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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 CULTURE

손으로 직접 죽비 만드는 죽비장인 류시상


한밤중 죽비소리 눈물 흘리고
 
죽비장인 류시상





명품 죽비, 불교계의 샤넬 

“죽비란 내려칠 때 나는 소리로 그 역할을 하는 물건입니다. 늘 충격이 가다 보면 언젠가는 갈라지고 터집니다. 처음 죽비를 만들 때 저는 터지지 않는 죽비를 만들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담담히 자신의 죽비에 대해 설명하는 류시상씨의 얼굴에 자부심이 느껴진다. 그는 몇 년을 고생한 끝에 20년은 거뜬히 사용할 수 있는 죽비를 만들어냈다. 죽비의 쓰임은 다양하다. 명상의 시작과 끝을 알리며 스님들은 공양식을 할 때 죽비의 소리에 따라 행동을 통일한다. 수행자가 명상 도중 졸거나 자세가 흐트러질 때에도 수행자의 어깨 부분을 내려쳐 소리 내어 알린다. 죽비소리는 큰 소리를 내지만 맑고 깊은 소리를 내어 불쾌감을 일으키지 않는다. 
“죽비의 수명은 보통 2년 내지 3년입니다. 자신의 몸으로 소리를 내는 물건이기에 수명이 길지 않죠. 현재 시중에 대나무로 만들어 판매되는 죽비 대부분이 중국산입니다. 심지어 대나무가 아닌 편백나무를 기계로 깎아 만든 죽비도 있어요.”
중국산 죽비는 품질면에서 류시상씨의 죽비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 류시상씨의 죽비는 중국산에 비해 고가의 제품이다. 그러나 그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제대로 된 죽비 재료부터 남달라 

죽비와 같은 대나무로 만든 제품을 죽물이라고 하는데 이런 죽물산업은 근대화를 거친 이후 플라스틱 제품에 밀려 급격하게 쇠락했다. 한반도에서 자라는 대나무는 왕죽(왕대), 맹종죽(죽순대), 분죽(솜대), 오죽, 해장죽(시누대), 조릿대 등이 있다. 이 중에서 류시상씨는 오직 분죽이라는 종류의 대나무만을 사용한다. 분죽 중에서도 죽비에 어울리는 대나무는 마디 수가 많고 속이 얇은 것을 최고로 친다. 제대로 된 죽비를 만들기 위한 재료확보부터가 힘든 일이다. 
“죽비를 만들기 위해 대나무 껍질을 벗기는 일부터 과정마다 비법이 있습니다. 대나무를 채취하는 것도 시기를 골라야 합니다. 대나무 몸 안의 수분이 가장 적은 12월에 대나무를 채취해야 해요. 2,000평의 대나무 밭에서 죽비에 적합한 대나무는 1 년에 불과 300개에 불과합니다. 좋은 재료를 구하는 것은 나만의 노하우죠. 이후 중요한 과정이 건조 과정입니다. 20일가량 건조실에서 말리는 과정을 가진 후에 죽비 제작에 들어갑니다.”
잘 터지지 않는 죽비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예사롭지 않다. 터지지 않도록 소리 나는 끝부분을 넓적하게 퍼지도록 하고 거기에 톱밥을 메웠다. 1993년부터 2000년까지 약 7여 년 동안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알게 된 노하우다. 거기다가 호기심 많은 사람이나 아이들이 죽비를 끝까지 벌려 손잡이까지 쫙 갈라지는 경우가 발생하자 대나무 못을 박아 넣었다. 까다로운 죽비 제작에 쓰이는 공구는 모두 그가 직접 만들었다. 톱과 칼 그리고 작은 송곳 같은 드릴이 전부다.  
 
하반신 마비딛고 죽비제작

류씨는 본래 손재주가 좋은 편이었다. 기계설비나 가구회사에서 일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생각하지도 못 했던 불운이 닥치게 된다. 서른 살 때 큰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다. 무려 1년 8개월 동안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퇴원 후에도 10미터도 걷지 못할 만큼 하반신에 마비가 왔다. 평소 태권도나 합기도 등 무예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절망했다. 절망 속에서 불교무술을 하는 적운 스님의 인연으로 경주의 한 암자에 들어가 100일 기도를 드리게 된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다. 그러던 중 기도가 끝난 후 스님들이 짚단을 태우며 대나무를 넣었다 빼었다 하는 것을 보았다. 
“스님의 말에 따르면 대나무를 불에 말려야 죽비가 터지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렇게 하면 껍데기만 타고 속은 그대로입니다. 얼마 못 가서 터져 버리지요. 안타깝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고 그래서 큰스님께 터지지 않는 죽비를 만들어 보겠다고 했죠. 그런데 터지지 않는 죽비를 만드는 일이란 보통일이 아니더군요.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몇 년을 고생했는지 모릅니다. 7년이 지나자 부끄럽지 않은 죽비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류시상 씨가 만든 죽비는 전국에서 볼 수 있다. 해인사는 물론 통도사, 부석사 등 전국의 이름 있는 사찰에서는 류 씨의 죽비가 사용된다. 중국산에 비해 비싼 가격을 지녀도 죽비의 품질을 한눈에 알아보는 스님들에게는 귀한 보물이다. 소리도 확연히 다르다. 중국산에 비해 맑고 울림이 강하면서 소리가 크지만 부드럽다. 그러나 죽비 제작만으로는 곤궁한 생활을 벗어날 수 없다. 들이는 공이나 재료값에 비하면 인건비도 건지기 어렵다. 

 
깊은 밤 죽비 소리 눈물 흘려 봤나

한 때 죽음을 생각했을 정도로 깊은 절망에 빠졌던 그였지만 죽비를 만들면서 일어설 수 있었다. 죽비를 만든다고 해서 큰 돈을 벌 수 있는 시대가 아니지만 그에게 있어 죽비 제작은 삶의 이유로 남았다. 
“이따금 제가 만든 죽비의 소리를 한 밤중에 들으면 눈물이 나곤 합니다. 제 마음에 있는 아픔과 슬픔을 만져주는 것 같습니다. 제가 만든 죽비는 기계로 찍어내는 죽비와 달리 저마다 소리가 아주 미세하게 다릅니다. 그렇게 정성을 들여 만든 죽비가 주인들에게 전해 질 때면 자식을 보내는 마음이 들어 서운하고 그 소리가 그립기도 합니다.”
소설가 김훈은 “악기의 숲 무기의 숲”이란 글에서 이랬다. 인간의 시선이 대나무의 속 비어짐에 닿으면 피리를 만들고 대나무의 단단함에 닿으면 죽창을 만든다고. 류시상씨는 삶과 죽음 사이에서 불에 달구어지는 대나무를 보았고 구도자들의 수행에 쓰이는 죽비를 오늘도 만들고 있다.

글·사진 _ 한상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