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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대동티엘


청계천 공구상이 무역상사로


중동시장 문열기까지

드라마 같은 성공기


(주)대동티엘







국내 성장 정체 느껴 해외로

10년 전의 대동티엘은 청계천에 위치한 공구상이었다. 그때는 기업이라기보다는 가게라는 말이 더욱 어울렸다. 그러나 대동은 특유의 성실성으로 공구상이지만 큰 매출을 올리다 파이프 커팅기 REX와 EXACT 판매로 유명세를 탔고 중동에 진출하여 큰 매출을 올리고 있다. 강동식 대표의 말을 들어보았다.
“중동의 아부다비에 진출한지는 한 5년 되었습니다. 국내의 공구들을 구매해서 중동에 유통하고 있죠.. 물론 REX와 EXACT를 국내에 유통하는 에이전시 이기도 하죠. 처음에는 청계 8가에서 일하다가 청계천 복원공사로 하남시로 이전해 2010년까지 있었어요. 청계천에서 매장을 넓히기에는 한계가 있어 이전을 한거죠. 그때 당시에는 200군데 현장에 공구와 자재를 납품했죠. 그리고 성장 정체기에 들어섰어요. 조사를 해보니 저희가 한번 더 커지려면 굉장한 자본이 들어가겠는 거예요. 더욱 성장하기 위해 국내 시장이 아닌 중동으로 가게 된 거죠.”
국내에서는 공구상사에 집중을 해도 성공하기도 힘든 것이 10년이라는 시간이다. 그러나 대동은 10년이라는 시간이 흐르자 중동에 진출한 기업이 되었다. 그래서 현재 중동에 진출하여 터를 잡고 있는 대동티엘이 예전의 그 대동기업이라고 생각하기란 참 어렵다.
 

중동에서도 한국 공구의 경쟁력 충분해

많은 공구인들이 중동에서 개별적으로 사업을 하고 싶지만 그러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정보가 없고 말이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동에서 공구를 팔기 위해서는 영어는 물론이고 필요하다면 간단한 아랍어도 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동티엘이 중동으로 가게 된 결심을 한 것은 아무리 노력해도 마진률이 줄어들고 공구를 대량구매하기 힘든 국내사정 때문이다. 경쟁도 심하지만 이왕이면 일거리가 많은 중동에서 노력해 보자고 결심한 것. 그때가 2010년이었다.
“중동에는 인도 친구들이 유통을 장악하고 있어요. 중동 공구 시장에 있어 저품질의 저가 공구로는 파키스탄, 인도제품이 판매되고요. 그나마 중간 품질의 중간 가격으로 이탈리아산, 그리고 유럽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라 영국산이나 독일제를 많이 선호합니다. 그런데 그곳에 유통되는 유럽산 공구에 비해 한국제품은 반값에 불과해요. 분명 가격 경쟁력이 있어요. 중국산에 비해 비싸지만 중국산보다는 좋은 국내제품이 팔릴 여지가 있는 것이죠. 그리고 제가 예전에 설비업체에서 근무를 했었거든요. 그때 알게 된 건설 현장 선배들이 중동에 간다는 소식을 듣고 선배들이 제게 그곳에서 쓸 여러 공구들을 주문해서 가기도 했어요.”
 

중동 진출 초기 길바닥에 노숙한 사연

그러나 대동티엘의 중동진출이 쉽지만은 않았다. 잘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중동에 찾아 갔지만 언어도 잘 통하지 않았고 관련 정보도 찾았지만 너무 없었다. 아무 정보 없이 현지 한국인의 말만 믿고 물건과 돈을 건내주다가 큰 사기를 당하고 만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중동은 인터넷이 발달된 나라가 아니거든요. 국내라면 인터넷으로라도 한번 알아보고 진행 할 수 있는데 말도 안 통하는 곳에 혼자 가니 그곳에서 거주하는 현지 한국인이 주는 정보에 끌려가기 마련이더라고요. 결국 현지 한국인에게 사기를 당해 몇 억원 되는 물건들과 소개비를 뺏기고 길에서 한 나흘 노숙을 해야 했어요.”
대로변에서 돈이 없어 며칠 노숙을 할 정도라니 사기를 당해도 심하게 당한 셈이다. 워낙 아는 사람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사기꾼인 그 사람을 찾아가 한국에 돌아갈 비행기표값이라도 달라고 사정했지만 허사였다. 결국 한국에서 찾아온 지인의 도움을 받아 다시 일어섰다. 
“사기 당한 이후로 모든 것을 직접 했죠. 중동에서 무역상을 하겠다는 라이센스와 거주 비자를 얻으려고 무척 고생했어요. 아랍어도 생소하고 영어도 서툴렀구요. 한국과는 프로세스가 다르기 떄문에 직접 하나 하나 일일이 다니면서 라이센스를 냈어요. 묵었던 숙소에서 관공서까지 차로 3시간거리였어요. 밤새 준비한 서류를 들고 직접 관공서까지 찾아갔지만 5분만에 불가 판정 받고 돌아온 날이 부지기수 였어요. 보강해서 다음날 다시 찾아가 서류 심사를 다시 받고 그랬습니다. 그때 관공서 번호표 1번이 항상 저였어요. 사기까지 당한 마당에 오기가 생겨서라도 그냥 한국에 돌아갈 수는 없겠다 싶더군요. 처음부터 차근차근 이 악물고 노력하니 결국 라이센스도 나오고 비자도 나오고 사무실을 얻고 중동 매출도 늘어나고 그렇게 진출하게 된 겁니다.”
중동 원전수주와 공구장사, 일단 한번 해봐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 큰 대형 매장을 두고 현지 산업현장에 필요한 공구를 납품하는 대동티엘은 한국산 공구를 중동에 알리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2010년경 아랍에미리트 원전을 우리나라가 수주했고 석유관련 플랜트 현장에도 많은 한국인 기술자들이 일하고 있다. 그렇기에 한국공구의 수요가 발생하고 함께 일했던 현지인들도 한국 공구를 배우고 찾게된다고.
“처음 힐티가 한국에 들어왔을 때도 그랬다고 합니다. 80년대 중동에서 건설업을 할 때 건설현장에서 기술자들이 힐티라는 브랜드를 처음 알게 된 거예요. 귀국 후에도 힐티를 찾게 되었고요. 그런식이라면 중동에도 한국산 공구가 확장 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전동 제품만 하더라도 한국에서는 국산과 더불어 독일제와 일제 미제까지 각축전을 벌이고 있잖아요? 그렇게 국산 공구도 중동에서 판매고를 올리는 거죠. 가격대비 뛰어난 품질로요.”
중동에서 그렇게 노력하지 않았다면 대동티엘도 일개 공구상에 불과 했을 것이다. 그러나 길바닥 노숙을 하면서도 대동티엘은 포기하지 않았고 그 노력에 힘입어 지금은 안정적으로 중동에 진출하여 큰 매출을 올리고 있다. 그래서 얼마전에는 ‘100만불 수출의 탑’까지 수상하게 된다.
“대형 공구상 사장님들 중 저희와 협의해서 중동에 제품을 판매하시는 업체도 있어요. 지금은 큰 매출은 되지 못하고 있지만 몇 년 뒤에는 전체 매출 중 중동 매출이 눈에 띄게 늘어나게끔 노력하고 있습니다. 대동티엘을 통한 중동 매출이 생각지도 못한 매출이 되더라. 이거 나름대로 괜찮다 소리를 저희는 듣길 원해요. 앞으로도 더욱 많은 한국산 공구들이 중동에 쓰이기를 바랍니다.”
대동티엘은 국내시장에 만족하지 않았다. 해외에 눈을 돌려 10명 직원이 40명으로 늘었고 매출액은 진출 전에 비해 그 몇 배 더 늘어났다. 가게를 기업 수준으로 성장시킨 대동티엘과 젊은 CEO 강동식 대표의 다음 행보가 궁금해지는 이유다.

글 · 사진 _ 한상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