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 CULTURE
[INTERVIEW] 공구 에세이 '반려공구' 작가 모호연
“죽어서 묻히면 묘비에다 ‘불편을 견디는 것이 곧 삶이었다’고 적을 만한 일상이었다.”
생활 속 불편을 그저 견디며 살던 작가의 삶은 공구를 만나 완전히 달라졌다.
에 에세이 ‘반려공구’를 연재했던, 모호연 작가의 공구와 함께하는 인생 이야기.
책 <반려공구>는 이런 문장으로 시작한다. “20대 중반의 나는 ‘적응’의 화신이었다. 어떤 불편도 무던히 잘 버텨냈다. 죽어서 묻히면 묘비에다 ‘불편을 견디는 것이 곧 내 삶이었다’고 적을 만한 일상이었다.”
모호연 작가는 자신에게 완벽주의자적인 성향이 있다고 말한다. 완벽주의는 뭔가를 쉽게 시도하지 못하게 만든다. 실패할 것을 너무나도 두려워하기 때문에 시도하는 것 자체를 꺼리게 된다. 그랬던 작가는 공구와 만남으로써 그야말로 180° 달라졌다. 지금은 공구를 이용해 자신이 직접 불편을 해결하고 당면한 문제를 해소한다. 내 공간을 내 취향에 맞게, 내 필요에 맞게 변화시킨다. 그리고 그런 것들로부터 큰 기쁨과 ‘효능감’을 느낀다고 그는 이야기했다. 효능감이란 ‘특정한 상황에서 적절한 행동을 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자신감’이란 의미다. 이 낯선 단어를 사용할 만큼, 작가의 삶은 달라졌다.
인터뷰를 위해 작가를 그의 집에서 만났다. 온갖 것들로 꽉 차 있던 집이었지만 결코 지저분하다거나 정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작가의 손을 거친 선반이나 수납함에 모든 물건들은 가지런하게 배치되어 있었다.
책 출간하고 요즘 강연도 많이 다니시죠? 네. 공구 사용기나 체험기 이런 강연을 하고 있어요. 20대 30대 여성분들이 많이들 들으러 오세요. 강연을 하며 깨닫는 게 있다면 일반 사람들에게 공구는 별로 의미 없는 존재라는 사실이에요. 생각해 보면 저도 예전엔 그랬거든요. 그때의 제 모습을 잊어버린 거죠.
그랬던 작가님이 공구에 관심 갖게 되고 또 책까지 쓰게 된 계기는 뭘까요? 가장 중요한 사건은 막 오픈했던 이케아에서 전동드라이버를 구입한 거예요. 그저 기념품으로 구입했던 건데 그걸로 모니터 받침대 만들고 하다 보니 ‘공구라는 게 생각보다 쓰기 쉽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제 인생에서 글쓰기는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거든요. 방송작가로 사회생활을 시작하기도 했고 제 자신을 치유하는 목적으로 글을 쓰는데 어느 순간 공구야말로 제 인생에 힘이 되는 반려가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어 공구에 대한 글을 쓰게 됐어요.
책 제목이 ‘반려공구’인데, 정말 내 삶의 반려자다 싶은 공구가 있나요? 제가 가장 가깝게 느끼는 건 줄자인 것 같아요. 저는 뭔가 치수를 아는 걸 재미있어 하거든요. 물건을 사더라도 집안 공간에 맞는지 확인해 보고요. 다른 공구들은 가지고 다니지 않지만 줄자는 항상 가방에 갖고 다녀요. 그러면서 물건 크기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하는 거죠.
정말 반려동물처럼, 수명이 다해 죽은(망가진) 공구 때문에 슬펐던 적 있으신가요? 앞에서 말했던 이케아 전동드라이버요. 배터리 일체형 충전 드라이버였는데 5년을 사용하고 나니까 배터리 수명이 다한 거예요. 일체형이다 보니 배터리를 교체할 수도 없다는 게 안타깝고 그런 공구를 판매한 이케아가 원망스럽더라고요. 왜 이런 걸 만들었을까, 하고요. 하하. 그 이후로는 배터리 교체가 불가능한 공구는 사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모든 사람들의 집 부엌에는 수저통이 있고 옷장 속에는 이불과 베개가 있을 것이며 어딘가 선반에는 구급함이 있을 것이다. 그런 것들을 우리는 살림에 쓰는 세간, 살림살이라 부른다. 과거의 가정에는 공구함도 이런 살림살이 중 하나였을 것이다. 늘어난 1인 가구와 부모의 집을 떠나 자취하는 20대 30대의 가정에서는 공구함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그나마 공구를 가지고 있다고 해야 드라이버나 펜치 정도. 모호연 작가는 구급함이나 반짇고리처럼 공구도 그만큼 생활 속에 필요하고 꼭 갖춰두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작가가 전하는 공구 사용 꿀팁!
나사를 풀 때도 박을 때도 드라이버 팁이 나사 머리에 정확하게 밀착 결합될 수 있도록 드라이버를 꾹 누르면서 사용해야 한다. 누르고 사용하지 않으면 나사머리 홈이 금방 망가지게 된다.
지금 작가님이 가지고 있는 공구는 몇 가지나 되나요? 일단 책에 실린 공구가 스무 가지고, 실리지 못한 것들을 포함하면 서른 가지 정도인 것 같아요. 그런데 부수적인 것들, 드릴비트 같은 것들은 빼고요. 닳거나 부러질 것을 대비해서 굉장히 많이 구입해 뒀거든요. 갖고 있는 공구 중에 가장 비싼 공구는 보쉬 충전 전동드릴인 것 같아요. 제가 목공 작업을 시작하면서 구입했어요.
이건 정말 잘 샀다 싶은 공구가 있다면? 시계공구 세트요. 제가 손목시계를 정말 좋아하는데, 손목시계 배터리가 떨어져 멈추면 시계방까지 찾아가서 교체해야 하잖아요. 그 불편함이 싫어서 구입했어요. 지금은 제가 배터리도 갈고 시계줄도 직접 교체하고 있습니다. 만족하면서 쓰고 있어요.
요즘 다이소에도 공구가 많잖아요? 다이소 공구도 쓸 만한가요? 저는 다이소에서 공구를 많이 구입합니다. 저처럼 공구 사용 비전문가들에게는 다이소 공구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물론 제가 자주 공구를 사용하는 전문가라면 당연히 더 좋은 브랜드의 공구를 구입할 거예요. 솔직히 공구는 비쌀수록 제 값을 하잖아요. 그런데 다이소 공구도 생활에서 사용하는 일반인들에게는 가성비가 나쁘지 않아요.
지금껏 살아오시면서 공구와 관련한 특별한 일이 있다면요? 2018년도에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탔던 적이 있어요. 당시 제가 수면장애가 있어서 불면증에 시달릴 때였는데 굉장히 시끄러운 와중에도 정말 꿀잠을 잔거예요. 천장에 닿을 것 같이 높고 타인이 나에게 접근할 수 없는 침대가 저에게 딱 맞았던 거죠. 집으로 돌아와서 전동드릴, 전동 드라이버, 전동 샌딩기 등의 공구로 지금 제 방에 있는 벙커침대(2층에 침대가 있고 침대 아래에 수납공간을 놓은 침대)를 만들었어요. 그 침대에서 자고부터는 불면증이 사라졌어요.
서울시 은평구, 모호연 작가의 작업실 겸 집은 생활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동네 한복판에 위치해 있다. 작가의 동네에도 역시 공구상이 곳곳에서 눈에 들어왔다.
공구와 친해지기 전 작가에게 공구상이란 정말 ‘나하고는 관계없는 곳’ 이었다. 언제나 무심코 지나치기만 했던 곳. 공구 전문가가 아니라면 괜히 다가가기 어려운 곳. 그러나 막상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니 공구상에서는 사람 사는 친밀감이 느껴졌다.
자주 방문하는 공구상 있으세요? 집 근처 세 곳 공구상을 방문해요. 언덕 밑에 한 곳, 반대편에 한 곳, 그리고 저쪽에 있는 만물상까지. 공구를 사용하기 전에는 정말 동네에 공구상이 있는 줄도 몰랐어요. 관심이 없었던 거죠.
공구상 가면 어떤 느낌을 받으시나요? 우리 생활에 필요한 거의 대부분의 물건들을 팔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더라고요. 매장도 넓지 않은데 그것들이 다 어디 들어있던 건지. 또 공구상에 들어가 보면 운영하는 사람의 성격이 보이는 것 같아요. 어떤 곳은 정말 철저하게 바코드, 제품명, 치수 등을 다 태깅해 둔 곳도 있고 또 어떤 곳은 대표가 아니면 찾지도 못하겠다 싶은 매장도 있고. 유독 공구상에서는 개인 성향이 느껴지는 거예요. 그래서 그런지 더 친밀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반려공구>와 같은 에세이가 아닌 전문적인 공구사용 서적을 낼 계획은 없으신가요? 제가 스무 가지 공구에 대한 책을 냈지만 저는 아직도 책에 실린 공구들을 다 파악하지 못했다는 기분이 들거든요. 실용서를 쓰기에는 제가 아직 부족하죠. 그리고 공구 사용은 기존에 좋은 책들이 많이 나와 있더라고요. 저는 그런 책을 보는 게 더 좋습니다.
세상에는 정말로 다양한 공구들이 있습니다. 책에 아직 실리지 않은 공구들을 다룬 <반려공구> 2편, 기대해 봐도 될까요? 제가 가지고 있는 공구들 중에도 책에 싣지 않은 공구들이 많아요. 많이 사용하지 않았고 그래서 아직은 좀 낯설고 서먹서먹한 관계의 공구들이죠. 좀 더 친해지면 글을 써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그것들은 좀 더 전문적인 공구거든요. 조각기라든가 아니면 카빙 나이프라든가. 그래서 아마 <반려공구>2편을 쓰게 된다면 공구 자체가 아니라 공구로 뭔가를 만드는 내용의, 업사이클링(재활용해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작업) 중심의 책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공구’라는 물건을 한 문장으로 정리해 달라는 요구에, 생활의 불편을 해결해 주는 든든한 동료이자 인생의 반려라고 대답한 모호연 작가. 그의 삶에 공구가 언제까지나 반려하길 기원한다.
글 _ 이대훈 / 사진 _ 황지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