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 CULTURE
[여행]필리핀 보홀 & 민도로 섬
보홀(Bohol)은 필리핀의 숨은 보석이라 할 만한 지역이다. 보라카이, 세부 등 필리핀의 유명 휴양지가 한창 인기를 끌고 있을 때 보홀은 구석에서 조용히 숨고르기를 해 왔다. 이제 서서히 보홀은 특색 있는 자연과 아름다운 바다가 입소문을 타면서 필리핀의 또다른 여행지로 눈길을 끌고 있다.
보홀에 갔을 때 빼놓지 않고 봐야 할 명소로 서슴지 않고 1순위로 꼽히는 것이 ‘초콜릿 힐(Chocolate Hills)’이다. 초콜릿 힐은 보홀의 ‘특산’ 지형으로, 보홀 지역 소개사진에 빼놓지 않고 등장한다. 1268개나 되는 언덕들이 가을이 되면 갈색으로 일제히 물든 장관이 꼭 초콜릿들을 담아 놓은 모양처럼 보인다고 해서 초콜릿 힐이라는 낭만적인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이 신비한 자연 현상에 대해 많은 추측들이 난무하지만, 아직 이 초콜릿 힐이 생성된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이 특이한 지형에 반한 필리핀 지질학협회의 과학자들은 초콜릿 힐을 ‘필리핀을 상징하는 지질현상’으로 지정했다.
봉우리가 한 데 모인 모습을 보기 위해서는 높은 계단을 한참 걸어 올라가야 한다. 저 위에 있는 전망대에 오르니 탁 트인 시야로 보이는 몽글몽글한 원뿔형 구릉들이 끝없이 펼쳐진 모습에 감탄사가 절로 났다. 수많은 언덕들 사이로 언뜻 보이는, 옛날 방식으로 경작된 밭들이 목가적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보홀에서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독특한 명물로 지구상에서 가장 작은 영장류 중 하나라고 일컬어지는 ‘타르시어(Tarsier)’를 꼽을 수 있다. 성인 타르시어의 머리에서 꼬리까지의 몸길이가 불과 13cm정도. 몸통 길이보다 훨씬 긴 꼬리를 빼면 원숭이 자체의 몸은 웬만한 아이의 주먹 정도 크기에 불과하다.
보홀 섬을 떠나면 바로 죽어 버린다는 작고 연약한 이 생물은 - 그래서인지 예전에는 타르시어를 직접 만져볼 수 있었다는데 최근 들어 관람객들이 늘어나면서 만지는 것을 금지하기 시작했다 - 야행성이라 낮에는 도통 움직일 생각을 않았다. 14마리 정도가 있다는 나무들 사이를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구경하다 보니 구석에 사과상자만한 작은 우리가 보였다. 안내원에게 물어보니 태어난 지 한 달 정도 되는 새끼 타르시어란다. 안 그래도 작은 타르시어의 새끼라니! 우리 속을 살짝 들여다보니 솜털 같은 귀여운 원숭이들이 몇 마리 뭉쳐 있었다. 격리시킨 이유를 물어보니 갓 해산한 어미원숭이가 신경이 날카로워 미연의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일정 기간 떼어놓는 거라고 한다.
보홀이 특별한 또 하나의 이유는 아름다운 백사장에 있다. 새파란 바닷물, 야자나무가 고개 숙인 하얀 모래밭은 너무 아름다워 카메라로 어느 곳을 찍어도 ‘작품’이 나온다. 해먹에 누워서 본, 파란 수평선과 맞물린 하늘에는 유달리 입체적으로 보이는 구름들이 떠 있다. 아직까지는 많이 알려지지 않아 사람들이 그다지 눈에 많이 띄지 않기 때문에 휴양지의 고적한 분위기가 더 살아나는 듯했다. 나른한 오후, 그림 같은 바닷가에서의 편안한 낮잠은 ‘천국보다 낯선’ 휴식을 제공하고 있었다.
다이빙은 보홀의 빼놓을 수 없는 매력 포인트다. 예쁜 백사장에서 한 걸음 더 바다로 가까이 다가가면 물 속의 숨겨진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산호와 갖가지 색깔의 열대어들이 헤엄치는 바다속 세상은 현실과 유리된 꿈같은 광경을 선사한다. 보홀이 스쿠버 다이빙에 최적의 장소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전 세계의 다이버들이 보홀을 찾고 있다고 한다.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 철저하고도 완벽한 휴양을 원한다면, 보홀로 떠나 볼 것을 추천한다. 조금이라도 사람들에게 덜 알려졌을 때 와본다면 좀더 온전히 나만이 느낄 수 있는 보홀의 특별한 매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보홀은 그만큼 이상하고 낯선, 그리고 아름다운 곳이다.
예전엔 미처 몰랐었다. ‘7,107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나라’라는 화려한 수식어 뒤에 감춰진 필리핀 여행의 소박한 즐거움을. 아직 우리나라에선 그다지 잘 알려지지 않은 민도로섬. 그곳에서 발견한 ‘휴양지’ 필리핀의 비슷하면서도 다른 야누스적 매력을 공개한다.
민도로는 필리핀 루손섬의 남서쪽에 위치한, 필리핀 제도를 통틀어 7번째로 큰 섬이다. 민도로섬으로 가려면 기나긴 여정을 각오해야 한다. 마닐라에부터 무려 3시간여라는 기나긴 이동시간이 소요되기 때문. 파도가 다소 거칠어, 배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비위가 약한 사람이라면 다소간의 배 멀미 기운을 느낄 법도 하다.
행정구역상으로 민도로섬은 크게 민도로옥시덴탈주, 민도로오리엔탈주 2개 지역으로 나뉘어지는데 이들 중 오리엔탈주 구역에 속하는 사방 비치(Sabang Beach)에 닻을 내렸다. 민도로섬에서 가장 잘 알려진 다이빙 포인트가 바로 사방비치. 여타 지역의 다이빙 포인트들이 대부분 섬에서 배로 최소한 1시간 이상 이동해야 하는 원거리에 위치하는 반면, 사방비치를 위시한 민도로섬의 다이빙 포인트들은 해변과 바로 인접한 곳에서 바로 다이빙 포인트를 만날 수 있어 전세계 다이버들에게 이름난 ‘명소’라고. 민도로섬의 다이빙 포인트는 무려 60여 군데에 달하는데, 이는 면적이 1만여 평방킬로미터에 달할 정도로 꽤 넓은 민도로섬의 규모를 감안하더라도 상당히 많은 편이다.
민도로에서의 한나절 ‘이보다 더 행복할 순 없다’
발가락 사이로 사각대며 밟히는 새하얀 모래알, 시리도록 투명한 바닷물, 그 위에 한가로이 떠 있는 작은 보트…. 필리핀의 풍경은 지극히 휴양지스럽다. 다이빙 포인트가 산적한 혜택받은 섬, 민도로에서는 이처럼 ‘그림같은’ 풍경을 접한다는 것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에 더해, 옛날 방식을 고수하며 살아가는 현지 주민들의 생활 모습까지 덤으로 엿볼 수 있다면 말 그대로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햇살 좋은 어느 날 아침, 주섬주섬 짐을 챙겨 배를 타고 망망대해로 나섰다. 뱃머리가 향하는 곳은 해변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모게따 비치. 화이트 비치, 코코 비치 등 민도로섬의 유수 휴양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명소 중 하나이다. 또한 배를 타고 불과 5분 이내의 바닷속에서 대왕조개를 볼 수 있는 매력 만점의 다이빙 포인트이기도 하다.
양쪽으로 아름다운 풍광의 바다와 열대우림을 끼고 앉아서 느긋이 식사를 끝마쳤다. 든든히 한 끼를 챙겨먹은 후에는 바로 눈앞에 펼쳐진 해변을 산책해도 좋고, 얕은 바닷물 속으로 들어가 가벼운 수영을 즐겨도 좋다. 눈 깜짝할 새 흘러가버린 시간을 아쉬워할 새도 없이, 다시 보트를 타고 사방비치로 복귀했다. 오후에는 사방 비치와 인접한 마을과 등대를 둘러보기로 했다. 높지 않지만 산 속을 거슬러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천상 튼튼한 두 다리로 길을 나서야 한다. 산 속 마을의 모습은 옛 모습에 가까운 시골 풍경이다. 집 바깥에 주렁주렁 걸어 놓은 빨랫감, 대나무와 야자잎으로 엮은 전통가옥, 도르래도 없이 손으로 물을 길어다 먹어야 하는 소박한 우물가. 고개를 돌려 보면 길가에 가로수처럼 흔히 심어져 있는 나무들 위로 바나나, 야자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사방 비치 인근에서 많지 않은 관광 명소 중 하나인 타마라우 폭포를 둘러보기 위해 길을 나섰다. 타마라우 폭포는 사방 비치에서 차로 40분 정도로 다소 먼 거리에 자리잡고 있다. ‘어떻게 갈까’ 고민하다가 반짝 떠오른 해결책은 바로 필리핀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가장 대중적인 교통수단, 지프니(Jeepny)이다.
지프차를 개조해서 더운 열대기후에 알맞게 사방이 뻥 뚫리게 틔워 놓은 지프니에는, 많게는 몇십명의 사람들이 옹기종기 끼어 타기도 한다. 지역별로 구간을 정해 두고 이동거리에 따라 정해진 요금을 받는, 버스처럼 운영되기도 하지만 필요한 경우에는 차 한 대를 통째로 대절하여 원하는 코스에 따라 맞추어 이용하기도 한다. 지프니를 빌리는 데 드는 비용은 이동거리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대략 1,000~2,000페소 안팎. 필리핀의 물가를 감안하면 비교적 높은 가격대이다.
산 넘고 길을 따라 지프니를 타고 달리는 기분은 생각보다 유쾌하다. 에어콘을 트는 대신, 뻥 뚫린 차창을 따라 쌩쌩 들어오는 자연 바람이 드세게 머리칼을 흩날린다. 비포장도로를 따라 덜컹대며 달리기를 40여 분 남짓, 드디어 타마라우 폭포와 조우했다. 10여 미터에 달하는 높이에서 3, 4줄기에 걸쳐서 떨어지는 물줄기가 새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는 모습이 장관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여느’ 폭포와 다르지 않은 모습이지만, 폭포물이 모여 조성된 웅덩이에 자연 풀장을 조성해서 수영장 및 피크닉 장소로 인근 주민들이 즐겨 찾는 ‘명당’이다.
타마라우 폭포 전경을 감상한 이후, 다시 지프니에 올라타고 뿌에르또깔레라로 향했다. 외부에서 드나드는 유동인구 및 규모만을 보자면 사방비치를 웃도는 규모의 항구도시. 꽤 오랜 기간 동안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역사의 흔적이 남아, 스페니시(Spanish) 계통의 ‘뿌에르또깔레라’라는 명칭으로 불리운다. 크고 작은 보트가 빼곡히 정박한 고즈넉한 항구의 풍경은 다이버들이 분주하게 오가는 사방비치와는 또 다른 풍경을 연출한다.
항구 주변에는 꽤 큰 규모의 뿌에르또깔레라 상설시장(Public Market)이 세워져 있다. 총 3층에 걸쳐 정육, 야채, 신선식품 등 다양한 식재료를 판매하는데 그중에서도 인근에서 갓 잡아올린 신선한 생선들이 가득한 수산물 코너가 인기가 높다.
뿌에르또깔레라의 또 다른 명물은 바로 ‘닭싸움’. 소정의 돈을 거는 일종의 도박게임 형태인 닭싸움은 매주 금, 일요일 오후 2시부터 뿌에르또깔레라 닭싸움장에서 개최된다(토요일에는 인근 갈라판 지역에서 개최). 가장 큰 규모의 닭싸움은 일요일에 열리는 경기로, 인근 주민들은 물론 외국인들까지 몰려들어 성업 중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