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 CULTURE
[PEOPLE] 인천 남동구 장난감 수리센터
여기, 조금 특별한 수리센터가 있다. 미취학 아동 고객이 가장 많다는 ‘남동구 장난감 수리센터’. 남동구청 평생교육관 2층, 아기자기한 간판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알록달록한 장난감들이 펼쳐진 사무실에서 평균연령 70대 수리장인들이 꼬마 손님을 반긴다.
인천 ‘남동구 장난감 수리센터’는 누구든 고장 난 장난감을 가져와 무료로 고칠 수 있는 곳이다. 남동구청이 2019년부터 전국 지자체 최초로 직영하고 있다. 노인일자리 창출과 육아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사업비 8천4백여만 원을 들여 제공하는 서비스다.
“네이버 카페를 통해 접수받고 대면 방문이나 무인함, 택배로 장난감을 받아요. 수리가 완료되면 찾아가시거나 택배 착불로 보내드리죠. 남동구 주민 뿐 아니라 전국에서 신청할 수 있어요. 한 달에 150건 이상, 1년에 2천건 이상 수리가 접수될 정도로 문의가 많아요.”
장난감 수리센터가 여기서 출발하게 된 데는 남다른 계기가 있다.
이곳 첫 멤버인 최병남(72) 센터장은 항공과학고등학교 교장 출신으로, 장난감 수리까지 합치면 수리경력만 50년 가까이다. 2011년, 교장직을 은퇴한 그에게 ‘뭔가 고치는 걸 잘하니 장난감 수리를 해보지 않겠냐’는 후배의 제안으로 혼자서 무료 수리 서비스를 시작했다.
“처음엔 나이 먹고 무슨 장난감 수리냐고 했어요. 그런데 장난감을 업체에 맡기면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어서 버리는 경우가 많다는 걸 우연히 알았어요. 초보 엄마와 아이에게 보탬이 되겠다 싶어 봉사로 시작하게 됐어요. 제가 사는 동안 세상에 도움을 많이 받아왔으니까 베풀어야겠다는 마음이 있었죠.”
온라인 카페를 개설해 수리 접수를 받기 시작했다. 필요한 공구는 사비로 구매했다. 첫 고객은 땅끝 해남에 사는 아이 엄마. 피아노 장난감 수리 요청이었다. 택배로 받아 정성스럽게 고쳐 보내자 고맙다는 인사가 왔다. 가장 뿌듯한 순간이었다. 이후 검색과 입소문으로 전라 경상 강원 제주까지 지역을 가리지 않고 수리 요청이 왔다. 문의가 늘며 일손이 모자라고 운영비도 많이 들게 됐다. 기부금, 재능기부 등 지인들의 도움을 구하기 시작했다. 이 소식을 들은 남동구청이 도움의 손길을 보내왔다. ‘시설을 갖춰줄 테니 구청에서 장난감 수리를 하자’는 것. 그렇게 5명이 수리요원들이 모여 남동구청 평생학습관에 수리센터를 열었고, 점차 인원이 늘어 지금은 총 10명의 장난감 수리전문가들이 오전, 오후 5명씩 근무하고 있다.
“병원처럼 장난감을 진료하는 거죠. 병원의 진료차트처럼 여기도 장난감이 어떤 고장으로 언제, 누가, 이렇게 고쳤다는 진료 기록을 다 남겨놔요.”
2019년 2월부터 시작해 2년간 4,891건의 수리를 완료했다. 수리율은 평균 95%에 달한다. 그들은 환자를 다루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치료하고, 아픈 장난감을 다시 살려냈다. 주변에서는 그들을 ‘장난감 의사’라고 부른다. 병원장격인 최 센터장은 경증환자, 위독한 환자가 있듯 장난감 고장 종류와 난이도가 워낙 다양하다고 말한다. 외관상 문제가 있을 수도 있지만, 소리가 나지 않고 움직이지 않는 등의 문제는 건전지, 전압, 스위치, 스피커, 전자회로기판, 모터, 기어 등 원인이 제각각이다.
“장난감 수리는 항공기 고치는 것보다 훨씬 어려워요. 여기 비행기 수리만 40년 한 분도 그렇게 말해요. 비행기는 수리 매뉴얼이 있잖아요. 그런데 장난감은 매뉴얼이 없으니까 창작에 버금가는 수리를 해야 하거든. 그래서 많이 고쳐본 사람이 잘 고쳐요.”
특히 장난감도 기술변화에 따라 발전되고 기능이 복잡해지기 때문에 늘 새로운 방식을 찾고 익히는 것이 숙제다. 단 5분 만에 끝낼 수 있는 작업도 있지만, 꼬박 5일이 걸릴 때도 있다.
“한번은 공을 넣으면 불이 켜지고 원숭이가 오르락내리락하는 로봇이 움직이지 않아서 들어왔어요. 전자기판이 작동하면서 기계적인 움직임으로 바꿔줘야 하는 작업이었어요. 전자와 기계 두 가지 메커니즘을 동시에 적용시켜야 해요. 한쪽을 고치면 한쪽이 작동 안 돼서 어려웠죠. 전자신호를 주는 무선자동차도 이와 같은 원리라 작업이 복잡해요.”
그는 10년간 장난감 수리 경험들을 모아 교본을 만들었다. 국내에는 관련 자료가 없어 일본 책을 참고하기도 했다. 건전지 사용, 무선조종, 태엽, 전자악기, 모형자동차, 액정 등 장난감 종류별로 고장 유형과 수리 방법들을 정리했다. 건전지 단자 상태 확인부터 내부선, 부품, 수리 후 합체까지 11단계의 기본 순서도 만들었다. 새로운 수리공들이 매뉴얼을 보고 쉽게 배울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수리를 모르던 사람도 6개월 정도 매뉴얼을 보고 익히면 수리할 수 있어요.”
장난감 수리에 쓰이는 공구들은 드라이버, 라쳇, 납땜용 인두, 니퍼, 펜치, 드릴, 그라인더, 글루건, 지그, 멀티미터 등. 수리공 각자 책상에 자신만의 공구를 두고, 공용공구는 한곳에 모아 진열해둔다. 작고 섬세한 작업이 필요해 드라이버 종류만 수십 가지다. L자형 드라이버, 스피커 테스터기 등 필요한 건 직접 만들어 쓰기도 한다.
“수리 위치, 각도, 크기, 부품 종류에 따라 워낙 작업방식이 다양하니까 공구는 그때그때 필요한 작업에 맞춰서 구입해요. 남동공단 공구상가에 가서 구매하거나, 인터넷으로 구매할 때도 있어요. 부품은 중국제가 많아서 기증받은 장난감에 붙은 걸 떼서 쓰기도 하고, 세운상가나 대도상가 가서 사기도해요. 펜 형태로 생긴 전동드라이버는 인터넷으로 구입했는데 토크는 낮지만 가벼워서 편리하게 쓰고 있어요. 항공고 때 써보고 좋아서 구입한 베셀 드라이버는 장난감 처음 수리할 때부터 지금껏 잘 쓰고 있죠. 일제가 성능이 좋아요.”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고장 난 장난감은 수리해서 써야한다’고 당부한다. 아이가 자라며 한 가지 장난감을 쓰는 기간은 고작 수개월. 정이 깃든 장난감을 버리는 것은 아이에게 정서적으로도 좋지 않지만, 환경을 생각해보아도 자원이 낭비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무료로 수리 받으시고 재활용해 쓰시면 좋겠어요. 잘 사는 집이라고 고칠 수 있는 장난감을 금방 버리고 또 사는 걸 보면 안타깝습니다. 쓰레기통에 버리면 다 산업폐기물이 돼요.”
무료 수리를 알리고 보다 많은 어린이들이 아끼는 장난감을 오래 쓸 수 있도록 어린이집 출장 서비스나 장난감 나눔 이벤트도 종종 펼친다. 아이들이 수리된 장난감을 받고 좋아할 때면 그날은 기분이 최고다.
“아이들한테는 장난감이 소중해요. 마치 분신과 같잖아요. 아끼던 장난감이 망가지면 자기가 아픈 것 같죠. 첨엔 고쳐질까 싶어서 엄마도 아이도 근심 걱정을 하며 오는데, 새것처럼 고쳐지면 정말 좋아하죠. 그게 제일 기뻐요. 그 보람에 계속 하는 거지.”
앞으로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장난감 수리를 계속하는 것. 이것이 장난감 의사의 작은 소망이다.
글·사진 _ 장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