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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KERS

기술 하나로 인정받은 (주)동해홀쏘



까다로운 일본업체들도 인정한 30년 기술

김세영 창립자 & 김규호 대표




동해홀쏘는 1985년 국내 최초로 초경홀쏘 제조를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약 30여 년간 홀쏘를 전문으로 생산해 오고 있는 기업이다. 홀쏘란 주로 구멍을 뚫는 데 사용되는 공구로 전동드릴 등에 부착하여 목재ㆍ플라스틱ㆍ금속ㆍ비철금속 등에 구멍을 뚫는 데 사용되는, 날 끝이 톱니처럼 생긴 천공공구를 말한다. 동해홀쏘는 2001년부터 바이메탈 홀쏘를 국내 최초로 생산하기 시작했으며 현재 국내 시장은 물론 일본, 아시아, 유럽 등 여러 나라로 수출을 하고 있다.


무인자동화설비의 동해 홀쏘


바닥에 기름 하나 먼지 하나 없는 깨끗한 공장에서 로봇이 혼자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작업자는 기계 옆에 항상 붙어 있지 않고 이따금 생산공정에 오류가 발생하는 것은 아닌지 제품과 설비 라인을 살펴 볼 뿐이다. 로봇이 혼자 제품을 생산하고 있기에 사람이 다치는 일도 없고 제품도 정밀하다.
21세기가 오면 많은 공장들이 이런 식으로 변할 것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했었다. 그러나 실제로 그렇게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은 드물다. 기계 설비 및 유지가격이 단순 노동 인건비보다 더욱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건비가 높으면서 기술 선진국인 일본이나 미국에서나 무인자동화설비 공장을 찾아 볼 수 있다. 그런데 한국에도 그런 설비를 지닌 공장이 있다. 바로 동해홀쏘다. 창립자인 김세영 전 대표의 말을 들어 보았다.
“젊은 시절부터 다른 사람이 만들지 않는 것을 만들고 싶었어요. 회사를 세울 당시만 하더라도 하이스홀쏘를 만드는 업체들이 이미 있었어요. 그때는 그것이 주종이었거든요. 그래서 다른 사람이 만들지 않는 것, 즉 초경쪽으로 손을 대기 시작했습니다. 하이스와 초경은 재질의 차이입니다. 하이스홀쏘는 일반적으로 얇은 철판에 구멍을 뚫는데 사용되는 공구입니다. 하이스홀쏘로 작업할 수 없는 강질의 철판에는 초경홀쏘를 써야 합니다. 산업이 발전하면서 분명 초경홀쏘가 주류로 변할 것이라고 믿었죠. 처음부터 제조업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회 첫발은 생산관리직으로 시작하였죠. 훗날 제조업을 경영하는 저에게는 그때 사회 초년병 시절의 경혐이 남들보다도 품질, 생산성 등에서 만큼은 한발 앞서 나갔던 것 같습니다.”
창립자인 김세영 전 대표는 젊은 시절 구미수출공업단지에서 생산관리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하였다. 삼성물산에서 교육하는 품질관리교육을 받으면서 늘 제조업에 관심을 갖고 언젠가는 제조업을 해야겠다는 꿈을 가졌다고. 1980년 공구유통업을 시작하면서 국내 시장에 일본 제품이 주를 이루던 홀쏘를 보게 된다. 이 홀쏘 제품의 국산화를 이뤄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1985년 초경홀쏘 제조를 시작으로 제조업에 뛰어든다.


신앙의 힘으로 위기를 극복해
 
김세영 창립자와 김규호 대표는 깊은 신앙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한 신앙의 힘은 힘들 때나 기업의 위기 상황에서 큰 힘이 되었다고 한다.
“회사를 경영하다보면 은행에 돈을 빌려야 하는 일이 옵니다. 처음에는 지금의 김포자리가 아닌 서울 영등포에서 공장을 운영하고 있었어요. 점점 규모는 커져가고 사람들도 늘어나는데 공장을 늘리고 싶었거든요. 일본 공장들은 좁은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하여 건물의 위 공간을 활용합니다. 일본을 자주 방문하다 보니 일본식의 천장이 높고 건물 골격이 아주 튼튼한 공장을 차리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설비분야에도 투자를 하고 싶었고요. 은행에서 외화 대출을 추천하더군요. 현재 환율로 계산해서 외화를 대출해 공장에 투자를 했는데 IMF가 찾아온 것입니다. 엔화 100엔당 780원일 때 돈을 빌려 1,950원 가까이 오르니 견디질 못하겠더라고요. 환율이 안정되기까지 기다리려고 했는데 기다리면 또 개인신용에 문제가 생겨서 갚아 나아가야 했어요.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뜻이라고 생각하고 기도하고 버티고 기업을 운영했지요. 지금 생각해보면 나 혼자서 어떻게 그렇게 일을 벌였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차차 나아지더군요. 대출을 받아 공장과 설비에 투자를 했기에 좋은 제품을 생산할 수 있었고 소비자들의 호응이 좋았기 때문입니다.”
동해홀쏘는 아침마다 전 직원이 체조를 한다. 그리고 일주일에 2번 월요일, 수요일 다 같이 모여 예배를 올린다. 이러한 일체감과 신앙심이 사고가 일어나거나 경영의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극복할 수 있는 힘이 된다고 말한다. 기업가들 중에 깊은 신앙심을 가진 경영인들이 많다. 기업을 경영하는데 받는 다양한 압박감과 스트레스를 신앙심으로 극복하는 것이다. 동해홀쏘도 마찬가지다. 김세영 창립자와 그의 아들인 김규호 대표는 깊은 신앙의 힘으로 어려움을 극복하고 기업을 경영하고 있었다.



일본을 비롯한 해외에 제품 수출해
 
동해홀쏘의 제품은 일본 업체들이 인정하는 한국 제품이다. 또 국내 소비자들의 인식이 일본 직수입 제품과 동등하거나 오히려 더욱 우수한 제품성능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한다. 그 품질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2001년도에 일본의 한 홀쏘 제조업체가 저희 공장에 일본 홀쏘를 한국 시장에 판매해 달라고 방문했었습니다. 물건을 판매하기 위해 온 손님에게 저희는 반대로 저희 물건에 대한 견적을 주고 돌려보냈죠. 그때부터 일본과 거래를 시작해서 지금은 일본의 5개 업체와 거래를 하고 있습니다. 일본과 거래를 해보신 분들은 다들 잘 아시겠지만 정말 까다롭습니다. 처음에는 트집을 잡기 위해 한국에서 물건을 받나 싶을 정도로 까다롭게 요구해왔습니다. 그런 일본의 품질 관리가 저희 동해홀쏘에게는 큰 밑바탕이 되었다고 봅니다. 저희 동해에서는 수출용이든 내수용이든 동일 조건으로 생산하고, 품질 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이런 관리가 저희 회사의 경쟁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러한 경쟁력의 또 다른 원천이 바로 무인자동화설비다. 사람이 없이 제품을 생산하는 무인 자동화 설비는 일본에서 제작되었다. 일본식의 철저한 품질관리 마인드와 일본에서 만든 설비로 제품을 생산하니 일제 못지않은 뛰어난 품질의 제품이 나올 수 밖에 없다. 여러 제품들 중 가장 심혈을 기울여 생산하는 제품이 바로 초경홀쏘다.
“홀쏘 중에 초경홀쏘는 저희 동해홀쏘가 국내최초로 시작한 품목이다 보니 여러 가지 홀쏘 중에서도 애착이 가장 많이 갑니다. 초경홀쏘는 공정수가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얼마나 관리를 잘하냐에 따라서 제품의 품질 뿐 아니라 원가도 크게 좌우됩니다. 저희 동해홀쏘에서는 1994년부터 일본으로부터 무인자동설비를 도입했습니다. 그 때만해도 비용적인 부담 때문에 무인자동기계 도입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는 직원들도 많았는데, 지금 돌아보면 20여 년 전의 투자가 1997년 IMF, 2008년 미국발 경제위기 등을 겪으며 효자 노릇을 했음을 확신합니다. 무인자동화가 이루어 지기 위해서는 한 공정만이 아니라 각 공정별로 제품의 정밀도가 요구됩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전체 제품의 품질이 향상되게 되었고, 품질 향상이 시장에서도 인정받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무인자동화설비는 해외에서 온 바이어들도 보고 저희 제품에 대한 신뢰를 갖게 되고, 수출 계약도 쉽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업계 최초 한·EU FTA 원산지인증수출자 받아
 
하지만 근래에는 홀쏘가 주로 사용되는 건설, 인테리어 분야는 불황이다. 더 이상 홀쏘가 많이 팔리기를 기대하기란 어렵다. 그래서 동해홀쏘는 판매처를 다각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국내 시장에서 홀쏘 수요 또한 크게 변하지 않는다고 보고, 저희는 해외 시장을 넓히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까다로운 일본에 수출을 하다 보니 아시아, 유럽 등으로의 수출은 쉽게 진행되었습니다. 유럽으로 수출이 늘어나다보니 2010년에는 인천세관에서 연락이 와서, 도와줄테니 한·EU FTA 원산지인증수출자를 받아볼 의향이 있는지 물어보기도 하더군요. 그때가 한·EU FTA 협상이 진행되고 있을 때였습니다. 아마 공구업계에서 처음으로 한·EU FTA 원산지인증수출자를 받은 거로 알고 있습니다. FTA가 체결되더라도 원산지인증수출자가 없으면, 수입국에서는 관세 혜택을 받지 못합니다. 그때 최초로 받은 업체들을 대상으로 지식경제부에서 세미나를 해서 참석했는데, 저희 동해홀쏘를 제외하고는 모두 자동차, 전자 업계 뿐이었습니다. 한·EU FTA가 발효된지 3년이 지난 지금, 유럽으로의 수출도 크게 늘고 있습니다.”
사실 최근 환율이 좋지 못해 수출이 아주 즐겁지만은 않다고 한다. 더군다나 엔화의 하락폭은 달러나 유로화보다도 심했다. 동해홀쏘는 일본과 거래가 많다보니 부담도 되지만, 최근 몇 년간 엔화 상승으로 혜택을 많이 받았던 것을 생각하면서 긍정적으로 잘 이겨내고 있다. 이러한 긍정적인 에너지는 창립자인 김세영 전 대표의 아들 김규호 대표이사의 역할이다. 김규호 대표이사는 특히 바이메탈홀쏘 제작과 판매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



일본으로부터 인정 받은 바이메탈홀쏘
 
동해홀쏘가 바이메탈홀쏘를 국내에서 처음 만들게 된 계기는 국내 시장에 판매를 위해 시작한게 아닌, 2001년 일본의 기업으로부터 주문을 받고 나서였다. 일본에서는 저렴하면서 뛰어난 품질의 바이메탈홀쏘를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일본 소비자들의 요구를 충족할 정도의 뛰어난 품질의 바이메탈홀쏘 생산을 시작한지는 벌써 14년이 지났다고 한다. 이제는 일본 시장에서는 인정을 받아 여러 업체로 수출량이 크게 늘었다고. 오히려 국내 시장에서는 저가 중국산 제품으로 점유율 확대 속도가 느리다고 한다.
“하이스홀쏘, 초경홀쏘는 국내에서 어느 정도 인정을 받아 시장을 나름대로 확보하고 있지만, 유독 바이메탈홀쏘 만큼은 쉽지 않습니다. 오래전 수입 제품들이 국내 시장에 먼저 선보이면서 저가의 중국산 제품들로 인해 바이메탈홀쏘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이 나쁘거든요. 이로 인해 저희 동해 바이메탈홀쏘 또한 같은 취급을 받아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러나 일본 기술과 기기를 도입하여 정밀한 품질관리로 생산했기에 일본제품 못지 않는 제품입니다. 또한 올해 중소기업청에서 지원하는 산학협력기술개발사업에 저희 동해홀쏘의 바이메탈홀쏘 자동 생산 및 검사 장비에 대한 개발이 선정되어 과제가 진행 중에 있습니다. 이번 개발로 바이메탈홀쏘의 품질향상 및 생산성이 보다 증대되어 앞으로 보다더 경쟁력 있는 제품으로 나갈 것임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동안은 바이메탈홀쏘의 수출에만 신경써왔지만 이제는 그동안 신경써 오지 못한 국내 시장에서 바이메탈홀쏘의 국산화를 이루는데 노력해보려고 합니다.“
뛰어난 품질의 동해홀쏘는 납기 부분도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 동해홀쏘가 가진 400여가지 규격 중에 재고가 부족해서 출고가 안되는 것은 365일 중 7일이 채 안된다고.
수입 제품보다 우수한 제품을 저렴한 가격에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업체가 바로 동해홀쏘다. 일제와 다름없는 뛰어난 품질의 제품을 제작 판매하는 동해홀쏘는 앞으로도 소비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글, 사진 _ 한상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