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지금이 아니면
지금이 아니면
좀 도와주게, 친구
1986년경 나의 가까운 친구인 석윤복은 당시 대구화원교도소 교무과에 근무하고 있었다. 하루는 나를 찾아와 부탁했다. 교도소에 방송선로나 스피커가 작동되지 않아 방송하는 데 애를 먹는다며 “여유가 된다면 좀 도와주게” 했다. 교도소 특성상 외부사람은 들어가기 어려워 재료만 사주면 내부에 기술 가진 재소자들이 할 수 있다 했다.
이렇게 교도소 내 방송시설 수리사업이 시작됐다. 오래된 스피커며 마이크를 교체하고 선로도 바꾸었다. 석 달 만에 공사가 끝났다. 친구는 “이제는 방송이 잘된다”며 아주 기뻐했다. 방송을 통해 각 방의 재소자들에게 음악도 들려준다 했다.
그런데 얼마 후 친구가 다시 찾아왔다. 이번엔 모범수 방에 TV를 설치하자고 제안했다. 제의를 받아들이고 후일 결과를 들었다. 방송프로를 보느라 여자 재소자들 사이 싸움이 줄었다 했다. 흔한 말로 머리끄댕이 잡는 일이 줄었다는 것이다. 이런 것이 진정한 교화라고 교도소 행정관들이 무척 기뻐했다. 처음 10대를 놓은 것이 나중에 30대 100대로 늘어났다. 결국 모든 재소자 방에 TV를 놓았다.
재소자들에게 생 방송을 하자고?
1993년이 되자 교무과에서는 좀 더 좋은 교정정책을 해보고 싶다 했다. 이제는 TV만 틀어주지 말고 직접 좋은 말씀을 전하는 방송을 해보자는 의견이 나왔다. 목사님과 스님이 교도소에 와서 좋은 말씀을 하시면 재소자들은 각 방에서 그 말씀을 듣게 했다. 당시 3,500여명의 재소자들에게 바로 방송을 하는 것은 큰 혁신이었다. 전국 교도소 최초의 일이었다. 교도관들은 교도관대로 관리에 큰 효율을 가져왔고, 재소자들은 재소자들대로 더 나아지는 수감생활이 됐다. 수감시절 성적이 좋으면 재범의 확률도 줄어든다. 결국은 우리가 사는 사회를 위한 일이다. 이 모든 것은 정부지원이 부족했던 때의 일이다. 이런 한계를 이겨보고자 교도소 행정관들은 나에게 도움을 청하였고, 나는 나대로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생각하고 선뜻 결정을 내렸다.
리모델링과 화단정리
다시 2007년경이 되었다. 화원교도소 내 세면장과 화장실 등의 열악한 시설을 고쳐달라는 것이었다. 정부가 세운 시설이 30년을 지나면서 노후됐기 때문이다. 난 기꺼이 ‘하겠다’ 했다. 생각보다 고칠 곳이 많아 6개월여가 걸려 리모델링을 완성했다. 하는 김에 화단까지 예쁘게 꾸며줬다. 아름다운 꽃을 보면 마음도 예뻐지지 않겠나 하는 작은 바람도 있었다. 봄이 되니 화단 가득 꽃이 만발했다. 도울 수 있어 행복했다.
기회가 오면 잡아라. 도움도 타이밍
이제는 공공시설에는 정부예산으로 전액 충당되기 때문에 민간인인 내가 도울 일은 없다. 하지만 그때 내가 도울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기쁜 일이다. 나에게 아름다운 기회를 주신 더 큰 분이 계신 것을 알기에 눈을 감고 기도했다. “더 좋은 일을 하게 해 주소서.”
2012년 대구 새마을 회장을 맡게 되었다. 미얀마, 키르기스스탄, 캄보디아 등에 새마을 사업을 다녔다. 견문도 넓어지고 사업을 더 잘하고 싶은 마음도 커져갔다. 도와달라는 요청이 온다는 것은 기회가 오는 것과 같다. 피하고 거절하면 보람 있는 일은 생기지 않는다.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사업을 하고 돈을 버는 목적이 어디에 있겠는가. 내 주어진 책무를 다하고 필요한 곳에 나눌 수 있다면 참 보람있는 인생일 것이다. 특히 도움이 필요한 곳에는 생각만 하지 말고 꼭 행동으로 해야 한다. 이 좋은 황금의 타이밍을 잡아야 나 또한 성장하고 행복에 닿을 수 있다.
<되찾을 수 없는 게 세월이니 시시한 일에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순간순간을 후회 없이 살아야 한다. 인간의 탐욕에는 끝이 없어 아무리 많이 가져도 만족할 줄 모른다. 행복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다. 가진 것만큼 행복한 것이 아니며 ‘맑은 가난’을 내세우는 것은 탐욕을 멀리하기 위해서이다. 가진 것이 많든 적든 덕을 닦으면서 사는 것이 중요하다. 돈은 혼자 오지 않고 어두운 그림자를 데려오니 재산은 인연으로 맡은 것이니 내 것도 아니므로 고루 나눠가져야 한다. 우리 모두 부자가 되기보다는 잘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법정스님 글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