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 CULTURE
[공구인 에세이] 연마, 그 정밀한 아름다움
(硏磨)
- 종합테크툴 김현태 -
나는 한 번씩 김밥을 먹으며 밥을 감싼 얇은 김의 예리한 절단면을 물끄러미 쳐다보곤 한다. 깨끗하게 잘 절단된 김밥을 보면 행복하고 절단면의 김이 늘어져 붙어 있거나 간혹 뜯어져 있으면 마음이 아프다. 조금 더 관심 있게 보면 제법 경도(hardness)를 가진 단무지와 연성(ductility)이 클 것 같은 시금치 무리, 좀 만만해 보이는 소시지들을 수분 가득한 밥알들이 돌돌 말아 겨우 붙어 있는 상황인데, 이것들을 둘러싸고 있는 저 김은 얇고, 심지어 쉽게 찢어지고, 더 심지어 잘 부서지고, 더더 심지어 잘 녹아 없어지지만 그래도 그 전까진 ‘나는 비록 약하지만 그래도 너희들을 붙잡아 둘 수 있노라.’라고 외치는 듯 강력한 울타리로서 존재하고 있다. 한마디로 대단하다! 그러나 저 대단한 김도 정교하게 연마된 부엌칼의 날카로움 앞에서는 별 것 아닐 수 있는데, 사실 저 대단한 김밥과 김도 잘라내는 요즘의 부엌칼들은 아주 아쉽게도 스테인리스가 많다.
이 스테인리스란 친구는 철의 내식성 개선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내식용 강(鋼)의 대표자이기도 하지만, 여러분과 나와 김밥집 아줌마를 속이는 대표적인 사기꾼이기도 하다. 스테인리스란 이 친구는 평상시 ‘저는 녹이 슬지 않습니다.’라고 외치고 다니며 사람들을 현혹하여 선택된 후, 단두대 못지않은 부엌칼로 변신해 음식물 절단이란 업무에 종사하곤 하는데, 녹이 슬지 않는다는 스테인리스의 주장은 명백한 거짓으로 검찰이 기소만 할 수 있다면 징벌적 손배소가 적용될 시 처음 만들어진 1913년부터 현재까지의 죄를 합산해 징역 오백 년도 가능할지 모를 수준의 나쁜 녀석인 것이 바로 이 스테인리스란 녀석인 것이다. -스테인리스는 녹이 잘 슬지 않는 것이지 녹이 안 스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필자는 ‘연마(硏磨), 그 정밀한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하다 김밥을 써는 스테인리스 부엌칼을 왜 악역으로 몰아가는 것일까? 스테인리스는 SUS304란 강재로 대표되고 있는데, 이 녀석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경량화와 정밀함이 요구되는 산업 전반의 연마 공정에 있어 일반적인 대상으로 사용되며 우리 인간 세상에 많은 기여를 하고 있는 녀석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저 대단한 김밥을 마구 썰어대는 마트제 부엌칼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는 SUS304일까? NO! 대부분 저렴한 마트제 부엌칼은 SUS420J이다. SUS304에 비해 약간의 자성을 더 지니고 있으며 부식에 더욱 강한 녀석. 연마를 통한 절단면 가공할 시 더 잘 갈려서 날을 세움에 있어 빠르게 반응하지만, 또 그만큼 쉽게 무뎌지는 물러 터진 녀석. 그러나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부엌칼을 음식점만큼 많이 사용하지 않기에 장단점을 파악하기조차 힘든 녀석. 그렇다. 녀석은 자신의 장점은 부각하고 단점은 숨기며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고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과 비슷할 수 있다. 나와 맞는 곳을 선택하며 살아가는 내가 아닌, 적당히 좋아 보이는 곳이 있으면 거기에 끼워 맞춰 살아가는 나. 어떤 이는 이것을 생활력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어떤 이는 능력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역시 우리는 SUS420J처럼 쉽게 세워지고 쉽게 무뎌지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이가 조금씩 들어가면서 이따금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무엇인지 모를 것들을 그 무엇으로 날카롭게 연마하며 살고 싶다는 욕구가 생길 때가 있다. 그런데도 나는 그 흔한 마트제 부엌칼처럼 사용자의 욕구에 맞춰 더 뛰어나지도 그렇다고 성능이 떨어져 못 쓰지도 않을 만큼의 인생을 살고 있기에 오늘도 날카롭게 잘 절단된 저 김밥을 바라보면서 많은 생각에 잠기게 된다. 이십여 년을 넘게 연마인(硏磨人)으로 살아가고 있는 나는 자문한다. 결국, 만족스러운 연마(硏磨)란 무엇인가?
이것을 생각하다 보면 생각은 생각을 낳고 여러 차례 수정되어 재탄생된 생각들은 그것은 ‘정밀한 치수와 가공되어 깨끗해진 면의 완성된 공정만은 아니며 연마된 부위와 그에 접한 접촉면의 열 수축과 팽창 그리고 그 면들이 각기 가져야 할 조도(surface roughness)까지 조화롭게 가공됨에 각각의 부품들이 조립되어 최소한의 저항으로 부드럽고 조용하게 작동하게 되는 것.’이란 어느 교과서에 나올 법한 결론을 만들어 내게 되는데, 이는 쉽게 말해 ‘정밀하고 아름다운 연마란 것은 관계된 모든 것들을 조화롭게 만들어 내는 것’이란 뜻임엔 틀림없다.
생각이 이쯤에 이르니…, 나는 부끄러워진다. 이날, 이때까지 그렇게 연마를 하며 밥을 벌어먹고 살아왔었건만 정작 전혀 연마되지 못한 나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저 약하디약한 모습으로 죽을 애를 쓰며 뭉쳐서 아름답게 절단되어 가치 있게 사용되기 위해 존재하는 김밥조차…, 녹이 안 슨다고 사람들을 속였든 어쨌든 제 역할을 다하기 위해 갈리고 무뎌지고 다시 갈리길 반복하며 자신을 연마해나가는 저 싸구려 SUS420J 부엌칼조차 나보다 더 노력하며 사는 듯하다. 김밥 먹다 젓가락질을 멈추고 멍청히 김밥의 절단면을 바라보며 삶이 어쩌니저쩌니 생각하고 있는 내 꼴을 누가 본다면 참으로 우스운 일이 될지 모르겠으나, 나이를 먹어 가며 인생의 풍파와 희로애락(喜怒哀樂)으로 잘 연마됐다 자부했던 내가 나를 둘러싼 세상과의 조화에 비추어 나를 다시 바라보니 비로소 별것 아닌 내가 보인다.
-헛웃음-
‘그래, 힘들겠지만 다시 시작하자.’ 오늘은 퇴근할 때 숫돌을 꼭 챙겨서 집에 있는 부엌칼들부터 곱게 갈아줘야겠다.
출처 _ <제1회 산업용재 수필문학상> 응모 작품집 / 진행_ 장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