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 CULTURE
[CULTURE] 공구상 로맨스 ‘툴스’
60년 외길 공구상에서, 공구라곤 하나도 모르는 예비사위가 혼인 허락을 받기 위해 벌이는 우당탕탕 경영 수업. 실제 공구를 활용한 신나는 퍼포먼스가 펼쳐진다.
“쿵 더덕, 워~ 따닥 착착, 호~”
공구상을 무대 배경으로 해머, 스패너, 전동드릴, 타카, 사다리, 공구함, 레이저수평기 등 공구를 직접 두드리고 긁고 흔들고 빛을 쏘는 퍼포먼스 ‘툴스(TOOLS)’. 공연 두 시간 동안 다채로운 비주얼과 소리에 눈과 귀를 뗄 수 없다. 관객들은 공구 리듬에 따라 몸을 흔들고, 배우들의 코믹한 몸짓과 표정연기에 박장대소한다.
장르는 대사 없이 리듬과 비트, 의성어, 동작만으로 표현하는 ‘넌버벌 퍼포먼스’다. 언어 장벽 없이 남녀노소, 외국인까지 쉽게 이해하고 즐길 수 있다. 국내에 잘 알려진 넌버벌 퍼포먼스로는 송승환 감독의 ‘난타’가 있다. 툴스는 대구 예술문화 사회적기업인 ‘꿈꾸는씨어터’의 김필범 감독이 기획과 연출을 맡았다.
“언젠가 해외에서 공연할 날을 위해 표현과 전달에 제약이 없는 넌버벌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지금은 꿈꾸는씨어터 내 공연장에서 두 번의 공연을 하고요. 반응이 좋아서 그 외 많은 학교에서 초청해주고 계세요. 전국 초중학교 대상 순회공연이 연 20회 정도 잡혀있어요.”
김필범 감독
현 ‘꿈꾸는씨어터’ 부대표 겸 연출감독.
경북대학교 법대 출신. 고교 시절부터 사물놀이 연주에 푹 빠져 대학 때 공연예술가로 전향해 10여 년간 커리어를 쌓았다. 대표 작품으로는 <최진사댁 셋째딸>, <쾌지나 코리아>,
<배꼽잡는 슬로우>, <큰장별곡>, <툴스> 등이 있다.
줄거리는 1960년대부터 대구 북성로에서 3대째 명맥을 이어가는 공구장인 ‘한길만’ 사장과 부드러우면서도 막강한 파워를 지닌 아내 ‘사달희(사다리에서 따왔다고 한다)’ 사모를 중심으로, 이들 부부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웃음 가득 외동딸 ‘한미소’와 공구의 ‘공’자도 모르는 그녀의 순정파 남자친구 ‘노공구(NO공구)’가 결혼 승낙을 위해 혹독한 공구 훈련을 겪는 유쾌한 에피소드다. 극중 감초 역할을 하는 공구상 미화담당 ‘Ms.테리’는 성별을 알 수 없는 미스터리하고 엉뚱한 캐릭터로 등장해 관객에게 궁금증과 웃음을 안겨 준다. 과연 노공구는 한길만 장인에게 배운 공구실력을 인정받고 한미소와 결혼에 골인할 수 있을까.
“2018년 북성로 도심재생문화사업의 일환으로 지원을 받아 만든 작품이에요. 초연 당시에는 ‘설계도면만 있으면 탱크도 만들 수 있다’는 북성로 소개 문구에 꽂혀서, 탱크를 무작정 제작해달라는 의뢰를 받은 공구인이 열정으로 만들어내는 이야기로 구성했어요. 이후 스토리가 단순하다는 피드백을 받아 가족과 사랑이라는 주제로 바꾸고 재미와 퍼포먼스를 추가하다보니 몇 번의 각색을 거쳐 지금의 시나리오가 되었죠. 기획과 무대 구성을 위해서 북성로에 대한 역사자료를 많이 찾아보고, 공구거리를 걸어 다니면서 가게마다 어떻게 운영하고 있는지 살펴보고, 진열모습을 사진 찍어보기도 했어요.”
퍼포먼스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작곡가, 안무가, 퍼포먼스 감독, 연출가가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머리를 맞댄다. 공구 특성과 소리에 대해 누구보다 깊게 고민하고 연구한다. 배우들은 안무, 연기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인 타악 연주를 해야 하기 때문에 하루 12시간씩 공구로 타악 훈련을 강행했다. 이때 김 감독의 주전공인 사물놀이에 대한 노하우가 큰 역할을 했다. 극중 효과를 위해 몇 가지 배경음악은 멜로디, 드럼연주 등을 사전에 녹음해서 활용하고 있다.
“어떤 공구를 써서 어떤 퍼포먼스를 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어요. 실제 타카 소리를 녹음해서 리듬을 만들고, 드릴이나 톱질, 콤프레샤 작동음도 따서 멜로디를 입히는 과정을 거쳤어요. 사다리는 플라스틱 호스로 때리면 소리가 크게 울려서 라이브로 연주하는데, 층별로 다르게 들려 재밌더라고요. 공구함은 그 자체로는 텅 비어있기 때문에 피스를 여러 개 넣어서 흔들고 두드리며 연주했어요. 스패너는 사이즈별로 몇 십 만원어치를 구입해서 튜닝기로 도레미 음정을 맞춰보는 시도를 했어요. 레이저 수평기를 가지고는 뭘 할까 고민하다가 어두운 무대 여기저기서 멋지게 레이저를 쏘는 퍼포먼스를 구성했어요. 이 퍼포먼스를 위해서 레이저 쇼를 코딩하는 프로그램도 배웠고요.”
화려한 공연은 무대 뒷모습이 더 치열한 법이다. 김 감독은 공연 예술단체에서도 무대 연출을 위한 공연장, 연습실 제작 등에 공구가 많이 쓰인다고 했다. 그에게 공구는 공연 준비에 필요한 테이블, 의자도 뚝딱 만들어낼 정도로 익숙한 물건이다.
“연습실을 옮기면 새로 방음작업을 해야 해요. 비용이 들기 때문에 보통 저희들이 재료를 사서 하거든요. 그러다보니 톱질, 망치질, 드릴링, 타카 작업이 좀 익숙하죠. 이 공연장을 짓는 데는 1년 반이 걸렸는데 저희도 와서 엄청나게 작업했어요. 툴스 작품을 하면서도 공구를 더 알게 됐죠. 그냥 톱질보다는 클램프로 고정하고, 테이블쏘를 사용하면 훨씬 편해요. ‘역시 인생은 장비 빨’이에요(웃음).”
꿈꾸는씨어터(대표 김강수)는 2012년 대구 남구에 설립된 문화예술 사회적기업으로, 공연 창작을 비롯해 기획, 축제, 교육사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지역 공연예술 생태계가 활성화할 수 있도록 힘쓰고 있다. 법대를 나온 김필범 감독은 학창시절 사물놀이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법보다 공연에 푹 빠졌고, 김강수 대표를 만나면서 2009년 졸업 후 예술단원으로 활동하다 현재는 부대표의 자리를 맡고 있다. 그는 지역 예술가가 잘 될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동시에 툴스와 같은 공연을 통한 대중의 많은 관심도 기대하고 있다.
“관객과 제작자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자 해요. 툴스는 정말 많은 고민과 수정을 거쳤죠. 초연 때는 공연 한 달 남겨두고 시나리오를 엎기도 했고요. 배우들도 고생하며 연습했고, 제 모든 작품 중에 가장 힘들게 만든 작품이에요. 하지만 그만큼 사랑을 제일 많이 받아서 애착이 가는 공연이에요. 공구인 여러분들도 다음에 툴스 꼭 보러 오시면 좋겠어요. 나중에 저희가 찾아가 공연을 보여드릴 수 있는 기회도 생기겠죠?”
글 _ 장여진 / 사진 _ 꿈꾸는씨어터, 송수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