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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 CULTURE

[POEM] 시집 ‘업무일지’ 속 공구

 

공구와 시

 

시집 ‘업무일지’ 속 공구이야기

 

 

시인 옥빈 “큰 일하는 공구인 자부심 담고파”
저는 대전에서 ‘한국기계’를 운영하며 공기압축기와 그 주변기기들을 판매하고 설치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저희 공장에는 설비 장비와 수리공구들이 빠짐없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현장 일은 공구들과 함께 합니다. 몽키나 스패너, 드라이버 같은 작은 연장들이 얼마나 큰일을 해내고 있는지를, 그리고 그걸 다루는 공구인의 자부심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나는 왜 매일 힘든 일만 하지’라는 생각보단 이왕 내가 하는 일들이 시대적으로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일이라면 그 일에 대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요. 여러분이 판매하는 모든 제품에는 각기 다른 기능들을 가진 연장이나 공구들이 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노동현장에서 땀을 흘릴 것이고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세우고 만들어 인간의 삶에 기여할 것입니다.

 

 

1993년 계간 《문학세계》 신인상으로 등단한 옥빈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업무일지(실천문학사 刊)‘는 노동의 애환과 가치, 공구·기계와 오래 사귄 이야기를 서정적으로 담아내며 공구의 원리를 삶과 이어 소통하고 있다. 1부 출근, 2부 점심시간, 3부 출장, 4부 퇴근으로 구성돼있다. 2019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나눔 도서로 선정.

 


 

 

스패너 

 

스패너는 힘이 세다 
생긴 것하고 다르게 쓰는 힘이 남다르다 
잘난 척 힘센 척 안 하며 
모든 인연의 벌어진 사이를 
좁히고 응어리를 풀어낸다 
볼트와 너트를 위한 임무를 맡고 있지만 
저 자신이 이루어낸 일에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한다

 


 

 

드라이버

 

손잡이가 달린 철 막대가 전부다
참 보잘것없고 소박하다
십자나 일자 더하거나 빼는 일
이미 정해진 길이지만
늘 무언가에 쫓기며 살아온 것처럼
일의 끝머리에서
마지막 부품을 조이거나 커버를 덮으며
다시는 나사 풀리는 날이 오지 않기를
흔들리는 날이 오지 않기를 바란다


(중략)

 


 

 

공기압축기

 

“압력 좀 넣어야겠어”
타이어가 알맞은 공기압을 갖고 있는 것처럼 우리가 사는 세상도 알맞은 힘의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생각,
참 어리석은 것이다


(중략)


탱크에 저장된 압력으로
신발의 먼지를 터는 일이나 공장의 공압 기기들을 제어하는 일처럼 이제는 누구 한 사람이 아닌 우리 모두에게,
꼭 필요한 압력을 넣어야겠다

 


 

 

카달로그

 

한 눈에 쏙 들어왔다
의식하지 않았으나 
그의 깔끔한 용모에 검소함이 배어 있었다
단번에 반했다

 

한 눈에 감이 잡혔다
굳이 바라지 않았으나 
그가 구현하고자 하는 마음이 진보해 좋았다
단번에 의도를 알았다

 

한 눈에 파악할 수 있었다
상세히 보려 하지 않았으나 
그가 정리하고 다듬어 놓은 정원이 
그를 대변하고 있었다
단번에 정체가 드러났다

 


 

 

안전화

 

내가 누구와 살고 있는 거지
아침이면 내 품을 비집고 들어와
이리저리 험한 곳 쏘다니며
날선 모서리에 차이고
뾰족한 돌멩이에 부딪히면서도
그는 내게 도무지 관심이 없다
섭섭한 마음 남기고 떠나면서도
이별이라는 말 하지 않는다
아침마다 보송한 마음 전해주려는
치밀한 나의 경호는
밤새 충전된 전력량을 유지하도록
부르튼 발 방전되지 않도록
땀 냄새 폴폴 나는 그가
어둠 속 출구를 불쑥 빠져나갈 때까지
나의 임무는 밀착 엄호
그가 내 몸에 남긴 상처는
보푸라기로 일어서는 희망이다

 


 

 

수나사 암나사

 

궁합이 잘 맞는 우리
힘껏 끌어안을 때마다 

 

벌어진 사이 
단단히, 흔들림 없이 

 

다하는 날까지 
우리 사이
풀리는 날이 없기를

 


 

 

공구함

 

우리 집에는 성격과 직업이 다양한 이들이 모여 살지 
웬만한 기계의 점검이나 수리는 물론 조립이나 분해가 가능한 이들로 
여러 국적의 이름들을 가지고 있지 
아래층에는 좀 덩치가 있는 망치, 터미널압착기, 몽키, 파이프렌치, 수평자 등이 
위층에는 스패너, 줄자, 렌치, 니퍼, 펜치, 드라이버, 가위 등이 
싸우는 법 없이 달가닥거리며 잘 살아

 

이들은 단순한 능력의 소유자지만 성실, 근면하게 가족들을 부양하고 있지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된 망치 족만 보더라도 
두들기는 기능 하나만으로 쇠망치, 동망치, 고무망치, 프라스틱망치 등 
다양한 가문으로 번성하여 가장 크게 번창한 쇠망치 가문은 
오함마, 돌망치, 용접망치, 검사망치, 빠루망치 등이 일가를 이루고 있어


(중략)


나는 기능을 갖는 대신 보금자리가 되기로 했어 

용광로에 뿌리를 두고 있는 보잘것없는 기능들도 실은 큰일을 해내지 
우리 집에는 불안하게 돌아가는 저 커다란 시스템 속의 
느슨해진 볼트를 조이고 마모된 부품을 교환하는 힘들이 살고 있어

 


 

전기모터

 

나는 본디 오랫동안 광야를 달리다가
제임스 와트에게 잡혀온 야생마다
회전운동이 주요 업무다
직선운동과 왕복운동은 알바를 하고

 

나는 회전하는 곳의 적재적소마다 투입되어
전기 음료를 마시며 지치지 않는 심장으로
공장을 돌리는 적토마다


(중략)

 


 

 

도장 塗裝

 

성질을 잘 알고 선택해야 해
칠이 일어나면
부스럼처럼 감당하기 힘들어


(중략)


단정한 옷을 입혀야 해
이제 과감하게 떠나보내야 한다
오래 버틸 수 있도록

 


 

 

용접아다리

 

후회막심하네요 용접면을 잘 쓰고 할 것을, 
자외선을 무시했어요 무엇이든 무시하면 안 되는데

모래 한 주먹이 눈에 들어갔죠 따끔따끔 눈물이 쏟아져요 베갯속으로 스며든 눈물, 잠들어야 잊을 수 있어요


(중략)

 

진행 _ 장여진 / 자료제공 _ 실천문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