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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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정밀함을 향한 집념

 

버니어캘리퍼스의 역사

 

버니어캘리퍼스(Vernier Caliper)는 단순한 측정 도구를 넘어, 인류가 ‘정밀함’이라는 개념을 수학적으로 구현한 도구로 평가받는다. 고대의 단순한 나무 캘리퍼스에서 시작해 오늘날의 디지털 전자 측정기로 이어지는 발전사는 인간이 ‘더 정확히 보고, 더 정밀하게 만들고자 한 욕망’의 역사와도 같다. 미세한 치수까지 측정가능하게 한 버니어캘리퍼스의 역사를 알아보자.

 

 

그리스 난파선에서 발견된 최초의 캘리퍼스


정밀 측정의 역사는 고대 문명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가장 오래된 캘리퍼스는 기원전 6세기경, 이탈리아 해안 근처 그리스 질리오섬에서 발견되었다. 이 도구는 이미 고정된 척과 움직이는 척을 갖춘 형태로, 오늘날 캘리퍼스의 원형으로 평가된다. 이후 그리스와 로마 시대에도 금속제 캘리퍼스가 사용되었으며, 주로 건축물, 조각품, 무기 제작 등에서 정확한 간격이나 지름을 재는 용도로 쓰였다.

 

비슷한 시기 동양에서도 발견돼


동양에서도 비슷한 시기의 캘리퍼스가 존재했다. 기원후 9세기, 중국 신나라 시대에는 청동으로 만든 캘리퍼스가 발견되었는데, ‘석강국 원년 1월 1일 제작’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이 유물은 지금의 캘리퍼스와 유사한 구조를 가지며, 1인치와 1/10인치 단위의 눈금까지 새겨져 있었다. 이는 이미 2000년 전 동서양에서 정밀 측정 도구의 개념이 독립적으로 발달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중국 동한시대 무덤에서 출토된 청동 캘리퍼스.

 

세밀한 눈금 측정의 시작


정밀 측정 기술에 획기적인 전환점을 가져온 인물은 포르투갈의 수학자이자 항해사인 페드로 누네스(Pedro Nunes)였다. 그는 1542년, 천문 관측과 항해에 사용되는 원형 기구에서 더 정밀한 측정을 가능하게 하는 시스템, 즉 노니우스(Nonius)를 고안했다. ‘노니우스’란 이름은 그의 라틴어 이름 ‘Petrus Nonius’에서 유래했다. 그의 장치는 중심 눈금과 그 주변의 보조 눈금을 이용해 각도를 세밀하게 읽는 방식이었다. 이 방식은 이후 직선거리 측정으로 응용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으며, 정밀도 향상의 핵심 아이디어로 남았다. 일본에서 버니어캘리퍼스를 ‘노기스(ノギス)’라고 부르는 것도 이 노니우스에서 유래한다.

 

페드로 누네스(좌), 노니우스(우)

 

 

피에르 베르니에의 혁신


누네스의 개념은 이후 약 100년 뒤, 프랑스 수학자 피에르 베르니에(Pierre Vernier)에 의해 실질적인 직선 측정 도구로 발전하였다. 1631년, 베르니에는 누네스의 각도 측정 원리를 응용해 직선 길이 측정을 위한 정밀 눈금 체계, 즉 버니어 눈금(Vernier scale)을 고안했다. 이 눈금은 주척과 부척의 눈금 간격을 약간 다르게 만들어 두 눈금이 일치하는 지점을 통해 소수점 이하의 미세한 단위를 읽을 수 있도록 설계된 것이다. 베르니에의 시스템은 이전보다 훨씬 높은 정밀도를 제공했으며, 후대 공학 측정의 표준이 되었다. 이 혁신적인 아이디어 덕분에 그의 이름은 오늘날까지 버니어캘리퍼스로 남게 되었다.

 

피에르 베르니에
 

 

캘리퍼스의 발전과 형태의 다양화


이후 18세기~19세기에 이르러 산업혁명과 더불어 금속 가공 기술이 발전하면서 캘리퍼스의 형태는 크게 발전하였다. 초기에는 내부 캘리퍼스, 외부 캘리퍼스, 디바이더 캘리퍼스 등으로 분화되었다. 내부 캘리퍼스는 원통이나 파이프의 내경을 재는 데, 외부 캘리퍼스는 외경이나 두께를 측정하는 데 사용되었다. 디바이더 캘리퍼스는 지도상의 거리나 물체의 균등 분할에 활용되었다.

 

내부 캘리퍼스

 

 

현대 버니어캘리퍼스의 등장


현대적인 버니어캘리퍼스는 누네스의 노니우스 개념과 베르니에의 버니어 눈금을 결합해 완성된 형태이다. 고정된 주척과 슬라이딩 가능한 부척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주척은 기본 길이를 제공하고, 부척의 눈금은 0.1mm 또는 그 이하의 정밀도를 가능하게 한다. 이 구조는 간단하면서도 매우 정밀해, 전기나 디지털 장비가 없던 시대에도 신뢰할 수 있는 측정 결과를 제공했다.

 

버니어캘리퍼스

 

편의와 효율을 위해 발전


20세기 후반에는 읽기 편의성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다이얼 캘리퍼가 개발되었고, 이어서 전자식 디지털 캘리퍼로 진화했다. 디지털 캘리퍼는 선형 인코더를 이용해 측정값을 전자적으로 읽으며, 단위를 밀리미터, 인치로 자유롭게 전환할 수 있다. 또한 USB나 무선 통신을 통해 데이터를 전송하는 기능도 갖추어, 산업 현장에서 자동화 측정 시스템과 연동이 가능해졌다. 현재 버니어캘리퍼스는 ±0.02mm 수준의 오차 범위로, 대부분의 산업 공정에서 충분한 정밀도를 제공한다. 그리고 여전히 전자식 기구가 아닌 수공구로서, 가장 신뢰받는 측정 장비 중 하나로 남아 있다.

 

_ 이유나 / 자료참고 _ Wikipedia.org 등