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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측기 전문 유통회사 SSTECH


계측기 전문 유통회사 SSTECH

우리 없으면 발전소가 멈춰요


(주)에스에스테크널러지  김봉식 대표이사



측정기계 유통 및 AS는 전국 최고 

‘에스에스테크널러지’는 공기업이나 수력, 화력 및 원자력 발전소에 측정 설비를 납품하여 성장해온 기업이다. 공구상사에 계측기를 납품해온 기업이 아니라 많은 공구인들에게 ‘에스에스테크널러지’라는 이름은 친숙한 이름이 아니다. 그러나 계측기 유통업계에서는 무척 유명한 기업이며 순수 매출액으로는 국내 최고를 자랑한다. 다양한 계측기를 수입 유통하면서 AS까지 완벽한 처리를 자랑한다. 그런데 ‘에스에스테크널러지’가 이제 공구업계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다양하고 저렴한 측정 기기를 공구상들에게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에스에스테크널러지’를 설립하고 성장시킨 김봉식 대표의 말을 들어보자.
“예전에는 계측기와 같은 측정기기가 무척이나 고가였습니다. 상대적으로 공구상분들이 측정기를 취급하기란 힘들었죠. 기기 하나에 수 백 만원, 혹은 천 만원을 가뿐하게 넘겼으니까요. 유통회사 도 측정기기 재고를 많이 두기가 힘들었어요.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기술이 발전하자 측정기기 부품이 저렴해지기 시작했고 측정기 가격 자체도 많이 떨어졌습니다. 대한민국 경제가 발전하면서 측정기기 사용처도 많아졌고요. 그러다 보니 공구상분들도 하나 둘 씩 열화상 카메라 같은 제품도 판매하시더라고요. 이제 공구상 분들도 저희의 중요한 거래처입니다.”



뛰어난 영업력 하나만으로 성장한 기업

‘에스에스테크널러지’의 2015년 매출은 대략 250억이 넘었다고 한다. 이 중 대부분의 매출은 ‘한국수력원자력’과 ‘한국수자원공사’, ‘전기안전공사’ 등에서 이루어졌다. 국내의 공기업 및 공사, 발전소의 계측기 장비 제공 입찰을 따냈다는 의미다. 지금은 계측기 유통분야의 국내 최고를 자랑하고 올해는 더욱 큰 성장을 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이 업체도 처음에는 1인 기업에서 출발한 회사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계측기 업체에 1989년도에 발을 들여 놓았어요. 계측기는 B&P라는 회사에 입사했는데 플루크의 대리점을 하고 있었어요. 1995년도에 한국 플루크가 창립되면서 합류하기도 했죠. 그러다 97년 2월 한국 플루크를 나와 내 사업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 시절 IMF가 터집니다. 내 사업을 시작했지만 매출은 거의 없었어요. 다행히 제가 발전소에 특화된 영업을 해 오고 있었거든요. 발전소에서 도와주시는 분들이 계셨죠. 저를 보고 주문을 해주셔서 버틸 수 있었어요. 그때 당시만 해도 영업 이익이 좋았기에 조금만 팔아도 혼자였으니 버틸 수 있었죠. 전 회사에서 함께 일하던 직원들이 저를 도와주기도 했고요. 그래도 도약할 수 있었던 것이 원자력 발전소의 큰 오더를 받은 것 입니다. 혼자서는 처리하기 버거운 일이었지만 그 동안 쌓은 인맥을 통해서 물건을 외상으로 받고 납품을 해서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영업의 힘이란 이렇게 크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바로 영업의 힘이다. 많은 공구인들이 영업을 힘들어한다. 김봉식 대표는 타켓을 정확히 잡고 영업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영업은 많이 만나야 하는데 저는 한전과 삼성전자에 특화된 영업을 했어요. 지금은 보안도 문제가 되었지만 그 시절만 되어도 연구소에 가서 노닥거리고 연구원이랑 깊은 이야기를 하게 되고 그러다 필요한 것을 알고 구해다주고. 그 시절에는 열심히만 뛰면 사람을 사귀는 것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어요. 저도 성격이 친화력이 좋지는 않아요. 소수로 사람을 만나지만 깊이 있게 사귀었죠. 또 그때 당시 계측기는 한번 팔면 남는 마진이 상당히 크기에 그 시장의 소수 인원들을 잘 아는 것이 주효했죠. 그러다보니 Megger 본사 직원이 저를 먼저 알아보고 Megger 한국 총판을 맡아 달라고도 하더군요.”



조폭에게 둘러 싸이고 0 하나에 우는 입찰 이야기

김봉식 대표는 관공서에 영업을 하고 입찰에 참여하며 많은 일을 겪는다. 보통 관공서에서는 물건 하나를 구매하더라도 입찰공고를 낸다. 그럼 관공서에 물건을 납품할 영업자들이 낙찰 희망 가격을 서면으로 제출하는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당시에는 아찔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는 일도 많았다. 
“20년 전의 일인데 당시 입찰을 서면으로 직접 제출 하는데 여직원이 가격을 적어요. 서류작업을 여직원이 하는 거죠. 그런데 2억원 써야할 것을 0 하나를 안 적어 2천만원으로 입찰서류를 제출 한 겁니다. 나중에 알고 난리가 났죠. 2억짜리 물건을 2천만원에 전달하면 1억 8천만원 손해 아닙니까. 당시 제가 담당한 영업이니 제가 해결해야 할 일이었어요. 관공서 관련 계약이었는데 밤새 지방에 내려 가서 소주 사들고 가서 담당자에게 나 죽는다고 나 잘린다고 반 협박성 애걸복걸을 했죠. 밤 새도록 술을 마시며 매달렸어요. 그러니까 결국에 담당자가 알았다고 알아보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그 일이 해결되었죠. 사실 해결되는 일이 아니었어요. 공식적으로 발표가 난 것인데 그걸 뒤엎을 수는 없죠. 지금은 전자입찰을 하기 때문에 낙찰 받은 것을 취소 하기란 불가능하죠. 또 이런 일도 있었어요. 관공서에서 어떤 물건 구한다고 공고를 낸 겁니다. 계측기라는 것이 스펙싸움이거든요. 이건  나만 할 수 있겠다 싶어 단숨에 갔어요. 그렇게 입찰을 하러가서 따오기만 하면 되는데 가보니까 깍두기라고 하죠? 어깨 넓은 조폭들이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대구 형님, 진주 형님 한 40명이 왔어요. 분위기 살벌하더라고요. 그 사람들이 떡값 받으러 왔다고 떡값을 1인당 10만원씩 달라고 해요. 400만원을 달라는데 그 물건 납품하는데 계약금만 2천만원 이었거든요. 그래서 ‘저 작업 안했어요’하고 도망쳤죠. 하하 요즘에는 전자입찰이라 그런 일이 없는데 과거에는 입찰꾼이라고 조폭들이 많았어요. 그냥 돈 달라고 하는 거죠. 2000년 초반까지도 그런 사람들이 보이곤 했어요.”



위기를 발판 삼아 도약의 기회로

그렇게 영업을 하며 세월이 흘러가자 1인 기업이던 ‘에스에스테크널러지’도 점차 사람이 늘어나고 매출액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늘 안정적으로 성장해온 ‘에스에스테크널러지’에도 위기가 온다. 중요 계측기 매입처 한 곳에서 대리점 재계약이 불가능하다는 통보를 한 것이다.  
“저희로써는 대리점 재계약을 못하는 것이 타격이 크죠.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문제인데 여러 오해도 있었고 서로의 입장 차이가 컸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런 위기가 있었기에 다른 방안이 없는가 알아보게 되더라고요. 저희가 직접 병행수입하여 그 물건을 확보할 수 있었고 그에 맞는 새로운 직원도 들어오더군요. 그 외에도 매입처를 더욱 다양화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실제로 경영을 하면서 병행수입으로 물건을 직접 들여오는 것이 대리점을 통해 물건을 받아 판매하는 것보다 편리한 점도 있어요. OEM방식으로 저희가 PB상품을 만들어서 납품 하기도 하고요. AS도 저희가 직접 할 수 있고 국제교정기관의 인증을 받기도 했으니까요.”
지금도 ‘에스에스테크널러지’는 여러 측정기기 업체의 대리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예전에는 오직 대리점으로서 매입처에서 주는 물건만 판매해온 업체였다면 이제는 직접 해외에 나가 원하는 제품을 수입하여 물건을 유통시키기도 한다. 그러면서 가격 경쟁력을 얻을 수 있었고 보다 좋은 AS와 서비스를 펼칠 수 있었다. 많은 시간과 투자를 하여 국제교정기관의 인증을 받은 교정사업부도 세웠다. ‘에스에스테크널러지’는 위기에 맞추어 변화했기에 더욱 발전하였다.     
“저희 회사는 사람이 자원이자 경쟁력인 회사 입니다. 능력 있는 직원들이 모여있기에 다양한 측정 계측기기를 빠른 시일에 확보할 수 있고 필요한 측정기기는 어떤 것이든지 구해다 드릴 수 있습니다. 다양한 값비싼 측정기기가 이제는 많이 저렴해졌습니다. 판매 이후 AS까지 책임질 수 있는 ‘에스에스테크널러지’를 많이 사랑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에스에스테크널러지’는 단지 계측기를 판매하는 것이 아니다. 계측기를 판매하는 회사는 한국에도 많다. 그러나 판매한 계측기를 점검해주고 잘못되었다면 교정을 하고 기기에 문제가 있다면 AS까지 가능한 기업은 ‘에스에스테크널러지’가 유일하다. 2016년 새로운 도약을 꿈꾸는 ‘에스에스테크널러지’의 미래가 기대된다. 

글, 사진 _ 한상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