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종류 또는 다른 금속재료에 열과 압력을 가하여 결합이 되도록 접합시키는 용접은 예나 지금이나 무척 중요한 산업 기술이다. 그러나 용접은 근로자의 안면이나 눈을 유해광선, 열, 연기 등에 노출하는 위험한 작업이기도 하다. 그런 용접을 보다 안전하게 만들어주는 물건이 바로 안전보호구의 일종인 용접면. 써보레는 1989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개인 안전보호구 전자식 자동차광용접면을 개발하여 한국시장에 보급한 회사로 근로자들이 현장 안전에 대한 개념 자체가 미흡했던 시절부터 제품을 생산하고 보급하였다. 거듭된 제품 개발 실패 속에서도 끝없이 도전하여 용접기술자들에게 더욱 안전하고 편리한 작업환경에 필요한 자동차광용접면을 만들어 판매해온 과정들을 알아보자.
철도공무원, 용접면 전문가 되기까지
1944년생 서운수 대표의 첫 사회생활은 철도공무원이었다. 서운수 대표는 철도 공무원을 하다 30대에 들어서면서 섬유회사에 입사하는데 몇 년 뒤 사업가로 변신하게 된다. 다니던 회사 사장님의 도움으로 독립하여 사업을 시작하게 된 것.
“그런데 섬유업이 노동집약적인 업종 아닙니까? 긴 세월을 섬유업에 종사하면서 느낀 바가 있어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찾곤 했었죠. 80년대 후반이 되면서 섬유업은 사양 산업이라는 것을 확연하게 느꼈었어요. 우선은 직공을 구하기가 힘든 거예요. 그리고 섬유업의 특성상 규모가 있어야 하거든요. 어느 정도 되는 규모로 많은 인원을 기숙사 운영까지 해야 성공할 수 있는 업종입니다. 그런데 임금 자체가 계속 상승을 하니 이렇게 사람을 많이 고용하는 사업은 매력이 없다고 느꼈죠. 그래서 전자 쪽으로 사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게 시대의 흐름을 읽고 섬유사업을 하던 서운수 대표는 청계천의 친구로부터 자동차광용접면을 알게 되고 1989년부터 업종을 전환하여 제품을 개발 생산한다.
“처음부터 용접이나 용접면에 관련 인연이 있었던 것은 아니에요. 그런데 청계천에 친구가 한 명 있었는데 그 친구가 외국에는 이런 제품도 있더라 하며 외국의 자동차광용접면을 보여주었죠. 저는 그 순간 이거다 싶더군요. 그때 당시는 국내에서 이런 자동차광용접면이라는 물건 자체가 없었어요. 그래서 제품 개발에 들어갔지요.”
빚으로 시작해 어려웠던 초창기
그러나 문제는 자본금이었다. 빚을 내어 시작한 사업이다 보니 자본금이 적었던 것. 섬유업으로 오랫동안 사업을 하였으나 큰 재미를 보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그때 당시에 제가 동생을 여럿 거느린 장남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그때까지 식구들을 다 거느리고 동생들 장가보내는 장남으로서의 역할을 해야 했죠. 그래서 성실히 일했어도 큰 자본금을 모을 수는 없었어요. 새롭게 사업을 시작할 때 빚을 내어 제품을 개발했습니다. 그런데 그 개발하는 과정이 너무나 힘이 들었어요.”
그래서인지 써보레의 첫 제품의 성능은 생각보다 뛰어나지 않았다. 천신만고 끝에 개발하여 판매에 들어갔지만, 판매가 잘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
“우선은 기술적으로 미흡했기 때문에 1차 개발했던 것이 실패했다고 봅니다. 제가 봐도 우리 최초 제품은 수입품에 비교해서 성능이 떨어졌지요. 자동차광용접면은 빛의 속도와 싸워야 하는 물건입니다. 광학과 전자회로 이 두 가지 부분이 중요하고요. 그런데 필터가 차광되는 속도가 느려서 눈에 한 번 번쩍하다가 어두워지는 거예요. 그리고 가격도 일반 저가의 용접면에 비해 비쌌습니다. 재료비가 많이 들어갔거든요. 특히 광학 필터 같은 경우 우리나라에서 제작되는 것이 아니었어요. 인터넷도 없던 시절이라 광학 필터 관련 회사를 묻고 또 조사해서 해외의 여러 큰 회사에 편지를 썼지요. 결국, 스위스의 한 회사에서 연락이 왔는데 그때 김포공항으로 들어오는 필터 유리 한 장이 3만 원이었어요. 거기다 LCD 재료가 1만 2천 원 정도 되었고 다른 재료비까지 합쳐야 했죠. 한마디로 용접면 한 장 만들면 재료값만 하더라도 한 7만 원 혹은 8만 원이 들었던 겁니다.”
영업 위기탈출! 여보, 도와줘!
일반 보통의 용접면 보다 비싸고 외국의 자동차광용접면보다 떨어지는 성능의 써보레의 첫 제품은 시장의 외면을 받는다. 그런데 자동차광용접면이 팔리지 않는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생각해 보면 그때 당시에는 경영진 중에 직원들의 눈 안전에 그렇게 신경을 쓰는 사람도 없었어요. 안전개념. 눈을 보호한다는 개념 자체가 널리 퍼져 있지 않았던 것이죠. 또 가격이 비싸니 경영진이 제품을 사서 직원들의 눈을 보호하려고 해도 직원들이 행여 월급에 누가 될까 봐 스스로 거절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에 아내에게 도움을 요청했죠.”
그때부터 서운수 대표의 배우자인 장영숙 상무가 영업 일선에 뛰어들게 된다. 그때 당시의 상황을 장영숙 상무를 통해 들어 보았다.
“그때 제가 용접면을 가지고 나와서 반월공단이나 그런 곳에 영업하게 되었습니다. 물건이 나와도 판매도 안 되고 그러니 집안 살림만 하던 제가 나서야겠더라고요. 그런데 철을 다루는 산업 현장에 여자가 들어가 용접면 영업을 한다는 것이 또 드문 일이잖아요. 책이나 보험도 아니고. 그때 다른 영업 사원들은 단가를 낮춰야 한다는 말을 했거든요. 그런데 제가 현장을 둘러보니 단가를 깎으면 죽도 밥도 안되고, 또 조금만 성능이 올라가면 팔린다는 확신을 했지요. 그때 이미 해외에서 수입된 자동전자 용접면을 쓰는 곳이 있었어요. 그 수입품과 비교를 해 보니 제품을 더 개발하면 성공하겠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된 것이죠.”
큰 히트 친 써보레 제품 2호
자동차광용접면은 2가지 기능을 필요로 한다. 첫 번째가 용접면 필터의 차광속도가 빛보다 빨라야 하고 두 번째는 필터의 기능이 해로운 광선을 막아줘야 한다. 이런 기능을 충족시키는 것이 바로 1호 제품을 이어 탄생한 2호 제품 ‘SV-2000’이다. 이 제품은 큰 히트를 하며 시장의 화제가 된다. 이 제품의 성능이 탁월했기에 회사가 살아날 수 있었다고.
“지금도 ‘SV-2000’의 소모성 부품 구매문의를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제품 성능이 만족스럽고 또 그때 그 제품에 손이 익어 다른 제품을 쓰는 것이 싫으신 분들이 있으시니까요. ‘SV-2000’으로 인해 회사는 정상궤도를 향해 달려나갈 수 있었지요. 우리 제품이 외국 제품보다 3분의 1 정도 되는 가격으로 비슷한 성능을 보여줬으니까요. 그때부터 회사가 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제품이 좋아 일본으로 수출도 시작했고요.”
그렇기에 이후 IMF가 찾아와도 버틸수 있었다. 제품 품질에 대한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다. 그 사이 꾸준한 제품 개발로 써보레의 제품들은 외산 제품보다 더 뛰어난 성능을 자랑하며 국내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1등 제품 고집은 변치 않아
지금 현재 최고의 자동차광용접면을 생산하는 회사는 써보레다. 국내 최초로 자동차광용접면을 생산했기에 소비자들의 인지도도 국내 최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창기부터 이어온 최고제품에 대한 고집은 꺾지 않는다.
“최고 제품 아니면 만들지 않습니다. 그리고 최고 제품에 걸맞은 AS를 소비자분들에게 제공하려고 노력합니다. 단순히 저희 제품이 외산보다 저렴하기에 외산을 몰아내고 지금의 위치에 올라온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펜치나 니퍼를 보더라도 가격이 싸도 성능이 떨어지면 소비자의 외면을 받지 않습니까. 저희 써보레는 매년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고 소비자들의 요구에 맞는 자동차광용접면을 만들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근래에 세계최초로 용접용 자동차광 고글 보안경을 만들게 된 것입니다.”
가장 최근에 생산을 시작한 용접용 자동차광 고글 보안경은 모든 아크 용접작업에 사용이 가능한 제품이다. 휴대가 기존 제품보다 간편하며 타 보호구와 함께 착용이 가능한 제품으로 세계 최초로 개발된 고글 보안경이기에 그 의미가 남다르다. 용접면이 아닌 고글 보안경 형식의 완전히 새로운 제품으로 시장의 화제를 모으고 있다.
처음 청계천에서 외국산 자동차광용접면을 보고 국내 최초 개발에 성공하여 지금의 고글 보안경이 나오기까지. 써보레와 서운수 대표는 쉴 틈이 없었다. 그러나 서운수 대표는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말을 한다. 더욱 뛰어난 성능의 제품으로 모든 용접기술자가 써보레의 제품을 사용할 때까지 써보레의 성장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