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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 CULTURE

[여행] 눈꽃산행의 백미 영주 소백산

눈꽃산행의 백미 영주
소백산



 

소백산은 작은 하얀산이라는 뜻
국망봉-비로봉-연화봉 잇는 대간길 압권

소백산은 들어서는 입구부터 심상찮다. 무려 4.5km에 달하는 죽령터널을 지나야 진면목을 마주할 수 있다. 죽령터널은 죽령 산허리를 뚫고 충북 단양의 대강면과 경북 영주의 풍기읍을 잇는데, 태백선 정암터널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긴 중앙선 터널이다. 단양 땅이 영주 땅보다 지대가 높아 말굽 모양으로 뚫렸다. 그 아래에 5리쯤 되는 옛길이 있다. 신라 아달라왕 5년에 죽죽이라는 사람이 길을 열어 이름이 죽령이라는 설이 있다. 고갯마루에 죽죽을 기리던 죽죽사 터도 남아 있다.
소백산(小白山)을 우리말로 풀면 ‘작은 백산’이 된다. 하지만 이 산의 칼바람을 따라올 산이 도무지 없다. 태백산, 백운산, 기백산, 백양산 등 숱한 고봉준령도 소백산 비로능선의 짱짱한 칼바람 앞에서는 맥을 못 춘다. 바람 하나 기막히게 피우는 덕에 소백산은 이른바 ‘짐승’ 산객들의 야성을 마음껏 자극하며 겨울산행지의 백미로 꼽힌다.
그렇다고 소백산이 마냥 까다롭고 드세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이 육산의 품이 기실 크고 둥글며 푸근하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소백의 실한 속살에 가 닿아야 한다. 겪지 않고는 모른다. 자세히 보아야 한다. 오래 보아야 한다. 그래야 겨우 안다. 큰 산을 배우는 데는 왕도가 없다.
소백산 산행의 압권은 단연 국망봉, 비로봉, 연화봉을 잇는 대간길을 내달릴 때다. 비로봉은 소백의 제1봉이며, 소백의 큰 산줄기들이 모두 이 삼봉에서 갈라져 나가기 때문이다. 따라서 원점회귀산행의 안락함과 개운함은 과감히 포기하고 들목과 날목을 어디로 둘 것인지 미리 계획할 것을 권한다. 필자 일행은 초암사에서 출발해 희방사로 빠져나오는 길을 택했다.
 

변수 많은 겨울 산, 철저한 준비 필요
죽계구곡 지나 초암사까지 비교적 평탄

승합차를 이용해 초암사 방면으로 향했다. 길이 미끄러워 차바퀴가 몇 번을 헛돌았다. 양지바른 곳에 주차한 후 초암사까지 아스팔트 농로를 1시간쯤 걸었다. 러셀이 불가피할 듯해 스패츠부터 단단히 착용한 후 산에서 먹을거리를 여섯 개의 배낭에 나눠 담았다. 산정에서 보낼 하룻밤에 대비해 모든 배낭이 먹고 자는 데 필요한 것들로 꽉 찼다.
점심 때를 조금 넘어 소백산 자락에 차분히 안겼다. 죽계구곡을 거슬러 올라 탐방지원센터를 지났다. 여기서부터 초암사까지 2시간. 비교적 평탄한 길을 꾸준히 걸으니 이내 등부터 땀이 차기 시작했다. 오후 3시 40분. 조금은 늦은 감을 안고 산세에 붙었다. 초암사에서 국망봉 갈림길까지는 4.1km. 흔한 산길이라면 2시간 거리다. 한데 변수 많은 겨울 산일 뿐더러 능선까지 무려 1,000m나 되는 고도를 꾀부리지 않고 올라야 했기에 만만치 않은 산행이 되리라는 예감은 분명한 것이었다.
본격적 산행에 나섰건만 그때까지도 등산(登山)한다기보다 입산(入山)한다는 기분이 드는 까닭은 그만큼 이 산의 품이 크다는 것일 테고, 무엇보다 우리가 오를 길이 그만큼 길다는 것일 테다. 능선은 쉽게 자신을 내주지 않았다. 지천이 눈밭이다. 갈증이 나는 것도 아닌데 괜스레 흰 눈을 한 주먹 입 안에 털었다. 그러고도 나른한 산굽이를 한참 더 올랐다.
오후 5시 30분. 급격한 체온 변화에 대비해 우리 일행은 패딩을 꺼내 입고 행동식으로 챙겨 온 초코바를 두 개나 먹었다. 꽝꽝 언 초코바를 사탕처럼 녹여 먹었다.



 

어루만지면 소원 들어준다는 돼지바위
소백산하 일몰, 하늘 끝과 능선이 만나 장관

국망봉에 들렀다가 비로봉으로 전진하고 있다는 선발대의 연락이 왔다. 이런 속도라면 우리는 고작 갈림길에서 10분쯤 떨어진 국망봉은 밟지도 못하고 곧바로 비로봉으로 향해야 할 판국이다. 초조했다. 남의 속도 모르고 돼지바위는 여유롭게 웃고 있다. 어루만지며 소원을 빌면 들어준다는 영험한 돼지바위. 속으로 ‘초소까지 무사히 산행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기도했다. 봉황이 하늘로 날아가다가 내려앉아 바위가 됐다는 봉바위는 보지도 못하고 지나쳤다. 사위를 둘러보니 어느새 능선이 이글대며 불타고 있다. 산하는 둥근 원을 이뤘다. 세계가 어둠에 잠식 중이다. 오랫동안 그 빛에 물들어 있는 하늘을 바라보며 문득, 산에서는 해가 빨리 진다는 말이란 기실 산을 잘 알지도 못하고 하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모르긴 몰라도 그 산의 해는 참 길었다. 아득히 포개진 산체는 하얗게 멀어지더니 그 끝을 지평선 너머로 감췄다. 해가 지고도 대지는 한참을 붉게 달궈진 채 있었다. 하늘의 끝과 능선의 끝이 하나의 검은 점으로 만나기까지 우리는 쉬지 않고 걸었다.
국망봉과 비로봉 갈림길에 선 것은 오후 6시 10분. 우리는 국망봉을 등지고 비로봉을 향해 힘차게 걷기 시작했다. 비로봉까지 3km. 산은 이제 완전한 어둠에 갇혔다. 우려해 마지않던 야간행군에 들어갔다. 다행히 걱정했던 것보다 춥지는 않았다. 도중에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몸을 움직여 걷고 있어 체온을 보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체력이 축나는 것은 막을 방도가 없었다. 가지고 있던 행동식도 다 먹은 터였다. 계속 걷자니 기운이 없고, 그래서 좀 쉬자니 다시 추워지고. 진퇴양난을 온몸으로 실감하던 찰나, 문득 동남쪽 기슭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영주시 일원이 두 눈에 들어왔다. 대간이 굵직하게 뻗어 가다가 남서쪽으로 휘돌며 아늑히 안은 땅, 영주. 시내는 용광로처럼 빛났다. 그 무한한 따뜻함이 그리워서 가는 중에도 몇 번이나 고개를 돌려 바라봤다.

 

비로봉 위엄에 가로막힌 어둠 속 산행
칼바람 마주한 정상에 서면 인생 진리 깨우쳐

“헉헉. 이제 다 왔어, 끝이 보여! 조금만 더 힘내자!”
앞서 가던 일행 중 한명이 응원의 말을 건넸다. 하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 눈앞의 어둠은 짙은 밤바다의 빙산처럼 솟아 있다. 해발 1,439m 비로봉의 위엄에 가로막힌 밤. 숨이 막혔다. 어둠을 지나지 않으면 어둠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극한으로 힘들 때 진리처럼 가슴에 와 닿는 것은 이렇듯 당연한 말들이다. 너무도 당연하기에 시류와 무관하게 생의 저변을 돌고 도는 것이다.
소백산의 모퉁이에서 또 다른 모퉁이로 닿는 길은 지난했다. 마주 오는 누군가의 랜턴 빛인 줄 알았더니 나목에 걸린 뭇별이었고, 잡목의 잔가지가 배낭을 붙들어 몸부림치기도 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죽령이나 삼가리, 어의곡에서 올라 바로 비로봉으로 붙을 걸 그랬다. 이따금씩 ‘지금 여기서 뭐 하는 걸까’ 하고 생각했다. 눈물이 핑 돌기도 했다. 대상 없는 짜증을 공기 중에 마구 퍼부었다. 모놀로그가 따로 없구나. 그럼에도 눈앞에 까맣게 솟은 산등성이는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가슴 가득 텅 빈 평원의 바람을 안은 것은  밤 9시를 넘은 시각. 3km 남짓한 길을 무려 3시간에 걸쳐 올라왔다.
소백이라는 이름처럼 정상에서 볼 수 있는 설경은 왜소했다. 바람이 하도 강해 눈 쌓일 틈조차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능선에 섰을 때는 다행히 바람이 잦아든 시각이었다. 저 멀리 사람의 불빛이 보였다. 그 빛을 따라 마침내 주목군락감시초소에 들어섰다. 초소는 먼저 온 이들의 온기로 훈훈했다. “왔어?” “고생들 하셨소.” 앞서 도착한 일행의 목소리가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늦은 식사를 하며 일행은 둘러앉아 그 날 산행을 총평했다. 심설 속에서 밧줄에 의지해 길을 더듬었던 아찔함. 여기서 쓰러지면 어쩌나 싶었던 한 순간을 소회하는 이도 있다. 일본의 산 100군데를 제 집처럼 완주한 베테랑도 소백의 혹독한 추위 앞에서는 흔들렸단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우모복장으로 무장한 나는 자청해 물을 데우고 먹을거리를 준비하는데, 그 수발이 어느 순간보다 즐겁다. 마음으로 ‘겨울은 보내는 것이 아니라 버티는 것’이라는 진부한 말을 주문처럼 구워삶았다.






소백산,
부드러움과 웅장함
두루 갖춘
백두대간의 꽃


소재 : 충청북도 단양군 가곡면,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높이 : 1,439m
난이도 : ★★★★☆

소백산은 백두대간 줄기가 굵직하게 뻗어 가다가 태백산을 지나 그 육중한 덩치를 남서쪽으로 휘돌며 솟은 아름다운 산이다. 신선봉, 상월봉, 국망봉, 비로봉, 연화봉 등 1,000m급 봉우리를 연결하며 미려하고 웅장한 산하를 자랑한다. 소백산은 육산의 부드러움과 고산의 웅장함을 두루 갖췄다. 국망봉에서 비로봉을 지나 연화봉까지 이어지는 초원길은 봄과 여름이면 각종 고산식물로 천상화원을 이루며, 주봉인 비로봉 일대는 주목과 에델바이스 군락지로 화(化)한다.
소백산 산행의 백미는 국망봉~비로봉~연화봉을 잇는 대간길 주능선에 있다. 따라서 원점회귀산행의 편리함은 과감히 포기해야 한다. 초암사에서 국망봉에 닿는 산길은 경사도가 비교적 완만하지만 고도를 1,000m 이상 꾸준히 올려야 하기에 체력을 잘 안배할 필요가 있다. 국망봉 갈림길에서 국망봉까지는 왕복 20분이면 다녀올 수 있다. 국망봉에서 소백산 주봉인 비로봉을 거쳐 죽령까지는 백두대간이다. 동남쪽에 자리 잡은 풍기읍과 순흥면을 시원하게 내려다보며 산행할 수 있다.
비로봉에서 제1연화봉을 지나 연화봉으로 이어지는 4.4km 산길은 전형적 능선 종주길로서 완경사의 오르내림이 반복된다. 하산하는 길에 천문대와 중계탑을 볼 수 있다. 연화봉에서 희방사까지는 1시간 30분쯤 걸린다. 희방사에서 주차장까지 1.6km 떨어져 있음을 감안해 하산대책을 미리 세운다. (소백산 국립공원 054-638-7896)

<교통>
◆ 대중교통 이용시 : 서울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동서울종합터미널에서 영주행 버스를, 청량리역에서 풍기행 열차를 이용한다. 소요 시간은 둘다 2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영주시에서는 휴천3동에 위치한 시내버스터미널에서 초암사(국망봉)행을 이용하거나(하루 5회 운행) 희방사에서 영주행이 하루 13회 다닌다. (운행시간 문의. 영주여객 633-0011).
◆ 자가용 이용시 : 자가용의 경우 중앙고속국도에서 풍기 나들목 혹은 영주 나들목을 지나 6번 국도와 931번 지방도를 이용한다. 

<잘 곳과 먹을 곳>
◆ 잘 곳 : 희방사 일원을 포함해 영주 시내와 풍기읍, 순흥면 등에 소재한 업소를 이용한다. 희방사 부근에 희방모텔(638-8000), 소백산관광농원(638-0390)이 있다. 소백산풍기온천리조트(604-1700)는 알칼리유황온천수와 가족물놀이시설 등을 자랑한다. 봉현면에 위치한 옥녀봉 자연휴양림(639-7490)도 쾌적한 환경 속에서 삼림욕하며 하루 쉬어가기 좋다. 한옥숙박체험의 기회를 누릴 수 있는 선비촌(638-6444)도 추천한다.
◆ 먹을 곳 : 풍기읍의 대표맛집 한결청국장(636-3224), 풍기인삼갈비(635-2382), 풍기인삼한우(635-9285), 풍기왕손수타짜장(635-5957) 등을 추천한다. 순흥면의 순흥전통묵집(634-4614), 청다리옛집(633-4289), 선비촌종가집(637-9981)도 오랜 전통에 어울리는 빼어난 맛을 자랑한다.

<볼거리>
◆ 희방사와 희방폭포 : 소백산에서 가장 유서 깊은 골짜기 희방골에 있는 희방폭포는 소백산 남쪽 중턱 850m에 있다. 높이 20m의 희방폭포를 끼고 층계를 오른 뒤, 계곡 옆 오솔길을 잠시 걸으면 희방사에 닿는다. 희방사는 신라 선덕여왕 12년(643)에 두운조사가 창건했다. 월인석보 1, 2권이 보관돼 있었으나 6·25때 소실됐다. 경북 영주시 풍기읍 수철리.
◆ 초암사 : 소백산 국망봉 남쪽 계곡 아래에 의상대사가 세운 조계종 사찰이다. 의상이 부석사 터전을 보러 다닐 때 초막을 짓고 수도하며 임시로 기거하던 곳이다. 부석사를 지은 후 이곳에 다시 절을 세웠는데, 우람한 거석 축대와 주춧돌 등으로 미루어 규모가 큰 절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경북 영주시 순흥면 배점리.



자료제공 _ 월간 사람과 산(글 장보영, 사진 정종원)·진행 _ 배선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