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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우리는 이미 잘하고 있다


우리는 이미 잘하고 있다
 

20년 늦게 개방… 지각생의 따라잡기
 
1868년 일본 메이지 천황이 즉위했고, 그 앞서 조선 26대 왕 고종이 1863년 즉위했다. 두 군주 모두 1852년 태어났다. 메이지 유신을 거치며 일본은 서양문물을 들여왔고, 우리는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이 나라 문을 잠궜다. 한일 두 나라의 발전상을 비교할 때 이 쇄국시기를 빼놓을 수 없다. 1880년부터 일본은 유럽문물을 받아들이며 많은 기업들이 발전해 현대적 면모를 갖추게 됐다. 하지만 조선의 백성은 경기의 휘슬이 울렸음에도 조용한 아침 잠에서 아직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주위의 부산한 소리에 20년이나 늦게 문을 열었고, 이미 앞선 선수들은 저만치 달려 나간 후였다. 올해는 메이지유신 150년이다. 일본의 공구시장은 많이 앞서 있다. 방문해서 볼 때마다 20년의 지각이 컸음을 뼈저리게 느낀다. 따라잡고 싶다는 생각을 나도 모르게 많이 한 것 같다.
‘역사에서 교훈을 배우지 못하는 민족은 똑같은 역사의 반복을 경험 한다’ 사학자 아놀드 토인비의 말이다. 
 
각 나라 공구현장 둘러보니
 
산업공구 분야에 대한 조사나 통계는 아직 미흡한 실정이다. 그래서 나는 사업을 하면서 기회가 되는 대로 여러 나라 공구시장을 둘러봤다. 일본, 대만, 중국(상해, 광저우, 베이징), 필리핀, 미얀마, 태국, 캄보디아, 러시아, 키르기스스탄(구 러시아), 미국, 호주 등을 가봤다. 어떤 조사보고서보다 실제 사업을 하는 사람의 눈이 더 정확하다는 것은 다들 아실 것이다.
우선 가장 먼저 발견한 사실은 중국, 베트남, 대만보다 우리가 훨씬 앞섰다는 것이다. 중국 상해의 공구시장은 그 규모가 대단히 크다. 도저히 걸어 다닐 수 없어서 택시를 빌려 중간 중간 내리면서 방문했다. 그런데 체계를 갖춘 유통기업은 별로 없다. 종업원 10여명 정도 되는 큰 가게라 해도 체계가 갖춰져 있지 않다. 가격도 들쑥날쑥하고 진열도 안될 뿐만 아니라 공구구색도 흡족한 수준이 아니다. 전체적 외형만 클 뿐 그 안에 돌아가는 시스템은 많이 미흡하다. 중국은 제조업이 크게 발전한 나라이다. 그러나 공구유통업은 한국과 비교할 때 20~30년, 아니 그 이상 뒤져있다.
1990년 대만을 방문했을 당시는 우리나라 공구상과 비슷했다. 현재도 그 모습과 비슷하고 중대형으로 발전한 곳도 없다. 사실 여러 나라 공구현장을 볼 때는 배우려는 마음이 컸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우리나라 공구유통이 웬만한 나라보다 앞섰음을 알게 됐다.
우리나라의 공구유통 현장을 보자. 유통단지에서는 몇 점포씩 묶어서 질서 있게 운영한다. 재래식 공구상가에서는 위로 층수를 높이고 옆으로 확장하는 등 현대적으로 리모델링한다. 공단 지역에 들어가면 꽤 넓은 지역을 정리하여 체계와 시스템을 만들고 위치코드까지 설치하여 품목도 넓히고 있다. 어떤 가게는 2호점 3호점을 내기도 한다. 규모를 키우는 것은 기본에다가 관리시스템을 갖추고 품목을 넓혀서 매출을 높이고 직원교육을 통하여 체계적인 경영을 한다. 공구상이 장사가 아닌 경영으로 성장하는 것을 한국에서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특히 창업자 아버지의 폭넓은 지식에다 2세 경영자의 IT 지식을 투입하여 최신 경영기법을 더한다. 이런 모습에서도 한국인의 뛰어난 능력과 성실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우리보다 먼저 발전했던 나라에서도 만들지 못했던 현대적 공구유통의 모습을 우리나라 사람들은 단시일에 따라잡거나 혹은 뛰어넘어 더 나은 모델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저의 노하우를 가져가세요
 
필자는 30년 전 8권의 가격표를 만들고 산업공구 가격을 오픈했다. 초기에는 힘들었지만 우리나라 공구기업 전체를 바꾼 기록이라고 본다. 똑같은 공구에 비슷한 이름이 얼마나 많은가. 규격과 사양도 여러 개 있다. 계속 바꾸고 변화시켜 카탈로그를 만들고 관리 전산화를 이뤘다. 예전과 비교하면 100배 효율적인 관리가 가능하다. 2004년에 만든 바코드 시스템은 상품뿐만 아니라 점포 전체의 위치 시스템도 쉽게 관리할 수 있는 것이다. 2006년에는 CTX(전산 주문 시스템)를 만들어 전화나 팩스주문을 온라인 주문으로 바꿨다. 재고와 원가확인까지 가능하게 했다. 물론 실패도 많이 해왔다. 돌아보면 한두 번 실패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러나 꾸준히 연구하여 변화해 왔다. 그리고 우리가 갖춘 지식을 오픈시켰다. 나는 배우고자 하는 분에게 아낌없이 드릴 것이다. 
 
자력으로 발전한 한국의 산업공구 유통기술
 
지난 2월 1일 산업공구인들은 유진기업에서 미국 에이스하드웨어형 점포를 국내에 여는 것에 반대하는 시위를 가졌다. 전국에서 1,500명이 모였으며 산업용재협회가 생긴 이후 최대 시위였다. 유진 이전에는 대기업이 산업공구 시장을 넘본 바 있으며, 앞으로도 어떤 글로벌 자본이 들어올지 모르겠다. 하지만, 필자가 보는 산업공구 시장은 그들이 보는 것과 다르다. 한국은 아시아권에서 자력으로 이만큼 발전했다. 얼마든지 스스로 잘해나갈 능력이 된다. 일본의 홈쇼핑만 제외하면 재래공구 시장은 일본수준에 가까이 오고 있지 않은가.
70년대 우리나라는 국가발전을 위해 중화학 조선 자동차 등에 투자했고, 이런 국가적 필요에 따라 노력하다보니 공구업도 이만큼 오게 됐다. 만약 이때 우수한 시스템을 만들지 못했다면 기회를 가지지 못했을 것이다. 현재 우리가 가진 공구유통 시스템은 한국의 실정에 가장 잘 맞는 것이다. 사업을 하면서 경영시스템을 만드는 것은 나만을 위한 게 아니다. 우리를 위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내놓아야 한다고 본다.
최근 필자는 수술을 받고 지금 잘 회복돼가고 있다. 그 과정에서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많은 생각을 했다. 우리나라 산업발전 속 공구업의 역할에 대해 고민했고,  이 업계가 어떤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함께 굳건히 지켜갈 길에 다들 나와 주시길 부탁드린다. 누가 뭐래도 한평생 일궈온 산업공구계를 역사적으로 인정받는 국보로 남기고 싶다. 우리는 이미 잘하고 있다. 브라보! 자신감을 가지시길, 건승하시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