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KERS
선진산업 에어구리스펌프 류봉석 대표
에어구리스펌프 한 품목에 올인
장인정신으로 성공한 1인 기업
구리스는 엄밀히 말하면 그리스라고 말해야 하지만 일반적으로 구리스라고 더욱 많이 불리는 윤활유다. 구리스는 보통 윤활유 주입이 힘든 곳에 사용된다. 그 이유는 바로 구리스의 흥미로운 특징 때문이다. 구리스는 상온에서 정지하면 반고체 상태를 유지하다가 운동을 시작하면 반액체 상태가 되어 윤활유 작용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기계가 움직이는 부분이나 차량의 조인트, 조향 장치 등 밀봉 유지가 힘든 곳에 사용된다. 이런 반고체상태인 구리스를 사용하는데 필요로 한 제품이 바로 구리스주입기다. 구리스주입기는 구리스펌프와 구리스건 2가지로 구분되는데 구리스 펌프 중 가장 높은 기술력을 필요로 하는것이 바로 에어 구리스 펌프다. 선진산업에서 제작되는 에어구리스펌프는 높은 품질과 저렴한 가격 그리고 빠른AS로 유명해 10년이 넘는 충성고객이 수두룩하다.
선진산업은 오직 에어구리스펌프 한 가지 품목을 주력으로 생산하는 기업이다. 한 가지 품목만으로 생존하는 기업은 그리 흔치 않다. 그러나 선진산업의 류봉석 대표는 에어구리스펌프 하나만을 연구하고 생산한지 벌써 20년이 넘었다.
“저도 사실 공구인입니다. 처음에 저는 구로공구상가에서 공구를 파는 공구인이었어요. 구로공구상가에서 형님이 공구상을 운영하고 있었거든요. 고향인 충주에서 농사를 짓다가 군대 다녀온 후 형님이 운영하는 공구상에서 일을 시작한거죠. 그때 당시 공구는 거의 청계천에서 떼어다 와서 파는 수준이었죠. 구로공구상가가 지어진지 2년 정도 밖에 안 되었던 때였어요. 그래서 당시 구로공구상가에도 빈자리가 많았어요. 청계천에서 상인들이 빠져나가지 않았으니까요. 형님이 운영하시는 공구상은 주로 에어관련 공구를 판매했습니다. 그렇게 에어공구를 팔면서 에어공구에 관련된 기계적인 특성도 공부하게 되고 에어구리스펌프도 만나게 되었죠.”
그때 당시 국내에서 제작되던 에어구리스펌프는 일본제품을 카피한 제품들로 성능이 지금처럼 좋지는 않았다. 다만 경기가 워낙 좋았던 시절이라 현금 장사를 하면서 적지 않은 돈을 모을 수 있었다고.
“젊었을 때는 형님이랑 같이 공구상을 7,8년 하면서 구리스펌프를 팔고 수리도 했죠. 그런데 아마 1994년도쯤 되었을 거예요. 청계천에서 구리스펌프를 제작하던 분이 나이가 많아서 못하겠다고 나보고 구리스펌프 제작기술을 인수하지 않겠냐고 한거죠. 덕분에 큰 돈은 안들이고 기존 하던 것을 그대로 인수 할 수 있었어요. 브랜드와 판매처도 함께요. 이걸로 밥 먹고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죠. 그때 당시에도 공구 장사를 하면 자금이 많이 들었어요. 가족이더라도 남에게 돈을 빌리기는 싫었는데 대출받지 않고서 내가 공구상을 하기란 힘들더라고요.”
예나 지금이나 공구상을 하려면 많은 돈이 필요하다. 형님으로부터 독립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류봉석대표는 때마침 찾아온 제조업 진출의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서둘러 기술을 익히고 모은 돈을 투자해 제품을 개량하여 판매에 나섰다.
“초창기 선진구리스펌프는 철판으로 제작된 통을 사용했습니다. 지금의 플라스틱과는 다른 모습이죠. 기존 제작하시던 분이 만들던 제품은 일제를 그대로 따라한 것이었어요. 솔직히 말해 고장도 잦고 힘도 약했죠. 기존 일본 카피제는 문제가 많아서 수입된 유럽제품을 뜯어다 살펴보고 개선 작업을 했습니다. 사실 유럽산과 일본제는 성능상 크게 차이점은 없어요. 다만 AS하기가 편해요. 일제는 완전히 뜯어다 분해를 해야 고칠 수 있는 반면 유럽제는 기존 부품만 있으면 쉽게 교체를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수리 시간이 정말 빠르죠.”
그렇게 개량한 선진구리스펌프는 날개 돋친 듯 팔리기 시작한다. 소비자의 호응이 뜨거웠지만 국내시장에는 한계가 있었다. 기술력과 품질에 자신감이 생긴 류봉석 대표는 미국 수출을 꾀하다가 경기도 양주로 공장을 옮기고 군에 납품하기 위한 입찰에 들어간다.
“탱크나 트럭과 같은 군 차량 정비에 많이 쓰이는 것이 이 구리스펌프입니다. 군입찰을 해서 당당하게 군납을 따왔어요. 그때는 정말 바빴죠.여러사람 고용해 야근을 밥 먹듯이 해서 제품을 생산해야 했어요. 에어구리스펌프 수 천대를 군에 납품했고 적지 않은 돈도 벌 수 있었어요. 그런데 몇 년 지나자 군에서 다른 품목도 함께 납품하길 바라는 겁니다. 어쩔 수 없이 군납을 그만뒀지만 자신있었어요. 군 말고도 여러 곳에 납품을 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IMF가 오더군요.”
기술과 품질에는 자신 있었지만 IMF 부도어음을 막을 수는 없었다. 몇 년간 힘들게 번 돈이 물거품처럼 사라졌다고 한다. 낙심하고 방황했지만 결국 마음을 다잡고 다시금 에어구리스펌프 제작을 시작했다.
“제품을 팔아 받은 어음이 부도어음이 되니까 부품값을 갚기도 힘에 부치더라고요. 결국 집을 파는 등 재산을 정리해서 소위 말하는 빚잔치를 했죠. 사람을 많이 쓰지 않고 홀로 1인기업 체제를 갖춘 것도 그 이후입니다. 에어구리스품목 하나만 생산하는데 인건비 조정을 해야 하니까요.”
부품가공까지 다 하려면 사람이 많이 들어가지만 부품은 주문제작을 하고 조립을 주로 하면 혼자서도 충분히 에어구리스펌프를 만들 수 있다. 그렇게 홀로 제작에 들어가자 오히려 이익률이 높아졌다. 바쁠 때는 집사람의 도움을 받으면서 인건비를 거의 안들이게 체질을 개선한 것이다. 선진구리스펌프의 핵심 기술력은 헤드부분에서 나온다. 헤드만 홀로 확실하게 제작할 수 있다면 제품을 혼자 제작하는 것도 가능하다.
“에어 구리스펌프는 공간이 있는 상판에 공기를 주입하여 그 압력으로 하단 구리스 용기를 압박하게 됩니다. 이 압력에 의해 주사기와 같이 상판의 압력에 의해 구리스가 호스를 따라 밀려 나오는 것이죠. 이런 기계적인 메커니즘은 헤드 부분에서 나오는 것인데 50여가지 부품이 제각각 정확히 움직여야 언제 어디서나 동일한 성능을 발휘 합니다. 여러 사람이 만들면 빨리 그리고 많이 생산할 수 있지만 불량제품이 나올 수 있죠. 하지만 혼자 만들면서 전부 제가 직접 기능검사를 하기에 불량제품이란 없습니다. 모든 공정을 제가 직접 손을 대고 확인하죠. 그리고 AS도 다른 업체에 비해 굉장히 빠르게 처리할 수 있죠. 이렇게 1인 기업으로 운영한지 10년이 넘었어요. 덕분에 에어구리스펌프를 몇 년 째 사용해도 고장이 없어요. 사용한지 몇 년 지나 수리를 맡기는 사람이 있을 정도입니다. 품질이 그만큼 뛰어난 거죠.”
선진구리스 펌프는 뛰어난 품질과 품질대비 저렴한 가격 그리고 빠른 AS 삼박자를 갖추었다. 이것은 류봉석 대표가 품질하고 AS 만큼은 확실하게 책임지겠다는 각오가 있었기에 나타난 일이다. 품질이 뛰어나기 위해서는 많은 직원이나 좋은 설비가 있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만드는 제품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이 있어야 뛰어난 품질의 제품이 나올 수 있다. 류봉석 대표가 만드는 선진구리스펌프가 바로 그 사례라 할 수 있다.
글 · 사진 _ 한상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