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당시 타카시장은 일제, 미제, 독일, 이탈리아 4개 나라의 제품이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대만제품도 타카시장에 들어오게 된다. 그런데 대만제품이 들어왔기에 제일 타카가 인정을 받을 수 있게 된다.
“그때 대만 제품도 가격을 비싸게 받았거든요. 그런데 소비자가 써 보니까 가격은 비싼데 제일타카 제품이 더 나았던 거죠. 618이라는 모델이 그때 저희가 생산하는 모델이었는데 그때 대만제품보다 낫다는 소문이 돌면서 히트를 한 거죠. 그때부터 소비자들의 인지도가 생기기 시작했어요.”
그때 이후로 제일타카는 품질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게 된다. 기술력이 없을 당시 구축해 놓았던 AS 시스템은 제일 타카의 품질과 더불어 소비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게 되고 그때 이후로 제일타카는 사세를 확장할 수 있었다.
위기의 IMF가 전화위복으로
매년 사세를 확장하던 제일타카에도 위기가 왔다. IMF가 바로 그것. 평소의 매출이100%였다면 IMF 당시에는 절반 이하인 30% 정도로 매출이 떨어졌다.
“그때 사세 확장으로 새로운 공장 터를 구매하려고 하던 차였거든요. 좀 일어나려고 하는 순간이었는데 IMF가 터졌죠. 그래서 공장 계약금도 날릴 수밖에 없었어요. 부도난 어음도 많이 들어오고 직원들 고생도 이루 말할 수 없었죠. 일주일에 3일 4일밖에 일을 하지 못해서 월급이 절반가량 줄어들었으니까. 다행히 10개월이 지나자 조금 숨 쉴 수 있더군요. 그리고 그때 당시에 실내장식 업계가 활황이었어요. 어떻게 보면 조금 가슴 아픈 이야기인데 다른 업종에서 일하시던 분들이 다들 어려워업종을 바꾸며 실내장식을 바꾸게 된 거죠.그래서 타카를 찾는 분들이 많아 매출이 늘어났습니다.”
IMF 때문에 고생도 했지만, 환율이 크게 올라 수입 제품의 가격 경쟁력은 크게 떨어지게 된다. 그리고 그 자리를 제일타카가 자리 잡게 된 것. IMF는 위기였지만 또 다른 의미로 기회이기도 했다.
중동시장의 인기 상품 제일타카
제일타카는 재작년부터 해외 시장의 매출이 많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이란과 같은 중동 지방에서 제일타카의 인기와 인지도가 높다. 그 덕분에 폴란드 사우디 등과 같은 거래가 없던 나라에도 수출을 진행할 수 있었고 2011년에는 100만 불, 2012년에는 400만 불 해외매출을 달성하는 등 구체적인 성과를 이루었다. 그렇기에 작년 하반기 국내 경기가 악화 되었지만 해외 수출 물량 증가로 최근에도 주 3일 야근 생산을 유지 하고 있다.
“자만해서는 안 되겠지만 이제 국내는 어느 정도 평정했다고 봅니다. 그런데 회사는 계속 성장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해외로 눈을 돌려야 했어요. 국내 시장은 한계가 있으니까요. 1년이면 10번 이상 해외 박람회나 전시회에 참석합니다. 그렇게 꾸준하게 전시회 참석을 통해 신제품에 대한 아이디어도 얻고 전 세계 타카시장에 대한 현황도 분석하고 있지요.”
제일타카의 올해 해외 시장 매출 목표는 700만 불이다. 그만큼 국내는 물론 세계시장에서도 제일타카의 이름을 알리고 있는 셈. 제일타카는 미국과 더불어 중국에 JITOOL 공장을 완료하였고 앞으로는 중국 시장 개척에 더욱 큰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제일타카 100여 명의 직원들과 오왕근 대표는 제일 타카 제품을 통해 대한민국을 알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