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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 CULTURE

작가 신이현과 프랑스인 남편 와인 익는 마을에서 공구를 말하다

 

작가 신이현과 프랑스인 남편

 

와인 익는 마을에서 공구를 말하다

 

 

 

 

무더운 여름이 성큼 다가오면 시원한 맥주를 찾는 사람이 늘어난다. 한국에서는 여름에 맥주가 인기지만 유럽에서는 맥주와 더불어 영어로는 사이다. 프랑스어로는 시드르로 불리는 사과와인도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이런 시드르를 양조하면서 포도나무를 키우는 프랑스 농부 ‘도미니크 에어케’씨는 소설 ‘숨어있기 좋은 방’으로 유명한 한국인 소설가 아내 ‘신이현’씨와 함께 충북 충주에 살고 있다. 그와 함께 공구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프랑스 농부가 쓰는 전지가위


큰 키에 곱슬머리, 큰 코와 따뜻한 미소를 가진 프랑스인 ‘도미니크 에어케’씨는 충북 충주에서 사과로 만든 와인 ‘시드르’를 양조한다. 아내로부터 ‘레돔’이라 불리는 그는 소설 ‘숨어 있기 좋은 방’과 ‘알자스의 맛’으로 유명한 소설가 신이현 작가의 남편이기도 하다. 그가 만드는 시드르 <레돔>은 SNS를 통해 젊은이들 사이에서 큰 인기다. 미래를 위해 포도나무를 키우면서 자신의 이름을 걸고 만드는 시드르 <레돔>를 양조하는 그에게 가장 아끼는 공구를 물어 보았다.
“제가 제일 아끼는 공구가 바로 프랑스에서 구매한 전지가위입니다. 매일 사용하거든요. 지금은 사과로 와인을 만들지만 몇 년 뒤에는 포도로 와인을 만들고 싶어요. 한국에서 재배되는 포도는 아주 맛있지만 제가 추구하는 와인의 포도 품종은 아니에요. 한국은 대부분 그냥 먹는 포도품종을 재배하더라고요. 포도로 유명한 김천을 비롯해 한국 전역을 찾아 내가 원하는 포도나무 품종을 구해서 지금 키우고 있어요. 포도밭에서 주로 사용하는 것이 바로 이 전지가위입니다.”
그가 보여주는 전지가위는 특이하다. 한국에서 사용하는 일반 전지가위와 달리 손가락이 쥐는 부분이 회전된다. 일반 평범한 전지가위에 비해 한눈에 보아도 편리해 보인다. 날이 벌어지지 않도록 고정하는 장치도 내장 되어 있다. 이런 값비싼 전지가위는 사용하다 잃어버릴까 무섭다. 그가 공구에 대한 애정을 가진 것이 이해가 된다.

 

 

한국의 전지가위는 프랑스와 달라 


프랑스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가 한국으로 넘어올 때 농사짓는데 필요로 한 공구를 다량으로 구입해 오지 않았다. 한국에도 자신이 쓰던 공구는 쉽게 구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해서였다. 그러나 자신이 사용하던 브랜드의 전지가위는 쉽게 구할 수 없었다.
“한국의 공구상에서 판매하는 전지가위들을 보면 저렴하지만 다소 퀄리티는 부족한 종류를 많이 유통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장단점이 있어요. 비싸고 좋은 품질의 공구는 아무래도 아끼게 되고 잃어버리거나 손상되면 마음이 아프죠. 고장나면 수리해서 사용하게 되고요. 반면에 기본 기능에 충실하면서 저렴한 제품은 사용하다가 고장나면 고칠 필요 없이 쉽게 재구매가 가능해요. 왜 이럴까 고민을 해 보았는데 아무래도 환경차이가 아닌가 싶습니다. 프랑스는 인건비는 비싸지만 농촌 땅값은 저렴합니다.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사람을 고용하기보다 자기가 직접 농사를 짓게 되죠. 내가 직접 하는 문화가 있으니 가급적 작업에 편리한 좋은 공구를 구매해 사용하는 성향이 큰 것 같아요. 반면에 땅을 빌려 사람을 고용하는 것이 선호되면 비싸고 좋은 공구보다 기능과 가격에 충실한 공구를 선호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토지가 비옥한 프랑스는 유럽의 농업 대국이다. 한국의 식량자급률은 곡물의 경우 사료용을 포함하면 자급률이 30퍼센트가 못 된다. 반면 프랑스는 식량자급률이 세계 최고수준으로 300퍼센트가 넘는다. 그래서 해외로 많은 농축산물이 수출된다. 프랑스의 농지 대부분이 소규모 자작농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만큼 농업에 종사하는 인구가 많고 생산 비용 중 인건비의 비중이 높아 생산 원가가 높다. 그래서 각종 발달된 농업공구를 활용해 작업 효율을 높인다. 

 

 

프랑스와 한국, 공구상 차이도 커


농민이 직접 사용 한다면 공구 가격이 다소 높아도 고품질의 공구를 선호하게 된다. 실제로 그는 프랑스에서 가져온 전지가위를 밭에서 잃어버리고 새롭게 구매하려 했다. 충주지역 공구상을 방문하니 저렴한 가격의 전지가위가 많았다. 하지만 원하는 기능을 가진 제품은 없어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고. 또 프랑스와 달리 공구상의 크기가 작아서 놀랐다 한다. 
“프랑스의 공구상은 한국의 대형 마트를 떠올리시면 됩니다. 종류가 다양하고 대형화 되어 있어요. 전지가위만 하더라도 정말 다양한 종류가 한 곳에 모여 있어서 내가 원하는 가위를 살 수 있어요. 비싸더라도 원하는 기능이 갖춰진 공구가 있다면 소비자는 지갑을 열게 됩니다. 넓고 깨끗하고 밝고 주차도 손쉬운 공간에 방문하면 각종 공구는 물론 각종 건자재, 농자재 구입도 무척이나 쉽게 찾을 수 있고 구할 수 있습니다. 프랑스는 어느 시골 지역의 공구상을 가더라도 그런 모습인데 한국의 농촌지역 공구상은 그런 대형화된 매장을 가진 업체가 잘 없는 것 같아요.”
한국말을 못하는 프랑스인 농부는 소설가 아내를 통역관 삼아 한국의 공구상이 보다 발전되어야 한다고 말 한다. 지금보다 대형화되어 고객 친화적인 곳으로 변신해야 한다고. 프랑스에는 CASTORAMA나 Leroy Merlin, BRICORAMA와 같은 초대형 공구상을 통해 집수리나 농장에 필요한 각종 자재와 공구를 쉽게 구매 할 수 있다. 프랑스 공구상들의 모습은 일본의 ‘홈센터’나 미국의 ‘홈디포’와도 비슷하다. 프랑스는 농업대국답게 공구상이 발전했고, 한국의 공구상이 보다 고객 친화적인 모습으로 변해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한국 말 못하는 프랑스농부가 충주의 한 시골마을에서 한국 공구업계가 보다 발전되어야 한다고 외치는 것이 신기하다.

 

 

공구 때문에 고생하는 농부 ‘레돔’


이역만리 타국 땅 충북 충주에서 프랑스인이 흔하지 않은 사과 와인 ‘시드르’를 양조하고 또 포도나무를 키우게 된 이유가 궁금했다. 
“저는 프랑스 알자스 지방에서 태어나고 자랐어요. 기후가 온화하고 포도주를 비롯한 농산물이 잘 자라는 곳이죠. 어릴 때는 농부였던 아버지 어머니를 도와 농사일을 하다가 자라면서 대학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머 공부를 했어요. 프로그래머의 삶도 괜찮았지만 언젠가는 농부로 살고 싶었어요. 그래서 프랑스농업학교에 들어가 와인제조를 공부했죠. 나는 프랑스에서 농사를 지으려고 했어요. 그런데 아내가 한국으로 가자고 하더군요. 나는 한국이던 프랑스던 농부로 살 수만 있다면 상관없었죠.”
그러나 현실은 이상과 다른 법이다. 넥타이를 착용하고 사무실에서 컴퓨터와 씨름하던 프랑스 프로그래머가 한국에서 농사를 지으니 상상도 못한 문제가 많이 찾아왔다. 우선 프랑스와 한국은 기후가 달랐고 토양과 작물도 달랐다. 2017년 처음 사과밭을 빌려 사과 농사를 짓는데 예전 주인이 비료를 듬뿍 듬뿍 주었기에 나무들이 뿌리를 깊게 내리지 않았었다. 그가 배우고 행하는 생명역동농법은 화학비료와 농약을 치지 않고 작물을 키우는 농법이다. 그러다 보니 비료에 길들여진 사과나무가 땅에 뿌리를 깊게 내리지 않아 첫해에는 작황이 좋지 않았다. 더군다나 한국의 장마를 처음 겪었을 때의 당혹감과 자신이 원하는 각종 공구와 농자재를 구하지 못했을 때의 답답함도 컸다. 그러나 충주에서 농부로 산지 벌써 3년차. 이제는 좋은 사과를 키워 그 사과로 좋은 와인을 만들고 있다. 

 

 

 

 농부남편의 아내, 농부보다 더 바빠


레돔의 아내 소설가 신이현은 프랑스에서 레돔을 만나 아이를 키우면서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시골에서 농사를 짓겠다는 남편의 고집을 돌릴 수 없었다. 친구 하나 없는 프랑스 시골에서 살 자신이 없었던 그녀는 차라리 한국에서 농사를 짓자고 말 한다. 가볍게 생각했지만 레돔을 데리고 한국에 들어오니 그녀가 처리해야 할 각종 문제가 많아졌다.

 


“온갖 서류나 행정문제, 세금문제를 제가 다 해결해야 했어요. 남편은 봄부터 가을까지 녹초가 되도록 사과 밭에서 일 하고, 수확이 끝나면 다시 가을부터 이듬해 봄까지 와인 만드느라 바빠요. 그렇다고 한국말도 못하는 남편의 일을 모른 척 할 수 있나요. 그리고 사과농사 짓는다고 바로 돈이 되지는 않죠. 그 사과를 가공해 와인을 만들어 팔아야 그나마 미래가 보이겠더라고요. 각종 행정처리에 서류처리까지 결국 제가 더 바쁘게 일하게 되더군요.”
와인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우선 생산설비를 수입해서 관청의 허가를 얻어야 했다. 남편과 같이 각종 공구를 구하는 것도 그녀의 일이었고, 시르드 양조에 중요한 특별한 와인병과 코르크마개를 수입 관리하는 것도 그녀가 해야 했다. 다행이 자극적이지 않게 새콤달콤하면서 뛰어난 향과 청량감을 가진 시드르 레돔(Les Dom)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그들이 키우는 어린 포도나무도 무럭무럭 자라 3년 후에는 자신들의 포도밭에서 나온 포도로 와인을 빚올 예정이다. 한국의 공구상들이 프랑스 공구상보다 더 크고 편리해지길 바란다는 충주의 프랑스 농부 레돔과 그의 아내의 행복를 기원한다.

 글·사진 _ 한상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