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발행인 칼럼] 혼란과 어려움 속 길을 찾으려면
한해를 어떻게 지냈는지 돌아본다. 변화가 많은 해였다고 본다. 상당히 혼란스러웠고 새로운 위험도 나타났다. 그럼에도 정신을 차리고 최선을 다해 하나하나 풀어가려 했다. 세상에 풀지 못할 숙제는 없다. 지난 한해 겪었던 변화와 위기, 또 이를 헤쳐 갔던 과정을 정리해본다.
가장 힘든 변화는 원자재 파동이었다. 이전에 겪어보지 못했을 만큼 오르고 또 올랐다. 철재와 석유화학 제품의 변동이 심했고, 몇 년에 한번 오르던 것이 이번에는 연이어 올라갔다. 원자재 파동은 제품 품절로까지 이어졌다. 작년 말부터 제품공급이 늦어졌고, 특히 외국에서 생산되는 제품의 경우는 더욱 심했다. 한두 달 미뤄지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공급이 안되는 경우도 있었다.
원자재가 움직이자 가격이 움직였다. 제품가격이 인상될 때는 통상 다음과 같이 대처해왔다. 제조사로부터 가격인상을 통보 받으면 재고를 충분히 확보하고, 고객에게 ‘가격이 오릅니다. 언제까지 오릅니다’라고 통지한다. 그런데 전체가 한꺼번에 변하면 대응이라도 하겠는데, 규격과 품목에 따라 제 각각 움직였다. 크레텍에서 먼저 가격을 정리해야 우리업계 가격질서가 잡히는데 들쑥날쑥 변화하니 매입부서에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메이커에서 올린다고 크레텍도 금방 올릴 수 없어 어떨 땐 두 번에 나눠 올리기도 했다. 가격변화 폭과 시기를 정하는 게 어려웠다. 금방 올려도 비싸다 하실 것이고 늦게 올리면 우리가 손해가 나니 난감했다. 우리가 안을 수 있는 것은 안으면서 가격정책을 폈다 말씀드리고 싶다. 정말 연구와 힘이 많이 들어갔다.
올해 고생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아무래도 물류인력난이다. 사회변화상 물류의 중요성이 커졌지만 실제로 현장에서는 물류인력을 구하지 못해 쩔쩔매야 했다. 전에는 공고를 내면 많은 사람들이 지원했지만 2021년도에는 쿠팡물류 등으로 가는 이탈자가 생겨났다. 급료를 올린다고 올려도 인력 충당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이러니 남은 사람들의 업무가 2~3배 가중됐다. 무엇보다 배송하는 기사분들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다. 특히 작년 한해는 중소공구상에서도 사람 구하기 어렵다는 말이 많이 나왔던 한해였다.
이렇게 원자재 파동, 가격인상, 물류 인력난을 이겨갈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보다 직원들에게 있었다. 그 큰 혼란 속에서도 한 팀이 되어 잘 움직여줬다. 연구하는 부서, 개발하는 부서, 현장부서 할 것 없이 소통하고 협력해주었다. 함께 견뎌준 직원들 덕분에 위기를 이겨낼 수 있었다 생각한다.
나아가 이번 가격변동은 전산의 기술력으로 헤쳐갈 수 있었다고 본다. 전산을 통해 표준화를 이룰 수 있었기 때문에 변화상황을 통제 관리할 수 있었다.
30년 전 가격표를 만들던 때가 떠올랐다. 당시는 공장도가격, 도매가격, 소비자가격이 따로따로 매겨져 있었다. 고객에 따라 가격도 달랐다. ‘복잡한 가격체계로 어떻게 이 많은 상품을 관리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가격표준화제도를 만들었다. 가격을 가르쳐주다보니 경쟁사에 노출이 되고 크레텍은 가격이 비싸다는 불평을 듣기도 했다. 그러나 이렇게 가격표준화를 하지 않고는 방대한 공구를 관리하기 힘들었기 때문에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시행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잘했다 싶고, 우리업계에 표준가격이 정착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2021년도에는 주문 사이트 내 가격변동 시스템을 통하여 변동을 바로 전달할 수 있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고객이 이런 혼란 속에서도 우리를 믿고 따라와 주었다는 점이다. 우리가 아무리 전산화 표준화를 하더라도 고객이 따라주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지금까지 모든 성과가 그저 나 하나 잘 해서 된 것이 아니라 고객과 주변 덕분임을 올해는 특히 실감했다.
나는 다른 나라의 공구유통기업을 종종 본다. 우리와 비슷한 대만은 물론 중국, 필리핀, 베트남, 특히 일본까지 연구한다. 중국, 대만의 경우 제조업은 발전되어 있지만 유통은 옛날 수준이다. 공구유통 표준화가 안 돼 1990년도 시스템에서 더 나아진 게 없고 기업형으로 발전하지 못하는 걸로 보인다. 일본은 제조는 물론 유통까지 아주 잘 발달돼 있어 배울 점이 많다. 한국에서 이만큼이라도 공구유통기업을 표준화하고 선진화할 수 있었던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믿고 따라와 준 고객사들 덕분이다.
영화 ‘라디오 스타’에 이런 말이 나온다고 한다.
“별은 저 혼자 빛나지 않는다. 다 빛을 받아 빛나는 것이다.”
혼자서 빛나는 별은 없다. 함께 빛나야 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오래도록 함께 가기 위해 한국산업용재협회에 표준화 활동을 제안한다. 11월 23일자 한국경제신문에 국가표준 60주년에 대한 안내가 나와 있다. 여기에 소방, 기계전기, 전선 등 우리나라 산업에 관계된 모든 협회와 조합이 표준활동에 가입돼 있는데 우리업계가 보이지 않아 내심 섭섭했다. 공공의 안정성과 전문분야의 용어 성능 절차 방법 등에 대한 표준을 마련하고, 국가표준(KS)과의 교량적 역할을 협회가 해야 한다. 덧붙여 현재의 ‘한국산업용재협회’라는 명칭은 그 정체성을 알기 어렵다. 제안하자면 ‘한국산업공구유통협회’, 즉 누가 들어도 금방 알 수 있는 명칭으로 검토했으면 한다.
올해도 수고하셨다. 그간의 노고에 깊이 감사드린다. 내년에는 더 좋은 일 있기를 바라며 올해 마지막 칼럼을 마무리한다. 메리크리스마스 & 해피뉴이어.
글 _ 최영수 발행인, 크레텍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