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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최고 인터넷철물점 철물마트
1등 되고 싶으면 스스로 1등이라고 칭하라
대한민국 최고 인터넷 철물점 <철물마트> 정종신 대표
보통 ‘철물’이라고 하면 동네마다 있을 법한 철물점을 떠올리기 쉽다. 그런데 스스로를 대한민국 최고라고 칭하며 실제로 최고의 철물점을 운영하고 있는 곳이 있다. 바로 ‘온라인’ 철물 인테리어 최강자 ‘철물마트’다. 정종신 대표는 일찌감치 온라인 시장의 발전을 내다보고 온라인 철물마트 구축에 힘썼다. 결과 국내외 다양한 상품을 전국 DIY 소비자는 물론 도매상들에게 공급하는 대한민국 최고 철물점으로 자리 잡았다. 남다른 호기심과 늘 미래를 내다보는 아이디어로 한발 앞서가는 정종신 대표의 오늘이 궁금하다.
대목수 출신 아버지와 함께한 어린 시절
경기도 고양시 일산에 위치한 전시장 겸 오프라인 ‘철물마트’에서 정종신 대표를 만났다. 깔끔하면서도 소박한 첫인상에 목공 느낌이 물씬 났다. 대목수 출신인 아버지의 솜씨를 그대로 물려받아 그도 건축업계를 거쳐 인테리어 철물계통으로 자리를 잡았다.
“아버지가 왜정 때 기와집을 짓는 대목수 출신이셨어요. 농방을 거쳐 문공장을 오래하셨는데 저도 자연스럽게 나무, 경첩 같은 인테리어 자재에 친숙하게 자랐죠.”
아버지 덕분에 동네에서 제일 좋은 나무총을 갖고 놀아 또래들에게 부러움을 사던 아이는 어느덧 자라 아버지 곁에서 자개도 같이 붙이고 호마이카 칠도 같이 했다. 학교공작대회는 빠지지 않고 참가해 상도 타왔다.
“아버지는 당연히 제가 아버지와 같은 계통의 일을 할 거라고 생각하셨을 거예요. 그래서 건축에서 목재와 전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셔 전공으로 전기 분야를 제안하셨죠. 그런데 뭐랄까. 어린 시절 반항심이랄까, 더 나은 다른 것이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완전 다른 길을 갔어요.”
사진기획자로 방랑 후 다시 돌아온 건축
정종신 대표는 사회생활 첫 걸음으로 전혀 엉뚱한 사진기획자의 길을 걸었다. 그것도 10년이나. 그러나 독립해서 사업을 꾸린지 몇 년 안돼서 일을 접어야 했다.
“독립한지 2~3년만에 사업이 망했어요. 하하하. 서울에 큰 광고업체가 지방으로 침투하면서 지역 기획사가 발디딜 곳이 사라진 거죠.”
그렇다고 좌절하지는 않았다, 그게 정 대표의 가장 큰 장점이니까. 그는 새로운 구상을 위해 해외 시장을 나가보기로 했다. 그리고 새로운 건축과 인테리어에서 비전을 발견하게 된다.
“당시가 80년대였어요. 그때 우리나라는 일요일도 격주로 일하던 시기였는데, 유럽은 이미 주5일근무가 자리잡아 있었죠. 그러다보니 집에서 여가활동으로 할 수 있는 DIY 산업이 활성화되어 있었어요. 우리나라가 갈 길이 이거구나 싶었죠.”
10년만에 다시 건축으로 유턴했다. 다행히 아버지의 도움이 컸지만 문 일을 배우려면 밑바닥부터 시작해야 했다.
“일당제로 시작해서 문짝 만드는 것부터 지고 가는 것까지 전부 바닥부터 배웠죠. 다행히 80~90년대 건설경기가 좋아서 빨리 성장했어요. 그리고 외환 위기가 왔는데 전환해야할 시점이 보이더라고요.”
시대가 바뀌면 사업도 바뀌어야
평소 경제신문을 챙겨보던 정 대표는 언젠가 문 사업이 사양산업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늘 갖고 있었다. 그리고 외환 위기를 계기로 매장이 있는 안정적인 사업을 해야겠다고 사업 방향을 전환했다.
“지인과 대화를 하다 보니 철물 인테리어 사업이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죠. 이왕 사업할 거면 무조건 1등이 되자는 생각이 있어서 상호를 ‘제일’장식철물로 정했어요.”
2000년 4월 부산에 제일장식철물을 오픈했다. 그는 앉아서만 물건을 팔지 않았다. 가게는 아내에게 맡겨두고 제품과 카다로그를 가방에 챙겨 건축현장으로 향했다.
“현장을 찾아가서 인테리어 재료를 보여주고 그 자리에서 거래를 따오는 겁니다. 현장에서 바로 제품를 고를 수 있고 가격도 흥정할 수 있으니까 반응이 폭발적이었죠.”
이때 그가 눈여겨 본 것이 바로 온라인 시장이다. 초창기 온라인 시장은 식품, 의류에 한정돼 있어 공구나 철물 온라인 매장은 전무했다고 할 수 있다. 식품과 의류에 비해 수요가 극히 적었기 때문이다.
“저는 반대로 생각했어요. 어느 시점에서 식품, 의류 쪽에 수요가 확보될 수 있었으니까 철물도 반드시 그 시기가 온다. 그래서 시장 선점을 위해서 온라인 준비를 서둘러야겠다고요.”
그가 10년간 갈고 닦았던 사진 기술이 이 시기 빛을 발했다. 8,000여 종의 제품 사진을 손수 찍어 데이터화했다.
진정한 ‘제1’이 되기 위해 서울로
2004년 ‘대한민국 최고’라는 수식어를 달고 <철물마트>를 오픈하자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물류창고를 만들고, 만들고 또 만들어야 했다. 그리고 때가 왔다.
“‘제1’이 돼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부산에서는 ‘제1’이 안 되겠더라고요. 서울로 가기로 하고 40년간 살았던 부산 터전을 훌훌 버리고 일산에 자리 잡았어요.”
8톤 트럭 10대가 서울로 대이동을 하는 장관을 연출했다. 정리에만 몇 달이 걸렸다. 현재 철물마트는 전시장 인근에 물류센터를 따로 구축하고 있다. 규모는 300평. 전시매장과 물류센터 직원도 모두 합하면 17명이나 된다.
<철물마트>만의 다양한 1등 경영 펼쳐
철물마트가 온라인 시장에서 사랑받는 이유는 외국브랜드 직수입 제품이 많다는 점이다. DIY 소비자들에게 다양한 제품을 공급하기 위해 각종 해외전시회를 다니며 국내 없는 브랜드를 개발해 직수입한 결과다. 일본 고급 하드웨어 제조사인 수가쓰네의 국내 온라인 독점권도 갖게 됐다. 직수입이니까 싸게 대량으로 거래할 수 있어 타 철물점에 도매로도 공급 중이다.
“해외 전시회를 꼭 추천합니다. 2002년에 쾰른 하드웨어 전시회를 처음 갔는데 세계에서 유명한 것들이 다 있더라고요. 막 흥분되고 미래의 비전이 보였죠. 유럽, 두바이, 중국 등 곳곳에 많은 전시가 있는데 굳이 추천하라면 중국 전시회예요. 질적인 면은 모르겠지만 다양한 아이템을 보고 싶다면 최고의 장소죠.”
내일에 대한 고민이 더욱 크기 때문에 지나간 일에 후회할 겨를이 없다는 점이 정종신 대표의 장점이자 강점이다. 앞으로의 꿈은 목공 일을 계속하고 싶다는 것.
“저는 자연적인 것이 좋아요. 어떤 형태로든 목공예 일을 계속하는 것이 작은 바람이에요. 사업이야 당연히 현재와 미래를 고심하며 더욱 발전시켜야죠.”
미래를 위해 오늘의 한 걸음에 충실한 정종신 대표. 그의 철물마트가 미래 어떤 모습으로 발전해 있을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철물마트의 1등 노하우
1. 새로운 것을 찾아라.
누구나 알고 접할 수 있는 제품으로는 경쟁하기 힘들다. 국내에 없는 제품을 고르되, 위험부담을 줄이기 위해 심사숙고는 기본.
2. 정보의 샘, 해외전시회!
해외 유명 전시회는 정보뿐만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알려주고 동기부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내 사업의 비전을 보고 싶다면 돈 아까워말고 해외전시회를 돌아다녀라.
3. 즉각적인 고객서비스
인터넷은 시간과 거리를 단축시킨 매체다. 그만큼 소비자 접근성과 대응 속도가 중요하다. 특히 소비자 답변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4. 적당한 때 내려놓을 줄 알아야
처음부터 끝까지 사장이 다 간섭하면 잘 될 일도 안 된다. 평생 혼자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지 않다면 직원을 믿고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한다. 맡은 일 잘하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똑같다.
5. 과거는 뒤로, 현재와 미래 우선
과거에 대한 후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미래를 열기 위해 바로 지금에 충실하라.
정종신 대표가 말하는 우리나라 DIY 산업전망
국내 DIY 현주소 … 중국보다 낙후
주변에 전동드릴 하나 갖고 있는 집이 얼마나 될까. 우리나라는 빨리빨리 문화로 급속도로 발전했다. 인구밀도가 높아서 차고나 마당 같은 여유 공간도 부족하다. 여유 있게 손수 천천히 하나하나 설계하고 조립하는 문화가 정착이 안돼서 사실상 많이 뒤처져 있다. 몇 년 전 영국 DIY 업체인 B&Q가 영등포에 매장 냈다가 2년만에 실패하고 돌아갔다. 중국은 이케아 대리점이 60~70개나 있지만 한국은 이제 시작이다.
이케아 한국 상륙 … 미리 겁먹지 마라
이케아가 국내에 들어오는 것에 우려의 목소리도 많지만 너무 겁먹을 필요는 없다. 이케아의 가격대가 싸다고 하지만 실제 업계에서 봤을 때 경쟁 못할 수준이 아니다. 오히려 제품의 질이 떨어지기 때문에 중.고가대 품목에는 크게 영향을 주지 못한다. 그래서 국내 가구 산업에 미치는 영향도 크지 않을 것이다.
국내 DIY 산업전망 … 서서히 청신호
매우 긍정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세대가 변하면서 서서히 바뀔 거라고 본다. 새로운 세대들은 주5일 근무 정
착과 취미 생활, 주택문화의 변화 등으로 DIY 시장에 큰 영향을 줄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청신호임은 분명하다. 노동을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취미로 하는 것은 다르다. DIY는 즐기는 문화의 한 부분이라는 맥락에서 활성화될 것이다.
글, 사진 _ 배선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