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을 배달합니다
개그맨 전유성 한국산업용재협회 서경지회 초청 강의
고정관념 깨는 것 어렵지 않죠
고정관념을 어떻게 깨는건 생각해보면 쉬워요. 제가 술을 좋아하는데요. 단골이 된 술집이 있었어요. 그곳에 주인아주머니는 한 사람당 딱 소주 한 병만 파는 분이셨어요. 그 누구도 그 규칙을 어긴 사람이 없었는데 저도 그 규칙 깨는 사람이 있을까 하고 가보다가 단골이 되었어요. 그런데 어떤 젊은 남자가 소주 한 병 마시고 더 시켰어요. 주인아주머니는 당연히 소주를 안주죠. 젊은 남자가 자기 주량이 소주 5병이라고 하면서 실랑이를 해요. 결국 그 남자가 욕을 하면서 나가더라고요. 그런데 주인아주머니가 담배를 피우면서 하는 말씀이 “쪼잔한 놈. 밖에 나갔다가 들어오면 한 병 더 줄 수 있는데.”라고 하는 겁니다. 이때 제가 느낀게 많아요. 이처럼 고정관념을 깨는 것은 그렇게 멀지도 어렵지도 않은거죠. 그런 고정관념을 깨다보니 경북 청도에 코미디 극장을 짓게 되었습니다.
발상을 바꾸니 차별화가 되더라
저는 지금 경북 청도에 살고 있습니다. 다들 물어요. 고향이냐고. 고향이 아니라고 하면 아는 사람 있냐고 묻고. 아는 사람도 없다고 하니 왜 거기서 코미디 극장을 만들었냐고 묻죠. 이야기 하면 긴데요. 한참 방송을 할 때인데 난 나보다 어린 사람이 나를 짜르는 것이 그 당시에 좀 두려웠어요. 그래서 더 늙기 전에 내가 먼저 공중파 방송 프로그램을 관둬야겠다 생각을 했죠. 그래도 개그맨 중에 제가 제일 선배인데 내 이름이 들어가는 프로그램 한번 하고 그만둬야겠다. 그런 생각은 했어요. 그런데 그 기회가 잘 안오더라고요. 제가 말이 어눌하고 느리잖아요. 결국 대타로 몇몇 프로그램을 진행 하다가 마침내 제 이름 달린 라디오 프로그램 ‘지금은 라디오시대’를 2년 하게 되었고 꿈을 이루고 방송 일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지금 고백하지만 저는 말하는 것이 어눌하고 버벅이는 편입니다. 실제로 방송이나 공연용 원고를 써주는 일로 연예계 생활을 시작했어요. 김형곤 같은 당대의 개그맨이 사람들을 웃겨줄 때 저는 옆에 서 있는 조연만 했었거든요. 최양락, 서세원 얼마나 웃긴 사람들 입니까. 사실 저는 게임이 안되요. 그나마 저는 그 코미디 원고를 썼기에 그들이 사람들을 웃길 때 옆에 붙어 있어 얼굴이라도 알렸죠. 비슷한 이야기로 제가 방송 초기에 어떤 역할을 주로 했느냐면 아저씨나 할아버지를 주로 했어요. 저도 20대 때 데뷔했는데 왜 청춘물 안하고 싶었겠어요. 하지만 저는 나의 재능을 아니까. 피디 찾아가서 할아버지 역할, 아저씨 역할을 하겠다고했죠. 차별화를 한거죠. 그랬더니 남들은 1개 방송국에서만 일을 할 때 저는 3개 방송국에서 다 일을 하게 됐어요.
농어촌분들이 좋아하는 코미디 극장
아무튼 전 개그맨이지만 다른 개그맨만큼 못 웃겼어요. 원고를 썼기에 옆에 서 있기나 하고 받쳐주는 조연 역할 정도로 만족했죠. 그런데, 제가 여행을 좋아해서 여행을 다니다 보면 텔레비전에 나오는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농어촌에 계신 분들이 저에게 호의를 많이 베풀어주셨어요. 정말 제가 고맙게 대해주신 분들이 많아요. 자신이 정성껏 담근 술을 주기도 하고 오징어잡는 배에 태워주기도 하고요. 그래서 제가 “코미디 프로 좋아하시냐”라고 물어 보면 다 좋아하신다는 거예요. 그래서 “어디서 보셨습니까”라고 물어보면 전부 텔레비전을 통해서만 보셨다고 하십니다. 코미디를 좋아하시는 분들이 농어촌에 이렇게 무지무지 많은데도 불구하고 모든 코미디 하는 공연장은 도시에만 있어요. 그래서 좋아하는 분들이 많은 쪽에 가서 하면 틀림없이 그분들이 올꺼라는 생각을 했고 결국 새로운 관객을 찾아낸 거죠.
저는 공연을 배달한다는 의미로 공연장을 철가방 모양으로 만들었어요. 그렇게 해서 코미디 공연을 하는데 공연장을 지을 때도 속을 정말 많이 썩혔어요. 경북 청도까지 코미디를 보러 누가 오겠느냐 하는 생각을 사람들이 다 했죠. 저만 된다라고 생각을 했고. 그래서 그 공연장을 지을 적에도 숱한 반대하시는 분들에 의해서 한 석달이면 지어질 공연장이 한 1년씩이나 걸렸어요. 공연을 해야 하는데 자꾸만 공연장 진척이 미뤄지고 해서 담당자 찾아가서 설명하고 힘들게 설득했던 것이 생각이 납니다. 그리고 마침내 2011년 5월에 시작한 그 공연이 지금까지 계속해서 매진에 매진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천재적 아이디어도 실행력 받쳐 줘야
지금에 와서 드는 생각이지만 말만 한다고 해서 아이디어가 완성되는 것이 아니에요. 내가 이야기한 것을 믿고 따라주고, 그걸 받쳐주고 같이 보완해주고 이렇게 될거다라고 믿고 실행하고 실천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아이디어가 완성이 됩니다. 힘들고 어렵지만 아이디어를 실천하는 힘과 운이 따라야겠죠. 개그맨의 길도 그런 것 같아요. 청도의 철가방극장에서 공연하는 코미디시장의 단원들을 뽑을 때 저는 선착순으로 사람을 뽑습니다. 왜냐하면 경북 청도에서 코미디 공연을 하려는 열정이면 KBS 개그맨 공채에 수 십번 지원을 했고 최종에서 몇 번 씩 떨어진 그런 사람들이거든요. 개그맨 시험 응시생이 2000명이 넘는데 네 파트로 나눠서 들어가요. 이 파트에서는 붙을 놈이 저 파트에서는 떨어지기도 하는 거야. 시험 운이 없어서 떨어지는 거지 못 웃겨서 떨어지는 게 아니에요. 다만 코미디를 계속하는 것이 힘이 들고 현실문제도 있기 때문에 빛을 보지 못하고 묻힌 개그맨들이 정말 많아요. 그래서 남들은 선착순으로 해서 되겠느냐지만 제가 운영하는 코미디극에서 선착순으로 뽑아 그렇게 해서 키워낸 후배들이 신봉선, 황현희, 안상태, 박희순, 김대범, 김민경 같은 애들이 있죠. 남들과 다르게 웃음을 만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웃음은 즐거움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남들과 다르게 하는 것이 개그라고 생각합니다. 남들과 다르게하면 나도 즐겁고 보는 사람도 즐겁습니다. 그것이 개그고 웃음입니다.
글·사진_한상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