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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온 손님은 다시 찾는 공구상 수원 성일공구볼트 윤현우 대표



한번 온 손님은 다시 찾는 공구상
 
수원 성일공구볼트 윤현우 대표



 
수원공구유통상가는 왕복8차선 도로 바로 옆에 위치한 공구상가다. 왕복 8차선 도로로 유동인구가 많은 이곳에는 많은 공구상들이 모여 장사를 하고 있는데 그중 가장 큰 공구상이 바로 성일공구볼트다. 성일공구볼트는 업체에 공구를 납품하기보다 공구소매로 큰 성공을 거둔 공구가게. 불과 몇 년 만에 소매로 성공한 성일공구볼트 윤현우 대표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용꼬리보다 뱀머리가 되겠다
 
성일공구볼트의 윤현우 대표가 공구상을 시작한 것은 7년 전인 2006년. 공구상을 운영하기 전에는 볼트나사를 판매하는 일을 했고, 볼트나사 판매로 사업을 운영하기 전에는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저는 1996년에 ‘성일산업’이라는 회사를 창업하였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7년 전 정도 된 것 같네요. 그때는 지금처럼 공구상이 아니었어요. 볼트나 나사를 취급하는 업체였죠. 볼트나 나사를 취급하기 전에는 평범한 직장인이었구요.”
윤현우 대표는 올해로 쉰 둘. 1962년생이다. 조선대학교 금속학과를 나와 처음에는 열처리 관련 회사에 들어가 열처리 업무를 배웠고, 이후 나사 볼트를 만드는 회사에 재취업하여 제조과정을 익혔다.
“그때 나사에 관한 지식을 많이 배웠죠. 학교에 다닐 때 배우는 지식이 5라고 한다면 현장실무는 20이죠. 현장에 들어가면 처음부터 다 배워야 해요. 어느 정도 세월이 흐르고 제조에서 더 이상 배울 것이 없자 회사의 영업부에 찾아가 영업을 하고 싶다고 했죠. 영업에 대한 인식이 좋지는 않았지만 사실 기업의 꽃은 영업입니다. 그때 제가 전국적으로 영업을 안 가본 적이 없었어요.”
윤현우 대표는 전국에 영업을 하면서 독립의 꿈을 키우게 된다. 언젠가는 이 회사를 나와 사장님 소리를 듣고 말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것.


단돈 74만원으로 창업
 
74만원은 예나 지금이나 그리 큰 돈은 아니다. 윤현우 대표는 평범한 회사원의 한달 월급도 되지 않는 돈으로 나사 볼트 판매 회사를 차리게 된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는데 74만원으로 사무실과 중고차 한대를 구해서 내 사업을 시작했죠. 사실 영업사원으로 일 할 때 매입처 이런 곳에서 상당히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요. 거래업체에서 창업을 한다면 물건을 우선적으로 주고 대금은 훗날에 받기로 했으니까요. 신뢰를 미리 쌓았기 때문에 창업이 가능했던것 같습니다.”
그러나 74만원으로 시작을 하니 어려움이 많았다. 나사나 볼트를 판매하자마자 대금을 갚아야 했다. 그러나 기존에 다니던 회사가 부도가나고 기존에 영업일을 하던 윤현우 대표를 찾는 전화가 많아지면서 사업상 성공가도를 달린다. 그때 느낀 점이 ‘아! 이렇게 돈을 모으는구나’ 싶었다고. 그런데 기쁨도 잠시 IMF가 터졌다. 받아 놓았던 수표나 어음이 부도처리 나면서 윤현우 대표는 ‘아! 이렇게 해서 망하는구나’ 싶었단다. 그렇게 창업 초기 2년 동안 윤현우 대표는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깔끔하고 화려한 공구상의 꿈
 
“힘들게 IMF 위기를 극복하고 사업이 다시 안정되면서 공구상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2006년에 공구를 시작했죠. 저의 거래처가 대부분 철물점이나 공구상 볼트가게인데 볼트가게는 아무리 청결하려고 해도 좀 지저분해요. 그런데 잘된 공구상은 화려함이 있더라고요. 반짝 반짝 빛나는 값진 공구들이 가지런히 놓여서 사람들에게 파는 것이 그게 참 부러웠어요. 또 다양한 공구를 가지고 있으면 그것도 재산이거든요.”
그래서 인천에서 사업을 하던 윤현우 대표는 경기도 수원의 수원공구유통상가에 입주하게 된다. 그리고 볼트 나사만을 판매와 더불어 공구를 취급하면서 소매를 전문으로 하는 공구상으로 변신을 한다.
“나사나 볼트를 사러 우리가게에 오는 사람 몇몇은 공구를 필요로 했습니다. 나사볼트를 하면서 동시에 공구를 하면 성공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또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이니 소매를 하면 성공하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음식점 장사나 공구 장사나 소매는 매한가지로 자리가 좋으면 성공하니까요”
공구판매는 나사볼트 판매보다 마진은 크지 않다. 그러나 나사나 볼트를 사는 경우 당사자가 직접 봐야 하는 단점이 있고 주문제작 과정도 어렵다. 주문제작을 하면 도면을 그리고 금형 수정도 해야 하지만 공구는 그렇지 않다. 물건을 받아와 팔면 끝이다.


자금회전이 좋은 소매장사가 최고
 
성일공구볼트는 다른 매장에 비해 밝고 크고 깨끗하다. 모든 물건이 제자리에 자리 잡혀 있다. 공구를 수리하는 자리도 깔끔하여 파는 물건을 가져다 놓은 느낌이다. 이처럼 유독 디스플레이에 신경을 쓴 까닭은 무엇일까.
“깨끗하고 좋으면 사람이 대우를 받는 느낌이잖아요. 아무리 그 집 물건이 싸더라도 어지럽거나 더러운 곳에 가면 기분이 좋지 않아요. 사람이 티코를 타면 주위 사람들이 그 사람을 티코로 보고, 에쿠스를 보면 주위사람들이 그 사람을 에쿠스로 보죠. 그런 이치입니다. 깨끗하고 정리 잘된 공구상에 가면 사람들이 대접받는 느낌을 가지고 다시 오고 싶어 합니다.”
윤현우 대표는 공구 소매 판매에서 중요한 것은 손님이 직접 보고 고를 수 있는 시스템이라고 한다. 손님이 볼 때 제품을 구분할 수 있는 가게가 신뢰가 간다고. 그래서 디스플레이에 많은 노력을 쌓았다. 이처럼 손이 많이 가고 까다로운 소매를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업체에 공구 납품을 하기도 했죠. 그런데 업체와 거래를 하다 보면 부도처리 되는 어음이나 수표를 받기도 했어요. 제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거래 업체가 망해 버리면 어음이 휴지조각이 되면서 손해 입는 것은 어쩔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소매장사에만 주력을 하게 되었죠. 업체 납품에만 주력하면 이렇게 커지기 힘들죠. 자금 회전이 안되니까요. 중요한 것은 자금 회전입니다.”



없는게 없는 전국최고 공구상으로
 
윤현우 대표의 가장 큰 신조는 약속은 지킨다다. 지금의 이 자리에 오르기까지 가장 큰 성공비결은 신뢰 신용을 쌓아 왔던 것이라고. 못 지킬 약속은 하지 말고 약속을 못 지킬 때는 미리 연락을 줘야 한단다. 그렇기에 2006년 공구상을 시작할 때는 12평이던 공구상이 지금은 100평이 될 수 있었다.
“공구 가짓수를 더 늘려야 해요. 남들은 제품이 많다고 하지만 지금도 없는게 많아요. 내 계획은 메이커 별로 모든 제품이 잘 정리되어 전시판매되는 것이죠. 대기업의 대형마트처럼요. 성일공구볼트를 지금보다 더 큰 공구상으로 발전시켜 나가고 싶습니다.”
수원에서는 성일공구볼트만큼 크고 구색을 갖춘 공구상을 찾아 보기란 힘들다. 하지만 윤현우 대표의 목표는 더욱 크다. 이제는 경기도 수원뿐만이 아니라 전국을 통 틀어 없는게 없는 공구상이 되는 것이 목표다. 윤현우 대표의 그 바램이 이루어지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