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발행인 칼럼] 지금 다시 새봄을 꿈꿀 때
1990년 봄, 꽃이 만발한 사진 한 장을 보면서 나는 불현듯 다시 그 봄 속으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점포 앞엔 장미꽃이 만발해 있었고, 고무대야에 심은 줄장미는 간판을 향해 올라가고 있었다. 당시 내 나이 40대 초반, 사진 속 남성은 대만의 한도무역 황순진 사장이며, 여성은 우리회사 경리 신정숙 씨로 지금은 삼성생명 명장이 됐다.
그때 난 회사 앞 도로에만 꽃을 심은 게 아니었다. 가슴 속에 꽃다발 같은 열정이 넘쳐 세상 거침이 없었다. 사진과 함께 지난 30년 전의 봄이 떠오르며 그 봄날의 희망을 지금 다시 가져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1988년 올림픽이 열리면서 대한민국은 모든 면에서 달라지기 시작했다. 여행자유화, 무역자유화가 됐고 사람들은 세계 각지로 나가기 시작했다. 사실 내가 해외에 간 것은 1990년 3월이 처음이었다. 일본 대만은 물론 독일,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 중국 등에 가봤다. 우물 안 개구리로 살다 ‘이런 세상도 있구나’ 했다. 미국과 독일 전시회를 보면서 이제부터라도 넓은 세상을 보고 ‘맘껏 해보자’ 생각했다. 기록하고 사진도 많이 찍었다.
밖에 나가보니 신기한 것들이 많았다. 독일 쾰른 전시회와 미국 시카고하드웨어쇼, 중국 광저우 전시회, 일본 DIY쇼 등을 다니고 공장도 견학했다. 당시 처음으로 비즈니스 외에 저녁마다 각 나라별로 다른 식사문화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독일 보쉬사와 대만 인파 엔더첸 사장, 일본 트러스코 등과는 사업으로 만났지만 따뜻한 친구 같은 사이가 됐다. 이 모든 것이 국제적인 감각이며, 일만 하던 것에서 즐기는 문화로 바뀌어 간다는 것도 느꼈다. 넓은 세상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 대화하면서 한편으로는 술먹고 춤추고 즐겁게 일했다. 온 세상이 나를 반겨주는 ‘나의 전성기’였다고 할까, 아무튼 가장 신났던 시절이었다.
1990년대 나는 성공한 일도 많았지만 그만큼 실패도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 실패한 건 없어지고 성공만이 남았다. 공구상협회 대구지회에서 총무와 지구장을 거쳐 13대 대구 지회장을 지낸 것도 이즈음이었다. 그땐 체육대회를 매년 했는데, 1,000명이 넘는 회원들이 참석하여 재밌게 축제를 열었다. 회원집을 찾아다니고 메이커들도 모두 참석했다. 행사 중에는 닭싸움 코너가 있어 마침 나의 특기인지라 다섯 명을 이기고 기쁜 나머지 운동장을 뛰어돌던 기억도 난다. 올해 제25대 전국 회장을 맡으신 송치영 회장께서도 다시한번 공구상과 메이커가 함께하는 축제를 열어주시길 바란다.
90년대초를 르네상스로 부르고 싶은 이유는 전산과 카탈로그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의 다빈치가 발명과 그림으로 지금까지 영향을 끼친 것처럼, 공구업계에서는 전산과 카탈로그 시작이 한 단계 껑충 뛰는 도약이었고 지금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전산을 해보자 했을 때 쉬이 된다는 사람은 없었다. 전산만 되면 수작업으로 하던 계산서와 상품관리가 좋아질 것이고 여기서 좀더 나아가면 바코드가 이뤄질 수 있다. 그때 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지금은 온라인 E-biz로 움직이는 시대에서 또다시 빅데이터, 인공지능 시대로 간다. 이런 흐름을 타고 공구업이 발전해야 하는데, 그때 전산이 이뤄지지 않았더라면 방대한 품목을 어떻게 감당하고 정리 체계화할 수 있었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공구보감도 1989년 시작했지만 실제로는 90년대에 발전을 이루었다. 18판이 나오는 올해는 4,000페이지가 넘을 예정이다. 어렵고 힘들어도 멈추면 안된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된다.
당시 나는 공부도 했다. 경북대 최고경영자과정 11기를 밟으며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했다. 재미도 있었지만 세상이 잘 보였다. 경북대 외에 다른 과정도 많이 했다. 그때 공부하지 않았더라면 중간에서 길을 잃거나 포기했을 것이다. 공부를 계속했기 때문에 다른 큰 세상을 볼 수 있었다. 살아남는 종은 우수한 종도 아니고 강한 종도 아니다. 변화에 적응하는 종이라 했다. 디지털 시대는 변화가 빠르다. 공부하지 않으면 그 변화를 따라갈 수 없고 적응하지 못한다.
이런 변화를 생각할 때 꼭 하나 짚어야 할 것이 바로 ‘승계’이다. 70~80년대에 시작한 공구상들은 이제 다음세대로 넘어갈 시점에 있다. 예전에 왕성하게 뛰던 사장님들의 사무실에 자녀들의 모습이 보이고 경리책상을 지키던 사모님도 뒤로 물러서는 모습이다. 순환과 승계는 자연스러운 법칙이다. 나 역시 두 아들이 회사업무를 이어가고 있는데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세무와 비즈니스 승계만이 중요한 게 아니라 서로의 이해와 협력을 이끄는 모습으로의 승계가 되어야 한다. 옛날 농업사회에서는 자연스레 이어졌지만 변화 많은 산업사회에서는 만만치가 않다. 세대교체라는 사회 문화적 현상을 이해해야하니 이 또한 서로간의 공부거리다.
“자기를 경영하라. 자기를 경영할 줄 모르는 리더는 무면허 의사와 비슷하다. 사람들의 삶을 아주 엉망으로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둘은 닮았다. 무면허 의사처럼 엉터리가 되고 싶지 않다면 내적성찰에 귀 기울여야 한다.”- 워렌 베니스-
30년 전의 사진을 보며 나는 내 안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 경영자의 자기성찰이 필요한 이유는 직원들과 그 가족의 삶까지 책임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봄, 다시 30년 전의 봄날처럼 힘을 내고 싶다. 넘길 것은 넘기고 변화에 적응하되 가슴에 핀 열정의 꽃은 시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또 인생이란 마음먹기 따라서 변화할 수 있기 때문에 재미있다. 칠순을 넘긴 나도 새 봄을 꿈꾼다. ‘90년대 최영수처럼 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여러분도 과감하게 움직여보고 도전과 열정으로 새로운 시대를 열어갔으면 한다. 어렵다고만 하지 말고 움직이고 긍정하는 만큼 세상은 열린다. 그대들에게 축복과 행운이 오기를 바라며, 각자의 가슴에 열정의 꽃다발을 안겨 드린다.
글 _ 최영수 발행인, 크레텍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