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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 CULTURE

전동가위를 든 성악가, 바로컷 김지영


전동가위를 든 성악가

BAROCUT(바로컷) 김지영





전동가위, 포도밭 전지작업 2분 만에 뚝딱

자동차부품 제조공장을 운영하던 김지영 씨는 2년 전 겨울, 우연히 KBS 창업오디션 프로그램 ‘황금의 펜타곤 시즌2’를 시청했다. 다양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발명품들 중에서도 유독 그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본선에 진출한 전동 전지가위. 전지작업을 위해 일일이 가지를 가위로 자를 필요 없이 전동톱으로 손쉽게 잘라낼 수 있는 제품이었다. 당시 심사위원들은 “제품은 혁신적이나 상용화가 관건”이라고 평했다. 마침 김 씨의 공장 주변에 펼쳐진 넓디넓은 포도밭이 떠올랐다. 한참을 멍하니 지켜보다 무릎을 탁 쳤다. ‘바로 이거다!’ 하고.
포도농사에서 가지치기는 아주 중요한 작업이다. 나무 하나에도 상·중·하로 가지를 나눠 세 번의 전지가 필요하다. 가지가 자라나면 또 잘라야하니 여간 오래 걸리고 손이 아픈 게 아니다. 그는 포도 작업자로부터 떠오른 아이디어에서 출발해 그라인더 형태의 휴대용 절단기 ‘BAROCUT’(바로컷)을 개발했다. 농민의 일손을 덜어줄 수 있는 획기적인 제품이었다.
“이것은 발명이라기보다는 아이디어 제품이에요. 작동방식은 간단합니다. 버튼 조절형으로, 작은 톱날이 붙어있는 그라인더가 최대속도 15,000RPM으로 돌아갑니다. 기존에는 가지 하나씩 가위로 싹둑 잘라내야 했는데 이 제품을 사용하면 걸어 다니면서 많은 가지를 순식간에 잘라낼 수 있어요. 한 고랑을 2분 만에 전지해냅니다.”
바로컷 전동가위는 포도, 사과, 배, 감, 복숭아, 감귤 등 과수농가와 조경 전지작업, 원예 및 화훼 농가의 접붙이기 등 작물작업에 활용할 수 있다. 생산성은 기존 전지가위 사용에 비해 4~10배 정도 높다. 빠른 속도로 잘라내기 때문에 단단하고 오래 사용할 수 있는 초경날을 사용했다. 손잡이는 400g, 따로 달린 배터리와 모터 무게까지 합하면 1.2kg 정도다. 제품을 실제로 들어보니 매우 가벼웠다. 톱날 부분은 가지를 자르는 부분 이외에는 투명한 플라스틱 뚜껑으로 덮여있어 위험하지 않았다.
“나뭇가지가 튀는 걸 방지하기 위해 원형톱이 돌아갈 때의 원심력을 고려해 배출구멍을 만들었습니다. 톱은 안전커버를 덮어 사용하고, 작업 후 안에 남은 나무 찌꺼기는 커버를 분리해 솔로 털어내면 됩니다.”
 
18만km 일주… 전국 포도밭은 내가 다 알아

“기존에 전지가위를 사용하기 쉽게 개발된 제품들은 꽤 있었어요. 그렇지만 대중화된 적은 없었거든요. 그래서 저는 상용화에 중점을 맞췄습니다. 정말 쓰기 편하고 많이 팔릴 수 있는가. 그것을 알기 위해 전국의 수많은 포도밭을 돌아다녔습니다.”
그는 포도밭을 직접 경험했기 때문에 제품을 확신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개발과 시장조사를 위해 작년 한 해만 자동차로 무려 18만km를 달렸다. 눈으로 보지 않고 판단할 수 없다는 그의 깐깐함 덕분에 그는 전국에 있는 모든 포도영농조합의 리스트도 보유하게 됐다.
“시간도 영업비용도 많이 들어갔습니다. 포도농장에 가서 처음 사장님 만나 뵙고 얘기 나누고 하려면 인사차 작은 선물이라도 들고 가야하고, 전국을 다니며 숙박비, 식비 등 지출되는 것이 많았죠. 포도농사를 관찰하고, 시제품을 들고 가서 사용해보면 농사짓는 분들은 어떤 게 추가되면 좋을지, 어떤 점은 불편한지 조언을 주세요. 그게 개발에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현장의 의견을 반영해 전지가위를 걸어둘 후크걸이와 벨트걸이, 휴대용 가방을 만들었다. 톱날 안전커버와 5단계 각도조절, 2단계 속도조절 기능을 개발해냈고 리튬이온배터리를 활용해 오작동 없이 오랜 시간 작동할 수 있도록 기능을 개선했다. 모터도 전동가위에 맞는 힘과 속도를 맞춰야 했기 때문에 전문가와 오랜 기간수정을 거쳐 제작했다고 한다.
 
성악가이자 ‘억’ 소리 나던 장사꾼

창업가 김지영 씨의 또 다른 타이틀은 성악가다. 계명대 성악과를 전공해 10년간 구미시립합창단과 고등학교 교사로도 활동했다. 합창단에 참여하게 되면서는 주2회 활동을 제외하고 나머지 시간을 활용해 10여 년간 다양한 사업을 펼쳤다. 의류 유통, IT 제조, 자동차 부품 제조, 시계 판매까지 창업 분야도 각양각색이었다. 그 중 가장 잘했던 건 유통이었다.
“대형 온라인쇼핑몰에 잘 팔릴 것 같은 제품을 떼어와 판매를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시계를 유통했는데 하루에 10개씩만 팔아도 한 달에 300만원씩 수익이 들어왔어요. 시계 다음으로 판매할 제품으로는 회전률이 더 좋은 의류를 선택했습니다. 계절별로 디자인별로 다양한 제품을 만들어 팔 수 있잖아요. 그 때 대구 서문시장 동산상가에 사무실을 차렸어요. 빅사이즈만 전문으로 팔기도 했습니다. 제일 많이 팔릴 땐 하루 1억 매출도 올려봤어요. 쇼핑몰 MD가 매일 제게 전화를 했어요. 더 팔 거 없냐고요.”
한편 사업을 더 크게 해보고 싶던 욕심에 IT 제조에 뛰어들 때는 10억 이상의 손해를 보기도 했다. 이후 자동차부품 제조업을 거쳐 전지가위 출시를 앞둔 지금은 이미 일본과 연간 150억 규모의 MOU 체결을 성사시켰다. 그야말로 억 소리 나는 사업의 흥망성쇠였다.

 
성악과 인연으로 유럽시장 공략까지

그는 본격 해외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지난겨울에는 계약을 위해 이탈리아, 독일, 네덜란드, 벨기에, 스위스, 오스트리아, 슬로바키아를 다녀왔다. 
“제품 개발단계부터 국내시장과 더불어 해외시장을 진출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유럽은 유명 와인 생산국이 많아 포도밭이 많아요. 실제로 포도밭 규모는 어떤지 들여다보고, 전지가위를 어떻게 만들어야할지 사장님들의 의견을 들어봤습니다.”
언어의 장벽은 학창시절 성악과 선후배와 성악활동으로 알게 된 지인들을 통해 수월하게 극복할 수 있었다.
“정말 놀라운 게 성악으로 맺어진 인연이 바로컷 해외수출에 엄청난 도움이 됐다는 것입니다. 유럽에 진출한 성악가 친구들이 많았는데, 한국에 들어오면 선물로 꼭 와인 한 병씩을 사왔어요. 그걸 보고 유럽 포도밭에 진출해야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오른 거예요. 유럽 시장조사를 할 때는 각 나라에 있는 지인들에게 통역을 요청했어요. 그 나라 언어로 번역한 제품설명서만 하나 들고요. 그렇게 유럽의 수많은 농장과 공구유통상을 찾아 다녔어요.”
반응은 어디든 좋았다. 독일의 한 공구마트에서는 각 가정집의 정원에 맞는 공구를 제작해 달라는 요청도 들어왔다. 이후 언론 인터뷰로도 알려지게 된 그는 유럽뿐만 아니라 캐나다, 터키, 뉴질랜드에서도 러브콜을 받았다. 조만간 미국 시장도 진출할 예정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건포도, 북쪽지역의 아이스와인은 유명하잖아요. 제가 우연히 TV에 나오는 수백만 평의 포도밭을 봤어요. 거기 농장의 전지작업도 100% 기계작업이 아니라 마지막에 손으로 해야 할 작업들이 많았어요. 그 모습을 보니 심장이 벌렁벌렁하는 겁니다. 내가 가야할 곳이 바로 저기다! 하고요.”
전지가위 하나 들고 세계 곳곳을 개척하고 있는 창업가 김지영 씨. 그는 지난 5월 구미시립합창단의 공연을 마지막으로 잠시 유니폼을 벗어던지고 공구사업에 올인하게 됐다. 업계 정상을 위한 목표로 회사 이름도 ‘산마루’로 지었다. 산 정상에서 만나자는 뜻이다.

글·사진 _ 장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