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엄 망치 등장 어머니 이름 딴 BHS
영창단조공업 이건우 대표
3대가 이어가는 장인정신
충남 금산에 위치한 영창단조공업은 한국 망치제조의 총본산이다. 1965년에 시작된 영창단조공업은 국내 최초로 프레스기를 이용해 정형화된 망치를 제작해왔다. 현재 영창단조공업을 이끄는 사람은 이건우 대표. 영창단조공업을 창립한 고(故)이규일씨의 손자다.
“조부님께서 손재주 좋은 기술자이셨나 봐요. 제가 듣기로 1960년대만 해도 우리나라가 생산하는 공구가 다양하지 못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시절에 할아버님께서는 다양한 제품을 개발하셨는데 특히 가장 기본적인 수공구인 망치가 큰 인기를 끌었다고 합니다. 저의 유년기 기억 속 공장 모습에도 눈에 보이던 것은 항상 망치였다 싶어요.”
이건우 대표는 현재 13년 넘게 가업을 이어오고 있지만 사실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자신이 가업을 이으리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다. 회사를 경영하며 고생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봐왔기에 가업이 아닌 다른 진로를 찾아가려고 했다.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더 열정적으로 회사 경영에 참여하시는 분이셨어요. 그런 어머니께서 저보고 가업을 이어달라고 간곡히 부탁하시더라고요. 지금은 어느 정도 자동화 시스템을 갖추었지만 2000년 초반까지 자동화된 설비가 없었어요. 직접 철을 달궈 망치를 제작하는데 고생길이 훤히 보였지만 결국 망치제조에 뛰어들었죠.”
이건우 대표가 가업을 잇기 시작한 2003년은 공교롭게도 영장단조공업 최대의 위기가 있었던 해다. 쌓여진 부채도 문제인데 산사태로 인해 공장의 일부가 매몰되기까지 했다.
“비가 기록적으로 오는 날이었어요. 어머니와 함께 외근중인데 산사태가 일어나서 공장이 사라졌다는 전화가 온 겁니다. 회사로 돌아오니 공장 일부가 산사태로 무너져 사라졌더라고요. 아버지는 망연자실하시고 저도 어쩔 줄 몰라 했는데 어머니께서 어서 치우고 공장을 돌려야 한다고 직원들을 다그치셨죠. 어머니는 여장부 중의 여장부셨어요.”
이건우 대표의 어머니 고(故)배현숙 여사는 국내 망치계의 대모로 불린다. 회사와 가족을 위해 여자의 몸으로 혼자 전국 공구상을 찾아 다니며 망치영업을 했다. 이건우 대표는 그런 어머니에게서 직접 회사 경영과 영업을 배웠다.
“제가 배운 경영지식은 모두 어머니를 따라 다니며 배운 거예요. 배짱이나 근성과 같은 정신적인 부분도 배웠고요. 당시 영창단조공업은 부채가 많았고 제대로 된 설비도 없었으니 생각해보면 당시 어머니의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경영정상화 이후 프리미엄 브랜드 출시
기업을 경영한다고 하면 쾌적한 사무실에서 서류작업을 할 것 같지만 이건우 대표에게는 먼 이야기였다. 실제 낮에는 뜨거운 가마와 생산라인에서 제품을 만들고 밤에는 컴퓨터 앞에 앉아 계산기를 들고 각종 계산서와 씨름을 해야 했다.
“저희 영창망치 제품은 외국 명품 수공구 못지 않죠. 금방 깨지기 쉬운 주조방식이 아닌 달궈진 철을 직접 해머로 두들겨 제작하는 단조 방식을 유지하기 때문입니다. 재질이 균일한 철 재료를 사용하는 등 제품을 규격화했기에 어떤 제품이나 높은 품질을 자랑합니다. 이처럼 저희 제품이 품질은 좋은데 회사 경영부분에 있어서는 많이 부족했어요. 그래서 2003년 이후 경영을 정상화시키는데 주력하고 동시에 저 스스로 경영대학원에 입학해 경영학을 공부했습니다. 공장에서 먹고자면서 용접 등 망치제조 관련된 지식도 쌓아나갔고요. 가업을 이으면서 망치에 대해 여러 가지를 생각하고 연구했습니다. 생산방식을 비롯해 필요한 설비, 자금, 신상품 개발까지 각종 자문을 얻어서 노력했지요. 그러다가 영창이라는 저희 브랜드 위치까지 생각하며 고민을 거듭했어요.”
몇 년을 고생한 끝에 2014년 이건우 대표는 돌아가신 어머니 배현숙 여사의 이름을 딴 프리미엄 브랜드 BHS를 출시한다. 기존 영창망치 브랜드와 차별화를 이루기 위해서다.
이쯤이면 제품개선 아닌 100% 신상품
“기존 제품에 비해 보다 견고하고 그립감을 높인 제품이 BHS망치입니다. 빠루망치를 비롯해 도끼와 돌망치 등 고품질의 제품만 BHS라는 브랜드로 생산하죠. BHS는 절대 자루와 망치 머리 부분이 떨어져 나가지 않습니다. 용접을 완벽히 했거든요.”
BHS라는 이름으로 나가는 망치의 자루는 나무보다 단단한 금속재질이다. 자루부분이 행여 미끄러울까 손잡이 부분은 고무로 감싸 그립감도 뛰어나다. 공구를 모르는 사람이 살펴봐도 BHS의 품질은 뛰어나 보인다. 예전 영창망치는 망치 머리에 기술력이 드러났다면 BHS망치는 제품 전체에 높은 기술력이 드러난다.
“사실 독일 망치나 일본 망치는 자사 제품보다 훨씬 비싼 가격에 국내로 들어옵니다. 그래서 저희 제품이 가격 경쟁력이 월등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더라고요. 상대적으로 가격이 훨씬 비싼 일본·독일산 제품의 시장 점유율이 점차 올라가는 겁니다. 망치가 튼튼하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에 디자인의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했고 디자인에 소홀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나라 망치를 세계적인 망치로 만들기 위해서는 3대째 이어온 기술력에 전문적인 디자인을 융합해야 했어요.”
BHS 망치는 제품의 기능을 더욱 극대화하기 위해 제품의 무게중심과 원심력의 방향 등 다양한 사용 환경을 고려했다. 뿐만 아니라 자동차의 기어봉, 전기면도기의 그립감, 배관의 결합방식 등 다양한 부분에서 제품을 벤치마킹했다. 또한 2013년 중소기업청에서 주관한 산학협력사업을 통해 한밭대 산업디자인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이 정도 노력이면 단순히 제품을 개선한 것이 아닌 새로운 제품을 개발한 것과 마찬가지다.
시중에 나온 짝퉁 브랜드 마음아파
많은 노력을 기울여 제품을 생산했기 때문일까. BHS 브랜드 홍보에 주력하는 동안 짝퉁 영창망치가 시중에 나왔다. 세워진지 얼마 안 된 작은 공장에서 제작된 망치가 영창단조공업에서 만든 영창망치처럼 판매된 것이다.
“오래된 영창의 이름이 탐이 났나봐요. 하지만 이름을 훔쳐가도 영창단조공업의 기술력과 노력은 따라갈 수 없겠죠. 행여나 짝퉁 영창망치를 사용하신 소비자분들이 품질에 실망해 저희 영창망치를 오해하실까봐 그것이 걱정입니다.”
그러나 영창단조공업은 중국산의 거센 파도를 이겨낸 경험이 있다. 그리고 영창단조공업 50년 역사에 이런 위기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반세기 동안 국내 시장을 지킨 저력을 바탕으로 영창단조공업은 세계시장에도 진출해 큰 호응을 얻을 것을 기대하고 있다.
글·사진 _ 한상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