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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로 수출하는 한국 에이.엔.디(주)
세계로 수출하는
한국 에이.엔.디(주)
저울은 목욕탕 체중계나 정육점에서부터 각종 산업현장과 첨단산업연구용 등 그 종류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이 세상이 필요한 저울만큼 다양한 저울이 있는 것이다. 그렇게 저울의 종류가 많은 만큼 저울시장은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더군다나 저울이라는 제품의 특성상 1g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저울 제작은 많은 노력과 품이 들어가는 제품이다. 한국에이.엔.디(주)는 국내 동종업계에서는 유일하게 산업용 계량기뿐만 아니라 유통형 계량기와 정밀 전자저울까지 생산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다양한 제품들을 품질과 기술력을 앞세워 해외 60여개국에 수출하고 있는 기업이다. 한국 계량산업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 있는 한국에이.엔.디(주)의 이재춘 대표를 만나 대화를 나누어 보았다.
최선을 다하다 보니 CEO가 되더라
인간과 저울은 뗄래야 뗄 수 없는 사이다. 가까이는 동네 정육점에서부터 체중계가 있고 각종 연구소의 실험실과 학교 제약회사와 병원에 이르기까지 쓰이지 않는 곳이 없다. 이런 저울을 만드는 회사가 바로 한국에이.엔.디(주)다. 이재춘 대표가 저울회사를 설립하기까지의 과정을 들어 보았다.
“한국외국어대 일어를 전공하면서 열심히 공부를 해서 일본어와 영어가 유창했어요. 남들 같았다면 어느 대기업에 들어갈 수도 있었죠. 그런데 제가 3살 때 소아마비를 앓아 다리가 불편하거든요. 그래서 아무래도 큰 대기업은 입사가 힘이 들었고 그러던 중 1979년 저울 전문 생산판매 업체였던 마포계기산업에서 함께 일해보자는 연락이 와서 첫 사회생활을 했습니다. 저울과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어요. 만약 제가 대기업에 입사를 했다면 지금과 같은 저울제작 회사 CEO로 있을 수는 없었겠죠.”
이재춘 대표는 그렇게 한 계측기 회사의 무역담당부서에 입사하며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당시에도 이재춘 대표는 영어와 일어는 동시통역이 가능할 정도로 어학 실력이 탁월했다. 동시에 남보다 뛰어난 성실성으로 주목을 받는다. 밤에도 퇴근하지 않고 사무실에 있으면서 외국에서 오는 팩스가 있으면 그 자리서 체크하고 즉시 답장을 보냈던 것이다. 이러한 성실성은 회사뿐만 아니라 해외 거래처에도 유명했다. 그런데 이후 다니던 회사가 부도가 나고 서강대학교 경영대학원에 입학을 하게 된다.
“82년 과장으로 재직을 하고 있는데 회사가 부도가 나더라고요. 그래서 서강대학교 경영대학원에 들어가 학생신분으로 돌아갔었죠. 그런데 해외 바이어들이 자꾸 도움을 요청하더라고요. 그때 의리라고 할까요. 제가 부도낸 것은 아니지만 피해가 되지 않게 해야겠더라고요. 그래서 심부름하는 것처럼 도와주다보니 좋아하더군요. 또 한국의 다른 사람과 비즈니스를 하는데 저울이 좀 영세산업이거든요. 그래서 저울을 파는 분들은 영어를 못하고요. 다른 해외 바이어들이 와서 일하는데 제가 통역과 같은 도움을 줘야 하더라고요. 그렇게 일을 도와드리다가 회사를 차려보라는 권유를 받게 되고 1인 기업으로 창업을 하게 되었죠.”
1인 기업이 ‘한국에이.엔.디(주)’ 되기까지
이재춘 대표는 자신의 이름을 딴 'J.C 트레이딩'을 86년도에 설립을 한다.
“그렇게 1인 회사로 시작을 했죠. 개업식을 하는 날에 나와 관계를 맺은 한국의 사장님들이 찾아와 축하를 해주며 무엇을 해줄까 물으시더군요. 저는 복사기나 팩스니 다른 것은 필요 없고 제가 파는 저울을 사달라고 부탁을 했어요. 주문을 내려달라고요. 그랬더니 그날 개업 첫날에 2년치 물건 주문을 해 주시더군요. 그렇게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4년 후에는 'J.C 트레이딩'은 46명의 기업으로 성장합니다. 그것을 본 일본 AND에서 합작해보자는 연락이 오더군요.”
1990년 12월 4일 일본과 합작한 회사가 바로 지금의 ‘한국에이.엔.디(주)’다. 3년 후에서는 인천에서 제작공장을 설립하고 2년 후인 1995년에는 충북 청주에 있는 한 제조공장을 인수하여 지금의 ‘한국에이.엔.디(주)’로 성장하게 된다. AND는 세계 3대 저울 브랜드 중 하나인 업체다. 다른 업체들의 러브콜을 받고 있었지만 AND와 합작한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기업을 키우기 위해서는 큰 회사랑 손을 잡아야 합니다. 그래서 일본의 AND와 협력을 하게 되었죠. 다른 미국이나 독일 기업에서도 연락이 왔었어요. 그런데 제조에서부터 공장의 설비까지 모든 기술을 가진 회사가 AND였어요. 그래서 합작을 하게 된 것이죠.”
세계시장에 통하는 ‘한국 에이.엔.디(주)’
‘한국에이.엔.디(주)’는 전국에 걸친 대리점 및 수백명의 딜러들을 통해 연구소, 산업 현장 및 귀금속 거래 등 정밀 측정 분야에서 특히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일반인들에게는 ‘한국에이.엔.디(주)’가 다른 브랜드에 비해 익숙하지 않지만 ‘한국에이.엔.디(주)’는 연구소와 같은 높은 기술력을 요구하는 곳에서 사용된다. 이러한 ‘한국에이.엔.디(주)’의 각종 계량기와 계측기들은 국내뿐만이 아닌 해외에도 수출 된다.
“우리 회사를 둘러보시면 다 10년 20년 넘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울은 자동화를 할 수 없어요. 정밀 기기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만들어야 정확하지 자동화된 로봇이 저울을 만들 수 없어요. 저울의 종류의 수가 워낙 다양하기도 하고요. 금 다는 저울, 은 다는 저울, 다이아몬드 다는 저울 모두 다 다르거든요. 저울의 종류는 대략 오백여종입니다. 그래서 저울은 다품종 소량생산을 할 수 밖에 없어요. 그러니 10년 이상 일을 하는 분이 많죠. 첨단기술이지만 노동력을 필요로 한 업종입니다. 그러니 대기업이 들어와 활동하기 어렵고 기술력 있는 중소기업이 되어야 살아남습니다. 거기다가 국내시장은 너무 작아요. 중소기업도 살아남기 힘들죠. 기술력을 바탕으로 해외에 진출해야만 기업이 살아남습니다. 그래서 얼마전에는 ‘2천만불 수출의 탑’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한국계량산업의 선두주자
과거 저울을 판다고 하면 그걸로 먹고 살겠냐는 비아냥을 듣곤 했다. 그러나 지금 현재 저울제작은 첨단산업으로 남아있다. 뛰어나고 정확한 품질로 한치의 오차가 없는 제품을 전세계로 제품을 수출 할 수 있어야 살아남는 업종이기도 하다. 그래서 ‘한국에이.엔.디(주)’의 직원들은 한국계량산업의 선두주자라는 긍지를 가지고 있다.
“저는 저울이 신용 그 자체라고 생각을 합니다. 저울의 품질을 따지는 것은 정말 간결합니다. 성능이 만점 아니면 빵점이거든요. 성능점수 99점 맞는 저울은 의미가 없어요. 언제 어디서나 항상 정확한 무게를 알려야하죠. 그렇지 못한 저울로 상거래를 하면 둘 중에 한 사람은 손해를 보는 법입니다. 이처럼 저울은 무조건 정확해야 합니다. 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실과 신용 정확성이 갖춰져야 저울 산업을 할 수 있습니다.”
연구소나 다름없는 깨끗한 시설에서 정직한 저울로 정직한 세상을 만드는 한국에이.엔.디 주식회사. 이 회사의 앞날이 기대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