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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구상탐방

경기 포천 호성공구마트

 

화물차 1대로 이동판매 시작해
포천 1등 공구상으로

 

경기 포천 호성공구마트 황욱 대표

 

경기도 포천의 주요도로 호국로를 이용하면 대형 공구상 ‘호성공구마트’가 보인다. 
매일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며 다양한 공구가 판매된다. 이곳에는 30년 가까이 
호성공구마트를 운영해온 황욱 대표가 있다. 그는 무수히 많은 위기를 극복하고 
자신의 사업체를 거듭 성장 시켰다.

 

 

재고와 구색에 집중한 없는 것 없는 공구상


1998년 IMF이후 경기도 포천의 지역 상권에 호성공구마트가 나타났다. 기존 포천지역 공구상에 비해 후발주자였던 호성공구마트는 남들과 차별화하기 위해 재고와 구색에 집중했다. 1년에 1번 팔리는 제품도 빠짐없이 구비해둔 호성공구마트는 없는 것 없는 공구마트를 표방한다. 결국 이곳은 포천지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 가게가 된다. 황욱 대표의 말을 들어보자.

 

호성공구마트는 대로변에 위치하고 넓은 주차공간을 보유하고 있다.


“손님이 어떤 제품을 찾으면 ‘없다’고 말하고 싶지 않았어요. 처음에는 가게 크기도 지금과 달리 작은 규모였고요. 어느 정도 자신감 갖춰진 구색을 만드는 데 5년이 걸렸습니다. 고객이 어떤 물건 5개를 주문해도 15개를 발주했어요. 배송 단가를 낮추고 이익률을 최소한으로 유지하며 재고를 갖췄죠. 그럼 손님들은 자신을 위해 노력한다는 것을 알아줍니다. 그렇게 단골을 만드는 거죠.”

 

가게 앞에는 다양한 물품을 손수레를 이용해 진열 전시해 놓았다.

 

건설장비 임대로 건설현장 손님 발길 끌어


황 대표는 단순하게 공구 유통만 하지 않았다. 기계 및 전동공구 수리 기술도 익혔다. 젊었을 적 친구에게서 배운 수리 기술은 공구상을 운영하면서 요긴하게 사용되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호성공구마트는 소형건설장비를 판매하거나 임대하는데 소형건설장비 임대는 제품 회수 후 수리 및 정비를 할 수 있어야 운영 할 수 있다.


“건설장비 임대는 납품과 달리 선불 또는 당일 정산 구조라서 자금 회전이 빨라요. 적게 벌어도 확실하게 들어옵니다. 포천 및 경기 북부는 소형 건설 현장과 단기 임대 수요가 꾸준한 지역이거든요. 이러한 지역적 특성과 수요를 파악하고 남들이 하지 않는 소형 건설장비 특화 임대를 했죠. 임대는 외상없이 진행하는 구조라서 현금 회전이 좋아요. 또 저희 고객 중에는 건설현장에 나가는 소매 손님들이 많은데 그런 분들이 자연스럽게 저희 가게를 알리고요.”

 

주요 물품에는 바코드 및 가격표가 적용되어 있다.


100억 매출도 수금과 마진이 있어야 완성


호성공구마트에서는 외상거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처음 사업을 시작했던 초창기 5년 동안은 외상으로 거래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결과가 좋지 않았다. 건설현장에 납품하고 대금을 못 받은 일이 여러 번 있었다고. 그 이후 황욱 대표는 단순한 매출보다 수금과 자금 회전, 마진을 중요시한다. 매출이 적어도 순이익이 확실한 매출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100억을 팔면 뭐 합니까? 남는 게 있어야죠. 세금, 마진, 인건비 등 모든 비용을 고려해 남는 구조를 만들지 않으면 장사는 오래가지 못해요. 2년 전부터 아들이 일을 도와서 온라인을 통해 전동공구를 판매합니다. 그런데 온라인 유통은 마진이 너무 적어요. 온라인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에요. 가격 질서를 유지하는 유통구조 안에서 온라인 판매가 이루어져야죠. 어떤 제조사는 공장 출고가를 안 지키면 공급을 끊는 곳도 있어요. 그런 브랜드 제품은 온라인 유통으로 판매 되어도 맞아요. 아무튼 장사를 하는데 현금 흐름과 순이익이 중요합니다. 흑자도산이라는 말이 왜 있겠습니까.”

 

 

화물차 1대로 청계천에서 경기 북부 누벼


호성공구마트의 역사는 30년에 가깝지만 황욱 대표의 장사 이력은 40년이 넘는다. 호성공구마트를 창업하기 이전 30대의 그는 청계천에서 경기도 북부 지역의 여러 공구상을 화물차 1대로 다니며 장사를 했다. 소위 말하는 이동 판매상, ‘나까마’를 한 것.


“청계천에서 새벽 4시에 출발해서 미아리, 동두천, 연천까지 돌았어요. 그때는 서울 청계천에서 공구를 사려고 전국에서 사람들이 다들 모였습니다. 지금은 청계천에 주차 할 곳도 없지만 1980년대, 1990년대에는 주차료 아끼려고 새벽 5시 이전에 청계천에 들어가서 자리 잡고 물건을 매입했죠. 그리고 경기도 북부의 공구상에 주문 받은 물건을 저녁 늦게까지 납품했어요. 주요 거래처들로부터 하루 100만 원씩 주문을 받으면 대략 5%의 마진을 받았죠. 5만원의 수입이라도 지금의 5만원과는 다르죠. 그때 일산 아파트 분양가가 6천만원이었어요. 하루 한 번, 많을 땐 두 번씩 청계천에서 경기도 북부 거래처 동선을 돌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거래처를 만드는 것이죠. 큰 규모의 거래처는 처음 거래가 이루어지기 까지 1년간 매일 찾아 인사하고 또 일손을 도와주기도 했어요. 결국 고객 신뢰를 얻었고 그게 시작이었죠.”

 

황욱 대표는 전동 및 엔진공구 수리 기술을 가지고 있다.(우)

 

가게에서 1년 반 숙식하며 새벽 손님 받아


어느 정도 자금을 모으면서 나까마로 큰 돈을 굴리던 그는 1997년 IMF 외환위기로 시련을 겪는다. 대구의 한 대형 도장기기 업체가 계획적인 부도를 내며 3억 원이 넘는 납품 대금을 날린 것. 그는 그때 모든 것을 정리하고 포천에서 호성공구마트를 시작했다.


“지금도 함께 일하는 동생 주려고 만든 가게가 호성공구마트였죠. 그런데 동생이 힘들다고 못 하겠다고 해서 제가 맡게 되었어요. 운명이다 생각하면서 한 곳에서 일하는 공구상을 시작한 거죠. 처음에는 가게 안에서 박스를 깔고 1년 반을 먹고 자며 생활했어요. 나까마로 청계천을 오고갔던 것처럼 이곳도 새벽에 문을 열어야 했거든요. 건설 현장 작업자들이 새벽 6시 반에도 방문하니까요. 늦어도 그 전에 가게를 열어야 했죠. 장사는 결국 남의 시간을 덜어주는 일이죠. 그걸 위해 내가 조금 더 일찍 일어나고, 조금 더 연구하고 가게를 정리 하고요. 아끼고 노력해서 구색을 갖추고 손님이 원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며 살아왔습니다. 장사는 결국 ‘귀찮은 일’을 얼마나 잘하느냐에 달렸습니다. 내 방식이 모두 정답은 아니지만 시간이 흐르면 결국 손님들이 진심을 알아줍니다.”

 

호성공구마트는 대형 매장이면서 진열 전시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

 


현재 호성공구마트는 전동공구, 유공압, 건설 장비 임대, 특수공구 등 폭넓은 품목을 다룬다. 임대 장비는 고가 장비 위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간단한 제작이나 파이프 절단 등도 요청이 들어오면 가능한 한 직접 처리해준다. 호성공구마트는 오늘도 새벽 6시에 문이 열린다. 경기도 포천의 가장 큰 공구상은 오늘도 성실과 신뢰로 하루를 쌓아올린다.

 

글·사진 _ 한상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