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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 CULTURE

신입사원 이상희의 이중(?)생활


낮에는 공구인, 밤에는 연극배우

신입사원 이상희의 이중(?)생활





공구회사 근무하는 해외마케터
취미는 연극… 공구로 소품·무대제작, 홍보까지
 
크레텍 해외마케팅팀 이상희 씨는 해외 공구 브랜드의 상품 수입과 신상품 개발을 담당하고 있다. 대학 졸업하기 전 취업해 근무한지는 1년이 조금 넘었다. 상품의 재고를 적절하게 유지, 관리하고 외국의 좋은 브랜드를 발굴해내 품질개선, 홍보활동 등을 통해 국내 공구시장에 유통하는 일을 한다. 유통업의 MD 역할이나 다름없다. 수시로 재고를 확인하고 얼마나 수입해야할지, 브랜드의 품질에 하자는 없는지, 가격은 얼마가 적당할지, 어떻게 홍보해야 잘 팔릴지 등을 고민하고 판매 추이도 분석한다. 그래서 그의 하루 일과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꽉 차있다. 자잘한 회사 업무까지 하다보면 어느새 눈 깜빡할 사이에 근무시간이 끝난다. 점차 맡고 있는 브랜드와 업무가 늘어나면서 누구보다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는 이상희 씨. 그의 일과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공구 일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취업 시즌에 채용공고를 우연히 보게 됐어요. 사실 공구 쪽은 전혀 몰랐는데, 업무가 해외마케팅이라 배워보고 싶었어요. 무엇보다 저희 집과 가까워서 출퇴근하기도 좋을 것 같았고요.
회사 생활에 어려움은 없나요?
대학을 나오자마자 첫 사회생활과 회사생활을 이곳에서 시작했어요. 겪어보지 못했던 환경에 어려움도 많았죠. 사람들과의 관계도, 업무도 배워가야 하니까요. 공구도 잘 몰라서 처음엔 힘들기도 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아는 것도 많아지고 적응도 되는 것 같아요.


 
어릴 적 꿈도 이 분야였나요?
사실 고등학교 때 연극·영화 쪽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래서 고등학교 때 연극영화과에 진학하고 연극을 배웠어요. 대구서 서울로 연극학원을 다니게 됐죠. 그런데 부모님께서 중도에 반대를 하셨고, 결국 그 다음으로 생각했던 전공인 경제학과로 진학하게 됐어요. 
아쉬움이 있었겠네요.
그래서 대학 들어가서 동아리활동을 시작으로 취미생활 삼았고, 지금도 취미로 연극 활동을 하게 됐어요. 
일하면서 취미활동까지, 대단한데요.
회사 가까운 곳에 극단이 있어서 보통 주중 2번, 주말 2번 연기 연습을 하러 가요. 무대가 임박해지면 두 달 정도는 거의 매일 가다시피 하고요. 회사 일에 바빠서 야근을 하다보면 못갈 때도 있어요. 연기 연습하는 날은 저녁이 기다려져요.
어떤 극단인가요?
‘에테르의 꿈’이라고 고등학생, 대학생, 직장인 등이 주로 모여서 취미로 배울 수 있는 극단이에요. 연극영화과 나오신 전문 선생님들이 연기 지도를 해주시고, 10명 정도의 단원들이 실제 극장에서 공연까지 펼쳐요. 작품선정부터 연출, 연기, 기획, 무대제작, 소품준비, 포스터 제작 등 홍보까지 단원들이 다 하고요. 총 6개월 정도의 준비과정을 거치고 실제 무대에 올라서서 공연까지 해볼 수 있어요.
지금 준비하고 있는 공연의 내용은?
2005년도에 개봉된 영화 ‘내 생에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을 각색한 연극이에요. 이 영화 별명이 한국판 ‘러브액츄얼리’에요. 서로 인연을 지닌 네 커플이 옴니버스 형식으로 나와 서로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거예요. 아픈 사연을 가진 한 사람이 또 다른 아픈 사연을 가진 사람과 만나서 서로 아픔을 공유해가며 치유한다는 내용이거든요. 저는 배우 주현이 펼쳤던 할아버지 역할을 맡았어요. 할아버지는 꼭 한 번 해보고 싶었던 역할인데 이번 기회에 연기해보게 되었어요. 미래의 제 모습을 미리 체험해보는 기분이에요.
무대제작이나 의상 준비도 직접 다 하시나요?
네. 연기하는 팀원들이 각자 조명, 음향, 소품제작, 의상담당, 무대제작 등을 맡아요. 저는 이번에 무대제작을 맡게 되었어요. 공구회사에 근무해도 공구를 직접 사용해본 적은 없었는데, 이번에 무대를 꾸미면서 처음 사용하게 되었네요.

 
연극하러 가는 날은 업무도 잘 돼
웃고 울다보면 스트레스 풀려요
 
어릴 적부터 연극 영화를 좋아했던 그는 처음엔 영화를 좋아해 영화제작자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그런데 영화를 공부하면서 영화의 시작, 연극을 알게 됐다. 연극은 카메라가 발명되면서 영화로 발전하게 된 것. 그는 부모님의 반대로 연극영화과 진학을 포기했지만,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영화동아리에 들어가 영화를 제작해 공모전에 출품하기도 했다. 아마추어 영화제작자들은 혼자 연기자, 감독, 스탭의 모든 역할을 한다. 1인 제작자로서 역할을 하면서 직접 연기도 하게 됐다. 순간, 그는 온몸에 전율이 오는 것을 느꼈다. ‘이거다!’ 하고. 그는 연기를 할 때 자신 안에 갇혀있던 무언가를 꺼낼 수 있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왜 연극이 좋았어요?
입시 준비할 때 선생님들이 제게 “왜 연극하려 하니”하고 물어보셨어요. 그때마다 저는 
“연기를 하면 온 몸에 죽어있던 세포가 깨어나는 것 같아요”라고 대답했어요. 어떤 사람의 모습이든 스스로 표현해낼 수 있는 게 좋아요. 회사생활 하면서 평소에는 내 감정을 상대방에게 마음껏 드러내지 못하잖아요. 그런데 연극은 웃는 역할이 있으면 마음껏 웃어보고 우는 연기는 펑펑 울기도 하고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게 가장 큰 매력이에요.
연기활동이 일할 때도 많은 도움이 되나요?
연극은 처음부터 끝까지 팀워크로 이뤄지잖아요. 아무래도 회사 일도 부서사람들과 같이 하는 팀 업무니까 손발이 잘 맞아야 하는데, 연극 활동을 하면서 경험한 것들이 회사에서도 이어지는 것 같아요. 저 혼자만의 욕심으로는 다 못하는 일을 서로 도와가면서 할 수 있고, 같이 맞추고 호흡하고. 연극이랑 비슷해요. 개인적으로는 회사 업무를 깔끔하게 마치고 연습하러 가면 기분이 좋아서 연극하는 날은 좀 더 업무에 집중하게 되고요. 연기 연습하면서 스트레스도 풀려요.
일하다가도 연기 생각 좀 하죠?
네(웃음). 요즘은 TV를 보거나 길거리를 지나가면서 할아버지가 보이면 유심히 관찰하고 행동이나 말투를 묘사해보려고 노력해요. 할아버지도 성격이 제각각이잖아요. 극중 캐릭터에 맞게 대본을 읽으며 평상시에 어떤 이미지로 연기해야하는지 고민하죠. 이번 캐릭터는 자린고비에 남에게 얄짤없는 영감인데 한 커피숍 여주인을 만나 사랑하게 되면서 물질적인 것만 밝히던 자신의 모습을 깨닫고 변화해가거든요. 짠돌이의 느낌을 잘 살리면서도 느릿느릿하고 뻔뻔한 할아버지의 모습을 담아내야 해요. 그래서 요즘 할아버지에 빠졌어요.
캐릭터를 많이 분석하다보면 회사 팀원들의 성격도 빨리 알아낼 것 같은데요.
네. 그러니까 오히려 회사에서 눈치가 더 생기는 것 같아요(웃음).


 
첫 연기 떨리는 감정 잊지 못해
연극도 공구 일도 놓칠 수 없는 ‘내 삶의 힘’
 
무대에 올라설 땐 어떤 기분이 드나요?
무대 전에는 많이 떨려요. 그동안 노력해왔던 것들을 한 번에 선보여야 하니까 더 잘 해야겠다는 긴장감이 들고 걱정도 돼요. 그런데 공연 시작하고 나서는 다른 생각이 하나도 안 들어요. 연극에만 집중하게 되거든요. 그 땐 관객도 안 보여요. 무대 끝나고 나서 조명이 다 켜지고 나면 관객들이 웃으며 환호하는 모습이 보여요. 다 끝내고 나면 뿌듯하죠. 그런데 끝나고 나서는 ‘내가 이 공연을 언제 또 해볼까’, ‘좀 더 잘할 걸’하는 아쉬움도 들어요. 딱 시원섭섭한 마음이에요.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은?
20살 때 처음 연기했던 공연이요. 남녀의 심리상태를 표현해 인기를 끌었던 책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를 연극으로 각색한 무대였는데요. 극중 캐릭터의 이름은 없고 남자1, 남자2 
이런 식이에요. 저는 남자2 친구 역할을 했어요. 대사가 딱 두 마디밖에 없었어요. 그래도 남들과 똑같이 몇 달 동안 준비했죠. 연극은 혼자 하는 게 아니라 상대방과 호흡을 맞춰야 하잖아요. 남자 주인공의 서포트 역할이거든요. 단역이니까 연기를 과하게 해도 안 되고 주인공을 잘 받쳐주는 역할을 해야 해서 그 부분에 최대한 신경을 써서 준비했던 것 같아요. 당시 어린나이인데다 첫 무대라 긴장을 많이 했어요. 연기를 잘 못해서 연출 선생님께 많이 혼나기도 했어요. 그러니까 겁나서 더 긴장했거든요(웃음). 그랬던 기억이 있어요.
가장 좋아하는 영화나 연극은?
봉준호 감독의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를 좋아해요. 아파트 경비실에서 경리 일을 하는 주인공 박현남(배두나)과 그 아파트에 사는 시간강사 고윤주(이성재)의 평범한 일상을 카메라에 오목조목 담아내 재미있게 만든 영화거든요. 아파트 주민이 키우던 강아지 실종사건이 일어나면서 인물들이 서로 엮이게 되고, 그 일상을 관찰하는 내용이에요. 보통 일상은 지루하고 재미없잖아요. 그런데 남의 시선으로 보면 흥미로울 수 있어요. 그게 영화나 연극의 매력인 것 같아요. 우리 일상도 얼마든지 재미있는 이야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 게 영화의 매력이죠.
나중엔 어떤 캐릭터 연기를 해보고 싶나요?
이런 거 얘기해도 되나? (웃음) 사이코패스요. 인격적으로 장애가 있는 캐릭터를 그 사람이 되어 연기한다는 게 정말 어렵거든요. 원래 기분이나 상태를 분석해서 연기해야 하는데 사이코패스라는 공감능력도 감정도 없는 캐릭터를 감성을 가지고 연기해야 하잖아요. 아이러니하기도 하고요.
공구를 연극으로 풀어본다면?
공구라는 도구에 의미를 부여해서 시나리오를 쓰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 어떤 상징물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장르들이 꽤 있거든요. 얼마 전 드라마 ‘도깨비’를 보고 사람들이 ‘도깨비에게 꽂힌 검을 뽑아낼까’, ‘검의 의미는 무엇일까’ 관심이 많았잖아요. 그런 것처럼 공구도 스패너, 펜치 등 어떤 물건을 상징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시나리오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해요.
서로 다른 공구 일과 취미,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지금처럼 일과 취미를 계속 병행하고 싶어요. 회사에서는 공구 수입 업무를 잘해 인정받고, 소비자에게는 좋은 가격에 좋은 품질의 공구를 공급해드리고 싶어요. 연극 활동으로는 지금 준비하고 있는 공연 잘 마치고, 기회 될 때마다 또 다른 작품에 도전할 거예요. 제 삶에 꼭 필요한 것이 연극이거든요.

글_장여진·사진_황인모
장소협조_극단 에테르의 꿈(대구 대명동 소재 / www.dreamof-ethe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