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구상탐방
만인종합유통(합덕제재소) - 김준 대표
80년 역사 제재소 공구상으로 변신
충남 당진 만인종합유통(합덕제재소)
장사라는 생태계 속, 생존의 비밀은 변신
합덕제재소의 정확한 설립년도를 기억하는 사람은 현재 남아있지 않다. 다만 알려진 사실이란 일제시대에 현 대표인 김준 대표의 조부 故김홍식 씨가 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 운산리, 지금의 그 자리에 합덕제재소의 문을 열었다는 사실 뿐. 그때부터 현재까지 최소 80년 이상의 시간동안 합덕제재소는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
80년이라는 세월. 조선시대에는 양인이나 천인을 막론하 고 여든 살 이상의 나이를 먹은 노인에게 관직을 내렸다. 그만큼이나 함부로 생각하기 어려운, 긴 시간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사람 뿐 아니라 산업도 마찬가지다. ‘산업순환’이라는 말처럼 활황이었던 산업도 시대가 변하면 침체가 따르기 마련이다. 김홍식 창립자의 손자 김준 대표는 합덕제재소가 오랜 시간동안 이어져 지금에 이를 수 있었던 비결은 변화에 따른 변신 덕이라고 말한다.
“5~6년 전쯤에 합덕제재소 간판 옆에 만인종합유통
이라는 간판을 달았어요. 제재소만 해서는 살아남기 힘드니까 변신을 한 거죠. 요즘은 나무를 켜지 않습니다. 목재 유통망도 달라졌고 또 무엇보다도 건축 부자재들이 대부분 목재에서 철로 바뀌었거든요. 시대가 변하니 저희도 그 변화를 따른 거죠.”
파레트 제작, 벽돌 대리점… 계속된 변화
공구상 만인종합유통으로의 변화가 합덕제재소 변신의 처음은 아니다. 전국 제재소의 일감이 줄어들기 시작할 무렵 김준 대표의 아버지, 2대 김병수 대표는 그 흐름을 간파하고 건축을 위한 목재 제재만이 아니라 사업을 확장해 목재를 이용, 수산시장에서 사용하는 생선 궤짝을 짜 납품했다. 그 수입도 짭짤했다. 뿐만 아니라 8~90년대 우리나라 주택건축에 빨간벽돌이 유행하던 당시에는 전국의 벽돌 공장에 벽돌 운송용 나무 파레트를 제작해 납품하기도 하고 거기서 더 나아가 아예 벽돌 대리점을 운영하기까지 했다.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 벽돌 시장이 엄청 큰 시장이었거든요. 그때 집은 다 벽돌로 지었으니까요. 제재소 운영과 함께 벽돌 대리점 할 때 아버지께서 돈도 많이 버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충남에서 아마 우리 벽돌 야적장이 제일 컸을 걸요? 크레인을 네 대나 가지고 전국으로 다 배송을 다녔으니까요.”
건축용 목재 산업이 침체한 것처럼 주택용 벽돌 시장도 시나브로 가라앉았으며, 합덕제재소는 공구상이라는 새로운 시장으로 자연스런 의태(擬態)를 진행한 것이다.
철물자재부터 공구까지 판매
만인종합유통이라는 명칭의 사업자를 낸 뒤 김준 대표가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은 공구가 아닌 철물 유통이었다. 목재와 함께 공사 현장에 필요한 기초 철물. 각종 파이프며 밧줄, 시멘트, PVC몰딩 자재들. 그런 것들을 목재와 함께 팔고자 하는 생각이었다. 그러면서 못부터 시작해 전동공구까지 전문 공구들도 들이기 시작했다.
“제재소를 할 때 저희의 거래처 분들이 있잖아요. 그분들이 지금도 저희 단골이에요. 심리가 그렇대요, 물건을 조금 싸게 판다고 해서 멀리 가는 걸 싫어하신대요. 두 군데 들러서 구입하는 걸 싫어하고 현장이 바쁘다 보니까 뭐든 나와서 한 군데에서 다 사는 걸 원하고. 그래서 철물부터 공구까지 많은 가짓수를 판다는 게 그분들에게는 우리 가게의 장점인 것 같아요.”
건축에 목재가 100들어간다면 철물 자재도 100이 들어간다. 목재만 구입해 가던 거래처가 지금은 철물도 구입해 가는 것이다. 매출이 늘 수밖에 없다.
사업 범위 확장으로 매출은 UP!
지금 목재 작업은 중단되었지만 아직 합덕제재소의 사업자를 취소하진 않았다. 제재소와 공구상 두 개의 사업자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목재를 켜진 않지만 판매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목재 역시도 만인종합유통의 판매 상품 중 하나다. 주 판매처는 목수들과 집 짓는 개인 사업자들. 그리고 농자재도 판매하니 근처의 농업인들 역시도 판매 대상이다. 판매 상품뿐 아니라 판매 대상도 늘어난 것이다.
“요즘 제재소 보신 적 있으세요? 없으실 거예요. 그만큼 일감이 없고 우리나라 인건비가 비싸졌으니까요. 시대가 변해서 목재 시장이 위축됐음에도 불구하고 저희는 철물공구 쪽으로 사업을 확장해 목재와 함께 파니까 매출이 늘어난 거예요. 만약 우리가 제재소만 해 왔다면 망했겠죠. 주변에도 그런 제재소들 많아요.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면 끝나는 거예요.”
김준 대표가 원하 는 앞으로의 변화
요즘은 사람들의 관심사가 달라졌다. 예전처럼 이미 나와 있는 가성비 좋은 기성 제품을 구입해 사용하는 것 보다는 자신이 직접 취향에 맞는 제품을 제작하길 원하는 이들도 늘어났다. DIY족들이 바로 그들이다. 그럼 흐름에 따라 전국 곳곳에는 DIY목공방들이 생겨났다. 합덕제재소, 만인종합유통을 찾는 이들도 달라졌다.
“요즘은 건축자재용 목재가 아닌 자기만족을 위한 목재를 찾는 분들이 많아졌어요. DIY하시는 그런 분들이 저희 가게에 오셔서 저희가 예전에 켜 두었던 나무를 구입해 가곤 하세요. 그런 나무는 정말 고급 나무죠. 10년 이상 자연 건조된 목재니까요. 가격이 비싸도 사가요. 덕분에 재고로 쌓여 있던 목재가 많이 빠졌죠.”
대표는 지금 또 한 번의 변화를 계획 중이다. 매장에서 단지 공구와 목재만을 파는 것이 아니라 인테리어 소품들도 함께 판매하는 것. 그 계획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매장 한 켠에 놓여진 각종 목재 테이블과 레트로한 전자제품들이 눈에 들어온다.
“공구나 철물들은 다 가격이 정해져 있잖아요. 그래서 가격 경쟁이 필요한데 인테리어 소품 같은 것들은 정해진 가격이 없거든요. 희소성 덕분에 자기가 원하는 물건을 구입하는 사람도 좋고 또 판매하는 사람도 좋죠. 지금 저희 가게가 변두리에 위치해 있는데 위치가 그래도 도심 사람들이 찾아와 구입해 가는 그런 매장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글·사진 _ 이대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