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 CULTURE
[공구골목 사람들] "북성로 공구거리 노래로 나왔어요" 제1회 북성로 노래자랑
대구 북성로 라일락뜨락1956에서 열린 ‘제1회 북성로 노래자랑’에 공구골목 등 북성로를 주제로 한 창작곡이 울려 퍼졌다. 대회를 주최하고 작사를 맡은 권도훈 라일락아트스페이스 대표와 원곡 가수인 유나영(크레텍 대리) 씨를 이곳에서 만났다.
지난 10월 28일 토요일 저녁, 북성로 문화공간 ‘라일락뜨락1956’에 불빛이 켜지며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라일락아트스페이스에서 주최하고 대구시 중구청과 중구도심재생문화재단에서 주관한 지역주민 축제 ‘제1회 북성로 노래자랑’이 막을 연 것. 아이부터 어르신까지 50여명의 관객이 라일락뜨락 마당에 모여 차와 함께 공연을 즐기는 자리가 마련됐다. 경연 참가자와 북성로 주제가 제작진을 비롯해 류규하 대구 중구청장, 김오성 중구의회의장, 권경숙 중구의원, 황구수 성내3동 주민자치위원장(㈜자산 대표), 마선경 성내3동 동장, 노태철 봉산문화회관장 등 많은 지역 인사들이 참석했다. 행사를 축하하며 류규하 청장은 애창곡인 설운도의 ‘보랏빛 엽서’를, 김오성 의장은 남진의 ‘이력서’를 열창했고, 핑퐁소리누리예술원 이송비 복화술사의 인형극으로 식전 무대가 꾸며졌다. 이어 각양각색 다섯 참가자의 경연과 유나영, 이규준 원곡가수의 공연이 펼쳐졌다.
경연 참가자들은 저마다 갈고 닦은 실력을 뽐내고, 관객들은 긴장과 실수를 격려해주며 축제장은 웃음과 흥으로 가득했다. 이날 북성로상(대상)은 오토바이골목을 주제로 한 ‘후진 없는 바이크’를 안정적으로 부른 71세의 김영웅 씨가 수상했다. 이어 딸과 함께 하루 8시간씩 연습하며 ‘청남 이상정’을 부른 진혜전 씨가 크레텍상(금상)을, ‘북성로 르네상스’를 부른 이경애 씨가 이장가상(은상)을, ‘북성로 공구거리’를 부른 73세의 최고령 참가자 김영기 씨가 열창상을 받았다. 지인의 권유로 노래자랑에 참가하게 된 김종광 씨는 “부끄러움이 많아서 무대에 서는 걸 힘들어하는 성격이지만 도전해보길 참 잘했다”고 말했다. 크레텍상(금상)을 수상한 진혜전 씨는 “좋은 가사와 곡을 쓰신 분들 덕분에 난생처음 노래자랑 대회에 출전해봤다. 어린 시절 꿈꾸었던 가수가 되어보는 소중한 추억을 갖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소감을 전했다.
대회를 주최하고 북성로 주제가를 직접 작사한 라일락아트스페이스 권도훈 대표와 공구인 원곡가수 유나영 씨를 라일락뜨락1956에서 만났다. 북성로 공구골목에 위치한 라일락뜨락1956은 권 대표가 민족시인 이상화 생가터를 카페 겸 문화공간으로 만든 곳으로 이 동네 주민들에겐 ‘사랑방’으로 통한다. 시 낭송회, 공연 등 다양한 문화 이벤트도 하고 있다.
“공구상에서 많이 방문하시고, 저도 공구를 사러 수시로 오가며 동네 분들을 많이 알아요. 특화거리가 많은 북성로에서 주민들과 함께 노래를 배우고 불러보며 지역에 대한 이해와 애정을 만들어가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었어요.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공간인 라일락뜨락에서요.”
북성로 노래자랑은 지난 5월 대구시 중구 도심재생문화재단에서 공모한 ‘2023 북성로 문화플랫폼 활성화를 위한 생활문화 활동 지원사업’ 당선으로 기획됐다. 특히 북성로 일대를 주제로 한 5개의 창작 가요를 제작해 배우고 부른다는 점에서 타 행사와 차별화했다. 처음 들어보는 곡이 어려운 이들을 위해 세 번의 사전 노래교실을 열어 소프라노 강동은 성악가의 지도를 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진행했다. 강동은 성악가는 행사의 MC도 맡으며 참가자의 기를 북돋워주고, 재치 있는 입담으로 관객의 호응을 불러오는데 큰 역할을 했다.
“원래는 더 많은 분들이 참가하겠다고 연락 오셨다가, 우리가 만든 곡으로 경연한다고 하니까 중도 하차하시는 분들이 생겼어요. 처음 접하는 곡임에도 불구하고 노래교실을 빠짐없이 참여하며 집에서도 따로 연습을 많이 하신 열정적인 분들이 계셔서 행사가 즐거워지고,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것 같습니다.”
대구 읍성 옛 자리 걷다 보면
꽃자리 시인 구상
독립운동가 이육사 시인
황소 화가 이중섭을 만난다
포연 속에도 울리던 클래식
전쟁은 예술을 가두지 못했다
그곳에 핀 꽃 한 송이
고목되어 옛 이야기를 전하네
근대는 현대로 어제는 오늘로
다시 북성로 르네상스
-‘북성로 르네상스’ 가사 중에서
작사가인 권도훈 대표와 최근 대구서 핫하게 뜨고 있는 김보미 작곡가가 만든 다섯 개의 북성로 주제곡은 북성로 르네상스, 공구골목(북성로 공구거리), 오토바이골목(후진 없는 바이크처럼), 수제화골목(춤추는 구두), 청남 이상정 노래다. 권 대표는 각각의 주제마다 특성을 살려 작사하고, 곡에 분위기를 반영했다.
“‘북성로 르네상스’는 근대예술의 성지인 북성로 전체를 포괄하는 이야기에요. 이육사, 구상 시인, 이중섭 화가 등 예술인들의 아지트였죠. 옛 명성에 걸맞게 다시 일으켜보자는 의미를 담았어요. 서사가 펼쳐지듯, 김광석 노래처럼 서정적으로 부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공구골목과 오토바이골목은 따라 부르기 쉽도록 우리에게 친숙한 트로트 느낌을 살리면서도 북적북적한 공구거리와 뚝딱거리는 공구 소리, 오토바이의 강렬한 바이크 사운드를 반영했어요. 수제화골목은 구두를 신고 또각또각 걸어가는 모습을 뮤지컬처럼 표현했죠. 청남 이상정은 이상화 시인의 형님인데, 만주에서 독립운동 하시던 장군이자, 대구에 서양미술을 처음 들여오신 미술의 대가세요. 이 라일락뜨락 자리는 용봉인학이라고 불린 이상정, 이상화, 이상백, 이상오 4형제가 태어난 곳이에요. 사람들이 잘 모르는 이상정 장군의 뜻을 기리고 알려보자는 취지에서 웅장한 분위기의 ‘청남 이상정’이라는 곡도 만들게 됐어요. 가사를 쓰면서는 골목을 다니며 역사자료를 많이 찾아봤고요. 하고 싶은 이야기를 압축해 담으면서도 부르기 쉬운 발음으로 계속 수정하는 과정이 있었어요. 특히 작곡가, 작사가, 가수 삼박자가 잘 맞았죠. 덧붙이자면 권보미 작곡가님과는 이상화 시인을 주제로 한 뮤지컬 작품도 제작 중이에요.”
일점오킬로미터 북적북적 북성로는
달성토성 따라선 우리나라 제일의 공구거리
못 만드는 게 없고 없는 게 하나 없고
모르는 이 없는 북성로는
백년을 이어온 지붕이 없는 공구박물관
장인들의 땀과 예술인들의 혼이 섞인 거리
스트리트 댄스 춤을 춰요 공구들의 장단에 맞춰
딴딴 따라라라랑 뚝딱뚝딱 탁탁탁
-‘북성로 공구거리’ 가사 중에서
가수이자 공구인이기도 한 유나영(유을경) 씨는 산업공구 유통기업 크레텍의 세신버팔로 홍보관에서 근무하며 평일에는 직장인, 휴일에는 가수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노래할 때 행복하다는 그는 10여 년 전 어르신과 장애인을 위한 노래 자원봉사를 한 것이 인연이 돼 지역 여러 행사에 꾸준히 초청받고 있다. 북성로에 오랜 터전을 두며 애향심을 담은 ‘달성공원토성길’이라는 곡을 발매하기도 했다. 이번 행사 출연은 북성로상점가상인회 김대식 회장의 적극적인 추천이 있었다. 크레텍 고객서비스센터에 오래 근무한 경력이 있어 주변 공구상들은 그에게 식구나 다름없다. 그래서 이번 북성로 노래에 대한 애착도 깊다.
“노래 가사처럼 ‘일점오킬로미터(1.5km) 북적북적’한 북성로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지는 것 같아요. 곡이 중독성이 있어서 듣다보면 머릿속에 계속 맴돌아요. 이규준 가수와 제가 5곡을 나눠 부르는데요. 그중 제가 부르는 공구거리 노래는 세미트롯 형식인데, 부르는 사람이 어떻게 맛을 내느냐에 따라 느낌이 완전히 달라지거든요. 북성로를 대표해 잘 불러야겠다는 책임감도 들었고, 곡의 의도를 잘 살리기 위해서 처음으로 레슨을 받아가며 연습했어요.”
지난 11월 9일에는 권 대표가 격주 목요일마다 진행하고 있는 TBN 대구교통방송 ‘대구야사’ 프로그램에 유나영, 이규준 가수가 함께 출연했다. 북성로의 역사 문화와 노래자랑 소식을 알리고, 각 주제가를 소개하며 라이브 공연이 펼쳐졌다. 유 씨는 ‘북성로에 본사를 둔 공구회사에 근무하고 있는 초대가수’ 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더욱 활기찬 북성로를 기대하며, 많은 공구인들이 노래로 힘을 얻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북성로에 일하면서 노래까지 부르게 되어 굉장한 자부심이 느껴져요. 사내방송에도 곡을 들려드렸는데 직원들이 아주 신나고 좋다고 하시더라고요. 노래를 하면서 공구인 가족들과 더 가까워진 것 같고요. 여러분들이 일하시는 데 좀 더 힘이 나도록 보탬이 되었으면 합니다.”
권 대표는 이번 행사의 참가자 및 관계자를 비롯해 후원을 한 크레텍, 북성로상점가상인회, 상화기념관·이장가문화관에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앞으로도 2회 3회 대회를 쭉 이어나가고 싶은 소망을 말했다.
“북성로 주제가가 일회용으로 끝나는 건 바라지 않고 계속 오랫동안 이어져서 지역을 대표하는 노래로 자리 잡으면 좋겠어요. 노래방에 곡이 들어가면 제일 좋겠죠(웃음). 전국에서 유일, 최고, 최다가 어울리는 북성로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어요. 대구의 대표적인 문화공간이자 생활터전으로서 계속해서 알리고 싶고 더 많은 분들이 찾아오시면 좋겠어요.”
글 _ 장여진 / 사진 _ 이창우(모임스튜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