공방의 중심 강사이기도 하다. 공방 사람들은 동방신기가 아니라 ‘공방승기’라고 박승기 집사를 부른다. 그만큼 가까이에서 장애인들을 지도하는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작품들은 박 집사의 블로그(blog.naver.com/emflaxla2007)를 통해 교인들에게, 그리고 일반인들에게 판매되고 있다.
“자기가 만든 작품이 판매되고 하면 장애인들은 그 성취감이 배가 되거든요. 남한테 신세만 지면서 살아간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거죠. 주변 사람들에 관심 밖에 있다는 생각에서 자신도 관심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하는 것. 나도 세상에 의미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알게 하는 것. 그게 우리가 하는 일이에요.”
김 목사는 강사인 박승기 집사와 각 장애에 맞는 작업을 찾아내기 위해 많은 시간을 연구했다. 장애에 따라 작업대의 높이와 구조도 달리 했다. 그렇게 찾아낸 작업 중 가장 기초적이면서도 좋은 작업이 앞에서 말한 우드 버닝 작업이다.
“우드 버닝은 손만 인두에 갖다 대지 않으면 위험하지도 않고 또 지적장애인들 같은 경우에는 집중력도 생겨서 교육적으로도 좋고 쉬운 작업으로 자존감을 높일 수 있거든요. 더 재주가 있거나 활동성이 뛰어난 분들은 박 집사가 지도해서 소소한 소품 만드는 걸 가르치는 거죠.”
과거 코미디언 출신의 김정식 목사
사진을 보고 눈치챈 사람도 있겠지만 김정식 목사는 코미디언 출신이다. KBS 웃음은 행을 싣고, 유머1번지 등 유명 TV프로그램에 출연했고 영화 슈퍼 홍길동, 밥풀떼기 형사 시리즈에서도 주연으로 활약을 펼쳤다. 그런 그가 목회자의 길, 그것도 장애인을 위한 목회자의 길을 걷게 된 것은 어쩌면 하늘의 뜻인지도 모르겠다고 그는 말한다.
“어떻게 들릴지는 모르겠는데, 나는 장애인들이 예뻐요. 그냥 예쁜 것도 아니고 겁나 예뻐. 웬만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불쌍하다 안쓰럽다 이런 게 아니고 에뻐요. 내사람 같애. 그런데 그 마음은 아무래도 내가 먹은 게 아닌 것 같아요. 내 스스로 그런 생각을 했다면 가식일 수도 있는 거겠죠.”
비장애인의 입장에서 장애인들을 위한 일을 하기 위한 마음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사람을 도와줘야 해 하는 마음가짐이 아닌 받는 사람의 입장으로 건너가는 것이다. 내가 이 사람을 도와주고 저 사람은 나에게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허물어져야 진정한 마음의 호혜가 가능하다. 지금 그러고 있는 자신이 무척이나 행복하다고 말하는 김정식 목사다.
“나만 행복한 건 행복한 게 아니에요. 그건 사기꾼들도 할 수 있는 거겠죠. 그보다 좀 더 나은 행복이 내 아내 내 가족 내가 아는 사람이 행복한 거예요. 그리고 그보다 더 윗단계가 뭐냐. 행복한 나를 보고 모든 사람이 ‘아 너무 좋다. 나도 저렇게 해 볼까?’ 하게 되는 것. 그게 최고 행복의 경지라고 생각해요. 저는 그 행복 단계에 올라 있는 것 같아요. 그만큼 행복하거든.”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두 마디 말
예온교회, 그리고 예온공방에서 김정식 목사와 교회하는 장애인들은 김 목사를 ‘아버지’라고 생각한다. 비장애인과 장애인 사이의 경계선을 허물고 정말 한 가족같이 장애인과 함께 살아가는 김정식 목사. 그는 장애인들의 아버지와 같은 마음으로 월간 TOOL을 구독하는 독자들, 그 중에서도 공구상 독자들에게 두 가지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고 한다. 첫째는 가게 앞 인도에 휠체어가 지나다닐 수 있을 정도의 통로를 내어 달라는 부탁이다.
“이 글을 읽으시면서 ‘참 좋은 기사네’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실 거예요. 그런 생각을 조금만 더 발전시키셔서 가게 앞에 물건 진열하실 때 휠체어 지나갈 수 있는 통로만 좀 내어 주셨으면 합니다. 휠체어가 차도로 가면 불법이거든요. 그리고 상당히 위험하기도 합니다. 인도에 통로를 내어 주시는 작은 배려만으로도 장애인들은 자신이 존중받고 있구나, 하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둘째는 내가 여유가 없어서 못 한다, 여유가 있어서 한다는 조건을 달지 말고 지금 현재 상태에서 나눌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나누라는 것. 그것이 금전적인 것도 좋겠지만 금전이 아니더라도 뭐든 좋다.
장애인 위한 공구가 필요한 예온공방
김정식 목사는 웬만해서는 인터뷰 섭외를 고사한다고 이야기했다. 사람들로부터 받을 선입견을 벗고 싶어서다.
“저는 정말 장애인을 사랑하고, 목회 일이 행복해서 합니다. 그런데 웃기는 직업을 가졌던 탓에 색안경을 쓰고 보는 분도 있어요. 물론 제가 감당할 몫이지만 사람들의 편견에서 벗어나는 일이 녹록지만은 않습니다.”
그렇게 취재 요청을 고사하는 김 목사가 월간 TOOL의 취재를 허락한 것은 독자들인 공구 제조사, 또는 공구상에게 장애인들의 목공 작업 교육을 위한 기본적인 공구 기부 이야기를 꺼내기 위해서다.
“지금 예온공방에 공구가 필요해요. 전문가용 고급 공구가 아니라 개인이 가볍게 쓸 수 있는 수공구들이요. 망치나 톱, 드라이버, 줄자 같은 공구들. 장애인들에게 교육을 하려니까 그런 공구들이 너무 부족하더라고요. 공구상에서 판매를 하다 세트에서 한두 개 빠져서 판매하기 애매한 것들, 그런 공구들의 십시일반 후원을 부탁드립니다.”
다른 이의 행복을 바라보며 나도 행복해지는 최고 경지의 행복. 그 행복을 잡아낼 기회를 독자 여러분에게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