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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 CULTURE

대량아이앤에스 최우석

 

즐기며 일하는 남자의 철공소

 

대량아이앤에스 최우석

 

 

 

 

 

도면도 없는 기계를 주문받아 제작하는 주문형 철공소 대량아이앤에스 최우석 대표. 그는 오늘도 작업해야 할 주문이 들어오면 마음이 설렌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모든 이들이 바라는 행복한 인생일 것. 그는 어째서 일에 설레는 걸까? 처음부터 설렜을까? 철과 함께 만들어가는 그의 인생 이야기.

 

 

뭘 만들어드릴깝쇼? 주문형 기계 제작

대구광역시 중구 서성로 일대. 공구골목 인근의 이 곳은 여러 철공소 업체들이 모여 있는 철공 거리다. 철공소라고 해서 대장간 수준의 소규모 업체를 떠올리면 큰 오산. 거대한 철공 공장들이 줄지어 자리 잡고 있다. 서성로의 여러 철공 공장들 가운데 자칭 타칭 ‘주문형 철공소’라 불리는 곳이 있으니 대량아이앤에스가 바로 그곳이다.
대량아이앤에스가 주변의 다른 철공 공장들과 차별화된 점은 철을 그저 구부리고 자르고 용접해 붙이는 것에서 끝나는 일반 철공소들의 작업과는 달리,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작동하여 움직이는 하나의 기계(機械)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작업 전반의 총괄자인 대량아이앤에스 최우석 대표는 철의 절곡과 절단·용접은 물론 원하는 동작을 수행하기 위한 각종 전기 기판의 구상과 조립, 기계의 도면 작성까지 직접 행하는 그야말로 종합 기술자다.
“저희는 특허만 해도 여덟 개를 갖고 있습니다. 더치커피 제조기부터 메주·된장을 만들고 포장하는 기계들, 그리고 죽염 굽는 기계도 저희만의 기술특허로 전국의 업체들로부터 주문을 받아 제작합니다.”

 

 
세 개의 특허가 등록된 메주 라인 기계들

 
대량아이앤에스가 주문받아 제작하는 기계들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메주·된장을 만드는 일련의 기계들. 콩을 찌는 압력솥부터 메주의 모양을 만드는 메주 성형기, 그렇게 만들어진 된장을 적절한 형태로 용기에 담는 기계는 물론 포장하는 기계까지. 발효·생산·포장된 된장 상품을 만들어내는 기계들 가운데 특허 출원된 것이 세 개나 된다.
“일반적인 대형 압력솥은 압력이 가해진 상태에서 열려면 큰 힘이 필요합니다. 여성들은 열지 못할 정도로요. 저희 압력솥은 뚜껑에 여러 개의 바이스를 설치해 돌리기만 하면 열 수 있습니다. 또 메주 성형기는 전통적인 방식인 발뒤꿈치로 밟는 무게와 형태를 표준화한 제품이고요. 된장 용기에 담는 기계는 온도를 조절해 발효 가스의 압력을 없앴습니다. 전부 특허가 난 제품들이죠.”
이렇게 만들어진 제품들은 입소문을 타고 알음알음 퍼져, 지금은 전국에서 주문이 들어온다. 된장 기계뿐 아니라 죽염 굽는 기계는 더욱 전문적이어서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전국 어떤 죽염 제조업체든 전부 대량아이앤에스의 기계를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백화점 MD에서 철공소 대표로… 뒤바뀐 인생

 
이쯤 들으면 최우석 대표가 수십 년간 작업을 통해 노하우를 쌓은 기술 장인이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혹은 대학에서 철공을 공부해 박사 학위라도 딴 인물이라 생각할지도. 둘 다 아니다. 대량아이앤에스의 문을 열기 전, 그의 직업은 철공과는 전혀 상관없는 백화점 머천다이저(MD, 상품기획자) 출신. 대구 시내의 한 백화점에서 패션 브랜드 편집숍의 제품 론칭을 담당하던 그였다. 그랬던 그의 인생이 송두리째 뒤바뀐 것은 2009년 7월, 바로 그해 그달의 일이다.
MD일을 잠시 쉬고 있던 당시, 대표의 아버지가 운영하던 철공소의 경리 직원이 그만둬 공장에 나가 일을 도왔다. 아버지가 철공소를 하고 있긴 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대표에게 철공이란 전혀 딴 세상의 일이었다. 대학도 미술대학 섬유디자인학과를 졸업한 대표다. 순조롭게만 흘러가던 그의 삶. 그러나 인생을 바꿔버리는 큰 사건은 한꺼번에 터지는 법이다.
“그해 7월에 정말 모든 일이 다 있었어요. 아버지 공장에서 모든 일을 도맡아 하던 공장장이 퇴사했습니다. 철공소에서 가장 중요한 게 철자재별 가격이거든요. 그건 절대로 쉽게 안 가르쳐줘요. 그런데 그걸 공장장 혼자 알고 있던 거예요. 그 외에도 제 인생 처음으로 크게 다치기도 했고 정말 별의 별 일이 다 있었죠.” 

 

 

어설프게 아는 것보다 아예 모르는 게 낫다

 
여러 사건들 끝에 20여 년 동안이나 운영하던 아버지의 철공소는 문을 닫았다. 감당해야 할 일들이 아버지의 역량 범위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우석 대표는 아버지 공장 맞은편에 대량아이앤에스라는 간판을 달고 자신의 철공소 문을 열었다. 문은 열었지만 그에게 철공 관련 기술이나 지식은 전무했던 것이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하나의 사업체를 운영해 나가는 것 역시도 그에게는 첫 시작이었다.
대표는 지금도 서성로 거리 모든 철공소 사람들 가운데 자신이 가장 기술과 지식이 부족하다 말한다. 철공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른다는 것. 아마 그것이 지금의 자신을 만든 기반이었을 것이라 한다.
“제가 자격증은 여러 개 갖고 있어도 기술을 제일 없는데도 저희한테 주문이 많이 들어오는 이유가 뭐냐면, 다른 철물점들은 아는 게 1에서 10까지 있다면 저는 아는 게 제로(0)이기 때문이에요. 어설프게 뭔가를 알고 있으면 뭐든 배우기가 힘들어요. 저는 아예 모르니까 남이 하는 이야기가 귀에 쏙쏙 들어오는 거죠.” 

 

일주일에 책 한 권… 그가 가진 독서 철학

 
“저는 일주일에 책을 최소 한 권씩은 읽습니다. 제가 책을 읽기 시작했던 게 처음 대량아이앤에스 문을 열었을 때였어요. 그때는 궁금한 게 있어도 어디 물어볼 데가 없더라고요. 아버지도 오래 일을 해오셨지만 지금까지 해 왔던 일만 알고 계시지 나머지는 모르시니까요. 뭐든지 제 스스로 해결해야 할 상황이 닥친 거였죠. 그걸 다 어디 가서 물어봅니까. 그래서 책을 읽기 시작한 거예요.”
공장의 문을 연 초반에는 돈 버는 책들을 주야장천 읽었다. 그만큼 절박했던 것이다. 그렇게 돈 버는 책들에 빠져 읽는 그를 본 어머니로부터 그 책들 사는 돈만 모아도 큰돈 벌겠다는 말을 들었을 정도라고. 그런데 그렇게 책을 읽던 와중 알게 된 건 책에서 배우는 것보다 사람에게서 배우는 것이 더 크다는 깨달음이었다. 좋은 인연이 된 사람이든 나쁜 악연이 된 사람이든 모든 사람에게서 배울 점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대량아이엔에스를 찾는 모든 이들로부터 배운다.
“저희 공장에 제작 요청을 하는 사람은 다른 데서 안 되니까 가져온 거 아니겠어요. 그럼 기존 기계의 문제점을 다 적어서 가지고 와요. 그러면 저는 적혀 있는 걸 보고 고쳐서 만드는 거예요. 그러면서 기계에 대한 지식이 쌓인 거죠.”
대표는 손님들이 하는 말을 전부 기록해 정리 노트를 만들었다. 덕분에 제금은 ‘뭐가 안 된다’고 이야기하면 뭐가 문제인지 단박에 알아차린다고 한다. 노트에 모든 경우가 전부 적혀 있기 때문이다. 

 

 
내가 하는 일은 기술 아니라 종합 예술

 
하나의 일에 대한 능력은 그저 배움만으로는 어떤 절정을 이루기가 힘들다. 그 일을 즐거워하고 기꺼워하며 익혀야만 어떠한 일가(一家)를 이룰 수 있는 것이다. 공자도 말하지 않았던가 ‘그냥 아는 것보다 즐기는 것이 낫다’고. 최우석 대표 역시 자신이 하는 일을 좋아하며 해 왔기 때문에 지금의 대량아이앤에스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일 테다.
“저는요, 일을 누가 주면 마음이 설레요. 그려진 도면을 보고 있으면 가슴이 두근두근 거리고요. 저는 이 일을 그냥 기술이 아니라 종합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철로 작품을 만들어 내는 종합 예술이요. 저는 작업을 볼 때 절대로 기술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기술적으로만 보면 실패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기술 장인이 중요하다지만 나중에는 다 로봇이 할 거예요. 하지만 예술은 다르죠. 작업을 대하는 작가의 열정과 진심. 저는 그런 것들을 제 작품들에 담고 있습니다.”
대표에게 갖고 있는 삶의 철학을 묻자 대답은 곧장 돌아왔다. ‘세상에 공짜 없다’라고. 그 문장처럼 대표는 정말로 하루 하루 인생의 나날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글·사진 _ 이대훈 / 사진제공 _ 대량아이앤에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