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구상탐방
대구 곰돌이 공구
빼곡히 가게를 메우고 있는 물건들, 첫눈엔 여느 곳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의 공구매장. 그러나 2층 계단을 타고 미로 같은 통로를 지나 옆 건물로 들어서면, 카페인지 공구상인지 모를 새로운 공간이 펼쳐진다.
프랑스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에서 주인공 폴은 우연히 이웃을 따라가다가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에 들어가게 된다. 집안에는 푸른 정원이 펼쳐져있고, 햇살이 들어오는 창가에는 나무 테이블이 있다. 프루스트가 내어준 신비한 차와 마들렌을 먹고 잠든 폴은 어린 시절의 기억을 찾는 여정을 시작한다. 겉으로 평범한 이웃집이지만 그 안에 신비로운 공간을 발견한 폴처럼, 곰돌이공구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모두 ‘비밀정원’을 찾은 듯 놀라운 반응이다. 따뜻한 분위기를 내는 조명, 소품인 듯 진열된 공구들, 커피머신과 음료 냉장고까지. 카페 같은 인테리어의 곰돌이공구는 4년째 정민규, 정사랑 대표 부부가 함께 운영하고 있다.
“남에게 보여주기보다 저희가 힐링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어요. 하루 종일 매장에서 지내니까 분위기 좋은 휴식공간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이전에는 각자 좁은 책상에서 밥을 먹었는데, 이제는 큰 나무 테이블에서 같이 밥 먹고, 음악 들으며 커피 한잔도 하고, 밤에는 업무하며 생각에 잠길 때도 있어요.”
원래 이곳은 가정집으로 사용되던 벽돌 건물이었다. 옆 건물인 오프라인 매장과 이어지게 하려면 통로를 만들고 기둥을 세우는 등의 공사가 필요했다. 인테리어 업체에 견적을 물어보자 어려운 작업인데다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는 답변이 왔다. 조형디자인을 전공하고 인테리어 경력이 있던 정 대표는 이참에 사람들을 불러 직접 공사하기로 마음먹었다.
“원래 2층 주택이었는데 3층으로 준공했어요. 오육천만 원 정도 들었어요. 벽을 목재로 대서 진열장을 만들고, 페인트, 니스 칠도 직접 했어요. 벽돌과 블라인드도 공구함 색깔과 어울리게 검정색으로 맞췄고요. 가게 일도 해야 하니까 매일 야근을 했거든요. 직접 할 일은 아닌 것 같아요(웃음). 몸무게가 7키로 빠졌어요.”
고생 끝에 감성적인 공간이 완성됐다. 가장 먼저 보이는 건 빛나는 네온사인의 로고, 커다란 나무테이블과 커피를 내릴 수 있는 공간, 브랜드별로 색감을 살려 진열해둔 재고들. 한쪽에는 방문한 영업사원이 노트북을 연결해 업무 볼 수 있는 공간도 마련했다. 자동문을 열면 통로 벽면에 각종 인테리어 소품들과, 목재 진열장에 깔끔히 정리된 공구들이 돋보인다. 그의 공간에 대한 감각이 그대로 드러난다.
“여기서 공구를 촬영하기도 해서 조명에도 신경을 썼어요. 요즘 카페에서 많이 쓰는 5T 조명인데, 스위치로 세 가지 색상을 번갈아가며 켤 수 있어요. 어둡게 하면 와인바 같은 분위기가 나요.”
공구상에서 보기 드문 업무 공간과 휴식 공간의 조화. ‘남들과 다르게 사업하고 싶다’는 그의 경영관은 이외에도 여러 방면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곰돌이공구는 고객에게 친근하고 재밌게 다가가기 위해 상호에 ‘곰돌이’를 넣고, 로고에는 스패너를 든 곰돌이 캐릭터가 등장한다. 택배 포장에도 좋은 리뷰를 독려하는 곰돌이 스티커가 붙는다. 쇼핑몰 상품 업로드를 위해 디자인을 담당하는 직원도 따로 두고 있다. 쇼핑몰 상품설명에는 단순한 가격표 이미지만 올려두는 것이 아니라 상품이 돋보이도록 직접 촬영해 표지화면을 디자인하고, 상세설명을 기재한다. 검색태그도 일반적인 용어만 쓰지 않는다. 예를 들어 드릴을 판매한다면 ‘비트 꽂는’, ‘피스 박는 충전 드릴’, ‘가정용 인테리어’, ‘목수가 많이 쓰는’ 등의 세세하고 남들이 잘 쓰지 않는 키워드를 사용하는 것. 상품을 따로따로 구매하기 번거로운 고객을 위해 잘 팔릴만한 세트상품을 직접 기획하기도 한다. 가격경쟁이 치열한 온라인 시장에서도 선전해 작년엔 2배의 매출을 달성했다.
“온라인 판매는 가격이 전부가 아니에요. 언제까지 최저가로만 판매할 수는 없잖아요. 그런데 저희는 저희만의 색깔이 있어요. 곰돌이공구만의 감성을 좋아하는 고객은 몇 천원 차이가 나더라도 여기로 오시거든요. 자신만의 감성, 색깔로 마케팅 해야 해요. 평소에 곰돌이 탈을 쓰고 유튜브를 해볼까 생각도 하고, 온라인 시장이 치열하다보니까 오만 고민들을 해요.”
그는 온라인전문 곰돌이공구와 더불어 납품전문 피스툴&볼트, 부친이 1974년부터 이끄신 평화종합상사까지 함께 운영하고 있다. 변화하는 시대에 따라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해온 결과다. 20대 중반부터 아버지와 함께해 온 그가 사업을 이어받기까지 어려움은 없었는지 물어봤다.
“처음에는 아들이 같이 운영한다는 것에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하셨는데, 아버지와 장사하는 스타일이 다르니까 충돌도 생기더라고요. 예를 들어 저는 일을 좀 벌이고, 재고도 싸게 살 수 있을 때 많이 사두는데 아버지는 한 개만 주문하면 될 걸 왜 10개 주문하느냐고 하시는 거죠. 손님 대할 때도 싹싹하고 친절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옛날 분들은 권위가 있으시니까 덜 친절하시고. 여러 가지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이 부딪혔는데 결국 아버지가 저보고 알아서 하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아버지 말씀이 맞는 게 많아요. 시간이 지나면서 아버지가 이해되고, 제가 잘못했구나 싶은 것들이 많죠. 어쩔 수 없이 가족과 함께 일하는 공구상들이 많은데 겉보기는 좋아보여도 속은 곪아있는 집들이 참 많을 거예요. 서로 존중이 필요하고. 서로 중간선상의 양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곰돌이공구는 온라인 판로를 기반으로 디월트, 밀워키, 마끼다, 페스툴, 메타보 등 전동공구 5개사의 대리점도 맡고 있다. 그는 경공업 위주의 대구 3공단 지역에서 전동공구 대리점을 유지해 나간다는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낀다. 남들이 안하는 새로운 것을 찾고, 늘 부지런하게 움직이는 정 대표. 20년 경력을 바탕으로 이 모든 공구가 전산이 없어도 머릿속에서 재고 관리될 정도다. 철학도 남다를 것 같은 그에게 경영노하우를 묻자 의외로 ‘성실’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고 정주영 회장이 돌아가시기 전에 ‘아직까지도 성실한 사람 앞에서는 못 이긴다’는 말을 남기셨어요. 방탄소년단도 끝까지 포기 안하고 노력해온 것이 성공한 비결이라고 봐요. 저는 아직 성공은 아니지만 여기까지 온 배경을 ‘성실’이라고 답할 수 있어요. 젊었을 때 성실하게 살고 나이 들어서는 성실의 대가를 받는 것, 그게 사람이 살아가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그는 꾸준히 노력해 직원이 운영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좋은 기업을 만들어 사회에 환원할 꿈도 있다. 예순, 일흔의 나이에도 도전하는 큰 기업 대표들처럼, 차근차근 준비해 큰 성장을 이뤄낼 것이라 믿고 있다.
글 _ 장여진 / 사진 _ 장여진, 정승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