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발행인 칼럼
죽을 것 같은 순간에 ‘한 번 더’
나는 살아오면서 ‘이제 끝이구나, 완전히 망했구나’하는 순간을 여러 번 겪었다. 아무리 해도 열 번을 내리 실패해 아주 절망적이었다. ‘이제 그만두어야지’ 했다. 그런데 지금 돌아보면 그때 그만두었더라면 뒷날로 이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바닥을 쳐도 ‘한 번 더’ 해보니 다른 길이 보였다. 꼭 목표하던 모습대로 아니더라도 다른 모습으로 옮겨가기도 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 가운데 요셉이 있다. 고난이 왔을 때도 최선을 다해 정성을 기울였다. 요셉은 원수 같은 분들도 잘 섬겼고 모함이나 억울함도 이겨갔다. 이런 과정을 거쳐 애굽(이집트)의 총리가 되어 나라를 잘 다스렸다. 국민들에게 칭송을 받으며 이스라엘 민족을 인도하였다. 나는 요셉의 고난과 극복에 감명을 받아 교회 주일학교에서 요셉에 대해 가르치기도 하였다. 내게도 요셉 같은 고난과 좌절이 있었다. 누구나 요셉의 시절을 지난다. 그 과정을 어떻게 이겨내느냐에 따라 광야로 나아가기도, 거기서 멈추기도 한다.
1977년 7월 부가가치세가 신설돼 10%를 더 받아야 한다니 기가 막혔다. 10%를 더 내려는 고객은 없었다. 세무서 직원 두 명이 우리회사 장부와 통장을 전부 가져가 조사했다. 나는 조사를 받다 의지를 잃고 집에 와서 덜렁 누워버렸고, 그 다음날은 출근도 하지 않았다. 세금고지를 다 하면 내 재산 다 팔아도 감당이 안되는 현실이었다. 방법이 안보였다. 몸을 너무 덜덜 떨어서 조사원이 나를 달래기도 했다. 이런 세무조사를 총 네 번 받았다. 하늘이 무너진다, 앞이 안보인다는 말이 뭔지 실감했다.
그럼에도 계속 방법을 찾고 찾으니 부가세 거래가 안착되어 갔다. 1988년엔 세무서장상을 받고 이듬해 국세청장상을 받았다. 투명하고 깨끗하지 않으면 기업을 키울 수 없는데, 이런 고난을 통해 성장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70년대 미제공구를 팔다가 세관단속에 걸리고 말았다. 당시 우리나라 공구의 3분의 1은 미군부대에서 뒤로 나온 공구였다. 대부분의 공구상에서는 미제공구를 팔고 있던 현실이었고, 공구장사를 하려면 미제공구를 취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열흘간의 혹독한 조사를 받고 부산교도소에 수감까지 됐다. 변호사를 선임하고 20여일 만에 석방됐다. 교도소에 있는 중 다음과 같이 기도했다.
“하나님, 다시는 미제공구를 취급하지 않겠습니다”
이로써 이윤이 많이 남던 미제물건과는 결별했다. 미제공구와 결별함으로서 나는 정품공구를 취급하는 ‘책임경영’으로 한발 더 다가서게 됐다. 그때 걸리지 않았더라면, 또 과감하게 어두운 거래와 결별하지 않았더라면 오늘과 같은 크레텍은 없다. 바닥을 치는 암담함 속에서도 한 번 더 방법을 찾으니 솟아날 구멍이 보였다.
1988년경 장사가 잘되기 시작했다. 국산공구가 점점 시장을 넓힐 때라서 매출 가운데 세신공구 비중이 30%를 넘어갔다. 세신은 주연이 되고 다른 제품은 들러리가 될 정도였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세신공구 출고가 중단되었다. 당시 ‘공구장사는 세신장사’라고 할만큼 공급사 위세가 셌다. 제품을 줘야 파는데 출고중지를 당하니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공장이 있던 창원, 부산, 양산으로 책임자를 찾아다녔다. 우리회사에 대한 잘못된 정보로 출고중지 명령을 내린 것이 밝혀졌다. 20일 만에 풀렸지만 그 시기동안 나는 죽다 살았다. 그러면서 든 생각은 “한 브랜드에만 기대지 말고, 이원화 삼원화를 해야겠구나”였다. 이 일로 무역을 시작하고 자사브랜드를 만들게 됐다. 세신으로부터 출고중지를 당하며 호된 위기를 겪었기 때문에 무역과 대체브랜드라는 사업법에 눈을 뜬 것이다. 죽다 살아나야 방법이 보인다. 위기 앞에 멈추면 거기가 끝이고, 헤쳐나가면 더 나은 세상을 만든다.
사업 규모가 작을 때는 적당하게 넘어갔지만 규모가 커지면서 재고관리가 힘들었다. 바코드를 만들기로 했다. 2004년 당시 15% 정도만 바코드가 붙어 있었다. 제조사 측에서 해주지 않으면 할 수가 없었지만 장사를 계속 하려면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공장을 찾아다니며 설득하고, 한집 한집 방문해 설명하고 바코드 기계를 사다주기도 했다. 우리직원들은 연일 밤 12시까지 작업했다. 이러다 직원 다 죽이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중간에 물러설 수 없어 죽기살기로 하다보니 결국 완료되었다. 그때 바코드를 하지 않았더라면 전산화라는 다음단계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지난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은 계엄을 선포했다. 나라가 쑥대밭이 되고 어려운 상황이 지금 4개월여 지속되고 있다. 대통령께서는 뭔가를 간절하게 원하는 모습이었다. 문제가 있으면 풀어가야 한다. 되는 방법을 찾고 또 찾으면 되는 것이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고 노력은 사람의 영역이고 결과는 하늘이 주시는 것이다. 지레 결론을 낼 필요도 없고 미리 조급하게 포기할 것도 없다. ‘하다보면 된다’는 이 쉬운 말이 경영에도 적용된다.
너무 조급해 하지 마라.
서두른다고 안 될 일이 되고
되는 일이 안 되는 것 아니다.
화내지 마라.
부드럽고 유연해져라.
화를 낼수록 결국 자신만 손해 보고 될 일도 안 된다.
포기하지 마라.
아무리 늦게 되어도 되는 것은 되는 것이니 포기하지 마라.
포기하는 순간 모든 일이 끝나는 것이다. -좋은 글에서-
경제상황이 어려워 ‘바닥을 친다’는 표현은 조심스럽다. 그렇지만 심적으로 또 여러 경영상황에서 ‘바닥이다’ 싶을 때 ‘한 번 더’ 힘을 내는 자에게 요셉의 기적이 주어진다고 나는 믿는다. ‘죽다 살았네’ 이 말 한 번 하지 않고 사업할 생각하지 마시라. ‘죽다 살았네’ 이런 간절함 없이 인생의 강 건널 생각마시라. 용기를 내 한 번 더 일어서는 자에게 봄날의 꽃길이 열릴 것이다. 이번 봄, 모두 꽃길로 가는 길을 내시기 바란다. 파이팅!
글 _ 최영수 크레텍 대표이사, 발행인, 명예 경영학·공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