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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 CULTURE

삼흥공구 삼남매의 좌충우돌 공구이야기

 
 



철없는 형동생에서 동업자로…
이러다 싸움 나는 거 아냐?

오전 6시 20분, 전라북도 익산시 인북로 삼흥공구종합상사 인화동 지점. 언제나처럼 우리는 이 시간에 문을 연다. 빠른 시간도 아니다. 부모님이 운영하는 평화동 본점의 개점 시간은 새벽 5시 반. 이 시간은 30년 넘게 공구상을 운영해 온 아버지의 철학이자 신념이다. 그에 비하면 우리는 아직 게으른 편이다.
부모님 가게에 비하면 한 시간이나 늦은 오픈 시간인데도 아직 주변은 컴컴하고 조용하다. 차분하게 가라앉은 주변의 공기. 문을 열고 가게 앞에 순서에 맞춰 가지런히 물건을 꺼내놓는다. 새벽 시간, 진열을 할 때 느껴지는 그 청량한 공기는 항상 좋다.
인화동 지점을 처음 오픈한 것은 작년 11월 말. 평화동에서 30년 넘게 아버지 어머니가 운영해 온 삼흥공구의 첫 지점이다. 본점에서 부모님을 도우며 일을 해 온 우리 삼남매가 얼떨결에 인화지점을 담당하기로 했다. 공구상 일을 그저 돕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우리 셋이서 책임지고 경영을 해나가야 하는 것이다.
막무가내, 새로 오픈한 지점
너희가 알아서 해 봐!
“뭐라구요? 저희가 가게를 맡아서 장사해 보라구요?”
부모님이 우리에게 가게를 맡긴다고 폭탄선언을 했을 때 우리의 반응이었다. 사실 처음에는 새로 건물을 올린 인화동 지점으로 본점 자체를 옮기려는 것이 우리 가족의 계획이었다. 하지만 부모님은 장사가 안 되는 것도 아니고, 또 그 자리에 익숙한 단골손님들이 많아 아깝다는 마음이 컸던 모양이다. 인화동 건물이 거의 다 올라갔을 때쯤, 사장님(아버지)이 말씀하셨다. “인화동 지점은 너희 셋이 맡아서 해 봐라”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었다. ‘엄마 아빠 없이 우리끼리 공구상을 운영하라고? 
그것도 작은 공구상이 아닌 이 큰 공구상을?’ 커다란 부담감이 몰려왔다. 하지만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사장님의 의견을 따르지 않을 수 없는 일. 부담 속에서도 우리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본점에서 부모님과 함께 일할 때는 부담될 것이 없었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물어보면 되니까. 하지만 본점과는 거리가 좀 있는 이곳에서는 전화로 물어본다 해도 한계가 있다. 특히 물품의 판매가격 문제. 가격 체크를 해 둔다고 해 놓은 물건들이지만 아직 매장 정리가 덜 된 상태이다 보니 가격 체크가 빠진 물건들이 많다. 또 공구에 대해 익숙하다는 우리들이지만 실제 수많은 공구에 대한 지식은 갈 길이 멀다. 


 
사장 좀 불러와라…
우리가 사장 맞다니까요?!

이제 지점 일을 시작한지 두 달도 채 안 되었지만 당황스러웠던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다. 혹시 숨은그림찾기도 아닌데 그림만 보고 공구 찾아본 적 있으신지? 한 번은 나이 지긋한 손님이 가게에 들어와 볼펜으로 그린 그림 하나 덜렁 우리 앞에 내놓고는 찾아 달라셨다. 공구의 이름도 몰라 브랜드도 몰라 그래도 무작정 찾아달라던 그 분.
“혹시 말씀하시는 공구가 이건가요? 아니면 이거?”
여러 가지 제품을 찾아와 보여드렸지만 손님의 반응은 신통찮았다. “이런 거 말고, 이렇게 이렇게 쓰는 거 있잖여 왜.” 천신만고 끝에 원하는 공구를 찾아내 드리자 환한 미소를 보이며 좋아하시던 손님. 기분좋았던 건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뿌듯한 경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처음 우리 가게를 찾은 손님들 가운데는 어린 우리들을 보고 못미더워하는 분이 태반. 심지어 매장에 와서 ‘사장님 어디 계시냐, 사장님 좀 불러 와라’ 하는 손님들도 여럿. 아니, 저희가 사장이라니까요?! 청년 공구인의 이런 애환에 대해서는 다음 번 연재에서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보겠다.
 
쉽지만은 않았던 지점 오픈…
공구계의 다이소가 되는 그날까지!

앞에서도 말했듯, 익산시 평화동에서 오랜 동안 장사를 해 왔던 삼흥공구는 얼마 전 인화동에 지점을 열었다. 고객들의 원스톱 쇼핑이 가능하도록 각종 수공구와 전동공구부터 철물, 건재, 배관부속까지 다루는 품목을 확대했고 매장 옆에 창고를 두어 여러 제품의 부족함 없는 공급을 계획하고 있다.
말로는 이렇게 간단하게 정리가 되지만 그 준비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창고에 있던 물품들을 다 옮겼고, 장사를 하면서 진열대도 직접 짜고 물품 정리와 함께 자질구레한 것들의 청소도 동시에 진행 중이다. 오늘도 고객들이 찾는 품목이 없다면 바로바로 적어 구해가며 ‘인화지점에 온 손님들이 찾는 모든 품목을 준비하겠다’는 마음으로 일하고 있다.
우리 삼흥공구종합상사의 목표는 ‘대한민국 공구의 시작’이라는 가게의 심벌 문구처럼 우리나라 공구계의 다이소가 되는 것이다. 미국의 하버 프레이트 툴스나 일본의 모노타로와 같이 많은 분들이 ‘공구’하면 고유명사처럼 삼흥공구 또는 SHTOOL이 떠오르도록 하는 것이 우리 삼남매의 목표다.
우리에게 인화동 지점을 맡긴 것이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첫 걸음이라던 사장님. 하루가 다르게 정리되어가는 매장의 모습을 보며 우리 공구삼남매뿐만 아니라 사장님 사모님, 아니 부모님께서도 만족해하시는 눈치다. 자, 이제 시작이다. 삼흥공구종합상사 인화동 지점의 본격적인 운영도, 그리고 우리 삼남매의 왁자지껄 공구 이야기도. 열렬한 기대와 관심을 부탁드린다.





 공구청년 맏이 김남현  
난 첫째 공구청년 김남현이다. 공구청년이라는 것은 나의 블로그 닉네임이자, 사람들에게 나를 소개할 때 가장 설명하기 쉬운 단어이기도 하다. 현재 삼흥공구에서 김남현 과장으로 일을 하고 있는데, 삼남매 중에서는 일을 한지 가장 오래됐지만 아직도 신기한 것이 많다. 군대 다녀오고부터 제대로 공구 일을 시작했으니 이제 5년째. 그래도 적지 않은 시간 일을 했다고 생각하는데, 인화지점을 열게 된 지금은 부모님과 일할 때와는 다르게 우리가 직접 결정해야 한다는 것에서 아직 한참이나 미숙하다. 계속해서 배워 가는 과정이다. 
앞으로의 연재에서는 우리처럼 어린 나이에 공구상에 입문한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 힘을 낼 수 있는 이야기를 실어 보려 한다. 또한 오랫동안 공구상을 운영해 오신 선배님들께는 ‘그래 나도 그랬었지’ 하며 예전을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드리려 한다.



 공구소녀 둘째 김아름 
난 둘째 공구소녀 김아름이다. 공구소녀는 내 블로그 닉네임. 작년 2월, 대학을 졸업한 후 부모님의 매장에서 김아름 대리로 일하고 있다. 특정한 계기가 있어 공구상에서 일해야겠다는 확신을 가진 것은 아니다. 대학시절 강의가 없는 날이나 토요일엔 부모님의 일을 도와드렸는데,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공구 일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됐다. 아마 항상 부지런하게 사시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며 자연스럽게 끌렸던 것 같다. 
삼흥공구 인화지점의 가게문이 열리고 난 후, 나는 전산 업무를 직접 해 보면서 경리 쪽 일을 배워가고 있다. 또 틈날 때마다 우리 공구쇼핑몰도 관리한다. 아직은 완벽한 쇼핑몰이 아니지만 삼남매가 열심히 사진작업도 하고 소비자분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매일같이 애쓰고 있다. 앞으로 여성 공구인들이 공구상에서 일하며 한번이라도 경험할 법한 이야기를 연재하려 한다.




 공구알리미 막내 김남준 
난 삼남매 중 막내 공구알리미 김남준이다. 현재 대학을 다니며 삼흥공구 일도 함께 하고 있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아버지가 A/S출장 다니는 현장을 따라다녔다. 그러면서 공구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매장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고등학교 2학년 시절. 그 때부터 지금까지 3년 조금 안 됐다. 지금 내 나이 21살. 아마 전국 공구상 직원분들 가운데 가장 어린 축에 속하지 않을까? 지금은 사장님(아버지)의 공구 A/S기술을 배워 가며 공구상 일을 익혀나가고 있다. 
나는 내년 6월 군 입대를 앞두고 있다. 그 전까지 매장 일을 하며 겪었던 다양한 경험에 대해 연재할 것인데, 혹시 군대에 있을 때에도 우리 삼남매의 좌충우돌 이야기가 계속 연재된다면 군대에서 사용하는 공구 이야기 등을 재밌게 써서 연재할 예정이다. 앞으로 완벽하진 않지만 서로를 보완하여 부족하지 않는 삼남매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