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 CULTURE
[HISTORY] 10월에 일어난 흥미로운 사건들
인류 역사 속 10월에는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공구, 사회, 경제와 관련된 10월에 있었던 흥미로운 사건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수원화성은 조선 정조시기에 건축된 수원시의 성곽이다. 현재의 수원화성은 수차례의 자연 재해와 한국전쟁 당시 파괴된 것을 복원한 것이다. 유네스코에 등재되기 위해서는 원본 그대로인 건축물이어야 한다는 규칙이 있지만 축성 당시 설계도와 내용을 그림과 글로 철저하게 남겨 놓은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 덕분에 원형에 가깝게 복원될 수 있어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었다.
수원화성은 축성 시, 정조로부터 하사받은 중국 서적 <기기도설(奇器圖說)>을 참고하여 정약용이 발명한 거중기와 녹로(轆轤)가 사용된 것으로도 유명하다. 수원 팔달산의 채석장에서 채굴된 벽돌은 조선시대의 스프링밸런스라고도 할 수 있을 거중기를 이용해 수레에 옮겨 실렸으며 수레로 옮겨진 석재는 조선시대의 크레인, 녹로를 이용해 약 10미터 높이로 들어 올려져 축성되었다. <화성성역의궤>에 따르면 거중기는 움직도르래 4개를 사용하여 필요한 힘을 1/4로 줄일 수 있었다고 한다. 녹로 역시도 도르래의 원리를 이용해 만들어진 공구이다.
비틀즈는 역사상 최고의 록밴드이자 록 음악의 상징과도 같은 4인조 밴드다. 1957년 존 레논이 조직한 ‘쿼리멘’에서 시작된 비틀즈는 몇 번의 멤버 교체 후 폴 매카트니와 조지 해리슨이 가입하고 1962년 링고 스타가 영입되며 완성되었다. 1962년 싱글 로 데뷔한 비틀즈는 이후 1집과 2집이 엄청난 성공을 거두며 영국 뿐 아니라 미국의 음반 시장을 완전히 점령하였다. 1969년까지 13장의 정규 앨범을 발매하였으나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의 음악적 갈등으로 균열이 가기 시작했고 결국 폴 매카트니의 탈퇴로 비틀즈는 1970년 공식적으로 해체하게 되며 8년간의 활동 기간을 마무리한다.
평론가들 사이에서 최고의 록밴드로 평가받는 비틀즈는 역대 음반 판매량 1위를 기록한 아티스트이기도 하다. 약 6억 장 정도를 판 것으로 추정되며, 무려 10억 장을 팔았다는 자료도 있다. 광고 혹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나오는 곡들 중 익숙한 곡은 대부분 비틀즈의 곡이다.
비틀즈는 음악에서 뿐만 아니라 대중적, 사회적인 면에서도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한 밴드로 평가받는다. <타임>지에서는 ‘20세기 중요한 인물 100인’중 하나로 선정하였으며 <롤링 스톤>지에서는 ‘역대 최고의 아티스트 1위’로 선정하기도 했다. 앞으로도 비틀즈는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중요한 밴드로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히틀러의 나치 독일이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패망한 후, 독일은 서독과 동독으로 분단되었다. 이후 서독은 ‘라인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룩하였고 냉전이 정점에 이른 1961년, 동독은 일방적으로 베를린 장벽을 세우며 긴장이 고조되었다.
1970년 이후 소독의 동방정책으로 대치가 완화되며 경제적 교류가 진행되었다. 당시 동독인들은 경제가 발전한 서독으로 계속해 빠져나가고 있었고 동독 정부 역시 여권 발급 규정을 완화하기로 했다. 언제부터 완화가 시행되는지를 묻는 한 이탈리아 기자의 질문에 대변인은 ‘즉시 될 겁니다’라고 대답했고 독일어에 능통하지 못했던 기자는 ‘여행자유화가 되어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라는 오보 기사를 작성하게 된다. 이 기사는 여러 나라를 거치며 확대 재생산됐고 기사가 난 1989년 11월 9일 밤, 베를린 장벽 동·서 양쪽에는 만 명 이상의 군중들이 모여들어 망치와 곡괭이로 베를린 장벽을 때려 부쉈고 결국 장벽은 무너졌다.
베를린 장벽 붕괴에 따른 동독의 공산정권 붕괴로 1990년 10월 3일, 독일의 재통일이 이루어졌다. 통일 후 30년이 지난 지금, 통일을 후회하는 독일인은 없다. 통일독일은 유럽의 중심 강국으로 일어섰고 안정적 경제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현재 독일은 인구 8,200만, GDP 4조 달러로 유럽연합 최대의 경제 강국으로 우뚝 섰다.
글 _ 이대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