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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땅에서 이룬 토종 측량기기 명성




맨땅에서 이룬 토종 측량기기 명성, 신영측기㈜


“이제 세계무대 바라보죠”



 대한민국 측량기기업계의 대표회사 신영측기. 신영측기는 일본 측량브랜드 대리점으로 1위를 하면서 동시에 신콘이라는 브랜드를 만들어 시장점유율 1위까지 달성한 기업이다. 동시에 해외에도 눈을 돌려 오래전부터 해외진출에 힘써 왔다. 한국의 측량기기 회사로는 유일하게 측량기술연구소를 운영하며 중국에 진출하여 신콘 레이저 레벨 중국 공장을 설립한 신영측기. 이제 신영측기는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로 진출하는 글로벌 기업이다



40년 역사의 신영측기

신영측기는 고한종 대표의 선친께서 1972년 3월에 설립하신 '신영기계상사'에서 비롯된 측량기기 업체이다. 이후 끊임없이 노력하던 신영기계상사는 1993년 5월에 '신영측기사'로 상호를 변경하였으며 2009년에 사옥을 부천으로 이전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지난 5월에는 설립 20주년을 맞아 행사를 가졌다. 행사에는 측량기기업계 뿐만 아니라 많은 공구업계의 귀빈들이 참석하여 화제가 됐다. 대한민국 대표 측량기기 업체 신영측기의 CEO 고한종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직원 3명의 기업으로 출발


신영측기의 역사는 길게 보면 40년이지만 기업으로 발돋음을 시작 한 것은 1993년 고한종 대표가 신영기계상사에서 일을 하면서부터다. 신영측기의 전신인 신영기계상사는 당시 영세한 가게 수준이었고 전 직원은 고한종 대표의 부친과 동생 그리고 고한종 대표 단 세사람에 불과 했다고 한다.
“제가 입사할 당시에 아버님께서 측정기기를 수리하시는 기술로 작은 가게를 운영 하셨습니다. 일본에서 학업을 마치고 돌아오니 아버님께서 함께 일하자고 권하셨고 저는 그에 응했던 것이죠. 그런데 당시 신영측기는 직원 하나 없었어요. 그래서 당시 톱콘의 대리점들 중에서 실적이 꼴찌였죠. 아버지와 함께 아침 7시에 출근해서 아버지께서 수리를 하시면 저는 전철을 타고 영업을 하러 서울 시내 곳곳을 다녔습니다.”
인터뷰를 시작하자 차근 차근 경영자 과정을 밟아온 2세 경영자가 아닐까 하던 생각은 금세 사라졌다. 신영측기의 고한종 대표는 밑바닥에서부터 산전수전을 다 겪은 자수성가형 CEO.



명동의 ‘골라골라’ 일본을 가다


1993년 당시 영업을 담당했던 고한종 대표는 불과 5년 만에 톱콘 대리점 중 판매매출 1위를 달성했다. 힘든 영업을 꼽으라면 1,2위를 다투는 것이 측정기기 영업. 측정기기 자체가 고가의 물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고한종 대표만의 영업 비결은 무엇일까.
“그냥 성실하게 공격적인 영업을 하는 것이죠. 제가 직접 영업을 할 때는 매일 아침마다 머리 속에 방문할 회사 일정이 다 있었어요. 신규개척도 두려워하지 않고 말이죠. 영업을 할 때 영업사원들이 많이 겪는 부끄러움이나 멋쩍음 같은 것이 없었습니다. 20대 때는 명동시장에서 ‘골라골라’를 외치며 난전생활도 했는걸요.”
수십명의 직원을 이끄는 중견기업 CEO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한다. 사실 고한종 대표의 부친은 기술은 있었으나 돈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래서 대학에서 공부를 할 것이 아니라 돈을 벌어야 겠다는 생각에 입학 한 달 만에 대학을 나와 명동시장의 난전에 뛰어들었다고.
“젊었을 때는 명동시장에서 ‘골라골라’를 외치며 장사를 하고 밤에는 당구를 치는 나날이었어요. 그런데 어머님이 당시에 일본에서 일을 하시고 계셨는데 일본에서 공부하면서 일을 해보라고 하셨죠. 어머니 말씀을 듣고 사실 공부보다는 일본의 프로 당구선수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현해탄을 건넜어요. 그때 당구 실력이 한 1000점 정도 될까... 하하”
당구를 1000점 친다면 프로나 다름이 없다. 그러나 웬걸, 프로 선수의 부푼 꿈을 안고 현해탄을 건너니 1980년대의 일본은 프로 당구선수가 전무한 상태였다. 결국 고한종 대표는 일본의 한 대학에서 공부를 하며 온갖 아르바이트로 목돈을 모으게 된다.
당시 일본과 한국의 환율차이가 커서 일본에서 아르바이트로 번 돈은 한국의 대기업 직원 봉급보다 높은 시절이었다. 그래서 적지 않은 돈을 모을 수 있었다고. 그리고 그 돈은 훗날 신영측기의 귀한 사업자금이 된다.


어음과 싸워 이겨라


이후 일본에서 귀국한 고한종 대표는 아버지를 도와 사업을 성장시키는데 주력한다. 그렇다면 다양한 경험에서 비롯된 공격적인 영업이 아닌 또 다른 성장 비결과 성장을 하며 겪은 위기는 무엇이 있을까.
“어음이 가장 큰 문제였어요. 중견 건설사들이 측량기기를 많이 사거든요. 그런데 건설사에서는 어음을 끊어 주는데 어음은 몇 달 후에 은행으로부터 돈을 받을 수 있는 것 아닙니까. 당장 돈은 급하고. 어음 할인을 하는데 이자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제 1금융권에서는 중견 건설사의 어음을 매입하지 않더군요. 그래서 제 2금융권에 서 어음할인으로 현금을 조달하곤 했어요. 직원 월급이랑 물품 대금 기일은 지켜야 하니까요. 그런데 제 2금융권의 이자가 많이 비싸잖아요. 그러니 기업을 성장시키는게 쉽지가 않더군요.”
어음할인이란 금융기관이 어음소지자의 의뢰에 의해 액면금액에서 만기일까지의 이자를 공제하고 매입함으로써 어음의 유통을 도모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제 2금융권 같은 경우 이자가 20%가 넘을 때도 많아 경영이 쉽지만은 않았다. 물건을 팔아도 어음으로 받고, 당장 급한 현금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금융회사에 어음을 싼 값에 넘겨야 했던 것.
“그래서 눈 딱 감고 친구들에게 부탁해 어음을 팔기도 하고 그랬죠. 어떻게든 어음을 제값으로 받기위해 그때까지 버틸 돈을 마련해야 했습니다. 집을 담보로 잡고 은행에서 대출을 받기도 했고요. 시간과의 싸움이기도 한데, 한 3년 동안 고생을 하니까. 빛이 보이더군요. 3년 후에는 어음을 받아도 굳이 제 2금융권을 이용할 필요가 없었고요. 그때부터는 성장에 속도가 붙더군요.”



한국 토종 브랜드, 신콘


어음관련 문제가 해결되면서 회사가 지속적인 성장을 이루게 되자 고한종 대표는 브랜드의 아쉬움을 느끼게 된다. 외국브랜드인 레이저레벨과 자동레벨을 판매하면서 우리나라만의 토종 브랜드가 없다는 것이 아쉬웠던 것. 결국 고한종 대표는 대한민국의 토종 브랜드인 신콘을 만든다.
“대략 10여 년 전만해도 레이져 수평기 시장에는 외국 제품만 있었어요. 그래서 SINCON이라는 토종 브랜드를 신규개발 하였죠. 신콘이란 브랜드의 의미도 뉴 아이콘을 합성하고 다시 신영측기의 의미를 포함하여 최종적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지금은 한국시장에서 시장 점유율 1위는 물론이고 나아가서는 소비자가 가장 선호하는 브랜드로 자리 잡게 되어 기쁘죠.”
측량기 업계 최초로 '측량기술연구소'를 설립하기도 한 신영측기는 신콘이라는 브랜드로 매년 국내외 전시회를 10차례 이상 참가하였다. 결국 신영측기의 신콘 제품을 해외에도 선보일 수 있게 된다. 2007년 10월에는 신영측기(주) 상해지사를 설립해 중국 내수 시장 및 동남 아시아 지역으로 진출할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하기도 했다고.



이제 목표는 국내가 아닌 해외


국내에서 잘 성장 하고 있는데 굳이 해외로 눈을 돌린 이유는 무엇일까.
“국내의 측량기기 및 레이저 레벨 시장이 작아요. 지금까지 신영측기는 국내 내수시장을 바탕으로 성장한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하지만 국내시장만을 가지고는 신영측기가 더 이상 성장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기업인이라면 새로운 시장을 찾아서 도전을 해야 하거든요. 그래야 기업이 살고 기업에서 일하는 직원들도 사는 것이죠.”
그러나 고한종 대표가 처음 상해지사를 설립하고자 했을 때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만류를 한다.
“솔직히 제 고집으로만 밀어부쳤어요. 개인적으로 그 당시가 가장 힘들었죠. 또 지금 생각해 보면 가장 잘한 일이 아닌가 생각이 들어요. 물론 저의 고집 때문에 동생인 고한천 전무가 불모지인 중국에서 고생을 많이 했고 지금도 많은 고생을 하고 있지요. 항상 미안하고 고맙게 생각하는 부분입니다.”
경영자와 회사원의 차이는 이런 점이다. 미래를 보고 투자를 하느냐 현재를 보고 살아가느냐 하는 차이. 몇 년의 준비 기간 끝에 신영측기는 15억 중국 내수 시장공략을 시작했다. 앞으로 가까이는 중국 더 멀리는 세계 각국으로 신콘을 수출하여 10년 이내로 레이저 레벨 분야에서세계 TOP 10 브랜드에 들어가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그래서 이제는 중국 전시회 참가를 넘어 인도네시아와 베트남 전시회에도 참가하기 위한 준비를 마친 상태라고. 고한종 대표에게 앞으로의 신영측기는 어떤 모습으로 발전시킬 것인가를 물어 보았다.
“결국 사업이란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좋은 인재를 등용해 남들이 따라올 수 없는 기술력을 보유하고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인정받는 회사로 발전시킬 것입니다. 더불어 직원들의 복지향상을 통해 평생 다니고 싶은 직장을 만들고 나아가서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이 되어야겠죠. 신영은 이제 겨우 20년 만에 탄탄한 중견 기업이 되었습니다. 앞으로의 미래는 더욱 밝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국내 토종 브랜드 신콘을 내세워 해외 시장 개척에 나선 신영측기의 앞날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