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혼신(魂神)
혼신(魂神)
어디서 무엇을 하건
적당히 대충 하지 마라.
열 가지를 해야 한다면
스무 가지를 하라. - 데니스 웨이틀리
세 든 곳을 뭘 그리 꾸미느냐
얼마 전 대구 교동시장에 갔다가 35년 전 미진만물상사를 운영했던 곳에 들렀다. 미진만물상사는 내가 운영하다 팔아버린 상점이다. 깜짝 놀란 것은 당시의 시설이며 바닥재를 그대로 쓰고 있다는 점이었다. 모른 체 하고 그 집 종업원에게 물었더니 “예전에 이 가게를 운영하던 주인이 아주 철두철미해서 모든 시설이 최고급인데다 튼튼하게 지어져서 지금도 잘 쓰고 있다”고 했다. 내심 뿌듯했다.
돌아오는 길에 예전 내가 세 들어 있었던 책임기업사 자리도 가보았다. 이곳 역시도 세월이 지났지만 대부분 당시대로 사용하고 있었다. 허름한 건물에 세를 들면서도 돈을 들여 내부를 단장하고 자동문까지 달아 아주 고급스럽게 했다. 사람들은 뭐 하러 세 든 곳을 꾸미느냐고 했다. 하지만 나는 뭐든 적당히는 못한다. 내가 있는 곳과 하는 일은 끝까지 최선을 다하고 예술 작품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병이지만 사관생도 같은
1968년 해군 신병훈련소를 마치고 이병 최영수는 한국 함대 경남함(APD-81) 기관분대에 발령받았다. 군함에 온냉방은 물론 바닷물을 식수로 만들어 관리하며 군함의 밸런스를 잡는 등 보수, 소방, 방수 관리 업무를 맡았다.
몇 개월이 지나서 일병 계급장을 달았을 때 선임하사로부터 ‘사병 사관생도’라는 별명을 받았다. 당시 함정에는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한 장교들이 일을 철저히 하기로 유명했는데, 내가 그들처럼 규칙과 규정에 따라 최선을 다해 일한다하여 붙여진 별명이었다.
까마득한 옛일이었지만 경남함에서 3년여 근무하면서 열심을 다했던 것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때 선반, 용접, 화재, 장포, 레이더, 통신기술 등 참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이때의 경험이 공구업을 하는 기반이 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뭐든 대충하지 않았기 때문에 씨앗이 되고 키워갈 수 있는 바탕이 된 것이다.
5년 전 유통질서위원회… 내 모든 것 쏟았다
2014년, 당시 유통질서가 혼란해 업계가 힘들 때였는데 산업용재협회 유통질서위원회 3기 위원장을 맡아 달라는 부탁이 왔다. 유통질서를 바로 세우는 일이 우리업계에 얼마나 중요한지 다들 아실 것이다. 함께 살아갈 방안을 찾고자 55명의 위원들과 10개월 간 갖은 노력을 기울였다. 처음에는 힘을 합쳤으나 차츰 뒤로 빠지는 분도 있었고 또 잘못한 점만 지적하는 분도 있었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한걸음 한걸음 잘 진행돼 갔다. 당시 일본능률협회 한만승 대표와 제이스인더스트리스 서정철 대표, 오영택 서경대 교수, 이민석 변호사 등도 동참했고,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까지 우리를 도와주었다. LG서브원이 유통업무를 중단하였고, KEP(코오롱)도 사업을 광동제약으로 넘기는 과정인 만큼 유통지도가 복잡한 상황이었다. 특히 가장 유통질서가 혼란해 단초를 제공했던 전동공구 분야에서 일부 회사는 협력을 안하려 했다. 외국기업이다 보니 책임자를 만나려고 호주까지 가기도 했다. ‘왜 이렇게까지 하나’ 나 자신에게 질문할 만큼 난감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 돌아보니 그래도 그때 잘했다 싶다. 많은 회의를 하고 수차례 방문했는데, 당시는 잘 안될 것 같으면서도 이후 일부는 협력을 받아내기도 했다. 솔직히 그때 협력 안한 업체들은 지금 더 힘들어하는 것 같다. 그때 남겨둔 기록과 서류를 보며 업계 위기를 이기고자 온갖 방법을 찾던 그 열정이 새삼 떠오른다. 당시 그렇게 힘을 모을 수 있어 그나마 오늘과 같은 날들이 있지 않은가. 내가 맡은 이상 내 모든 것을 걸고 했다 싶다.
혼을 기울인다는 것
나는 능력이 많은 사람도 아니고 머리가 좋은 사람도 아니다. 그래서 한 가지 일이 주어지면 그 일에 빠져 버리고 다른 부분은 확 줄여 버린다. 오직 그것만 한다. 이것이 부족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때로는 밥 먹는 것도 잊어버리고 심취하고, 심지어 꿈에서도 그 일만 한다. 이런 날들이 거듭되면 결국 방법이 보이고 결과가 나오더란 것이 내 경험이다.
성경에 보면 요셉은 형들의 미움을 받아서 종으로 팔려 이집트 보디발 집의 종이 되었지만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 또 누명을 써 이집트의 감옥에 갔지만 역시 죄수로서도 최선을 다했다. 나중에 국무총리에 올려지는 영광을 가졌다.
나 역시 앞으로도 어떤 일이 오더라도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64년 된 한국 수공구의 뿌리, 세신버팔로를 살리는 일에 요즘은 골몰한다. 우리나라에도 한국을 대표할 수공구 브랜드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나. 공구인생을 걸고 해볼 만한 가치라 생각한다. 태양빛에 돋보기를 대고 초점을 맞추면 불이 붙는 것처럼 단 하나에 한 번 더 집중해야 할 것이다. 힘이 부칠 땐 이런 상상을 해본다. 500년 후 미래로 타임머신을 타고 가보자. 그곳에서 지금을 본다면 무엇이 중요하다고 판단할까. 지금 우리는 500년 후 가치 있다고 인정받는 일을 해야 할 것이다. 백년을 못살고 갈 인생이지만 생각과 열정은 500년을 넘어야 하지 않겠나. 그래야 우리의 역사가 아름답다. 공구업계도 500년 뒤 이어질 것을 찾아 집중을 하자고 권하고 싶다. 그래서 대충대충 하면 안된다는 말이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역사를 만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