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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 CULTURE

북성로를 춤추게 하는 문화예술집단 훌라(HOOLA)

 

공구거리IN, 공구거리人


대구광역시 북성로 공구거리에서는 매년 초가을, ‘북성로 축제’라는 이름의 축제가 펼쳐진다. 2017년 1회를 시작으로 올해엔 9월 말, 3회째 축제가 준비 중이다. 그렇다고 봄철 벚꽃축제나 여름철 머드축제처럼 전국의 대동소이한 축제를 떠올린다면 크나큰 오산. 그저 공구 시늉만 내는 행사가 아니라 공구거리 내부에서 기획되어 공구거리인(人)들이 참여·진행하는 행사가 바로 북성로 축제다.
축제 현장에서는 수십 개의 부스에서 진행되는 공구 체험과 상담, 공구상들과 기술장인들의 기술 교육, 갖가지 제품의 제작가이드 등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진행된다. 또한 각종 공연도 볼 수 있는데 그중 매회 축제 때마다 오프닝 무대에 올라 관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밴드가 있으니 바로 훌라(HOOLA)가 그들이다.
색색의 컬러풀한 옷을 입고 PVC파이프로 만든 오르간, 알루미늄관 실로폰, 페인트통 드럼, 샴푸통 건반 등 북성로의 버려진 공구와 자원을 활용한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하는 밴드 훌라. 공구로 악기를 만들었다는 것도 놀랍지만 더 놀라운 건 이들이 바로 북성로 축제를 1회 때부터 기획·진행해 온 장본인이라는 사실이다.

 

 

카드놀이 하듯 북성로를 즐기다


북성로 시간과공간연구소에서 일하던 안진나 씨와 문찬미 씨, 북성로역사전통마을 사업 공모전에서 공구로 만든 악기로 1등에 당선된 김효선 씨 그리고 비영리단체 북성로허브에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담당하던 나제현 씨. 이렇게 넷은 북성로라는 공간에서 한데 모였다.
“저희 훌라는 사실 그냥 취미생활과도 같은 집단이에요” 훌라의 대표 안진나 씨는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의 팀명 자체가 모이면 함께 자주 하던 카드게임인 ‘훌라’에서 따 온 것이다.
처음 이들은 뮤직비디오 영상으로 존재감을 알렸다. 앞서 말한 여러 가지 공구 및 각종 재료를 활용해 만든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은 대구 중구청에서 공모한 북성로 기술생태계 주민협업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았고 여러 북성로 사장님들이 출연한 뮤직비디오는 SNS에서 화제가 됐다. 예술·문화 또는 놀이와는 거리가 멀다고 느껴지던 공구와 공장 기술자들이 감각적인 영상 속에서 재탄생한 것이다. 낡아 가고 기억 속에서 잊혀 가기만 하던 북성로 공구거리가 신나게 즐길 수 있는 카드놀이처럼 활기찬 멜로디를 부여받았다.

 

 

일반인들의 기술 체험… 오픈팩토리 행사


단지 밴드로 그들을 정의하는 것은 커다란 오해. 훌라가 품고 있는 욕심은 훨씬 더 크다. 거리의 경쟁력을 일으켜 북성로의 야생성을 깨우고자 하는 것이 그들의 목표다.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축제 외에도 다양한 활동을 진행 중이다. ‘오픈팩토리’ 행사가 대표적이다.
“오픈팩토리는 문화가 있는 날 지역컨텐츠 특성화 사업이에요. 한 달에 한 번씩, 작게나마 북성로에 있는 공장에 일반인들이 와서 기술장인들로부터 기술도 배우고 북성로를 활용할 방법들을 얻어갈 수 있도록 의도한 프로그램입니다.”
여러 공장을 방문하며 각 공장의 기술자들로부터 기술을 배우고 용접, 나무 절단, 절삭가공 등 각각의 단계를 거쳐 소품을 만드는 오픈팩토리 행사는 반응이 뜨겁다. 매회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약 30명 정도의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으며 절삭가공을 주제로 진행된 날에는 약 300명가량의 인원이 참가하기도 했다.

 

 

공구거리인들의 적극적 참여를 일으키다


북성로 축제 그리고 오픈팩토리 행사는 외부인들만이 아니라 공구거리 내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더 나아가 적극적인 참여를 만들어 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더 크다. 
처음 북성로 축제를 기획할 때만 해도 뜨뜻미지근한 공구거리인들이 많았다. 그래도 훌라는 더욱 더 적극적으로 다가갔고, 북성로에 오래 있던 1.5세대, 2세대 분들과 만나 오랜 시간 인터뷰도 진행했다. 훌라 멤버 넷의 적극적인 노력, 그리고 행사에 참여한 일반인들의 뜨거운 반응에 공구상과 공장 기술자들의 마음은 녹아내렸다.
“공장에서 예술가들과 함께 행사를 한 적이 있어요. 그 때 느낀 게 공장의 젊은 기술자들, 이삼십대 친구들은 자신들이 공장일 한다는 걸 부끄러워한다는 거였죠. 그런데 저희가 접촉을 계속 하니까 이 친구들이 이제는 양지로 나온 것 같아요. 신우금속이라고 용접 업체의 아드님이 있거든요. 그 분도 용접 기술자인데 늘 인사도 잘 안 하고 이러다가 공연 날에 멋지게 머리 탈색까지 하고 와서 용접으로 예술 작품을 만드는 거예요. 깜짝 놀랐죠.”

 

 


북성로 공구상들도 참여한 행사들


공장 기술자들만이 아니라 공구상들도 적극적으로 행사에 참여 중이다. 축제 때면 각종 공구를 협찬하고 자신의 가게 앞 공간을 체험 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기꺼이 내어 준다.
“오픈팩토리 행사를 할 때면 기술 뿐 아니라 그 기술에 필요한 공구들도 알려드리거든요. 작게나마 북성로 공구상을 이용하는 방법들을 전달하는 거죠. 그래서 공구상 분들도 관심이 많으세요. 행사 하는 걸 빨리 안 알려줬다고 섭섭해 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자기도 참여하고 싶다고 하는 분들도 계세요.”
훌라는 현재 북성로에 필요한 것으로 공구상 분들의 열린 마음, 그리고 북성로에 스며드는 새로운 문화와의 조화를 꼽는다. 북성로라는 공간을 무대로 나이든 분들과 젊은 층이 함께 할 수 있는 판 자체를 만드는 것. 그것이 훌라가 말하는 자신들의 역할이다. 그럴 수 있도록 지금은 계속해 불을 지피는 과정이다.

 


손으로 만드는 미래 ‘매뉴퓨처 북성로’


대구 중구 달성공원에서 시작해 대구역까지 이어진 1.3km의 북성로. 공구거리라는 이름으로 불리지만 이곳의 레이어는 무척 다양하다. 낮의 북성로를 장식하는 공구상과 공장의 기술 장인들, 밤이면 이곳 저곳 불을 켜는 연탄불고기 가게, 낮밤에 상관없는 여관골목이며 일제시대의 적산가옥 등 역사문화적 항목들까지 매력적인 요소들이 층층이 겹쳐 있다. 하지만 이러한 거리의 매력 요소들이 아직 과거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 아쉽다고 훌라는 말한다.
“옛날에 왜 ‘북성로에 가면 탱크도 만들 수 있다’라는 말이 있었다고들 하잖아요. 저희는 그 말이 그냥 전설로만 남게 되는 것이 아니라 현재 그리고 미래에도 유효한 문장으로 만들어 가고 싶어요. 저희의 슬로건이 ‘매뉴퓨쳐 북성로’예요. ‘매뉴팩쳐(제조)’에 ‘퓨쳐(미래)’를 덧붙인 말이죠. 이 거리가 뭔가를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의 관심과 잘 접붙임 되어서 ‘손으로 만드는 미래’ 북성로가 될 수 있는 행동을 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해 나갈 생각입니다.”

 

글 _ 이대훈 / 사진 _ 이창우(MOIM스튜디오) / 자료사진 _ 훌라(HOOL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